7 5월 2017

“누구나 똑똑하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전문가 조언 안 들어”

“누구나 똑똑하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전문가 조언 안 들어”

[중앙일보] 입력 2017.05.07 10:15   수정 2017.05.07 10:56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의 저자 톰 니콜스. "인터넷의 확산으로 누구나 남들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전문가들의 의미 있는 조언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진 톰 니콜스]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의 저자 톰 니콜스. “인터넷의 확산으로 누구나 남들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전문가들의 의미 있는 조언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진 톰 니콜스]

정치 얘기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자칫 생산적인 토론이 아니라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최근 부산에서 30년 친구끼리 정치 얘기를 하다 몸싸움이 벌어져 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전문지식의 죽음』으로 주목받는 톰 니콜스 교수 e메일 인터뷰
“인터넷 확산, 민주주의 오해해 어떤 의견이든 귀하다고 여겨 문제”
“전문가들의 전문성 홀대, 대신 유명인들의 발언 신뢰”

『전문지식의 죽음』 표지. 

『전문지식의 죽음』 표지.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미국 해전대학(Naval War College)에서 국가 안보 문제를 가르치는 톰 니콜스(56) 교수가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지난달 미국에서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안에서 요즘 사람들은 ‘당신이 틀렸다’는 얘기를 ‘당신은 멍청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내 의견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모욕감을 느끼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으레 속 좁은 사람으로 치부한다는 얘기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그런 현상의 배후에 ‘전문가의 몰락’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팽창으로 지식이 폭발해 누구나 어떤 문제에든 나름의 전문가가 된 데다, 민주주의의 평등 강조가 모든 의견이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돼,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고 여기는 나르시시즘이 확산된 결과, 책 제목처럼 전문가들이 위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내디딘다. 서양 문명의 토대인 과학적 합리성마저 부정되고, 민주주의마저 오작동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걸까. 그를 e메일 인터뷰했다.

질의 :전문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응답 : “학위 같은 자격증은 물론 오랜 경험, 동료 전문가들의 인정, 해당 분야에서 일정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다. 위대한 전문가가 되려면 재능도 있어야 한다.”
질의 :사회 각 부문에서 전문가의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지 않나.
응답 : “전문가나 전문지식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사람들이 반감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듯 전문가들이 어떤 문제건 즉각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 더 이상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니콜스는 “사람들이 전문가에 대해 무척 화가 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전문가인 체 하며 자기 견해를 밝히면 권위에 기대거나,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합리적 대화를 고사시키려는 행동쯤으로 여겨 분노를 표출한다”는 얘기다.

질의 :그런 전문가 홀대 현상의 폐해를 꼽는다면.
응답 : “지난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는 유세 기간 중 ‘전문가는 끔찍해(The experts are terrible)’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런 태도는 전문가나 지식인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엉터리로 좌우한다는 미국인들의 오랜 반감과 비슷한 것이기는 하다. 어쨌든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미국의 핵억지력 같은 이슈는 먹물들이 떠드는 허풍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트럼프가 무식하든 틀렸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걸 인식할 능력조차 없다.”
질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전문가에 대해 화를 내게 됐나.
응답 :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치나 경제 시스템에 대해 크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 정치 참여가 꾸준히 늘고 경제가 성장한 결과다. 시스템이 잘 작동한 거다. 문제는 좋지 않는 시기가 닥치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점이다. 달착륙에 성공하고 냉전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리리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의 해결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얘기를 들으려하지조차 않는다.”

밀려난 전문가의 자리를 차지한 건 셀러브리티, 유명인들이다. “주치의의 말보다 유명인의 발언을 더 신뢰하는 요즘 현상은 놀라울 정도다. 케이블 TV나 인터넷을 통해 유명인이 친구처럼 된 결과인데, 과거 스타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생활이나 정치적 견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팬을 적으로 돌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일반인보다 나을 게 없는 유명인들은 미국 정치지형의 일부가 됐다.”

질의 :해결책은 있나.
응답 : “많지 않다. 전문가는 민주사회의 주인이 아니라 봉사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고, 일반인은 교육으로 무장하고, 국가 운영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니콜스는 학교나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대학교육은 학교 간 치열한 경쟁이 문제다. “대학들이 살아남기 위해, 돈(학비)을 지불하는 학생을 고객처럼 여기다보니 비판적인 지식인을 기르려하기보다 좋은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대한다”고 했다. 언론은 “24시간 뉴스 공급 압박 때문에 복잡한 사안은 다루지 않거나, 무보수로라도 일하려는 젊은 기자 지망생이 넘쳐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니콜스는 구(舊) 소련 연구 전문가다. 1990년대 중반 퀴즈쇼 ‘지오파디!’에서 다섯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SNS에서 러시아에 관해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비전문가’들에 화가 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가 책을 쓰게 됐다. 블로그 글이 온라인 매체 ‘더 페더럴리스트’에서 실린 뒤 100만회 넘게 조회됐고, 영국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안했다. 책은 현재 아마존 철학 카테고리에서 인식론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국내에는 7월 번역 출간된다.

“사람들이 아직도 내 다른 약력보다 ‘지오파디!’ 우승에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역시 TV에 나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1547721?cloc=joongang|home|topnews1#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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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7년 5월 7일 by comphy in category "사회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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