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국문학 [국어 국문학] [이순일과 심순애]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 『장한몽』의 탄생과 운명
2022.07.24 19:24
[국어 국문학] [이순일과 심순애]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장한몽』의 탄생과 운명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 조회수 : 3744 |
『장한몽』의 탄생과 운명
때는 음력 삼월 십사일 봄밤이요 장소는 빼어난 경치로 이름난 대동강변이다. 평양 팔경 가운데 으뜸이 부벽루 달구경이라 했건만 달빛 아래 청춘 남녀 한 쌍의 그림자는 험악하기 그지없다. 쓰러져 흐느끼던 여자가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보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뿌리치며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생모를 쓰고 까만 교복을 걸친 청년은 급기야 여자의 허리께에 함부로 구둣발을 내지른다. 지지리 못난 남자는 그래 놓고도 여자 마음 하나 얻지 못해 끝내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장한몽』은 1978년 극단 가교의 성공적인 공연, 1979년 천막 극장 연극 잔치, 1981년 제삼 세계 연극제와 같이 굵직한 무대를 거치며 악극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여러 극단에서 소극장 공연으로, 악극으로, 때로는 변형된 가극으로『장한몽』을 무대에 올리면서 변함없는 사랑을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예컨대 1988년에 처음 기획된 <순애 내 사랑>은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최근까지 순회공연 형태로 이어졌다. 독특한 연쇄극 형식이자 무성영화 변사극이라 이름 붙은 퓨전극 <순애 내 사랑>의 인기는 복고 취향이나 낡은 향수 덕분만이 아닐 터다. 사실『장한몽』이 발휘한 역동적인 실험성에 톡톡히 한몫한 것이 바로 연쇄극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영화로는 조중환이 직접 영화사를 설립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1926년에 단성사에서 개봉된 흑백 무성영화『장한몽』에는 나운규와 심훈이 출연했다. 또 1931년에 이구영 감독이 처음으로 이동 촬영 기법을 도입하여『수일과 순애』를 영화화했다.『장한몽』은 1960년대에 두 차례 제작되었다. 1965년에 세기극장에서 개봉된 김달웅 감독의『이수일과 심순애』에서는 신성일과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다. 1969년에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장한몽』은 조중환의 번안소설에 가장 충실한데, 신성일, 윤정희, 남궁원, 한은진, 도금봉, 사미자와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급 배우가 총출연했다. 장르나 양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과 실험성 강한 도전이 유독『장한몽』을 통해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서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지나온 편력과 운명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해 준다.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일 법한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유전되면서 광범위하게 소비된 현상은 분명 놀랍다. 애초에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와 번안소설로 탄생한『장한몽』은 저곳의 이야기에서 이곳의 이야기로, 그때의 이야기에서 지금의 이야기로, 아예 이야기를 넘어 가요, 연극, 악극, 영화로 탈바꿈되었다. 또 이야기가 책으로, 책에서 상품으로, 문학을 벗어나 문화로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그러면서도 앞선 이야기를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미디어와 다양한 갈래를 모색하면서 스스로 갱신되어 왔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한국인의 대중적인 정서와 감수성을 줄기차게 자극해 온 저력은 시대와 세태의 변화에 따라 갖가지 장르와 양식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단련되고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장한몽』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색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참신한 맵시로 출현하곤 했으며, 짐작컨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예견하기 힘든 첨단의 미디어를 발굴해 새로운 적응 능력을 발휘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 양식을 개척해 갈지도 알 수 없다. #저자 약력 朴珍英 1972년 서울생. 연세대 비교사회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최근 저서 『장한몽』, 『번안소설어 사전』, 『신문관 번역소설 전집』, 『번역과 번안의 시대』,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등. bookgram@naver.com #주석 이미지 제공_필자, 인천한국근대문학관, 창작극희 |
[출처]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2&sq=1086&page=&mod=last&Q=&S=&s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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