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카드회사 티브이 광고 속 유해진
카드회사 티브이 광고 속 유해진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카드회사 티브이 광고 속 유해진의 대사

 

 

오랜만에 기막힌 유행어가 하나 등장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광고 문구로. 광고 속 상황은 이렇다.

 

카드로 결제하려는 손님(유해진) 앞에서 계산대 안 점원이 연이어 묻는다. “할인되는 카드 있으세요? 마일리지 카드 있으세요? 통신사 카드 있으세요? 멤버십 카드 있으세요? 엄마 카드 있으세요? 아빠 카드 있으세요?” 그러자 유해진의 망연자실한 표정 위로 속마음이 읽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토록 마음에 쏙 드는 광고가 얼마 만인지!

 

방송사 피디가 되기 전에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한 적이 있다. 1년 동안 ‘빡세게’ 구른 경험은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도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광고가 파고든 지점은 카드 할인혜택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 카드 하나면 수많은 할인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긴, 극장표 하나에도 적용되는 카드 혜택이 뭐가 그리 복잡한지, 그냥 다 안 하고 싶다는 유해진의 독백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리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참 번져나갈 당시 속수무책이었던 정부 당국과 대통령을 풍자하는 사진에도 이 대사는 유용하게 쓰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해보면 이 광고는 현대사회의 부조리 중 하나와 맞닿아 있다. 편리하자고 만들어낸 시스템이 너무 과해져 오히려 불편해져 버린 상황. 작은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너무나도 번거로운 과정을 견뎌내야 하는 경험, 다들 많지 않은가? 오늘의 명대사는 이런 부조리함을 역시 부조리한 문장(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모순이므로)을 통해 꼬집고 있다 하겠다.

 

나도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대사를 통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내보겠다. 사실 오늘의 명대사는 이미 조석 작가의 웹툰에 등장한 적이 있다. 웹툰 <마음의 소리> 871화 ‘안 해’ 편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실 별로 하는 거 없지만 오늘은 더 적극적으로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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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렇다면, 표절? 이 광고를 제작한 광고대행사 홍보팀과 직접 통화해서 전해들은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이 대사는 웹툰에 쓰이기 전부터 이미 인터넷에 꽤 퍼져 있었던 글이었다. 제작팀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는 최초로 글을 쓴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저작권 전문 변호사까지 동원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광고를 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작자 미상의 글 한 줄까지 이렇게 조심해서 다뤘다는 점에 주목하자. 남의 저작물을 갖다 쓸 때의 모범사례라고나 할까. 과정도 결과도 박수받을 만하다. 기억조차 잘 안 난다는 변명 이후 별다른 반성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이 광고 뒤에 이어 제작된 연작광고 역시 영화 <허>(HER)의 패러디인데 정말 찾아볼 만하다. ‘사라 광고’로 검색하면 나온다.

 

이쯤에서 헛갈리기 쉬운 표절, 패러디, 오마주를 구별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원본을 알면 재미있는 것이 패러디. 원본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오마주. 원본을 감추고 싶은 것이 표절이란다. 표절 행위는 대중들이 심판관이 되어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도둑질을 하고도 벌을 안 받으면 결국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베끼고 싶다. 이미 베끼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베끼고 싶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6985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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