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경영] 야바위 얼굴만 남는다 : 사기술, 6편: 사기술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 같은 곳에는 으레 야바위꾼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그라미가 표시된 카드 한 장, 아무 표시도 없는 카드 두 장, 이렇게 카드 세 장을 뒤집어 놓고 이리저리 섞은 다음, 동그라미 표시된 카드를 찾아보라고 부추긴다. 야바위꾼은 처음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카드를 천천히 섞으며 내기를 걸도록 유혹한다.

눈썰미 없는 내가 봐도 오른쪽 맨 끝의 카드가 동그라미가 그려진 카드다. “단돈 천 원. 맞히면 두 배!” 이렇게 야바위꾼은 소리치며 흥을 돋운다. 주변의 아저씨들도 “가운데 카드다”, “아니, 오른쪽 카드야!”하며 야바위꾼의 흥에 맞춰 분위기를 띄운다. 야바위꾼은 “자, 어느 쪽이 동그라미냐?” 하며 카드를 뒤집어 확인하려고 한다. 구경꾼들 모두가 알고 있는 오른쪽 카드를 애써 외면하며 야바위꾼은 가운데 카드를 자꾸 뒤집으려고 한다. ‘아닌데, 그 카드가 아닌데. 오른쪽 카든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카드를 한 장 한 장 뒤집으며 오른쪽 카드가 동그라미 카드라는 것을 구경꾼들에게 확인해 준 뒤, 현란한 솜씨로 카드를 뒤섞으며 손놀림보다 더 현란한 화술로 돈을 걸도록 부추긴다. 유난을 떨며 돈을 걸어 당첨금을 받은 사람들도 몇 명 있었던 것 같다. 곳곳에 섞여 판의 흥을 돋우고 돈을 따는 사람들이 바람잡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유심히 야바위꾼의 손놀림을 관찰할수록 동그라미 카드를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무렵, 아저씨들이 모여 웅성대는 곳에서 처음 본 광경들이다. 카드 대신 작은 그릇 세 개를 가지고 하는 야바위도 있었던 것 같다. 작은 구슬 같은 것을 그릇 안에 넣고 이리저리 섞은 뒤, 구슬이 들어 있는 그릇을 찾아보라고 한다. 카드로 하는 야바위처럼 구슬이 들어 있는 그릇을 맞히는 것도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때에도 쉽게 돈을 딸 수 있을 것만 같은 유혹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지로 돈을 걸어 본 적은 없다. 워낙 새가슴에다 돈을 걸 만큼 주머니가 넉넉하지도 않았다.

이런 간단한 방법 말고도 거창한 도구를 동원한 경우도 있었다. 함석으로 만든 둥근 수조에 물을 담아 놓고 새끼 거북을 풀어 놓은 야바위도 본 적이 있다. 수조 테두리 쪽에 작은 칸막이들을 만들어 놓아 새끼 거북이 아무 칸막이에나 헤엄쳐 가게 한다. 새끼 거북이 어느 칸막이로 헤엄쳐 갈지 알아맞히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미니 경마라고 할 만한 것도 있었다. 마치 수영장을 축소해 놓은 모형 같은 수조에서 거북이인가 물방개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수영 잘 하는 놈들을 풀어 놓아 경주를 시키는 식이었다.

카드를 사용하든 큰 수조를 사용하든 야바위의 원리는 딱 한 가지일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이 정답을 맞혀서 돈을 딸 수 있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돈을 걸게 한 뒤, 결국은 능숙한 솜씨로 돈을 털어 가는 것. 그래도 이런 수조에서 야바위꾼들이 어떻게 자기들 마음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승부 조작’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어 신기하기만 했고, 그런 만큼 보기 드문 구경거리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마도 미세한 전류를 조작하는 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뿐이었다.

이런 야바위 가운데 익숙한 것으로 박보장기가 있었다. 장기 묘수 풀이의 한 종류인데, 장기판에 남아 있는 기물이 몇 개 되지 않는다. 판이 거의 끝나 더 이상 둘 수가 있나 싶은 배치였다. 그런데 장기를 둘 줄 아는 사람이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금방 수가 날 것처럼 보인다. 박보장기판의 분위기도 다른 야바위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 바람잡이가 자리를 해서 돈은 걸어 아깝게 지기도 하고 훈수를 두기도 하고 돈을 걸어 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평범한 수준의 장기 실력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서너 수쯤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 함정 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질 수 없는 판으로 보이게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 돈을 걸고 장기를 두어 보지만 야바위꾼은 생각지도 못한 수로 응수하며 돈을 쓸어간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 가운데 장기를 제법 두어 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보기에 사람들이 걸려드는 함정 수를 피할 방법이 빤히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진행될 수도 금세 간파한다. 일곱 수나 여덟 수쯤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몇 개의 함정수를 넘어 수를 보는 순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제 박보 장기판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바람잡이가 그런 호구에게 들러붙어 함께 수를 연구하는 도움이처럼 행세한다. 호구와 이렇게 저렇게 의논하며 이길 수밖에 없는 수를 찾았다고 호구가 확신하도록 부추긴다. 이제 푼돈을 놓고 벌이는 심심풀이 판을 훨씬 넘어서는 순간이다. 호구는 큰돈을 딸 수 있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바람잡이가 이 틈을 놓칠 리 없다. 바람잡이가 호구를 부추겨 천만 원이든 이천만 원이든 마련해 오게 한다. 그 뒤의 스토리는 빤한 결말로 이어질 뿐이다. 시골 장터에서 노인을 상대로 이런 사기가 자주 일어났는데, 십여 년 전까지도 신문에 토막 기사로 실렸던 기억이 난다.

박보장기는 장기의 묘수풀이를 이르는 일반 명사인데, 우리나라 박보장기판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그 묘수풀이가 초보든 고급자든 접근하기 쉽고 여러 함정 수가 있어서 야바위꾼들의 구미에 딱 맞는 묘수풀이인 것 같다. 말하자면 장사가 되는 아이템인 것이다. 이 아이템에 대해 프로 장기 기사가 해설하는 것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서로 최선의 수를 둘 경우, 이십 수가 훌쩍 넘어가는 복잡한 수순을 거쳐야 이길 수 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야 현란하게 진행되는 수순을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그러므로 돈 보따리를 들고 박보장기판에 찾아온 시골 노인이 야바위꾼을 상대로 돈을 따간다는 것은 그 노인의 꿈에서나 이루어질 일이다.

 

《스팅》

《스팅》(1973년, 조지 로이힐 감독) <출처:나무위키>

어렸을 때 영화 《스팅》이 친구들 사이에서 한창 화제 거리인 때가 있었다. “너, 그 장면 봤지? 열차 간에서 말이야 폴 뉴먼이 술 취한 척 카드 게임 하는 장면.” 이렇게 한 친구가 말하자, 다른 친구가 바로 맞장구쳤다. “봤지. 진짜 신기했어. 분명히 3 포카였는데 마지막에 카드가 바뀌잖아.” 잔뜩 흥분해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스팅》 이야기에 들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나 재미있는 영화를 나는 보지 못했다.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서 더 침울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볼 돈도 없고, 영화를 보여 줄 형이나 삼촌도 가까이에 없었다.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친구들 몇 명끼리는 ‘구멍치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에서 표를 받는 ‘기도 아저씨’ 몰래 이른바 ‘개구멍’ 같은 곳으로 들어가 공짜로 영화 보는 방법을 구멍치기라고 불렀다. 당시 《스팅》이 상영되던 제일극장은 제주시의 번화가인 칠성통에 있었는데, 바로 옆 건물 벽과 조그만 틈이 있기는 했다. 그틈 사이로 몰래 타고 올라가 화장실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어? 하며 호기심이 당겼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소망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동네에 사는 어떤 애들이 제일극장에 구멍치기를 하다가 기도에게 걸려 얻어터지고 몇 시간씩 벌을 선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고 싶은 마음을 접어야 했던 《스팅》(1973년, 조지 로이힐 감독)을 한참 뒤에야 볼 수 있었다. 과연 영화는 첫 장면부터 박진감 있게 진행되었다.

미국 시카고 외곽에서 갱단의 조직원인 젊은 청년이 큰돈을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선다. 골목길에 나서자 “저놈 잡아라. 소매치기다!” 하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린다.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니 몸집이 날렵한 젊은 놈이 이쪽으로 잽싸게 달려오고 있다. 저 뒤쪽에서는 계속해서 소매치기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갱단 조직원 바로 뒤에는 잘 차려입은 젊은 신사가 달려오는 소매치기를 뒤돌아보고 있다. 잘 생긴 로버트 레드포드다. 레드포드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소매치기의 무릎 높이로 솜씩 좋게 던진다. 이 타이밍이 어찌나 적절했던지 소매치기는 가방을 피하느라 폴짝 뛰다가 불안한 착지 때문에 땅에 쓰러지고 지갑을 빠뜨린 채 얼른 다시 일어나 잽싸게 도망친다. 떨어진 지갑은 지켜보던 조직원이 줍는다. 지갑 안에는 지폐가 두둑하게 담겨 있다. 저 뒤에서 소매치기 피해자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길바닥에 누워 있다. 아마 큰 부상을 당한 듯 보인다. 더 이상 소매치기를 따라가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레드포드가 피해자가 있은 쪽으로 달려간다. 지갑을 든 조직원도 덩달아 달려간다.

피해자는 한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자꾸 일어나 걸어가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상처 입은 다리로는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피해자는 조직원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네 시까지 마피아 두목에게 큰돈을 전달해야 한다고, 제 시간에 그 돈을 전달하지 못하면 자기 사업이고 목숨이고 모두 끝장이라고. 옆에서 지켜보는 레드포드는 뭘 믿고 생판 처음 보는 이 사람한테 큰돈을 맡기냐고 핀잔을 주지만, 피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직원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듯 말한다. 그러면서 수고비로 조직원에게 100달러를 건네주며 종이를 돌돌 말아 놓은 돈뭉치를 안겨준다.

조직원이 얼떨결에 돈뭉치를 받아들었지만, 레드포드가 조직원의 손에서 냉큼 돈뭉치를 가져가더니 아주 안전하게 돈을 간수해야 한다면서 조직원이 갖고 있는 돈도 달라고 한다. 조건반사를 일으킨 것처럼 조직원은 자기 돈 봉투를 안주머니에서 꺼낸다. 레드포드는 재빨리 조직원의 돈 봉투를 잡아채고, 피해자의 돈뭉치에 조직원의 돈 봉투를 같이 넣어 다시 돌돌 만 다음, 이렇게 안전하게 간수해 가야 한다면서 바지춤에 돈뭉치를 넣는다. 일종의 시범 보이기 같은 것이다. 레드포드가 바지춤에 넣었던 돈뭉치를 바로 꺼내 조직원의 바지춤에 넣어 주며 마피아 두목에게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조직원은 얼떨떨해 하며 상황에 실려 갈 뿐이다. 그 와중에 머릿속에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만 가득했을 것이다. 바지춤에 돈뭉치를 넣은 조직원은 잽싸게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서서 택시를 잡아탄다. 물론 피해자가 전달해 달라고 말한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자고 한다.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바지춤에서 돈뭉치를 꺼낸다. 순간 조직원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돈뭉치가 아니라 종이일 뿐이다. 레드포드가 바지춤에 넣으며 돈뭉치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해야 하는 거금 만 이천 달러를 감쪽같이 털렸다. 우리가 흔히 ‘네다바이’라고 부르는 수법에 당한 것이다.

《스팅》은 1936년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사기 수법은 짧은 상황극처럼 순식간에 펼쳐진다. 레드포드와 피해자와 소매치기, 이 세 사람이 한패가 되어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일종의 상황극이다. 그런데 레드포드 일당이 호구를 찍을 때 갱단의 조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찍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기꾼이라도 갱단 조직의 돈이라는 것을 알고도 털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행인 가운데 제법 현금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을 찍어 사기극을 벌였을 뿐이다. 하지만 돈 앞에서 인정사정 봐 줄 갱단이 어디 있겠는가? 레드포드는 쫓기는 신세가 되고 피해자 역할을 한 루서는 살해당하고 만다. 루서는 레드포드의 멘토이기도 하고, 평생 사기술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사기꾼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워 도와주려는 친구들도 많다. 루서가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루서에 대한 복수극으로 전개되고, 복수의 수단으로 기상천외한 사기술이 동원되게 된다. 레드포드가 루서의 오랜 친구인 폴 뉴먼을 찾아가고 옛 친구들이 모여들어 루서를 살해하도록 명령을 내린 갱단 두목, 로버트 쇼를 터는 이야기가 경쾌한 주제곡과 함께 경쾌한 템포로 이어진다.

로버트 쇼를 상대로 벌이는 사기는 스케일 면에서 앞서의 ‘네다바이’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진짜 사무실을 구하고 진짜 사설 경마장처럼 시설을 꾸며 놓는다. 시설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경마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 경마장 매니저, 돈을 거는 손님들마저도 같은 패거리로 채운다. 그야말로 “가공의 극장”을 차리고 완벽한 무대장치와 온갖 배우들이 출연하는 5막짜리 연극을 상연하는 것처럼 사기를 펼친다. 오로지 갱단 두목인 로버트 쇼 한 사람만을 위한 극장이 차려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열차 장면은 로버트 쇼를 이 가짜 극장으로 꾀어내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스팅》 영화를 보는 내내 교묘한 사기 수법과 치밀한 피해자의 심리묘사가 어우러지고 거기에다 서스펜스와 유머까지 이어지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특히나 갱단의 거물 로버트 쇼를 요리조리 요리하는 사기꾼들의 수법이 감탄스러운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면 상상만으로 그런 수법들을 생각해 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빅콘 게임』

아닌 게 아니라, 《스팅》의 원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 수법의 세세한 내용까지 《스팅》에 강한 영감을 준 책이 있었다. 19세기말부터 발전을 거듭하며 1930년대에 절정을 이룬 미국의 신용 사기 수법을 내부자처럼 속속들이 파헤친 책, 『빅콘 게임』이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모러David Maurer(1906∼1981)는 사기를 전문으로 수사한 수사관이나 경찰도 아니고, 취재기자도 아니고, 실제로 사기를 쳐 본 사기꾼도 아니다. 의외의 일이지만, 언어학자다. 생각해 보면 수많은 사기꾼들의 수사 기록을 검토한다고 해도 세세한 수법들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모러에 따르면, 신용 사기 피해자의 90퍼센트 정도는 아예 신고를 하지 않을 뿐더러 잡힌 신용 사기꾼이라도 여기저기 뇌물을 써서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실형을 사는 사기꾼은 극히 소수라고 한다. 이런 신용 사기꾼들이 수사 과정에서 순순히 자기 수법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을 리도 없다. 신용 사기꾼이 자기 평생의 밥줄인 사기 수법을 책으로 써서 만천하에 공개할 리도 만무하다.

데이비드 모러는 일생을 암흑가의 언어를 연구한 학자로서, 그 가운데 사기꾼들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는데, 이 책 『빅콘 게임』은 “수많은 사기의 배경을 조사하다가 탄생한 부산물”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연구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사기꾼들 자신이 털어놓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한 책이다.

모러가 범죄자들과 격의 없는 관계를 맺으며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필드워크에 특출한 재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적 능력이나 인화력 외에도 범죄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배포가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얼어붙을 듯한 한겨울 날씨에 무거운 어망을 걷어 올리는 작업을 돕거나, 밀주 공장으로 가는 시골길에서 진창에 빠진 자동차를 함께 밀 수 있을만큼 건장한 어깨와 힘센 팔을 지닌 거구의 사내”였다고 한다.

『빅콘 게임 The Big Con: The Story of the Confidence Man』은 미국에서 1940년에 출간된 꽤 오래된 책이다. 한국어판으로는 2004년에 출간되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제목에서 Con은 신용 사기를 뜻하는 Confidence를 줄여 쓴 말이지만, Con 자체로 사기를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그러므로 빅콘Big Con은 대형 사기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스팅》에서 보면, 첫 장면에 나온 사기는 숏콘이고 로버트 쇼를 상대로 벌이는 사기가 빅콘이다. 빅콘은 무대장치가 잘 갖춰진 가짜 극장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가짜 극장은 《스팅》에서처럼 가짜 사설 경마장일 수도 있고, 링이 있는 권투 경기장이나 트랙이 있는 도보 경주 경기장일 수도 있고, 사설 증권회사일 수도 있다. 사기가 이루어지는 이런 곳을 모두 빅스토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빅스토어를 무대로 일어나는 사기는 빅콘이다. 소소하게 털어먹는 숏콘과 엄청난 돈을 챙기는 빅콘 사이의 차이는 “보내기”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고 모러는 말한다.

예를 들어, 보통의 박보장기는 그저 호구들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터는 데 만족한다. 그런데 돈을 가지러 집으로 간 시골의 노인의 예처럼 돈을 딸 수 있다는 욕심에 자기 돈이든 친척이나 친구의 돈이든 있는 대로 돈을 끌어 모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수법이 “보내기”인 것이다. 이런 “보내기” 단계가 있는지 없는지가 숏콘과 빅콘을 나눈다. 따라서 빅콘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의 규모는 《스팅》에서처럼 50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이 될 수 있다(정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금액에 열 배 정도로 생각해야 돈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모러에 따르면 신용 사기는 규모나 무대장치에 관계없이 똑같은 원리에 따른다고 한다. 몇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먹잇감을 찍는 일부터 시작한다. 돈 좀 있어 보이는 호구를 고르는 일이다. 호구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환심을 사는 단계가 이어진다. 이때 사기꾼은 세련된 매너나 화술로 호구에게 믿음을 주고 호감을 얻을 수 있도록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인물을 미끼라고 부른다.

미끼는 신뢰가 쌓인 호구가 사기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을 만나게 유도한다. 인사이드맨으로 불리는 이 사람은 《스팅》으로 치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를 합쳐 놓은 인물쯤 될 것이다. 주가조작의 달인일 수도 있고, 월스트리트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비공식 거래를 책임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인사이드맨은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처럼 연기한다. 호구는 인사이드맨의 멋진 풍모와 부유해 보이는 모습,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에 끌려 한없이 신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신뢰를 얻은 인사이드맨이 호구에게 은밀하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물론 그다지 정직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경마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든지 주가를 조작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호구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제 호구는 돈 벌 욕심에 안달이 난다. 집으로 돌아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스토어로 돌아온다. 사기꾼들이 호구의 돈을 빅스토어에서 털어먹으며 사기극은 절정에 이른다. 사기를 친 다음에는 되도록 빨리 현장을 뜬다. 혹시 피해자가 고소하더라도 미리 매수해 놓은 경찰이 피해자를 잘 얼러 돌려보낸다. 물론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교묘한 방법을 동원한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잘 마련해 두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호구를 떼어 놓기 위해 흔히 쓰는 출구전략 가운데 『빅콘 게임』에 나오는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가짜 증권회사에서 주식 투자로 사기를 치는 경우에 쓰는 마무리 수법이다. 큰돈이 걸린 마지막 베팅에서 월스트리트의 큰손이 보낸 결정적인 전보가 도착한다. 어느 회사 주식을 얼마에 팔라는 정보가 적힌 전보. 인사이드맨이 미끼에게 전보를 보여 주며 이 회사 주식을 매매하라고 지시한다. 미끼는 호구를 구슬러 인사드맨에게 데려온 자이고 그동안 호구와 함께 지내면서 인사이드맨에게서 얻은 정보로 제법 돈을 번 자이다. 물론 호구는 미끼가 인사이드맨과 한패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태다.

미끼는 의기양양하게 창구로 가서 그 회사 주식 매수 주문을 낸다. 물론 이 돈은 호구가 가져온 돈이다. 호구는 자기 돈과 인사드맨의 돈, 미끼의 돈도 같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호구의 돈만 들어가 있다. 어차피 가짜로 차려진 증권회사이므로 모든 돈은 사기꾼 패거리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어쨌든 호구는 막대한 돈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와 있다는 생각에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주문을 넣은 미끼가 전표를 가지고 인사이드맨과 호구가 있는 곳으로 온다. 그 순간 인사드맨은 사색이 되어 소리친다.

“하느님 맙소사, 사다니! 팔라고 했잖아. 공매도하라고! 이 전보 안 보여? 우린 이제 망했어.”

공매도는 주식을 들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팔자 주문을 내놓고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사서 다시 갚는 것이다. 공매도를 해야 했는데 반대로 매수 주문을 냈으니 모든 돈을 날리게 생겼다. 호구는 머리가 하얘진다. 호구는 “머릿속의 계획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와르르무너져 내리고, 그는 추락한다.”

이제 모든 잘못은 미끼가 뒤집어쓰게 된다. 인사이드맨은 미끼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호구는 인사이드맨이 매매하라고 했지 공매도하라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이렇게 변명하는 못난 미끼에게 호구는 살의를 느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미끼 또한 전 재산을 날린 빈털터리가 되었으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경축! 아무것도 안하여 에스천사게임즈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오픈 하였습니다.
어린이용이며, 설치가 필요없는 브라우저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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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공화국 풍경

사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도 결코 미국에 못지않게 번창하고 있다. “생활형 검사” 김웅이 쓴 『검사내전』의 1부 제목이 “사기공화국 풍경”이다. 맨 처음 나온 이야기가 “후덕하고 진실한 인상”의 할머니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사기 수법은 비즈니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름 하여 어음 사기. 먼저 건실한 유통업체를 인수한다. 사장은 물론 바지 사장을 앉힌다. 회사를 인수한 뒤 꾸준히 거래를 유지하며 신뢰를 쌓는다. 이때 결제 수단이 약속어음인데 제 날짜에 어음 결제를 잘 해 준다. 이런 식으로 1년 정도 신뢰를 쌓은 다음 사기에 들어간다. 대기업에서 연말 선물로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물건을 거래처에 주문을 낸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알루미늄 괴나 랩톱”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어음 결제의 속성상 3개월이나 6개월 뒤에 결제가 이루어지므로 주문한 물량을 가로채 달아날 시간이 충분하다.

대량 주문을 받은 업체는 이런 어음 거래의 위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몇 개월 뒤에 어음이 제대로 결제되기만 한다면 납품자 입장에서는 제법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결제가 될까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그동안 성실히 거래해 온 거래 실적을 믿고 상품을 납품했다. 갑작스런 물량에 의심을 품은 업체도 할머니는 가볍게 속아 넘겼다. SK텔레콤에 납품할 물건이라며 가짜 SK텔레콤 부장을 내세워 간단히 속아 넘긴 것이다. 가짜 명함을 만들고 대기업 부장 행세를 하는 인물이 SK텔레콤에 직접 납품하라며 SK텔레콤 본사 주차장에서 물건을 넘겨받는 식이었다. 가짜 부장이 가짜 명함을 만들고 방문자 자격으로 SK텔레콤 본사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의심을 품은 업체조차도 이런 허술한 속임수에 모두 속아 넘어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린다. 어음 결제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결제 대금이 안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도저히 사기 칠 인상의 할머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납품한 물건이 ‘땡처리’ 시장에 나오고 나서야 고소가 이루지고, 그런 뒤에도 바지 사장을 쫓느라 또 몇 달이 흘러간다. 바지 사장이 잡히고 나서야 할머니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그러는 사이에 할머니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할머니를 수배한 뒤 사건을 기소중지하면 또 1∼2년이 지나간다.

이 할머니의 사기 수법은 수십 개의 중소기업을 들어먹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한민국 검사”들마저도 가지고 놀았다. 수배를 풀기 위해 담당 검사실로 불시에 들이닥치기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김웅 검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검사들은 2년마다 인사이동이 있다. 그러니 새로 부임한 검사는 기소중지된 기존 사건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새로운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된 것을 확인한 할머니가 “느닷없이 검사실로 쳐들어온다.”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할 시절이니 퇴근하기 얼마 전 시간을 절묘하게 골라 쳐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욕설과 고함을 질러대며 자기를 왜 수배해 놓았느냐며 소리를 지른다. 이른바 “선빵”을 날리는 수법이다. 그런 기세에 눌린 신임 검사는 무언가 실수를 했구나 싶어 쩔쩔매게 된다. 부랴부랴 사건 기록을 찾지만 이때에도 시간이 걸린다. 이제 퇴근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사건을 세세하게 검토할 여유가 없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가 무슨 큰 죄를 지었겠는가? 구태여 지금 체포할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돌려보내고 천천히 기록을 살펴본 뒤 다시 불러 조사하면 되겠지. 이런 식으로 사태가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기 전력만 34회에 이르고 수백억 대의 어음 사기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김웅 검사에게까지 넘어오게 된 것이다.

할머니가 김웅 검사실로 쳐들어온 토요일 오전, 김웅 검사는 당직 근무 중이라 밤 12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갓 부임한 어린 검사가 할머니 예상과 달리 사건 기록을 몇 시간째 읽는 모습을 보고 사기꾼 할머니는 점점 불안해진다. 현기증이 난다는 둥 예전에도 응급실에 늦게 가는 바람에 전신마비가 올 뻔했다는 둥 꾀병을 부렸다. 그러다 뒷부분까지 사건 기록을 읽고 있는 김웅 검사를 보면서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진 할머니는 결국 웩웩 소리를 치더니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검사실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으니 응급실로 급히 실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김웅 검사는 “그냥 머릿속이 까매졌다”고 한다. 119에 연락하는 것마저 까먹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뒤, 김웅 검사는 할머니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과정이 참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다.

사람의 코는 모양이 제각각이듯 좋아하는 향에 대한 기호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꽃 냄새를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암모니아 냄새를 좋아하기도 한다. 나는 세제 냄새를 좋아했다. 왜냐고 묻지는 마시라. 기호에는 원래 이유가 없다. 각자의 독특한 기호는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밥값을 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입에 다가간 순간,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어디선가 아주 친근하게 맡아봤던 이 청초한 냄새는? 알 듯 말 듯 콧속과 머릿속을 맴도는 이 냄새는? 그렇다! 그것은 ‘하이타이’ 냄새였다. (김웅, 『검사내전』, 32쪽)

노련한 사기꾼답게 할머니는 최후의 카드를 준비해 온 터였다. 하이타이를 환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조사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하이타이 환을 입에 놓고 침으로 녹이며 게거품을 물고 실신 연기를 했다. 검사가 하이타이 냄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또 다시 응급실로 실려 가고 수사는 또 지지부진해졌을 것이다.

 

혼자서 씩 웃는 사기꾼

일찍이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도 지옥에 사기꾼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펄펄 끓어오르는 역청 지옥이다. 부절제의 죄나 폭력의 죄를 범한 자들보다 더 심한 벌을 받도록 사기꾼들을 역청 지옥에 넣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 22곡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단테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악마들마저 속이는 사기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처벌하려는 악마에게 사기꾼이 말한다. 잠시 물러나 있으면 휘파람을 불어 역청 속에 있는 다른 사기꾼들을 불러내겠다고. 악마가 잠시 물러난 사이에 사기꾼은 잽싸게 역청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사기꾼을 쫓아가던 악마들이 서로 다투다 역청에 빠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19세기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1849)는 사기꾼의 속성을 「사기술」이라는 짧은 글에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인간 외에 사기 치는 동물은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까마귀는 훔치고, 여우는 속이고, 족제비는 선수 치고, 인간은 사기를 친다. 사기는 인간의 숙명이다. 어떤 시인은 “인간은 슬퍼하게 되어 있다” 하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기 치게 되어 있다.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선집4』, 10쪽)

그러면서 사기라는 복합체를 만들어 내는 아홉 가지 재료를 들고있다. 섬세함, 흥미, 끈기, 정교함, 대담함, 태연함, 독창성, 건방짐, 소리 없는 웃음. 하나하나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사기꾼의 행태를 드러내는 속성이 아닐 수 없다.

섬세하지 못하고 무딘 사기꾼이 남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사기꾼은 흥미에 이끌려 움직인다.” 호구를 알아보고 호구의 돈 냄새에 끌린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주머니를 노린다.

사기꾼은 끈덕지다. 호구를 한번 문 사기꾼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 “쉽사리 낙담하지도 않는다.”

사기꾼은 정교하다.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우고 줄거리를 엮는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사기꾼은 대담하다. 겁도 없이 최고 권력자의 측근 행세를 한다. 발각될까 두려워 겁을 먹지도 않는다.

사기꾼은 태연하다. “사기꾼에게는 신경이라는 게 아예 없다.” 침착하고 평온하고 절대 화를 내는 법도 없다.

사기꾼은 독창적이다. “사기꾼은 진부한 기술을 경멸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수법을 만들어낸다.

사기꾼은 건방지다. 사기꾼은 허풍쟁이에다 우리에게 비웃음을 날린다. “우리의 저녁을 해치우고, 포도주를 마시고, 돈을 빌리고, 놀려 먹고, 우리의 강아지를 걷어차고, 우리의 아내에게 입을 맞춘다.”

이제 포는 사기꾼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의 진정한 사기꾼은 씩 웃는 것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한다.” 작업을 끝마친 사기꾼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소리없이 씩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스팅》에서 폴 뉴먼은 사기의 최고의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사기를 당한 호구가 자기가 사기를 당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사기를 치는 것. 불안을 부추겨 돈을 강탈하는 보이스피싱 같은 일부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숨겨진 욕망을 불러내고 부추긴다. 숨겨진 욕망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사기술과 자본주의는 같은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정상적인 비즈니스와 사기술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으로 드러난다.

애드거 앨런 포는 「사기술」에서 금융업자와 사기꾼 사이의 차이는 규모가 큰지 작은지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코끼리와 쥐, 혜성 꼬리와 돼지 꼬리의 관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크게 해 먹느냐 작게해 먹느냐의 차이뿐이다. 우리는 2008년 경제 위기에서 실제로 이런 일을 겪었다. 팔아서는 절대 안 되는 쓰레기 같은 부실 채권들을 CDS니 CDO하는 거창한 상품으로 묶어 팔았고, 결국 세계경제의 위기를 초래했다. 그런 사기를 친 뒤에도 누구하나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롤링스톤』의 기자 매트 타이비는 그런 미국 사회를 “사기꾼들의 유토피아Griftopia”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가는 사이에 저 위의 누군가는 소리 없이 씩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참고 도서

데이비드 W. 모러, 고수미 옮김, 『빅콘 게임』, 마고북스, 2004년.
김웅, 『검사내전』, 부키, 2018년.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선집4 풍자편』, 코너스톤, 2015년.
매트 타이비, 『오 마이 갓!뎀 아메리카』, 서해문집, 2012년.
단테 알리기에리, 김운찬 옮김, 『신곡: 지옥』, 열린책들, 2007년.

 

[출처] https://alternative.house/reading-books-essay-n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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