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비용 사용을 예방할 통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제조사 청호ICT가 2021년 3월 말 공시한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보고서의 한 구절입니다. 이 회사는 내부회계 검토 결과 각종 자금 통제가 취약하다는 의미인 ‘부적정’ 의견을 받았습니다. 감사보고서 제출 5일 뒤 회사는 당시 대표이사 엄모씨의 40억원 규모 횡령 혐의를 공시했고,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심사에 착수했습니다.
한 개인투자자는 “ATM 제조사 사장이 회사를 본인 ATM처럼 이용했다”며 “내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나 같은 개인이 어떻게 아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개인투자자가 기업 내부 사정까진 알기 어렵지만, 회삿돈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파악할 방법은 있습니다. 횡령·배임, 분식회계 등 사고 칠 기업을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있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그 가치를 잘 모르게 마련입니다. 바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검토보고서(내부회계 보고서)’입니다.
해당 보고서를 거금을 주고 사야 하거나, 휴민트를 가동해야 할 만큼 힘들게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업이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면 이 안에 첨부돼 있습니다. 몰라서 지나쳤을 따름이죠. (????보는 방법은 기사 맨 아래에)
이 한 장짜리 보고서는 기업에 닥칠 리스크에 대한 예언서와 같습니다. 머니랩이 2459개 상장사의 내부회계 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올해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 갈림길에 선 기업 40곳 중 절반 이상(21곳)이 1년 전 내부회계가 취약하다는 판정(의견거절·부적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문제적 기업 보고서’ 3부에선 2022사업연도 회계감사 결과 내부회계 취약점이 제시된 기업들을 파헤칩니다. 특히 재무제표 감사의견으론 ‘적정’을 받아 주식 거래가 가능한 곳 위주로 살펴봤습니다.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죠.
머니랩 3부작 ‘문제적 기업 보고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Intro. 처음 듣는 내부회계관리제도, 왜 중요해?
내부회계관리제도라고 하면 말은 좀 어렵지만 이해하고 나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령 한 가계에서 가계부를 쓴다고 생각해 볼까요.
일단 아빠·엄마의 월급(수익)이 투명하게 파악돼야 합니다. 비자금으로 새고 있다면 이건 기업으로 따지면 횡령에 해당합니다. 월급을 지출한 내용(투자)과 지출의 결과로 소유하게 된 물건(자산) 역시 투명하게 파악돼야겠죠. 엄마가 싫어하는 모바일 게임을 샀더라도 자녀는 이를 제대로 보고(보고체계)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의 결과물로 나오는 게 재무제표에 해당하는 가계부가 되는 셈이죠.
회계사들은 재무제표가 정확하게 작성됐는지 살펴보기 전에 기업의 자금 관리와 보고 시스템이 적정한지부터 살피는데요. 이를 일컬어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감사(또는 검토)한다고 합니다.
내부회계 감사는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인 상장사는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자산총액 10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은 감사 절차보다는 간소화한 검토 절차를 밟습니다.
회계사는 내부회계 감사·검토로 의견을 제시하는데요. 크게 3가지입니다. 회사 자금 관리가 아예 ‘콩가루’이거나, 회사가 제시한 자료 자체가 미흡해 보탤 의견이 없다는 의미가 ‘의견거절’이라고 볼 수 있고요. 자금 관리를 대충해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가 ‘부적정’입니다. 나름대로(중요성의 관점에서) 잘하고 있다면 ‘적정’ 의견을 표명하죠.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재무제표 감사처럼 내부회계 감사에서도 비적정(의견거절·부적정) 감사의견을 받으면 상장폐지 심사를 받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런 의견을 받는 즉시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됩니다. 투자주의 환기종목에 지정된 뒤 공시 위반으로 벌점이 쌓이거나, 한 해 매출액이 30억원에도 못 미치거나, 누적 적자로 자본금을 몽땅 까먹는(완전 자본잠식) 일이 발생하는 등 부실한 재무 상태가 확인되면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됩니다(코스피 상장사는 예외).
자금 관리가 투명해야 재무제표도 정확하게 기록된다. 자금 관리의 투명성을 살피는 작업이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검토다. 사진 Pxhere
상장폐지 심사 여부와 상관없이 내부회계 감사나 검토 결과는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기업 내부 사정을 모를 수밖에 없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집안 내부의 돈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를 전문가가 검토해 본 유일한 자료이니까요.
특히 재무제표 감사의견은 ‘적정’을 받았지만, 내부회계 감사의견은 비적정이 나온 곳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곳은 재무제표 작성 능력이 떨어지는 회사들이죠. 외부 회계 전문 인력 등을 고용해 억지로 숫자는 맞췄지만 회사 내부 시스템은 취약해 언제든지 회계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회계 부정은 앞서 살펴본 대로 상장폐지 심사 사유입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전문가인 심정훈 삼정KPMG 상무는 “내부회계 감사 결과 비적정 의견이 나오는 기업은 앞으로 회계장부가 왜곡될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볼 수 있다”며 “횡령·배임 사고가 터지는 많은 기업에서 이 같은 의견이 표명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Main. 이런 기업이 자금 관리 안 된다
이제부터는 2022년 감사보고서에서 내부회계 감사의견으로 비적정을 받은 기업 사례를 집중 탐구하겠습니다.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에는 외부감사인이 취약점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하는데요. 개선책 마련에 분주한 곳도 있겠지만, 일단 나온 지적 사항을 살펴볼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Case ①부정부패형(자금·인감·법카, 특수관계자 거래 통제 미흡)
내부회계 감사·검토 이후 지적 사항과 관련해 5곳 중 1곳(19%)이 자금 거래나 법인 인감 관리 등이 허술하거나, 경영진·특수관계자(종속·관계 회사나 경영진과의 친인척 등)와의 거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머니랩은 이런 유형에 '부정부패형'이란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상장폐지 심사 사유에 해당하는 횡령·배임 사고가 이어지기 가장 쉬운 유형이죠.
법인카드 사용 문제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쌍방울이 대표 사례입니다. 검찰은 쌍방울이 2019년 5월께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측근을 쌍방울 허위 직원으로 올린 뒤 급여·법인카드를 제공해 3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도 불법 정치자금 전달 사실을 일부 언급했는데요. 김 전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재직 당시 이 전 부지사 요청으로 500만 달러의 방북 비용을 제공했다”고 주장했죠.
감사인인 안경회계법인은 내부회계 보고서에서 “급여 지급 대상자 검토, 법인카드 승인 과정에서 내부 통제 절차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며 “이런 미비점으로 전 임원에 의한 횡령 사건이 발생했고 적시성 있는 적발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홈런볼·오징어땅콩·부라보콘 등 ‘국민 과자’를 생산해 온 80여 년 역사의 해태제과식품도 미흡한 내부회계 관리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해태제과는 2017년 비정상적으로 매출 계산서를 과다 발급한 사실이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는데요. 세무당국 지적사항에 대한 회사의 자체 조사도 미흡해 부적정 의견을 받았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은 내부회계 보고서에 “올해 2월 진행된 과거 부정 행위 조사 과정에서 (회사는) 감독기구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않았다”고 적시했습니다. 대외적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과는 사뭇 다른 감사 결과지요.
드라마·영화배급사인 스튜디오산타클로스도 상법을 위반한 자금 거래가 발견돼 금융당국(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보고됐습니다. 상장사 주요 주주와 특수관계자에 대한 대출 금지 조항을 위반한 채 회삿돈이 대출 명목으로 나간 것이죠. 회사는 또 실소유주(경제적 실질 의사결정자)인 온모씨에게 21억원(장부가 기준) 상당의 부동산을 공짜로 임대하고 있습니다. 친인척·경영진 등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를 통제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이 같은 일이 생깁니다.
내부회계 감사의견을 거절한 이촌회계법인은 “회사는 특수관계자 파악과 거래를 평가하기 위한 통제 활동을 운영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전민규 기자
????Case ②신뢰도 제로형(장부 재작성·불일치, 자산 평가·회수 가능성 통제 미흡)
집안의 자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썼던 가계부가 틀려 계속 다시 쓰는 일이 생깁니다. 기업이 이미 시장에 공시한 재무제표를 나중에 자꾸 수정한다면 실적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죠. 상당히 큰 금액을 수정하게 되면 금융감독원의 분식회계 조사(회계감리)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초대형 분식회계가 이런 경로로 적발됐습니다. 대우조선을 회계감사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2015년 결산 재무제표를 감사하면서 “2013년과 2014년에 2조원대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이전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몽땅 수정했습니다. 수정 금액이 조단위에 이르자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이죠.
대우조선해양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크루셜텍과 비씨월드제약도 지난해 결산에서 2021년 재무제표에 오류가 발견돼 수정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비씨월드제약이 과거 재무제표를 수정한 이유가 좀 눈에 띄는데요. 이 회사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원가 계산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한울회계법인은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데 따르는 오류(인적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수기 계산 방식 등으로 원가 결산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상장사는 감사인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기 전 기업이 스스로 작성한 재무제표를 정부(증선위)에도 제출해야 하는데요(개별 재무제표는 정기주주총회 6주 전, 연결 재무제표는 4주 전). 회계감사 일감을 주는 기업이 ‘갑’의 위치에서 회계법인에 재무제표 작성 의무까지 떠넘기지 않기 위한 조치입니다. 숙제 검사하러 온 선생님에게 밀린 숙제를 다 해 달라고 떠넘기는 일을 막겠다는 차원이죠.
그런데 간혹 증선위와 감사인에게 서로 숫자가 다른 재무제표를 제출했다가 발각되는 일이 생깁니다. 일종의 ‘이중 장부’를 쓴 셈인데요. 중앙디앤엠이 이런 이유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감사인인 한길회계법인은 “내부 통제 미비로 증선위와 감사인에 제출한 감사 전 재무제표가 불일치하는 사례를 발견했다”며 “이는 중요한 취약점의 징후”라고 적시했습니다.
사진 픽사베이
????Case ③대강대충형(이사회·보고체계, 통제 환경·내부감시기구 미흡)
재무제표는 기업 경영 활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주주총회에도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빠지지 않지요. 회사는 정확한 재무제표를 주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내부회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경영진·이사회 등과 검토하는데요. 이런 검토 과정 자체가 생략된 곳도 있었습니다.
미원홀딩스는 내부회계를 관리하기 위한 규정이 경영진 승인을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아 부적정 의견을 받았고요. 진원생명과학은 내부회계 감독에 대한 내용을 이사회에 보고한 적도 없었습니다. 이 회사는 올해 제시된 취약점을 제대로 개선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입니다. 감사를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내부회계 미비점 개선 활동을 할 담당자·책임자·이사회가 적절히 의사소통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Case ④배째라형(통제 활동 설계·운영 미비, 정책·인원 부족)
재무제표만 겨우 작성할 뿐 내부회계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메디앙스는 전산 프로그램을 다루는 담당자가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퇴사하면서 내부 통제 시스템 운영이 여러 차례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멜파스 역시 사업 부진으로 내부회계 인력까지 줄인 것이 의견거절로 이어진 원인이 됐습니다.
에이디칩스는 내부회계 검토에 필요한 자료를 이미 사업보고서 공시까지 끝내야 할 지난달 말에야 감사인에 제출한 점이 지적됐습니다. 시험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답안지를 제출한 꼴이죠. 역시나 의견거절을 받았습니다.
아예 내부회계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MIT는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전반적으로 구축,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견거절을 받았습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P.S. 사업보고서 마감 못 지키는 회사, 뭔가 문제 있다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회사들은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를 마감까지 제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금 관리가 안되는 데 가계부를 제때 쓸 수 있을 리가 없죠. 상법상 기업은 정기 주주총회 1주일 전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요.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선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앤컴퍼니·조광페인트·크라운제과 등 16곳이, 코스닥 시장에서 스튜디오산타클로스·위메이드·비덴트·카나리아바이오·휴림로봇 등 38곳이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을 넘겼습니다.
사업보고서 법정 제출기한은 지난달 말까지였습니다. 이 기한까지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은 기업은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제출 기한 연장(5일)을 신청하고도 마감일을 열흘 이상 넘기면 상장폐지 심사를 받게 됩니다. 올해에는 알파홀딩스·포인트모바일·한송네오텍 3개사가 가장 늦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들 회사는 감사의견과 내부회계 감사·검토의견 모두 비적정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사업·감사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으면 투자자에게 부정적 신호로 읽혀 주가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내부회계 의견거절·부적정 의견 식별하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