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어차피 저 사람과는 안돼”…부정 결론 서두르는 이유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어차피 저 사람과는 안돼”…부정 결론 서두르는 이유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어차피 저 사람과는 안돼”…부정 결론 서두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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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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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고 상대방도 내가 싫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음에도 웬지 ‘저 사람이 날 좋아할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 결과 이 관계는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신호들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안 될 거 시작도 하지 말자며 허무하게 좋은 사람을 놓쳐버린 경험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 ‘연락하지 말자’->’고독’의 순서를 밟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즐거운 경험을 해도 마법의 필터를 돌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으로 서둘러 점프한다는 데 있다. 왜 잘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걸까.

우서 첫번째는 거절 신호에 대한 지나친 민감성 때문이다. 연구들에 의하면 사회 불안(social anxiety)이 높은 사람들이나 기본적으로 늘 걱정과 생각이 많은 사람(성격특성 중 신경증이 높은 경우), 또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거절과 관련된 신호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기만 해도 이걸 딴생각 한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랑 같이 있는 게 지루한가!!’로 받아들이며 호들갑을 떤다. 부정적인 사회적 자극을 잡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에 중성적인 자극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긍정적인 자극도 일단 의심을 하고 보는 등 가급적 모든 신호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똑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도 사회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무룩하고 비관적인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는 기억의 왜곡이다. 브라이언 글레이저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Glazier & Alden, 2019).

사람들에게 3분 동안 자유 주제로 낯선 이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한다. 이 때 사람들의 피드백을 달리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발표의 내용이 뛰어나고 목소리나 속도도 좋았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피드백을 준다. 그러고 나서 피드백을 받은 직후 또 일주일 후에 각각 당시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기억해보라고 물어본다.

그 결과 사회 불안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덜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피드백을 받은 직후에는 기억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주일 후에는 똑같이 좋은 피드백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중립적인 피드백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좋았던 기억에 한해 부정적인 방향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긍정적인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예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발표를 했고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면 그것을 좋은 기억으로 저장해야 나중에 또 발표할 상황이 되었을 때 ‘그 때 발표 참 잘 했어. 좋았었지.’라고 좋은 예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야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억을 왜곡하면 발표를 수백 번 잘 해도 이런 자신감이 형성되지 않는다. 좋은 경험을 근거로 탄탄한 자신감을 쌓아올리는 것이 가능한데 그런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늘 쓸데없이 비관적이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많이 가져도 그걸 내가 좋은 경험으로 소화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관계에 자신감이 없고 이번에도 안 될 거라며 포기하기 마련이다. 사회적 불안이 높은 사람들이 이런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관계적 신호를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거웠던 경험을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모임을 피하고 싶을 때면 그 모임에서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려보거나 일단 만나고 나면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보곤 한다.

또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아 정말 즐겁다’고 그 순간을 길게 음미해보기도 한다. 분명히 좋았는데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놓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Glazier, B. L., & Alden, L. E. (2019). Social anxiety disorder and memory for positive feedback.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128, 228-23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584/0000031743?cds=news_media_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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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25년 4월 5일 by comphy in category "사회포인트",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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