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컴퓨터에 필적할 만큼 빠른 속도로 연산이 가능한 양자 컴퓨터가 개발됐다. 양자컴은 기존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양자 현상을 이용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양자컴이 연구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에 공개된 미국 IBM의 양자컴은 현재 상용화된 수퍼컴 수준을 따라잡았다.
IBM은 4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린 ‘IBM 퀀텀 서밋’ 연례행사에서 1121 큐비트(qubit)의 ‘콘도르’를 공개했다. 큐비트는 양자컴의 연산 단위로 컴퓨터의 비트에 해당한다. 양자컴 연구자들은 수퍼컴을 뛰어넘는 양자컴의 기준을 1000큐비트 이상으로 전망해왔다. 스콧 크라우더 IBM 부사장은 “기존은 작은 단위의 큐비트로 시뮬레이션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더 큰 규모의 복잡한 연산이 가능해지는 단계”고 말했다.
◇매년 2~3배씩 성능 향상
양자컴은 기존 컴퓨터와 달리 0과 1을 동시에 연산 단위로 사용한다. 00, 01, 10, 11로 구현하는 식이다. 덕분에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성능이 높아진다. 앞서 2019년 구글은 수퍼컴으로 1만년 걸릴 계산을 53큐비트 양자컴으로 200초 만에 수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특정한 문제만을 빠르게 풀어낼 수 있는 일종의 실증 장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공개된 콘도르는 1121큐비트 규모다. 지난해 공개한 ‘오스프리’의 433큐비트를 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IBM은 2019년 팰콘(27큐비트), 2020년 허밍 버드(65큐비트), 2021년 이글(127큐비트) 등 매년 2~3배씩 큐비트 성능을 높여왔다. 내년에는 1386큐비트의 플라밍고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2026년 이후에는 1만~10만 큐비트 수준의 양자컴을 개발할 계획이다. 크라우더 부사장은 “양자컴은 암호 해독 같은 특정한 영역에서 전통적인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연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했다.
IBM은 이날 양자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큐비트를 늘리는 것 이외에 모듈(단위)을 연결하는 기술도 발표했다. IBM이 이날 공개한 ‘헤론’은 133큐비트이지만, 이를 3개 연결해 양자컴을 구축했다. IBM은 “모듈을 연결하는 것은 오류율을 대폭 낮추면서도 큰 규모의 양자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양자컴은 이론상 큐비트를 늘릴수록 오류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를 보정하는 기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IBM은 “큐비트 성능이 높은 양자컴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작은 모듈을 여러 개 연결하면 오류 발생 확률이 줄어들면서 성능이 더 좋은 양자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헤론은 전작 대비 오류율이 최대 5배 향상됐다. 크라우더 부사장은 “양자컴 상용화가 임박한 만큼, 지금부터는 얼마나 퀄리티를 높이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10년 내 구체적 성과 나올 것”
업계에서는 양자컴이 머지않아 산업 현장에 투입될 것으로 기대한다. IBM은 지난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양자 유용성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오류를 내지 않고 안정적으로 양자컴이 작동하면서 기존 컴퓨터보다 더 나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컴은 우주 같은 기초과학 연구뿐 아니라 소재 개발, 반도체, 제약 분야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금융 산업에서 사기 행위를 감지하거나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도출해내는 식이다. 크라우더 부사장은 “우리가 아직 시도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할 도구(양자컴) 하나를 가지게 됐다”며 “10년 정도 뒤면 양자컴의 활용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