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월 2024

[국어 국문학] 君子不論人之短[군자는 남의 단점을 논하지 않는다].

[국어 국문학] 君子不論人之短[군자는 남의 단점을 논하지 않는다].

君子不論人之短[군자는 남의 단점을 논하지 않는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자공왈 군자역유오호? 자왈 유오. 오칭인지악자,

오거하류이산상자, 오용이무례자, 오과감이질자].

자공이 여쭈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게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게 있지. 남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誹謗[비방]하는 것을 미워하고, 용기는 있지만

無禮한 것을 미워하고, 果敢하지만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

子曰 賜也, 亦有惡乎? 惡謠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謁以爲直者

[자왈 사야, 역유오호? 오요이위지자, 오불손이위용자,

오알이위직자].

이번엔 공자가 물었다. “사야(자공)! 너도 미워하는 게 있느냐?”

자공은 “남의 생각을 알아내어 자기 생각처럼 내세우면서 智慧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미워하고, 不遜한 것을 가지고 용감하다

여기는 것을 미워하고, 남의 비밀을 캐내 攻擊하면서 正直하다

여기는 것을 미워합니다.” -論語 陽貨 篇[논어 양화 편].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들춰내는 것, 윗사람을 誹謗하는,

그러나 절대로 그 앞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勇敢하지만

無禮한 것, 果敢하지만 꽉 막힌 것…. 이런 것들을 미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자공 역시 남의 意見이나

아이디어를 알아내곤 그것을 내 생각처럼 내세우는 것,

不遜을 勇氣 있는 것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캐내어

攻擊하면서 마치 그런 일이 正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고 告白하고 있다.

情報化시대에 살면서 남의 一擧手一投足을 일일이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誹謗하면서 公·私를 莫論하고 사실이 아닌 말까지

지어내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또 禮儀가 缺如[결여]된

용기나 疏通不能인 果敢性은 자칫 사회를 不通의 세상으로

만들기 쉽다. 指導者의 리더십이 不足하면 예나 지금이나

이런 混亂[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민심이 흉흉해진다.

어떤 組織에서도 이를 警戒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 社會와

政治가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말 君子가 남의 잘못를 曰可 曰不하지 않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인지 그저 아쉽고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출처] https://m.cafe.daum.net/bsj5/LfO2/343?listURI=%2Fbsj5%2FLf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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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2월 2023

[행복한 책읽기 – 밑줄친 문장]  사자성어 & 고사성어  알아두면 마음의 

[행복한 책읽기 – 밑줄친 문장]  사자성어 & 고사성어  알아두면 마음의 

가화어인(嫁禍於人)

‘화를 남에게 전가하다’라는 뜻으로, ‘재난이나 어려움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음’을 비유한다. ‘사기(史記)’의 ‘조세가(趙世家)’에서 유래했다.

한(韓)나라 ‘상당(上黨)’의 태수 ‘풍정(馮亭)’이 보낸 사자가 와서 조(趙)나라 왕에게 말했다.

“한나라는 ‘상당’을 지킬 수 없어서 진(秦)나라에 바치려고 하는데, 이곳의 관리와 백성들은 모두 …… 진나라에 귀속되길 원치 않습니다. ‘상당’에는 성읍(城邑) 17개가 있는데 조나라에 귀속되기를 원하니, 왕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조나라 왕은 기뻐하며 ‘조표(趙豹)’를 불러 말했다.

“‘풍정’의 성읍 17개를 받으면 어떻겠소?”

‘조표’가 답했다.

“성인(聖人)은 이유 없는 이득을 큰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나라 왕은 말했다.

“사람들이 내 덕에 감화됐다는데, 어찌 이유가 없다고 하는가?”

‘조표’가 답했다.

“진나라는 한나라 땅을 잠식하여 ‘상당’ 지역을 고립시켜 ‘상당’의 땅을 쉽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나라가 진나라에 귀속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화를 조나라에 떠넘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韓氏所以不入於秦者, 欲嫁其禍於趙也). …… 진나라와 싸워서는 안 되니 받지 마십시오.”

왕이 말했다.

“…… 이것은 큰 이득입니다(此大利也).”

…… 조나라는 군대를 보내 ‘상당’을 점령했다. …… 진나라가 ‘조괄(趙括)’을 포위하자 ‘조괄’은 투항했고,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은 생매장당했다.

조나라 왕은 ‘조표’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세금은 엉뚱한 데 쓰고, 매번 헛발질만 하면서도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 그들의 안중에는 국민은 없고 자신들의 이익만 따진다. 국고가 비면 아주 쉽게 처리한다. 유리지갑을 털고, 만만한 사람을 골라 마녀로 몰아붙인다. 남들 잘나갈 때 적은 월급으로 인고하던 하위직 공무원마저 천하의 도둑으로 몬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재벌, 장성들의 비리와 불법은 모른 척하고, 힘없는 국민만 터는 요즘. 누굴 원망해야 하나. 충남대 중문과 교수   [대전신문][강혜근의 고사성어 다시읽기] 2015-04-03 [출처] ‘화를 남에게 전가하다'(嫁禍於人)|작성자 몽촌

강변식비(强辯飾非)

* 强 : 강할 강. * 辯 : 말 잘할 변· 변 명할 변. * 飾 : 꾸밀 식. * 非 : 아닐 비·잘못할 비.

억지로 변명하며 잘못을 꾸민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있다.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바르게 결론이 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확실히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되어 역사를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로, 진시황(秦始皇)을 이야기하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인 폭군이라는 선입감이 든다. 진시황은 문자를 통일하고, 도량형기를 통일하고, 법을 제정하고, 도로를 내고,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물론 진시황이 나쁜 점도 많지만,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漢)나라가 자기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진시황을 오랫동안 계속 매도해 온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폭군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고, 그 것이 역사의 진실로 남게 됐다. 이런 식으로 실제와 다르게 매도 당한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반면 실제 이상으로 잘 평가되어 대단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근대의 중국 문학가 노신(魯迅)이라는 사람이 그 경우다. 잘 모르는 모택동(毛澤東)이 극도로 높게 평가한 덕분에,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大文豪) 대학자 대사상가가 되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노신의 글의 특징은 신랄하게 비판 잘 하는 것인데, 모택동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연안(延安)의 지하동굴에서 투쟁하던 모택동이 상해에서 노신전집이 출판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곧 구입해서 탐독했다. 그 뒤 문화대혁명 동안에는 모택동 자신의 책과 노신의 책만 읽게 하고 나머지는 읽지 못하게 했다.

노신은 학자는 아니고, 사상적으로도 내세울 사상이 없다. 그의 문장은 옛날 한문 문장도 아니고 현대 백화문(白話文)도 아니다. 일본에 유학한 관계로 일본어의 영향이 많이 배어 있다. 배배 꼬인 그의 문장의 상당 부분은 어느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다.

처신에도 문제가 많은데, 본처는 고향에 버려두고, 제자를 실제 부인으로 데리고 살았다. 장개석 정권을 비난하면서도, 장개석이 북경대학 총장을 통해서 주는 지원금은 받았다.

지금도 13억 중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노신을 노벨상 수상자급으로 존경하고 있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있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사(志士)인 체하는 그의 날카로운 문장에 다 현혹된 것이다.

검찰조사 때는 재판에서 다 밝히겠다고 약속했던 조국(曺國) 전 법무부장관이 정작 재판에서는 300회 이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여 한 마디도 안 했다. 그러던 그가 억울하다며 근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내었다. 그 책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억지로 잘못을 변명하고, 지지세력에 감사를 표하여 규합하고,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비난하였다. 지지세력들이 불티나게 책을 사가 벌써 24쇄를 거듭했고, 13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거짓이 영원히 역사의 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동방한학연구소장 기사입력 : 2021-06-08 08:00:41  [경남신문]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83)

<126>强辯飾非

[동아일보] [한자이야기]입력 2006-11-10 03:04수정 2009-10-07 13:18

건곤일척 乾坤一擲

乾:하늘 건,   坤:땅 곤,   一:한 일,    擲:던질 척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주사위를 던진다는 뜻. 곧

①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나 성패를 겨룸.

② 흥하든 망하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결행함의 비유.

이 말은,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가 홍구[鴻溝: 하남성(河南省)내]을

지나다가 그 옛날(B.C.203),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건곤일척’을

촉구한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을 기리며 읊은 회고시<과홍구(過鴻溝)>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지치고 범은 피곤하여 강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만천하 백성들의 목숨이 보존되는도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가 군왕에게 말머리를 돌리도록 권하여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정 ‘건곤일척’의 성패를 겨루게 했는가

 

 역전(歷戰) 3년만에 진(秦)나라를 멸하고(B.C. 206) 스스로 초패왕(楚覇王)이

 된 항우는 팽성[彭城: 서주(徐州)]을 도읍으로 정하고 의제(義帝)를 초나라의 황제로 삼았다.

 그리고 유방을 비롯해서 진나라 타도에 기여한 유공자들을 왕후(王侯)로 봉함에 따라 천하는  일단 진정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의제가 시해되고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어 온 제후들이 각지에서  반기를 들자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항우가 제(齊) 조(趙) 양(梁)의 땅을 전전하면서 전영(田榮) 진여(陳餘) 팽월(彭越)

등의 반군을 치는 사이에 유방은 관중(關中)을 합병하고, 이듬해 의제 시해에 대한 징벌을

구실로 56만의 대군을 휘몰아 단숨에 팽성을 공략했다. 그러나 급보를 받고 달려온 항우가 반격하자

유방은 아버지와 아내까지 적의 수중에 남겨둔 채로 겨우 목숨만 살아 형양(滎陽:하남성 내)으로 패주했다.

 

그후 병력을 보충한 유방은 항우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다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싸움을 멈췄다.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돌려보내고 팽성을 향해 철군 길에 올랐다.

이어 유방도 철군하려 하자 참모인 쟝량과 진평이 유방에게 진언했다.

 

“한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들도 따르고 있사오나 초나라는 군사들이 몹시 지쳐 있는데다가

군량마저 바닥이 났사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초나라를 멸하려는 천의(天意)이오니 당장 쳐부숴야 하옵니다.

 지금 치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꼴[養虎遺患(양호유환)]’이 될 것이옵니다.”

 

여기서 마음을 굳힌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듬해 유방은 한신(韓信) 팽월 등의 군사와 더불어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초나라 군사를 포위하고 ‘사면 초가(四面楚歌)’작전을 폈다.

참패한 항우는 오강(烏江:안휘성 내)으로 패주하여 자결하고, 유방은 천하 통일의 길로 들어섰다.

 

 

걸견폐요()

[요약]  :왕 이름 걸. : 개 견. : 짖을 폐.  요임금 요)

폭군 걸왕()의 개도 성왕() 요임금(–)을 보면 짓는다」는 뜻으로, 각자 자기 주인에게 무조건 충성을 다하는 것이나, 악인을 따르는 자가 선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임.

[출전 ] ≪사기(史記) 노중련추양(魯仲連鄒陽)열전(列傳)≫

 

[김성회의 고사성어 리더십] 걸견폐요와 맹목적 충성

선악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주인에 충성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忠 아니야

무비판적인 복종이 아닌

중심 지키는 주인의식 중요

 

사람에게 충성할 것인가. 조직에 충성할 것인가. 양심을 따를 것인가.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가 되지 않고 삼자택일 갈등을 일으킨다면 위험한 조직이다. 흔히 개의 충실함을 주인에 대한 충성에 빗대어 말한다. 알고 보면 개 종류에 따라 본분이 다르다. 반려견은 주인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고, 사냥개는 주인이 지목한 사냥감을 물어오는 것이다. 반면 군견(軍犬)은 수색과 경비 등 공공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다. 군견에게 반려견의 재롱이나 사냥개의 표적 사냥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물며 사람과 개의 충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는 제 주인이 아니면 으르렁대지만, 사람의 충성은 “같은 편이니 맞서는 겁니다”를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선악을 가리지 않는 극성 지지를 뜻하는 고사성어로 ‘척구폐요(狗吠堯)’와 ‘걸견폐요(桀犬吠堯)’가 있다. ‘척구폐요’는 명장 한신에게 모반죄를 부추긴 혐의로 한고조 유방에게 잡혀온 책사 괴통(괴通)이 문초를 당하며 한 말이다. 괴통은 “도척 같은 도둑놈의 개는 성군인 요임금을 보면 짖는다. 요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는 원래 그 주인이 아니면 짖어야 하기 때문이다(之狗吠堯 堯非不仁 狗因吠非其主). 당신을 만나기 전이어서 모반을 권했다”고 변명한다. 나름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한고조는 괴통을 풀어준다. (사기 ‘회음후 열전’). 

걸견폐요‘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아랫사람을 성심껏 대하면 감화돼 저절로 충성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추양(鄒陽)이 신하들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자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린다. “임금이 진실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 보답할 마음을 품고 속마음을 꺼내 진실을 보여주면(중략) 걸왕의 개라도 요임금을 보고 짖게 할 수 있고, 도척의 식객들에게 어진 은자(隱者)인 허유를 찌르게 할 수 있다(今人主誠能去驕傲之心 懷可報之意 披心腹(중략) 則桀之犬可使吠堯 척之客可使刺由).” 감동을 받은 왕은 추양을 즉시 풀어줬다. (사기 ‘노중련 추양열전’). 인재 경영의 효용을 강조한 말이지만, 결국 임금에 대한 맹종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충성하면 걸견폐요, 척구폐요 식의 무비판적 복종으로 오도되기 쉽다. 알고 보면 진정한 충은 시대불문 필요한 덕목이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心)으로 구성돼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행동지침이다. 주자는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之謂忠)이라고 풀이한다. 주인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고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주인에 대한 충성’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충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매일경제  2021.03.16. 오전 12:05

 
 

견위치명 ‘見危致命’

위태로움을 보고 생명을 바친다

자장이 말하였다.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생명을 바치며, 이득을 보고 의를 생각하며, 제사에 공경을 생각하며, 상사(喪事)에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을 것이다.”(子張이曰 士見危致命하며 見得思義하며 祭思敬하며 喪思哀면 其可已矣니라.「子張」1)

공자는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여 먼저 군자가 된 후에 최종적으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군자와 성인이란, 물질보다는 정신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의 추구를 흔히 ‘도(道)에 뜻을 둠’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사람을 공자는 지사(志士)라고 불렀다.

군자와 성인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삶보다 정신적인 삶에 가치를 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을 추구하는 삶은 인간의 수명이 다하여 숨을 거두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은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정신적인 삶은 몸이 죽더라도 인간의 기억과 인류의 역사 속에 영원한 가치로 남는다. 따라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의식주(衣食住)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자는 “학문을 하는 선비가 도에 뜻을 두면서도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의논하지 못할 것이다(「리인」9)”라고 말한다.

군자는 항상 타인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인(仁)을 실천하지 못할까 걱정을 한다. 그러나 소인은 날마다 돈과 명예, 안락과 쾌락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치기도 한다. 이러한 군자와 소인에 대해 공자는 “덕(정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군자이며, 땅(물질)을 생각하는 것은 소인이다(「리인」11)”라고 말한다.

공자의 학통을 이은 증자(曾子) 역시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자기 책임으로 삼으니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 끝나니 멀지 않겠는가?(「태백」7)”라고 말한다. 이처럼 공자 당시 지식인을 의미하는 선비는 그야말로 막중한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는 현대 서구지성을 대표하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가 지식인을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진실한 존재이다”라고 정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은대(殷代)~주대(周代) 초기에는 지식인을 ‘다사(多士)’・‘서사(庶士)’・‘경사(卿士)’로 불렀는데, 대부분 귀족계급이었다. 이들은 봉건귀족이거나 관직에 있는 자로서 육예(六藝: 禮樂射御書數)를 겸비한 비교적 사회적으로 신분이 안정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이르러 봉건신분질서가 해체됨으로써 당시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도 변화되었다. 즉 특정한 세습적 지위 없이 지배계층인 선비가 된 자가 점차 증가했으며, 지식의 내용 역시 육예를 포함한 다양한 교양분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공자 이후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는 지식인계층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유사(‘游士)’이다.

공자는 “선비로서 편안하기를 생각하면 선비라고 할 수 없다(「헌문」3)”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편안함이란 물질적 욕망을 의미한다. 이처럼 진정한 선비가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단계가 바로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크게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지만, 작게는 자신이 소유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 놓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2021-04-12 오전 7:00:53  [출처] ‘見危致命’ 위태로움을 보고 생명을 바친다|작성자 몽촌

고구불기 ‘故舊不棄’

옛 친구는 버리지 않는다

주공이 노공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친척을 버리지 않으며, 대신으로 하여금 써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지 않게 하며, 옛 친구를 큰 연고가 없으면 버리지 않으며,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갖추기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周公이 謂魯公曰 君子不施其親하며 不使大臣으로 怨乎不以하며 故舊 無大故則不棄也하며 無求備於一人이니라.「微子」10)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세상에 어떤 일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성취할 수는 없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와 믿음이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소나 말이 앞에서 끈다 해도 그 동력을 수레와 연결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과 같다’(「위정」22)고 말한다. 사람의 신뢰를 소나 말의 동력이 수레에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연결 장치로 비유한 것이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신뢰와 믿음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발전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뢰와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만약 며칠 전에 처음 만난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무조건 그를 신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신뢰하는 데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신뢰와 믿음은 시간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될 때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知人)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주위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옛 친구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지켜본 옛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장차 큰일을 할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을 잃지 않는다[不失其親]’라고 말한다. 가까운 사람들을 잃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경우에 발생한다. 내가 그 사람들을 버렸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날 때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신뢰와 믿음이 무너진 상황이다. 따라서 가까운 동료나 친구·가족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많은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결국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한 나라의 정치도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동창회나 동아리 모임도 그렇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신뢰와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인(知人)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얻는 것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리더에게는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굳이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빌리지 않더라도 진정한 리더십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신뢰의 바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공자는 “군자가 친척을 후하게 대하면 백성들의 인(仁)이 흥기(興起)하고, 군자가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태백」2)”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이목(耳目)이 집중되는 지도층일수록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다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지도층부터 신의를 지키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후덕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리더들의 솔선수범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2021-03-30 오후 10:36:29  [출처]‘故舊不棄’ 옛 친구는 버리지 않는다|작성자 몽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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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신불사(谷神不死)

곡신(谷神)은 불사(不死)하니 시위현빈(是謂玄牝)이오. 현빈지문(玄牝之門)은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이니 면면약존(綿綿若存)하야 용지불근(用之不勤)이니라.

노자는 ‘도덕경’ 제6장에서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谷神)을 가믈한 암컷(玄牝)이라 일컫고 그것이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면면히 존재하는 듯 약존(若存)하며 이를 쓸지라도 마르지 않는다고 도의 작용을 세 마디로 압축한다. 곡신과 현빈. 이들은 모두 비어(虛) 있기 때문에 신묘한 도의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봉우리는 양(陽)이요 골짜기는 마르지 않는 샘, 음(陰)이다. 남자의 심벌보다 여자의 그것이 직접적인 생성의 모체이기 때문에 ‘암컷’이 천지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이 만물로서 존재하려면 음양의 두 기운을 교화(交和)케 하는 충기(沖氣)가 필요하다. 이 충화(沖和)의 기(氣)야말로 만물을 만물케 하는 근본 원기이며 생명인 것이다. 도의 본체가 허무(虛無)인 것처럼 골짜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암컷이 일체의 만물을 낳을 수 있고 자연의 도는 무궁하게 이어진다는 요지다.

노자는 도(道)를 신비한 ‘암컷’에 비유하고 여성적인 것을 자주 언급했다. 때로는 물을 인용해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며 여성성을 찬미하고 ‘상선약수(上善若水)’로써 도의 작용을 상찬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한다”는 ‘파우스트’의 결미도 인상에 남는다. 서구 작가들은 이 ‘곡신불사’에서 많은 시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에게도 골짜기와 같은 충허(沖虛)의 빈 마음이 필요하다. 시인 예이츠, 헤세, 이백, 도연명, 소동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바쇼나 남미의 옥타비오 파스는 노자에게 몹시 경도돼 있었다. 도의 근원인 무(無)에 대한 심오한 사상, 그것들의 상징적인 비유, 보다 함축된 간결한 언어는 시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수필가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문화일보 기사입력 2021.02.15. 오전 11:40

공이무례 恭而無禮’

공손하되 예가 없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삼가되 예()가 없으면 두렵고용맹스럽되 예()가 없으면 혼란하고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너무 급하다군자(君子)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에 흥기(興起)하고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子曰 恭而無禮則勞하고 愼而無禮則시하고 勇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니라. 君子篤於親이면 則民興於仁하고 故舊不遺면 則民不偸니라. 「태백」2)

본래 이 문장의 본지는 「태백」편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태백이 그 부친의 뜻을 헤아려서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한 것이야말로 예()의 근본을 지키는 행위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또한 공자께서는 아무리 훌륭한 공손함[]’, ‘자신을 삼가 낮추는 행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그리고 곧은 절개의 정직함[]’도 라는 원칙과 자제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단언한다.

주지하다시피 는 과 다르다. ‘은 강제성과 형벌이 뒤따르지만어쩌면 라는 것은 사람들끼리의 규약이며 약속에 불과하다따라서 예를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을 받거나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에서 는 왜 이렇게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그것은 라는 것이 인류가 오랫동안 삶을 영위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낸 경험적 지혜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나뭇가지에 색깔이 있는 리본들을 발견하게 된다그 리본을 매달아 놓은 사람 덕분에 초행의 산길을 걷는 누군가는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예도 이와 같아서이미 선현이 만들어놓은 준칙을 깨닫고 따라가면 그로부터 얻는 평온함의 질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고차원적인 선험적 지식의 그 무엇도 아니라는 점이다즉 예는 두뇌를 통하여 지식을 습득해온 것이 아니라마음으로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몸으로 체득된 행동양식인 셈이다.

공자는 과공비례(過恭非禮)’라 하여 공손함이 너무 지나쳐도 예가 아니라고 하셨다그런데 또 공자는 공손하기만 하고 예가 없는 것’ 역시 탐탁치 못한 모습이라고 평가절하 한다사람이 그 누군가에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기만 하고 절제된 아름다움[節制美]가 없다면그 사람은 육체적으로 수고롭기만 하면서 그 공손함의 행동이 오히려 노동에 불과하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이와 같이 예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이자 규율과 같은 것이면서동시에 인간 행위를 절제시켜줄 수 있는 준칙과도 같은 것이다그것이 곧 유교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이상사회 구현의 한 방법일 것이다 . 유교신문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8-05-11 오후 8:36:06  [출처] ‘恭而無禮’ 공손하되 예가 없다|작성자 몽촌

고식지계 [ 姑息之計 ] 

姑 : 시어미, 잠시 고    息 : 아이, 쉬다 식      之 : 갈 지    計 : 셈할 계

당장의 편한 것만을 택하는 일시적이며 임시변통의 계책을 이르는 말 

부녀자나 어린아이가 꾸미는 계책 또는 잠시 모면하는  일시적인 계책이라는 뜻으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이나    당장에 편안한 것을 취하는 꾀나 방법을 말한다.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는 인순고식(因循姑息)과 비슷한 의미이다. 

속담의 ‘언발에 오줌누기”, ‘눈가리고 아웅하기’와 뜻이 비슷하다

 

곡신불사(谷神不死)

곡신(谷神)은 불사(不死)하니 시위현빈(是謂玄牝)이오. 현빈지문(玄牝之門)은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이니 면면약존(綿綿若存)하야 용지불근(用之不勤)이니라.

노자는 ‘도덕경’ 제6장에서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谷神)을 가믈한 암컷(玄牝)이라 일컫고 그것이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면면히 존재하는 듯 약존(若存)하며 이를 쓸지라도 마르지 않는다고 도의 작용을 세 마디로 압축한다. 곡신과 현빈. 이들은 모두 비어(虛) 있기 때문에 신묘한 도의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봉우리는 양(陽)이요 골짜기는 마르지 않는 샘, 음(陰)이다. 남자의 심벌보다 여자의 그것이 직접적인 생성의 모체이기 때문에 ‘암컷’이 천지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이 만물로서 존재하려면 음양의 두 기운을 교화(交和)케 하는 충기(沖氣)가 필요하다. 이 충화(沖和)의 기(氣)야말로 만물을 만물케 하는 근본 원기이며 생명인 것이다. 도의 본체가 허무(虛無)인 것처럼 골짜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암컷이 일체의 만물을 낳을 수 있고 자연의 도는 무궁하게 이어진다는 요지다.

노자는 도(道)를 신비한 ‘암컷’에 비유하고 여성적인 것을 자주 언급했다. 때로는 물을 인용해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며 여성성을 찬미하고 ‘상선약수(上善若水)’로써 도의 작용을 상찬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한다”는 ‘파우스트’의 결미도 인상에 남는다. 서구 작가들은 이 ‘곡신불사’에서 많은 시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에게도 골짜기와 같은 충허(沖虛)의 빈 마음이 필요하다. 시인 예이츠, 헤세, 이백, 도연명, 소동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바쇼나 남미의 옥타비오 파스는 노자에게 몹시 경도돼 있었다. 도의 근원인 무(無)에 대한 심오한 사상, 그것들의 상징적인 비유, 보다 함축된 간결한 언어는 시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수필가 [문화]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공곡전성 空谷傳聲 

공  빌  空    곡  골  谷    전  할  傳     성소리  聲

세상을 다스리는 자의 말이 훌륭하면 천리 밖에서도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천리 밖에서도 어기게 마련이라는 뜻. 

膠漆之交 [교칠지교]

膠 : 아교 교    漆 : 옻 칠   之 : 의 지       交 : 사귈 교​

아교(阿膠)와 옻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매우 친밀(親密)한 사귐을 이르는 말

아교풀로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벗겨지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떨어지지 않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때의 백낙천(白樂天)과 원미지(元微之)는 교서랑(校書郞)에서 가까이 지냈던 동료이다. 

천자(天子)가 친재(親裁)하여 등용하는 과거에 함께 급제하였으며, 

시(詩)의 혁신에 뜻을 같이하여, 한(漢)나라 시대의 민요를 토대로 시대의 폐단인 

백성들의 분노와 고통과 번뇌를 담은 악부(樂府)에 

유교적인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맥박치게 하는 

새로운 시체(詩體)의 신악부(新樂府)를 지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두 사람 다 시골로 좌천되었다. 

떨어져 있음에 서로 그리워지자 백낙천이 원미지에게 편지를 썼다. 

《백씨문집》〈여미지서(與微之書)〉에, 

“4월 10일 밤에 낙천은 아뢴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도 이미 3년이 지났네.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도 2년이 되려고 하네. 

인생이란 길지 않은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니 말일세. 

‘하물며 아교와 옻칠 같은 마음으로 북쪽 오랑캐 땅에 

몸을 두고 있으니 말일세[況以膠漆之心 置於湖越之身(황이교칠지심 치어호월지신)].

’ 나아가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물러서도 서로 잊을 수 없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어, 

각자 흰머리가 되려고 하네. 

미지여, 

미지여. 

어찌하리,

 어찌하리오. 

실로 하늘이 하신 것이라면 이것을 어찌하랴!”라 하였다. 

교칠(膠漆)은 아교와 옻을 말한다. 

아교로 붙이면 서로 떨어질 수가 없고, 옻으로 칠을 하면 벗겨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딱붙어 떨어질 수 없는 그리운 마음을 ‘교칠지심’이라 하고,  그런 두 친구의 교분을 가리켜 교칠지교(膠漆之交)라고 한다. 

교칠지심은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말할 때도 쓰인다.     ​

군자삼변 ‘君子三變’

군자는 세 번 변한다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는 세 번 변하니,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그 앞에 나아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보면 명확하다.”(子夏曰 君子有三變하니 望之儼然하고 卽之也溫하고 聽其言也厲니라. 「子張」9)

『논어』는 공자의 언행록이지만 제자들의 말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말도 결국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자의 말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구절 역시 자하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공자의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하는 군자의 모습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군자를 멀리서 볼 때는 용모가 씩씩하고 예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 매우 공손하고 진지하여 엄숙하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기운이 부드럽고 얼굴빛이 온화하여 친근감마저 든다. 그리고 그 말을 들어보면, 의리가 바르고 이치에 맞아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조리가 있어서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용모는 엄숙하면서 온화하고, 말은 이치에 밝아 겉모습과 속마음이 모두 훌륭하게 조화된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이런 군자는 멀리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에서 만나볼 때 전혀 다른 느낌이 전해진다. 멀리서는 그의 근엄한 모습에 다소 긴장되고 조심스럽지만, 이런 군자를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순간 그의 따스한 온기와 부드러운 표정은 긴장과 엄숙의 기운을 모두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말을 들어보면, 논리가 정연하고 이치에 합당하여 어느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그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자하의 ‘군자가 세 번 변한다’는 말은 속마음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군자를 대면하는 위치와 깊이에 따라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색다른 느낌이 전해진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군자는 만나면 만날수록 그의 진정한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어 감탄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다양한 매력을 갖추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탄을 준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자하는 다양한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군자의 모습을 ‘군자는 세 번 변한다’는 말로 높이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의 혁괘(革卦) 해석을 보면, “군자는 표변(豹變)하지만, 소인은 혁면(革面)한다”라는 말이 있다. ‘표변’이란 표범이 변한다는 뜻이다. 표범은 겨울을 지내기 위해 가을에 털갈이를 한다. 이 때 표범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얼룩무늬가 선명해져서 완전히 다른 표범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이전의 허물을 고쳐 말과 행동이 질적으로 달라짐’을 표범에 빗대어 표변이라고 말한다. 반면, ‘혁면’은 단지 얼굴만 바꾼다는 뜻이다. 즉, 표변처럼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얄팍한 눈속임을 통해 자신이 반성하고 잘못을 고친 것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표변이란 말을 ‘양심을 버리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는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표변의 어원을 고려할 때, 분명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옳은 일이 지금은 옳지 않은 일로 둔갑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2021-06-13 오후 4:42:20

 

군자삼환 君子三患

君(임금 군) 子(아들 자) 三(석 삼) 患(근심 환)

[군자의 세 가지 근심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도 있지만 세 가지 근심도 있다. 이른바 군자삼우(君子三憂)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근심이 있다. 

무식하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알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君子有三憂 弗知 可無憂與 知而不學 可無憂與 學而不行 可無憂與]

공자의 어록을 모은 공자집어(孔子集語) 권학편과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온다.

예기 잡기에는 군자삼환(君子三患)이라고 돼 있다.

듣지 못했을 때에는 듣지 못함을 근심하고 이미 들었을 때에는 

배우지 못함을 근심하며 이미 배웠을 때에는 행하지 못함을 근심한다.”

[未之聞 患弗得聞也 旣聞之 患弗得學也 旣學之 患弗能行也]

성리학자로 유명한 채지홍(蔡之洪·1683∼1741)이 삼환재(三患齋)라고 당호를 짓자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삼환재기(三患齋記)를 써 주었다.

그는 먼저 예기의 글을 인용한 뒤 이렇게 말했다.

“친구 채군범(蔡君範)이 작은 재(齋)를 짓고 그 안에서 글을 읽으며 삼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명(明)·성(誠) 두 가지가 다 이르게 함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힘쓴다면 어찌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걱정하겠는가.

 내가 이를 듣고 감탄해 마침내 이렇게 써서 문지방에 걸도록 한다.”

[友人蔡君範築小齋 讀書其中 名以三患 此明誠兩至之術也

 由是而早夜孜孜 何患不至於聖賢 余聞而感歎 遂書此?揭之]

이어 “신묘년 여름 황강거사(黃江居士). 채군범의 이름은 지홍(之洪)이다”라고 썼다.

한수재집(寒水齋集)에 있는 글인데, 그는 황강거사 한수재라는 호도 썼다. 

42세 연하인 사람에게 친구라며 글을 써준 게 인상적이다. 

교보문고의 삼환재도 예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제공 : 임철순 / 미래설계연구원장 

克念作聖 [극념작성]

이길  극  극  克   생각  념  념  念   지을  작  작  作   성인 성   성  聖

성인의 언행을 잘 생각하여 수양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다는 뜻

 

금성옥진(金聲玉振)

金 : 쇠 금     聲 :  소리 성   玉 : 구슬 옥   振 : 떨칠 진

쇠로 소리내고 옥으로 떨친다

<출전 맹자>                                    

맹자는 공자에 대한 평가를 음악을 가지고 하였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자 같은 분을 집대성(集大成)이라고 하다. 집대성은 음악을 연주할 때 쇠로 만든 악기를 쳐서 소리를 내고, 옥으로 만든 악기를 쳐서 소리를 떨치는 것이다. 쇠로 만든 악기를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음악을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이고, 옥으로 만든 악기를 쳐서 떨치는 것은 음악을 조리 있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은 지혜에 속하는 일이고, 조리 있게 마무리하는 것은 성스러움에 속하는 일이다.” 

집대성은 모아서 크게 이룬다는 말이다. 맹자는 당시 이 세상에 인간이 출현한 이후로 공자 같은 성인은 없었다고 극찬할 정도로 공자를 존경하였다. 맹자는 맑은 성인인 백이와 책임감 있는 성인인 이윤과 조화에 능한 유하혜라는 성인의 뛰어난 점을 이야기한 후 시중(時中= 때에 맞게)을 행하는 공자야말로 집대성한 성인이라고 여겨 찬탄한 것이다. 

조리라는 말도 평소 자주 쓰는 단어인데 맹자는 그것을 화살 쏘기에 비유하였다. 활을 쏘아 과녁에 적중하는 것은 지혜이고 그 과녁까지 날아가게 만드는 것은 힘이다. 공자는 이런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조리에서 조(條)는 나무의 가지를 뜻하는 글자이다. 나무의 가지가 뻗어서 마치고 다시 뻗어서 마치듯이 그 마치고 시작하는 것을 잘 조절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금이니 옥이니 하는 것은 악기의 재료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금(金)은 종(鐘)이고, 옥(玉)은 경(磬)이다. 음악에서 팔음(八音)을 합주(合奏)할 때 먼저 종(鐘)을 쳐서 그 소리를 베풀고 마지막에 경(磬)을 쳐서 그 운(韻)을 거두어 주악(奏樂)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조리가 있다는 것은 음악이나 글을 쓸 때 문장 등의 시작과 끝이 조리가 있게 연결되는 것을 뜻하는데 맹자는 이것을 가지고 지(智)와 덕(德)이 갖추어 있는 상태를 비유하였다. [경인일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2021,1,21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출처] 쇠로 소리내고 옥으로 떨친다(金聲玉振)|작성자 몽촌

금입옥사 (金入玉謝)

출근길에 내부 순환로를 타고 마장 나들목을 내려설 때면 날마다 달라지는 청계천변 화려한 색채의 향연에 눈이 그만 어지럽다. 올봄은 꽃이 순차적으로 피지 않고 폭죽 잔치 하듯 여기저기서 펑펑 터진다. 순서도 계통도 없이 조급하다. 답답하기만 한 세상 표정과는 정반대다.

노산 이은상은 “진달래 피었다는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썼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몸을 연 뒤 목련과 철쭉이 뒤를 이어야 할 텐데, 어느새 라일락까지 동시다발로 뛰어들어 세상이 온통 꽃잔치를 열었다. 올봄 꽃은 앞뒤 안 가리고 핀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춘일(春日)’ 시는 이렇다. “수양버들 금이 들고 매화엔 옥 시드니, 작은 못의 새 물이 이끼보다 푸르구나. 봄 근심과 봄의 흥이 누가 깊고 얕은가? 제비는 오지 않고 꽃은 피지 않았네.(金入垂楊玉謝梅, 小池新水碧於苔. 春愁春興誰深淺, 燕子不來花未開.)”

오련한 옥색 청매가 피어서는 봄비에 지나 싶더니 수양버들에 황금빛 눈이 하나둘 박히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겨우내 우중충하던 버들가지가 눈록(嫩綠)의 황금빛을 띠면 이제 곧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옥사매(玉謝梅)의 ‘사(謝)’는 시들어 떨어진다는 의미다. 못에는 눈 녹아 불어난 봄물이 어느새 가득 넘쳐 찰랑댄다. 손을 담그면 물이 들듯 푸른 빛깔이다.

이때의 정서는 근심도 아니고 흥취도 아닌, 말로는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싱숭생숭한 감정이다. 왠지 고즈넉이 자우룩하다가도 한순간 이유 없이 두근대는 설렘으로 이끈다. 어느 쪽의 정서가 더 강한지도 알기 어렵다. 금방이라도 누가 올 것 같고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데, 막상 아무 일도 없다. 강남 갔던 제비는 아직 오지 않았고, 꽃도 활짝 피어나지 않았다. 이 둘 사이에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과 까닭 없는 우수가 나를 휩싼다.

그러다가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면 팥죽 끓듯 하던 변덕마저 그만 활짝 개여서, 파스텔톤 색채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꽃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의 여름이 불쑥 우리 곁을 차지하고 마는 것이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정민의 世說新語] [617][출처] 수양버들 금이 들고 매화엔 옥 시드니 (金入玉謝)|작성자 몽촌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 

공자가 강조한 恕의 원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타인에게도 시키면 안 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위령공’)

좋은 리더가 되는 법은 무엇일까. 진기명기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기, 즉 구성원들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고 오래 남는 부정편향성 때문이다. 10개의 화려한 시책보다 중요한 것은 1개의 불만 요인을 제거하고 막아주는 것이다.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해야 하는 한마디 말은 무엇입니까?”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위령공’)

출세의 야심을 가진 제자 자장이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피해야 할 4악(惡)의 구체적 행위로 학포적린(虐暴敵吝)을 적시한다.

학(虐)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선 기준에 차지 않는다고 닦달하는 것(不敎而殺), 포(暴)는 중간 피드백도 주지 않으면서 성과를 요구하는 것(不戒視成), 적(敵)은 지시는 대충 하고서 마감에 임박해 재촉하는 것이다(慢令致期). 린(吝)은 구성원의 성과에 대한 보상을 아까워하는 좀생이(出納之吝)를 가리킨다. 학포적린은 무위도식의 프리라이더거나, 무례하거나, 무리하거나, 무법한 자를 가리킨다.

경영학자 미첼 쿠지와 엘리자베스 홀로웨이가 전 세계 500대 기업의 경영진과 관리자 4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 및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64%가 자신의 조직에 썩은 사과(나쁜 관리자)가 있다고 답했다. 현재가 아니더라도 과거 이들과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94%에 이르렀다. 이들은 조직 사기를 떨어뜨리고, 이직률을 높인다. 이들로 인해 직원 중 50% 정도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고, 12%는 이직한다. 80%가 직무에 몰입하지 못한다. 조직에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썩은 사과일수록 고성과자인 경우가 많아서다. 이들은 개인 성과는 높을지라도 팀 전체 성과는 떨어뜨린다. 한 연구에 의하면 문제 관리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 후 전체 실적은 30% 증가했다.

경영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는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다. 경영의 제1 순위는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정적인 것을 상쇄하기 위해선 1대1만으론 부족하고 4배의 긍정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리더가 구성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서둘러야 할 것은 부정적 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지금 당장 물어보라.

“리더인 내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우리 조직에서 없애야만 할 당면 문제는 무엇인가.”

[김성회의 고사성어 리더십] 구성원 싫어하는 일부터 하지마라 기사입력 2021.04.27.[출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작성자 몽촌

낙정하석  落井下石 

 落:떨어질락.    井:우물 정.    下:아래 하. 石:돌 석

우물 아래에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치도록 하는 것을 말함 

이 성어는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친구 유종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묘지명 가운데 나온다.

 

“아! 선비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지조를 알게 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컴컴한 골목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면서 즐겁게 웃으며, 

자기의 심장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친구라고 칭하며,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죽음과 삶을 함께할 것이라고  아주 간절하게 말한다. 

그러나 머리털만큼이나 작은 이익이라도 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에 의해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당신을 구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돌을 들어 당신에게 던지는 그런 사람이 매우 많다.    이처럼 개화되지 않아 금수와 같은 사람들은 

어째서 직접 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한유는 유종원이 소인배들의 모함으로  기개를 펼치지 못하고 저승으로 먼저 간 것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지었다. 

유종원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문장을 잘 쓰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그는 순종이 즉위한 뒤 왕숙문 등이 주도하는 정치 개혁에 적극 가담하였으나, 

혁신 정치가 실패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문 운동을 영도한 인물로서 ‘도를 밝힌다’라는 것을 문학관의 강령으로 삼고 저술 작업을 했다. 

아울러 그의 정치 활동에 있어서도 ‘도’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만일 우물에 빠진 삶에게 튼튼한 밧줄을 내려 주기는 커녕 오히려 돌을 던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물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돌을 던진다면 그는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더욱 구렁 속으로 밀어 넣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되며  그동안 쌓아 온 신뢰 속에서 온정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남우충수 濫竽充數

 ‘함부로 피리를 불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뜻으로,  무능(無能) 한 자가 재능이 있는 척하거나,

 실력(實力)이 없는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함을 비유한 말이다.

 이 말은 <한비자(韓非子)> 내저설상(內儲說上)편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戰國) 시대 제(齊) 선왕(宣王)은, ‘피리(竽)’의 일종인 생황의 연주를 매우 즐겨들었다.

  그는 많은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매번 300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다.

  우(竽)를 전혀 불지 못하는  남곽(南郭)이라는 한 처사(處士)가 선왕을 위하여

  우(竽)를 불겠다고 간청하였다[南郭處士請爲王吹竽(남곽처사청위왕취우)].

  선왕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여 합주단의 일원으로 삼고, 많은 상을 하사하였다.

  남곽은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는 시늉을 했다.

  몇 해가 지나,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민왕(緡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민왕은 아버지인 선왕과는 달리 300명의 합주단이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듣지 않고

  단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들었다.

  난처해진 남곽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 오자 도망치고 말았다. 

 

   齊宣王使人吹竽(제선왕사인취우) 必三百人(필삼백인)

   제선왕은 큰 생황을 불게 할 때면, 반드시 삼백 명에게 합주를 시켰었다.

   南郭處士請爲王吹竽(남곽처사청위왕취우)

   어느 날 남곽의 처사 한 사람이 선왕을 위해 생황을 불고 싶다고 청해 왔다.

   宣王說之(선왕열지)  왕은 이를 기뻐하며,

   廩貧以數百人(늠빈이수백인) 그에게 녹을 주자 생황을 불겠다고 수백 명이 잇달았다.

   宣王死(선왕사) 湣王立(민왕립)  선왕이 죽고, 민왕이 임금이 되었는데,

   好一一聽之(호일일청지) 는 합주보다는 일일(一一)이 하는 독주를 즐겨 하였다.

   處士逃(처사도)  러자 처사는 그만 도망치고 말았다.

   一曰(일왈) 설에는 이렇게 전해지기도 한다.

   韓昭侯曰(한소후왈) 한소후가 말하였다.

   吹竽者衆(취유자중) 吾無以知其善者(오무이지기선자)

   “부는 사람이 많으니 누가 잘하는지 알지 못하겠소”

   田嚴對曰(전엄대왈) 그러자 전엄이 대답하여 말했다.

   一一而聽之(일일이청지) “일일(一一)이 독주를 시켜보면 알게 됩니다” 

   같은 말로, 南郭濫吹(남곽남취), 줄여서 ‘濫吹(남취)’라고도 한다.

 

남원북철   南轅北轍  

南 남녘 남    轅 끌채 원    北 북녘 북       轍 바퀴자국 철 

겉뜻 ;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감.

속뜻 ; 마음과 행위가 모순되고 있음을 비유

 

유래 ;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而:자는 樂天)의 

《신악부(新樂府)》〈입부기시(立部伎詩)〉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鄲)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季梁)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왕에게,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그는‘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계랑은 말을 잠시 머추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는 항상 패왕(覇王)이 되어 

천하가 복속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있을지라도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마음은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몸은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남원북철’은 위 글의 대의를 나타낸 말이며, 

또한 ‘북원적초(北轅適楚:수레의 끌채는 북을 향하고 수레는 남의 초로 가려 함)’이라고도 한다.

 계량은 무력이 아니고, 덕(德)으로 천하를 제패할 것을 진언(進言)한 것이다. 

 

낭중지추  囊中之錐   

囊 주머니 낭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錐 송곳 추

겉뜻 :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

속뜻 :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

 

유래: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하고 대답하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하고 반문하였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였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수 있었다고 함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
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만난 글귀다. 전국(戰國)시대 말, 한(韓)나라 공족(公族)으로 태어난 한비자(韓非子)는 노자·순자(荀子)의 성악설을 계승한 법가(法家) 사상가로 중형론(重刑論)을 주장했다.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암군인 한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냈다. 진시황은 그의 저서를 보고 몹시 감탄했으나 그와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한비자는 그곳에서 옥중자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늙은 말의 지혜’는 ‘한비자 설림(說林)편’에도 나온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봄에 원정을 떠나 고죽국(孤竹國)을 치고 겨울에 돌아오는데 도중에서 눈이 내려 길을 잃었다. 위급한 이때 임금에게 아뢴 관중(管仲)의 말은 이것이었다.
“늙은 말의 지혜를 쓰십시오.” 병사들은 늙은 말을 풀었다. 나이 든 말은 고향길을 알고 있어 그 말이 앞서는 대로 뒤따르니 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비자는 노마의 지혜를 성인의 지혜에 빗대고 있는데 나는 눈발을 헤치며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묵묵히 고향길을 찾아가는 늙은 말에게서 옛날 고려장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묵언의 행진, 소리꾼 장사익 씨가 외친 ‘꽃구경’ 가사가 눈앞에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하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고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길을 잃고 헤맬까, 돌아갈 아들을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 아이고머니나! 말을 삼키는 어머니! 노마(老馬)의 지혜에서 나는 왜 노모의 자애(慈愛)가 겹쳐오는지 모르겠다. 수필가  [문화]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노자안지 ‘老者安之’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한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원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친구에게 믿음을 주고, 어린 사람들을 품어주고자 한다.”(子路曰 願聞子之志하노이다. 子曰 老者를 安之하며 朋友를 信之하며 少者를 懷之니라. 「공야장」25)

안연과 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제자들의 뜻을 물었다. 자로는 수레와 갑옷 등 소중한 도구를 친구와 함께 사용하면서도 싫어하지 않겠다고 했고, 안연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를 과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로가 스승의 뜻을 듣고 싶어 하자 공자는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고 친구에게 신임을 얻고 어린 사람을 품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인과 친구, 어린 사람이라는 세 종류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표현한 공자의 말은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이며 공자의 인생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번째, 노인을 대하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언제부턴가 지하철 막말녀, 막말남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욕설까지 퍼붓는 동영상이 나라를 들썩인다. 잠잠해질 만하면 나타나는 반갑지 않은 이야기는 술자리 안주 정도로 넘어갔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느 날은 청소년이 어른을 발로 차며 폭행하는 뉴스가 나오고, 또 어느 날은 지하철 계단에서 노인을 밀어 사망하게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지금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누구나 늙으면 노인이 된다. 젊음이 오래갈 것 같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둘째, 친구관계를 생각해보자.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말처럼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친구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친구에게 믿음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살다보면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친구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어린 사람에 대한 문제다. 노인이 보호받아야 하는 것처럼 어린 사람들도 보호받아야 한다. 어린 사람들이 친구를 왕따시켜 자살로 내몰고 있다. 피해자건 가해자건 어린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미래다. 그들을 범죄자로 내몰 수는 없다. 어리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고, 어리기 때문에 기회를 줘야 한다. 그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 아니라 잘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형식적인 대안보다 포근한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다.

노인을 잘 모실 줄 모르고 어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위정자와 어른의 책임이다. [유교신문] <四字論語>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2017-10-26 오후 6:16:38  [출처] ‘老者安之’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한다|작성자 몽촌

녹동백이 (綠瞳白耳)

초록 눈동자에 흰 귀 

[정민의 世說新語] [623] 녹동백이 (綠瞳白耳)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원본은 추사 김정희의‘세한도’를 소장했던 일본 후지즈카 교수가 가지고 있다가 일제 말기 도쿄 공습 때 소실됐고, 사진만 남았다.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눈동자는 초록빛을 띠었던 모양이다.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사람됨은 물소 이마에 칼 눈썹, 초록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한 사람만 가려서 더욱 친하였고, 부귀한 자를 보면 더욱 멀리하였다. 그래서 세상과 합치됨이 적었고 늘 가난하였다.(其爲人也, 犀額刀眉, 綠瞳而白耳. 擇孤高而愈親, 望繁華而愈疎. 故寡合而常貧.)”

넓은 이마에 날카로운 눈썹은 시원스럽되 타협하지 않는 불같은 성정을 보여준다. 초록 기운을 띤 눈동자에 유난히 흰 귀가 백대 이전의 사람과 흉금을 트고, 만리를 넘놀던 높은 뜻과 닮았다. 그 눈으로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했고, 그 귀로 온갖 새의 신기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글의 끝에다 이렇게 썼다. “아! 형체만 남기고 가 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생사와 이름의 밖에서 그 사람과 만나게 되리라.(嗟乎! 形留而往者神也, 骨朽而存者心也. 知其言者, 庶幾其人於生死姓名之外矣.)”

진작에 북경에서 사귄 화가 나빙(羅聘)이 그린 군관 복장의 박제가 초상화가 남아 있다. 초상화 옆면에 쓴 시에서 나빙은 “이제부턴 멋진 선비 보더라도 냉담하리. 이별 정에 마음이 너무도 슬퍼지니.(從今冷淡看佳士, 唯有離情最愴神.)”라고 썼다. 너처럼 멋진 사람을 다시 보게 되더라도, 장차 작별의 슬픔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절대로 정을 주지 않겠다고 한 말이니, 박제가를 향한 깊은 정이 뭉클하다.

이번 남양주 실학박물관에서 ‘실학청연(實學淸緣)’을 주제로 8월 22일까지 열리는 기획 전시에 이동원 화가가 그린 박제가의 관복 입은 대작 초상화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나빙이 그린 박제가의 얼굴에다 당하관의 신분을 반영하여 흉배에는 백한(白鷴)을 그렸다. 시원스러운 이마에 초록 눈동자를 담은 박제가의 초상화는 온 중국이 인정했으나, 살아 불우했고 죽어 슬펐던 그를 향한 진혼(鎭魂)의 느낌이 담겨 처연하다. 뼈는 썩었어도 그 마음과 정신이 그림으로 되살아난 느낌이다. 함께 걸린 형형한 눈빛의 연암 박지원의 새 초상화 또한 흐리멍덩하던 정신을 화들짝 돌아오게 한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21.05.20. 03:04 [출처] 초록 눈동자에 흰 귀(綠瞳白耳)|작성자 몽촌

농조연운(籠鳥戀雲)

속박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깥세상의 자유 그리워함 비유

연인 굴레에서 해방을 염원하는

들국화 ‘제발’의 화자 읍소처럼

하루빨리 ‘코로나 방콕’ 벗어나길

농조연운(籠鳥戀雲)은 ‘새장 안의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다’는 뜻이다.

속박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깥세상의 자유를 그리워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들국화가 부른 ‘제발'(작사·작곡: 최성원)은 농조연운의 함의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명곡이다. 노랫말 도입부부터 화자는 자신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상대방 연인에게 강렬하게 전달한다.

‘제발/그만해둬/나는/너의 인형은/아니잖니’.

여기서 언급된 ‘인형’은 일반적인 인형이 아니라 꼭두각시 인형이다. 연인이 흔드는 인형 줄에 매달려 수동적으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화자의 가련한 처지가 연상된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구속된 사랑의 끔찍한 현실에 화자는 몸서리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연인에게 ‘제발/그만해둬’라고 핏대를 올리며 절규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울부짖음에 그치지 않는다.

‘너도 알잖니/다시 생각해봐/눈을 들어 내 얼굴을 다시 봐’.

화자에게 사랑을 속박하는 주체는 연인이다. 따라서 화자는 연인의 지나친 구속 욕구와 집착을 질타한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 표출을 재고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현재 화자는 심리적 고독에 흠뻑 젖어있다. 불완전한 존재임을 스스로 밝히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듯이 화자도 자신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외로워/난 네가 바라듯/완전하지 못해/한낱/외로운 사람일 뿐야’.

아마도 연인은 화자에게 완벽한 인물상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다정다감한 인물이거나 순종형 인물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화자는 자신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을 받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는 화자가 사랑의 멍에를 메고 가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부정하는 몸부림의 표출이다. 따라서 심적으로 외로운 화자에게 옥죄어 오는 중압감은 심각하게 다가온다.

‘제발/숨 막혀/인형이 되긴’.

이는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등 두 명의 방랑자가 절대 고독을 절감하며 거의 50년 동안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를 마냥 기다리는 부조리한 중압감과 다를 바 없다.

드디어 화자는 연인에게 자신의 현재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이렇게 호소한다. ‘목말라/마음 열어/사랑을 해줘/제발/그만해둬/새장 속의 새는/너무 지쳤어/…/처음 만난 그 거리를 걸어봐’.

연인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정신적 구금을 강요해왔다고 생각한 화자는 연인에게 이제는 마음 문을 활짝 열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으로 대해 줄 것을 간청한다. ‘새장 속의 새’는 연인으로부터 갇혀버린 화자의 현재 상황을 대변한다.

새의 상징어는 자유이다. 새가 창공을 자유롭게 날지 못하면 그것은 사형선고에 가깝다. 즉 새는 하늘을 훨훨 비상해야 쓸모가 있다. 마치 영화 ‘미나리’의 남자 주인공 제이콥이 자신의 아들 데이빗에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돼’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듯이 말이다. 곡명 ‘제발’의 화자는 쓸모 있는 새가 되고 싶고 쓸모 있는 연인이 되기를 갈망한다.

지금까지 화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결박하였던 연인의 일방적 행위를 멈춰달라는 화자의 읍소는 어떤 의미에서 비장하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는 지칠 대로 지쳐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새장 안의 새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지쳐가듯이 화자도 거의 영육 간 탈진으로 신음을 내뱉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연인과 ‘처음 만난 그 거리를’ 제발 걸어보기를 제안한다. 자유로운 거리 걷기 권면은 화자와 연인 사이에 새로운 희망의 도래를 암시한다. 즉 다가올 미래에 사랑의 봄날의 재개를 은유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이른바 ‘방콕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따라서 집안에 틀어박혀 답답함을 호소하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농조연운처럼 집 밖의 자유로운 일상의 재개를 열망하고 있다. 곡목 ‘제발’의 화자가 연인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하듯이 우리 모두 코로나19 4차 유행 경고등 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기원한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다언하익(多言何益) 
(多: 많을 다. 言: 말씀 언. 何: 어찌 하. 益: 더할 익)
말이 많은 것이 어찌 유익하겠는가라는 뜻으로, 말은 때에 맞춰 해야 한다는 말.
[출전] 《하마. 와. 승여신계(蝦蟆. 蛙. 蠅與晨雞) 묵적(墨翟)》

이 성어는 묵자(墨子= 이름 적.翟)가 제자의 물음에 답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윙윙거리나,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귀찮게 생각하여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의 닭을 보게나. 시간 맞추어 몇 번 울면 천하를 움직이게 한다.

말이 많은 것이 어찌 유익하겠는가?

말을 때맞추어 하는 것이야

(蝦蟆、蛙、蠅,日夜恆鳴,口乾舌擗,然而不聽。今觀晨雞,

時夜而鳴,天下振動。多言何益?其言之時也).”
 

​해와 달이 세상천지를 비춰도 그들은 늘 말없이 제 할 일만을 할 뿐이오.

어여쁜 화초(花草)가 비록 말(言)은 안 해도 아름답기만 하지 않소.

수목(樹木)이 말(言)은 안 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이 줄지는 않잖소.

 사람이 아무리 언변(言辯)이 좋다 하더라도 하얀 말(馬)이 까만 말(馬)이 될 수는 없는 법(法)이오.”
묵자(墨子)의 말(言)을 듣고 난 자금(子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래도 말(言)을 잘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생(先生)의 말(言)이 맞습니다.

그러나 말(言)을 잘하는 능력(能力)이 있다면,

유용(有用)하게 쓰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이 방면(方面)에서 뛰어날 수 있겠는지요?”
“그대가 굳이 요청(要請)하니 내가 예(例)를 들어 설명(說明)해 주겠소.”

이하 http://cafe.daum.net/jang1338에서
옛날 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자금(子禽)이란 사람이 그 스승인 묵자(墨子)에게 물었다. 
“저는 말(言) 잘하는 사람만 보면 존경(尊敬)하는 마음이 절로 솟아 오릅니다.

 그 사람들이 말(言)을 할 때면 발음(發音)이 정확하고 태도 또한 정연하지요.

그런데 저는 어찌된 것인지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설사 입을 열었다 해도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표현(表現)되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제가 말을 잘 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방법(方法)이 없을까요?”
그러자 말없이 듣고만 있던 묵자(墨子)가 그의 말(言)에 대답(對答)했다.
“말(言)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세상천지(世上天地)에 생장(生長)하는 만물(萬物)들이 다들 말(言)하고 사는 것을 보았소? ​

그는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묵자(墨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기 청개구리가 보이시오?  자세히 보시오.

청개구리는 물론이고 파리와 모기 등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던가요?

이들이 하는 말은 아무런 작용(作用)도 하지 않소.

오히려 사람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오.

반대(反對)로 수탉이 아무 때나 울던가요?

날이 밝기 시작할 때 여러 번 박복해서 우는 건 그대도 알고 있고,

그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 하루의 활동(活動)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자금(子禽)은 묵자(墨子)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말(言)하려고 할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言)할 필요가 없을 때는 입을 열 필요(必要)도 없다는 거군요.”
묵자(墨子)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言)을 때(時)맞추어 하는 것은 정말 옳은 일이다.
그러나 말(言)을 때(時)맞추어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때(時)에 맞게 하려고 계속적인 노력(努力)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말(言)은 실천이 따를 때 그 가치(價値)가 살아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군자(君子)는 말(言)은 천천히 하려고 하고 행동(行動)은 민첩(敏捷)하게 하려고 한다.’는 말(言)을 남겼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행동(行動)이 따르기는 커녕 말(言)을 함부로 하는 경우(境遇)가 너무나 많다.

[출처] 말이 많은 것이 어찌 유익하겠는가?(多言何益)|작성자 몽촌

 

단금지계 [斷金之契]

[斷:끊을 단/金:쇠 금/之:어조사 지/契:맺을 계]

무쇠를 자를 수 있을 정도의 굳은 사귐.

[동]단금지교[斷金之交]//금란지교[金蘭之交]/금석지교[金石之交]

[출전]『周易』, 繫辭下

[내용]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도 끊을 수 잇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도 같다는 의미로 서로 마음이 맞는 절친한 우정의 사이를 이르는 말.

 

단기지계 [斷機之戒]

[斷:끊을 단/機:베틀 기/之:어조사 지/戒:경계할 계]

베를 끊어서 훈계했다.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계.

[동] 孟母斷機(맹모단기)

[출전]『列女傳』, 母儀

[내용] : 맹자가 자라서 어느 날 유학을 갔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맹모가 바야흐로 베를 짜다가 묻기를 “학문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느냐?”

맹자가 말하기를 “전과 같습니다.” 하니 맹모가 칼로써 베를 끊어면서 말하기를”네가 학문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이 베를 끊는 것과 같다/”하니 맹자가 두려워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학문하였다.』맹자는 마침내 천하의 명유(名儒)가 될 수 있었다.

 

단도직입 [單刀直入]

[單’:홀 단/刀:칼 도/直:곧을 직/入:들 입]

한 자루의 칼을 들고 곧바로 쳐들어 감. 허두를 빼고 요점이나 본문제로 들어간다. 또는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서슴지 않고 정면으로 대번에 용건을 들어 말하는 것. [불교]생각과 분별과 말에 거리끼지 않고 [單刀直入](진경제)로 바로 들어감

[예문]

▷ 여러 말할 것이 없이 내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 언석은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지루하다는 듯이 단도직입으로 말하였다.<한용우느 흑풍>

▷ 단도직입적 질문

▷ 단도직입적 태도

▷ 그가 그 사실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바람에 잠시 당황했다.

▷ 나도 그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대해 오자 별수 없이 사무적으로 말을 받았다.<최인호, 잠자는 신화>

▷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인 말에 갑례는 얼떨떨한 듯 약간 얼굴이 상기되고 있었다.<하근찬, 야호>

▷ 시간이 없어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어렵사리 그와의 술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서문식당이 아닌 포구 안쪽 허술한 선술집으로 그를 이끌었다. 손씨도 봉환의 처지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단도직입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김주영<아리랑난장>에서

 

단말마 [斷末魔]

[斷:끊을 단/末:끝 말/魔:마귀 마]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숨이 끊어질 때 마지막 모질음을 쓰는 것/죽을 때, 임종

[내용]말마는 범어 marman의 음역이고 支節이라고도 번역하며 또 의역하면 死血인데 사람의 몸이 이것에 닿으면 죽는 국소의 뜻임/傷害人心者 臨終受斷末魔苦(顯宗論)-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죽을 때 단말마의 고통을 받는다.

[예문]

▷ 검이 한가닥 청광으로 화해 무섭게 날아갔다. 노승을 공격하던 흑의인 하나가 문득 심상치않은 느낌에 번게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크악!”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나왔다–<한국일보>연재[태풍운연의]에서

 

단사표음 [簞食瓢飮]

[簞:도시락 단/食밥 사/瓢:표주박 표/飮:마실 음]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좋지 못한 적은 음식.–>소박한 시골생활. 청빈한 생활

[동]簞瓢陋巷(단표누항)-도시락밥과 표주박물로 누추한거리에서 생활함 /簞瓢

[출전]『논어』『漢書』

[내용][공자가 말씀하시되『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심으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있음을 사람들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화여!』]

 

단순호치 [丹脣皓齒]

[丹:붉을 단/脣:입술 순/皓:흴 호/齒:이 치]

붉은 입술과 흰 이–미인을 형용하는 말

[출전] 『초사』

[예문]

▷ 일필호치, 솔의의 서가 아닌가 한다. 유두부면(기름 바른 머리와 분 바른 얼굴), 단순호치(붉은 입술과 하얀 이)의 다듬고 꾸민 얼굴도 아름답지만 꾸미지 않은 수수한 아름다움이 더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것–<월정 정주상 작품 감상조언> 中에서

▷ 데릴사우 내가 꼭 정헐껄, 한분 되니 쓸데 있소?” 도련님 아무 대답 없이 춘향 방문을 들어서니, 그때으 춘향이는 도련님 드리려고 금낭의 수를 놓다, 도련님을 반겨보고 단순호치를 열어 방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를 잡고 허는 말이,

도련님, 이제 오시니까? 오날은 왜 늦었소?–<판소리[춘향전]>에서

 

단장 [斷腸]

[斷:끊어질 단/腸:창자 장]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게 견딜 수 없는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 애 끊는 슬픔

[출전]『世說新語』

[내용] 晉나라의 환온(桓晉)이라는 사람이 蜀나라로 가던 도중 환온의 종자(種子)가 양자강의 삼협(三峽)에서 원숭이 새끼를 싣고 가자 그 어미가 새끼를 기리워하여 울부짖으며 백여리나 달려와 배에 뛰어 들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원문]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中有得 子者, 其母緣岸哀號,行百餘里不去 遂跳上船, 至便卽絶;破視其腹中, 腸皆寸寸斷. 公聞之, 怒, 命黜其人.

 

달초(撻楚)

‘달초’는 부모나 스승이 훈계 할 목적으로 자신의 볼기나 종아리를 쳐 자녀나 제자가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국어사전’은 적고 있다. 달(撻)자는 ‘종아리 칠 달’자고, 초(楚)자는 ‘가시 초’자로 부모나 스승의 아픔이 자식이나 제자에게 전해져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다. 현대에는 달초 시야비야(是也非也)로 옳다 그르다지만 참교육의 차원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김약연(金躍淵 1868~1942)은 1899년 중국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과 교육에 관심을 가져 1911년 명동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교육에 힘썼다. 약연은 간민회(墾民會)를 창설하여 자활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37년에는 은진중학교를 설립,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작문시간에는 ‘애국’과 ‘독립’이라는 낱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 또 책을 읽으면서 생각 없이 읽은 것은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해 봄, 학생과 학부형들이 학교에 불만을 품고 소동이 벌어졌다. 약연 이사장은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아시다시피 이 학교의 이사장입니다. 오늘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은 모두 저의 부덕한 탓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라를 빼앗긴 지금 대한의 아들 딸들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통열하게 느낍니다. 이 책임을 지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보시는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사장은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楚)로 힘껏 자기 종아리를 내려치기(撻) 시작했다. 종아리는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거듭 내려치자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모두 놀라 잠시 넋을 잃고 서 있던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이사장에게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했다.

“이사장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내려 놓으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학부형들은 이사장님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러자 한 학부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도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 제 아들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학부형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이사장은 더 이상 학부형들의 만류를 물리치지 못하고 걷어 올렸던 바지를 내리면서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장이 물러가자 학부형들은 이사장의 인격에 감동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숙연해졌다.

전문화 된 현대 교육에서도 완벽한 교육지침은 없다. 개개인의 인간심리를 분석하고 근본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전인교육기관인 학교가 있기 전에는 서당(書堂)이 있었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서당에 맡길 때 싸리나무 한 묶음을 훈장에게 주는 관례가 있었다. 달초(撻楚)는 여기에서부터 전래 되었다고도 한다. 안방 앞 시렁에 놓인 회초리는 동생과 싸웠을 때나 거짓말을 했을 때,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맞았던 매였다. 영국의 처칠수상도 어릴 적엔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렵다고 믿었던 것이다.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0-05-22 17:30:00 | 문화부 jebo@imaeil.com  [출처] 부모나 스승이 자식이나 제자의 잘못을 훈계할 목적으로 회초리로; 달초(撻楚)|작성자 몽촌

당동벌이 黨同伐異

    黨:무리 당.     同:한가지 동.    伐:칠 벌.    異:다를 이

무조건 같은 파의 사람은 편들고, 다른 파의 사람을 배격함 

 후한(後漢)에서는 제4대 화제(和帝) 이후로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이 되고, 그 일족인 외척이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 외척에 대항하여 이를 타도하는 역할을 주로 한 것이 환관의 세력이었다. 

그리하여 후한 말기에는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장악하고 사복을 채우는 썩어 빠진 정치 상황이 일반이었다.

외척이나 환관에 의한 정치의 사물화(私物化)에 강한 불만을 품은 것은 지방의 호족이나 양반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중앙과 지방의 강직한 관료를 중심으로 당파를 결성하여 외척이나 환관의 정권당에 대항했다.  

이리하여 서로 세력을 다투는 격심한 삼파전이 전개되었다.

환관당은 이윽고 외척 세력을 궤멸시키고, 지식인당에 대해서도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그 결과 정치를 맡아 보아야만 할 지식인 관료층이 완전히 황실을 저버리게 되어 후한 왕조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로 보아, 

가공할 파벌 싸움은 양식 있는 사람들의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을 제거시켜 집단 전체를  활력을 잃은 상태로 만들었다.

 더욱이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나무랄 데 없는 군자들인데, 일단 당파를 결성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는 짓거리를 당파의 이름으로 아주 손쉽게 해낸다. 

도견상부 道見桑婦 

道:길 도.    見:볼 견.     桑:뽕나무 상.    婦:지어미 부

길에서 뽕나무를 보고 여자와 말을 한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이익을 구하려다가 결국에는 기존에 갖고 있던 것까지 모두 잃게 됨을 비유함.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은 나라 밖으로 나가 제후들을 모아 위(魏)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그때 공자 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웃었다. 문공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웃는 것이오?” 

서가 말했다. 

“신이 웃는 것은 이웃 사람중에 그 아내가 사가로 가는 것을 배웅하는 자가 있었는데, 

뽕나무를 잡고 어떤 여자를 보고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니 그 아내 역시 손짓하여 부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신은 이 남자의 일을 생각하고 웃은 것입니다.” 

문공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위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멈추고 돌아왔다. 

문공이 미처 돌아오지 못했을 때 진나라의 북쪽을 침략하는 자가 있었다. 

도천지수 盜泉之水

 盜:도둑 도,   泉:샘 천,   之:어조사 지,   水:물 수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둑 盜字가 들어있는 이름의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결코 부정한 짓은 할 수 없다는 뜻

渴不飮盜泉水(갈불음도천수)의 줄임말
‘문선’이라는 책에는 晋(진)나라의 육기(陸機)가 지은 맹호행(猛虎行)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渴不飮盜泉水는 그 冒頭(모두)에 나온다.

아무리 목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渴不飮盜泉水)
아무리 더워도 악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않노라(烈不息惡木陰)
나쁜 나무엔들 가지가 없겠는냐마는(惡木豈無枝)
뜻있는 선비는 고심이 많구나(志士多苦心)

盜泉은 지금도 山東省(산동성) 泗水(사수)현에 있는데 설원(說苑)이란 책에도 이런 얘기가 있다.

공자가 어느 날 목이 몹시 말랐으나 그 샘물을 떠먹지 않았고 또

勝母(승모)라는 마을에는 날이 저물어 도착했지만 머물지 않고 곧장 떠났다.

勝母란 자식이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이므로 그런 이름이 붙은 마을에서는 하룻밤도 자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또 晋나라 吳隱之(오은지)가 지은 貪泉(탐천)이라는 시에 나오는 ‘탐천’은 廣州(광주)에 있는데

그 샘물도 뜻있는 사람들은 마시면 욕심쟁이가 된다고 안 마신다.
이런 사례는 끝까지 청절을 지키려다 수양산에 숨어 고비를 뜯어먹고 採薇歌(채미가)를 부르며 목숨을

부지하다 굶어죽은 伯夷(백이) 叔齊(숙제)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이 숙제도

수양산 바라보며 夷齊(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 들 採薇(채미)도 하는 것가
아무리 푸새엣 것인들 그 뉘다에 낫더니

라고 읊은 우리 성삼문을 당하지 못한다.

도청도설 ‘道聽塗說’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을 버리는 것이다.”(子曰 道聽而塗說이면 德之棄也니라.「陽貨」14)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것은 좋은 교훈을 듣고서 그것을 소홀히 생각하여 흘려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을 소중히 여겨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대충 듣고 흘려 버린다’는 뜻이다. 귀로 들어간 말이 마음과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나온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결국 내 삶을 지탱해 줄 교훈을 스스로 거부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의 말을 들을 때, 혹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 때에 단지 귀로만 듣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그냥 흘려버린다면 결국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공자는 ‘덕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라고 꾸짖는다.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에 보면, 아랫사람의 조언을 듣고 크게 성공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요(堯) 임금의 왕위를 이은 순(舜)이 어느 날 다음 왕위를 계승할 우(禹)를 불렀다. 그리고 순은 당시 복종하지 않았던 묘족(苗族)을 정벌하라고 명령했다. 우는 곧바로 묘족을 공격했다. 그러나 묘족은 30일 동안 강하게 저항하며 순순히 복종하지 않았다. 이 때 신하 익(益)이 우에게 “오직 덕(德)만이 하늘을 감동시켜 멀리 있는 사람도 스스로 오게 만듭니다. 자만(自慢)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도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우(禹)는 익(益)이 비록 자신의 부하였으나 그 조언에 대해 감사의 뜻으로 절을 한다. 결국 우는 익의 조언을 따랐으며, 묘족은 70일 만에 스스로 투항하고 복종하였다. 이처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상대방의 말을 소중히 여겼던 우는 요‧순을 잇는 역사의 성인으로 칭송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도 성인(聖人)으로 타고난 사람은 없다. 이 때문에 공자는 자신을 성인으로 추앙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배워서 앎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배워서 앎을 완성하고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학문의 과정이다. 그러나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승이나 선후배의 충고와 조언이 책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는 일이다. 그런데 하물며 좋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것을 소홀히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것은 결국 나에게 보탬이 되는 교훈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바로 이것을 공자는 덕(德)을 땅에 버리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출처] ‘道聽塗說’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다|작성자 몽촌

동경작안(東京炸案)

왜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

‘동경(東京)’은 일본 수도 도쿄를 말하고, ‘작안(炸案)’은 폭탄투척 계획이란 뜻이다. 항일투사 이봉창(李奉昌·1901~1932)이 왜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진동전세계’동경작안’지진상(震動全世界’東京炸案’之眞相)”은 김구의 발표다. 중국 ‘신강일보’는 한국청년 이봉창이 왜왕을 저격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일본의 안방 동경에서 왜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일은 세계를 진동시킬 일이었다.

이봉창은 아버지 이진구(李鎭球)와 어머니 손 씨의 둘째아들로 현 서울 효창동118-1번지에서 살았다. 1915년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과점원을 거쳐, 1920년 용산 역무원 때 민족차별을 받았다. 1924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퇴직하고 그 해 9월, 금정청년회(錦町靑年會)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폈다. 1925년 범태(範泰) 친형과 일본 대판(大阪)에서 철공일을 하다, 일본인 양자가 돼 이름을 기노시타(木下昌臧)로 바꿨으나 조선인으로 밝혀졌다. 

1928년 일왕 히로히토를 보기위해 나갔다가 일경수색에서 한글 편지가 발견되어 10일 동안 구금당했다. 이때 불온한 사람이라는 혐의를 받자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조국을 위해 투신하리라 다짐했다. 내 작은 힘이지만 조국의 원수를 처단할 수 있다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1930년 12월 동지들과 뜻을 모아 일을 도모하기 위해 상해로 갔다.

결기에 찬 마음으로 김구를 만나 심중을 털어 놓았으나, 거동을 수상히 여기며 의심하는 눈치였다. 술자리에서 봉창이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왕을 왜 안 죽이느냐! 원흉의 우두머리를 처단해야 하지 않느냐!’며, ‘내가 작년에 일왕이 능으로 가는 길가에 엎드려서 보았는데 그때 내 손에 폭탄이 있었다면 일왕을 죽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에 김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키고 일왕폭살계획을 추진했다. ‘이 군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하자 겸손한 태도로 ‘나라를 위해서라면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김구 말꽃 모음’에 기록했다. 1931년 12월에 김구는 폭탄 2개를 구입하여 안중근의 동생 공근 집에서 선서식을 갖고, 양손에 폭탄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쿄로 건너간 봉창은 1932년 1월 8일 ‘물건은 틀림없이 팔린다’고 연락하고 만주의 황제 부의(溥儀)와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를 향하여 폭탄을 던졌다. 명중시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1932년 9월 30일 일본 최고 재판소 1심에서 사형을 확정하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에 교수형을 당했다.

비록 목적달성엔 실패했지만 일왕 폭살기도는 천지를 진동시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의 각 신문들은 특호활자로 대서특필 했고, 국민당 기관지인 ‘국민일보’는 ‘한국의 이봉창이 일왕을 저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중국인들의 간절한 의사를 대변했다. 세계 각 신문들도 앞다투어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후 1932년 5월 10일 김구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이봉창에 대한 애도문’을 싣고 김구 자신과 임시 정부가 배후임을 밝혔다. 1946년 이봉창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치했다.​ 배포 2021-03-13 06:30:00 | 수정 2021-03-11 10:55:34  (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출처] 왜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東京炸案)|작성자 몽촌

東食西宿 동식서숙

   東:동녘 동.   食:먹을 식.    西:서녘 서.  宿:잘 숙

 동쪽에서 먹고 서쪽에서 잔다.  먹을 곳, 잘 곳이 없어 떠도는 삶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이라고도 한다.

齊(제) 나라에 시집가야 할 나이에 이른 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처녀의 집에 두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의 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보잘 것 없으나 대단한 부자였고 

서쪽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신랑감은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난처하게 된 부모는 당사자의 마음이 중요하다며 딸에게 물어보았다.

“만일 동쪽 집의 총각에게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고

 서쪽 집 총각에게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어라”

한참 망설이고 있던 처녀는 양쪽 소매를 다 걷어올렸다. 

부모가 놀라 그 까닭을 묻자 딸은 말했다.

“낮에는 동쪽 집에 가서 좋은 음식을 먹고살고 싶고  밤에는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東家食西家宿)” 

太祖(태조) 李成桂(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연 뒤 이를 자축하는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개국공신이기도 한 어느 정승이 거나한 술김에

 雪中梅(설중매)라는 아름다운 기생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수작을 걸었다.

“듣자니 너는 아침에는 동가식하고  저녁에는 서가숙 한다니 오늘 밤은 나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면 어떻겠는냐?”

그러자 설중매는 말했다.

“좋지요. 어제는 왕 씨, 오늘은 이 씨를 섬기는 정승과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기생이라 궁합이 잘 맞겠습니다.”

 동쪽에서 먹고 서쪽에서 잔다. 

먹을 곳, 잘 곳이 없어 떠도는 삶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이라고도 한다.

東食西宿은 원래 자기 잇속을 차리느라  절개도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걸 비유하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님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동호지필# [董狐之筆]

[董:동독할 동/狐:여우 호/곳 처/之:어조사 지/筆:붓 필]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 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내용]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 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두견화 杜鵑花

杜:막을 두.  鵑:두견새 견.   花;꽃 화

진달래꽃.  죽은 망제(望帝)의 혼이 담긴 꽃​

杜鵑(두견)은 일명 ‘자규(子規)’, ‘접동새’라고도 한다. 

구성진 울음 소리는 恨(한) 많은 우리네 민족 정서와도 잘 맞아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정서(鄭敍)는 ‘내님을 그리사와 우니다니   산접동새는 이슷하요이다'(『鄭瓜亭曲』)라고 했으며

이조년(李兆年)은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아랴마는 多情(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드러 하노라’고 노래했다.

杜鵑이 한을 상징하는 데에는 내력이 있다.

 옛 중국의 촉(蜀)에 두우(杜宇)라는 천신(天神)이 있었다.

 너무도 인간을 사랑하여 하계(下界)에 내려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후에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蜀의 왕이 되어 망제(望帝)라 불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홍수(洪水)라는 커다란 고민거리가 하나가 있었다.

궁리 끝에 별령(鼈靈: 자라의 神)을 재상에 앉히고 홍수를 다스리도록 했다.

 과연 별령은 신통력을 발휘해 홍수를 다스렸고 망제는 왕위를 물려 주고 서산(西山)에 은거했다.

그러나 왕이 된 별령은 그만 두우의 아내를 차지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두우는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 마침내 지쳐 죽게 되었는데, 그때 두견새에게 말했다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망제의  유언을 들은 두견은 즉시 촉으로 날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울어댔다.

어찌나 구성지게 울었던지 蜀의 백성들은 두견새 소리만 들으면 죽은 望帝를 그리워 하며 더욱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토해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진달래는 슬픈 사연을 담은 꽃이기도 하다.

 

마이동풍(馬耳東風)

당(唐)대 시인 이백(李白)과 왕십이(王十二)가 주고받은 시에서 유래했다. 왕십이가 이백에게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 추운 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읊다)라는 시를 보냈다. 이백은 왕십이의 시에 답하는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썼는데, 시구 중에 들어있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모두 머리를 내젓는 것이 마치 봄바람이 말 귀를 스쳐가는 것 같다'(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라는 구절이다.

어제 밤 오나라 땅에 눈이 와

왕자유(王子猷)가 좋아하여 흥을 돋궜네.

하염없는 뜬구름 푸른 산을 둘러싸고

푸른 하늘 가운데 외로운 달이 흐르고 있네.

외로운 달은 푸른 물결의 은하수에 푸르고

북두칠성은 흩어져 깔려 밝게 빛난다.

그대와 대작하면서 하얀 밤 서리를 생각하니

우물의 옥난간에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었지.

인생은 아차 하는 사이에 백년도 채우지 못한다.

또 술이나 마셔 한없는 옛 생각을 떨쳐 버리세.

그대는 닭 머리에 승냥이 기름을 바르고 금발톱 끼워

우두머리를 코로 무지개를 뿜어내며 앉아있게 할 수 있는가.

그대는 가서한(哥舒翰)처럼 칼을 차고 청해의 밤바다를 건너

석보성(石堡城)의 적들을 무찔러 삼품 벼슬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겠나.

햇볕이 쪼이지 않는 북쪽 창문 아래에서,

일 만 마디를 지어도 고작 술 한 잔의 가치도 없다네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마치 봄바람이 말의 귀에 스치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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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夜吳中雪,子猷佳興發。

萬里浮雲卷碧山,青天中道流孤月。

孤月滄浪河漢清,北斗錯落長庚明。

懷余對酒夜霜白,玉牀金井冰崢嶸。

人生飄忽百年內,且須酣暢萬古情。

君不能狸膏金距學鬬雞,坐令鼻息吹虹霓。

君不能學哥舒,橫行青海夜帶刀,西屠石堡取紫袍。

吟詩作賦北牕裏,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有如東風射馬耳。

[정민의 世說新語] [621] 마이동풍 (馬耳東風)

기사입력 2021.05.06. 오전 3:08 최종수정 2021.05.06. 오전 6:33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봄바람이 말의 귀를 스쳐도 반응이 없다는 뜻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늘이 높아지면 말이 살찐다고 한 걸 보면, 말은 아무래도 봄보다는 가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Oh!컷] 제주도 서귀포시 가시리 풍력발전소 인근에서 마스크를 쓰고 조랑말을 탄 사람들이 노란 유채꽃밭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이백(李白)은 ‘답왕십이(答王十二)’에서 “북창에서 시를 읊고 부(賦)를 지어도, 만 마디 말 물 한 잔의 값도 쳐 주질 않네. 세상 사람 이 말 듣곤 모두 고갤 저으리니, 봄바람이 말의 귀에 부는 것과 같구나(吟詩作賦北窗裏,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라고 자조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화류마는 움츠려서 능히 먹질 못하고, 저는 나귀 뜻을 얻어 봄바람에 우누나(驊騮拳跼不能食, 蹇驢得志鳴春風)”라 한 것을 보면, 준마인 화류마는 쓸모를 잃고 쫄쫄 굶는데, 발을 절뚝이는 나귀 같은 소인배들만 뜻을 얻어 날뛰는 현실을 빗댄 시인 줄을 알겠다.

소식(蘇軾)도 이를 받아 ‘화하장관육언시(和何長官六言詩)’에서 “조정의 공자(公子)에게 말을 해본들, 말귀의 봄바람과 무에 다르리(說向市朝公子, 何殊馬耳東風)”라고 했다. 그러니까 마이동풍은 하나 마나 한 말이고, 듣고도 꿈쩍 않는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색(李穡·1328~1396)은 ‘이생을 권면하다(勉李生)’에서 노래했다. “도 배움은 천명을 알아야 하고, 책 읽기는 공력을 쌓아야 하네. 높은 벼슬 나의 영달 아니거니와, 가난한 삶 어이 나를 곤궁케 하리. 세상일 양장(羊腸)처럼 굽어만 돌고, 인심은 말귀에 봄바람 같네. 왕량(王良)이 속임수로 대우했다면, 뉘 즐겨 양공(良工)이라 허락했겠나(學道須知命, 看書要積功. 軒裳非我達, 蓬篳豈吾窮. 世事羊腸路, 人心馬耳風. 王良如詭遇, 誰肯許良工).”

7, 8구는 고사가 있다. 왕량은 고대에 말을 잘 몰았던 사람이다. 조간자(趙簡子)의 행신(幸臣·총애받는 신하) 해(奚)를 위해 수레를 몰았는데, 왕량이 법대로 몰자 무능하다 내치고, 속임수로 몰자 잘 몬다고 칭찬했다. 왕량은 이런 소인을 위해서는 수레를 몰 수 없다고 그의 수레 몰기를 거부했다. 시절이 어렵고 세상 인심이 아무리 각박해도, 바른 길 떳떳한 삶을 향한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이생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 준 내용이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출처] 봄바람이 말의 귀에 스치는 것처럼(馬耳東風)|작성자 몽촌

마이불린(磨而不磷)

[요약] (磨: 갈 마. 而: 말 이를 이. 不: 아닐 불. 磷: 얇아질 린)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

[출전] 《논어(論語) 양화(陽貨)》

[내용] 이 성어는 논어(論語) 양화(陽貨)편 7장에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필힐이 만나자 하니, 공자가 가고자 하였다.

자로가 말했다

“이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으니 ‘몸소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군자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필힐이 중모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선생님께서 가고자 하시는 것은 어떻게 되신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견고해서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더냐? 희여서 물들여도 검게 물들지 않는다고 하지 않더냐? 내가 어찌 호리병박이겠느냐? 어찌 매달려서 먹히지 않겠느냐?”

佛肸召,子欲往。

子路曰:「昔者由也聞諸夫子曰:『親於其身為不善者,君子不入也。』 佛肸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子曰:「然,有是言也。不曰堅乎? 磨而不磷。不曰白乎? 涅而不緇。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망양지탄(亡羊之歎)과 선택장애

양 잃고 헤매다 한탄한다는 뜻

여러길 앞에서 휘둘리지 말고

본인의 중심 지키며 집중해야

가지않은 길에 미련둬선 안돼                      

맥수지탄, 풍수지탄, 고분지탄, 망양지탄. 인생 회한을 담은 사자성어들이다. ‘~했더라면’의 인생 가정법으로 후회하는 것은 동서고금 공통적이다. ‘했어야 할 것’과 ‘하지 말았어야 할 것’에 대한 곱씹음으로 인생은 늘 기회와 후회가 맞닿아 있다. 그중 망양지탄은 자신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은 ‘양을 잃었으나 길이 많고 복잡하여 어디로 도망갔는지 몰라 한탄함’을 뜻한다. 춘추전국시대의 학자 양자(楊子)의 이웃이 양 한 마리를 잃었다. 사람들이 다 찾아 나섰지만 끝내 양을 찾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갈림길이 거듭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고민하는 양자에게 심각해하는 이유를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수제자인 심도자가 “큰 길에는 갈림길이 많이 나 있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기 쉽고, 학문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기저기 분산돼 있으면 위험하다(大道以多기亡羊 學者以多方喪生)”고 대신 설명했다(열자).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현상, 여러 가지 길에 휘둘려 길을 잃기보다 본인의 중심을 갖고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국인의 애송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영시판 망양지탄이다.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피천득 번역). 여기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첫째는 나의 길을 찾은 것-적극적 선택에 대한 자부, 둘째는 내 길을 가지 못한 것, 즉 운명적 선택을 따른 것에 대한 후회, 셋째는 인생의 추측과 망상을 경계하라는 교훈,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못 가본 길이라 아름답게 보이는 착각이란 지적이다. 이 시 실제 배경은 시인의 우유부단한 친구 에드워드 토머스와 관련돼 있다.

망양지탄의 양 잃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시인의 결정장애자 친구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살면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정의 만족도, 행복도가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다못해 짬뽕, 자장면 선택에서도 그렇다. 양수겸장의 짬짜면을 시켜도 ‘더 나은 선택’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망양지탄’ ‘가지 않은 길’의 공통 메시지는 선택에 대한 수용이 아닐까 한다. 후회는 ‘~걸걸걸’ 하며 단지 뒤돌아보기만 한다. 반면에 성찰은 수용하고 되돌아보고자 한다. 인생에서 양을 잃거나 길을 잘못 들지 않는 비결은 좋은 선택을 하기보다 선택을 좋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김성회의 고사성어 리더십] 매일경제 2021.02.16. 오전 12:04     [출처] 양 잃고 헤매다 한탄한다(亡羊之歎)|작성자 몽촌

매인열지(每人悅之)

[요약] (每: 매양 매. 人: 사람 인. 悅: 기쁠 열. 之: 갈 지)

사람마다 기뻐한다.

[출전]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 하(下)》

[내용] 중국 고대 정(鄭)나라의 대부(大夫) 자산(子産)은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느 날 그는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걸어서 냇물을 건너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 수레를 빌려줘 건너게 했다. 물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 줄 모른다.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12월에 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군자가 정치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가면서 사람을 물리쳐도 좋을진대 어찌 사람마다 건네줄 것인가. 그러므로 정치하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기뻐하게 하려면 그 일만 하여도 날이 부족할 것이다.”

子產聽鄭國之政,以其乘輿濟人於溱、洧。孟子曰:「惠而不知為政,歲十一月徒杠成,十二月輿梁成,民未病涉也。君子平其政,行辟人可也;焉得人人而濟之?故為政者,每人而悅之,日亦不足矣。」

[정민의 世說新語] [611] 매인열지 (每人悅之)

다산의 ‘열수문황(洌水文簧)’에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평소 조정에서 바른말로 남의 미움 산 일을 두고, 다산이 자신에게 빗대 말한 글이 있다.

“다만 정직한 도리로 섬기매, 임금 또한 기미에 저촉됨을 근심하셨네. 어찌 모든 사람이 좋아함을 얻으랴만, 내 스스로 삼감에 소홀하였지(惟以直道事也, 上亦憫其觸機. 安得每人悅之? 臣自忽於吹虀).”

자신은 늘 곧은 도리로 임금을 섬겼고, 그 곧음이 자꾸 비방을 부르는 것을 임금 또한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기뻐하는 것을 얻을 수야 없겠지만, 자신도 좀 더 조심하고 삼갔어야 했다고 잠깐 숙였다. 글의 끝은 “정수리 밑에 침 하나 맞고, 입은 장차 세 겹으로 봉하리(頂下針一, 口將緘三)”로 맺었다.

사람마다 기뻐한다(每人悅之)는 말은 ‘맹자’ ‘이루(離婁)’ 하에 나온다.

정자산(鄭子産)이 강물을 그저 건너는 제 백성이 안쓰러워 자신이 타던 수레에 태워 물을 건네주었다. 맹자가 그 말을 듣더니 “은혜롭긴 하지만 정치를 모른다”고 혹평했다. 때에 맞춰 미리미리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중요하지, 할 일은 안 하고 있다가 그때마다 사람을 건네주어 환심이나 사려 들어서는 날마다 해도 감당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는 제도와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지, 안고 보듬는 제스처로만 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 백성이 안타까웠다면 다리를 만들어 편히 건너게 해줄 궁리를 하는 것이 먼저다. 강변에 수레를 대기시켜 놓고 오는 사람마다 건너게 도와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뱃사공이 할 일과 지도자가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정치가 망치가 된다.

유신환(兪莘煥·1801~1859)은 ‘위리편(爲吏篇)’에서 “만약 사람마다 기쁘게 하는 것을 어짊이라 여기고, 간악함을 적발하고 숨은 것을 들춰내는 것을 지혜라고 여긴다면, 이른바 지금의 훌륭한 관리라 하겠지만, 옛날로는 이른바 대체(大體)를 알지 못하는 자일 뿐이니, 군자는 말미암지 않는다(若夫每人悅之以爲仁, 發姦擿伏以爲智, 今之所謂良吏也, 古之所謂不識大體者也. 君子不由也)”고 했다. 바른말에는 왜 한편을 안 드냐며 벌 떼같이 달려들면서, 다리 없는 강변에 대기시켜둔 수레 자랑만 한창이니 딱하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2021.02.25. 오전 3:12  [출처] 사람마다 기뻐하게 하려면(每人悅之)|작성자 몽촌

모도유독(慕道猶篤)

* 慕 : 그리워할 모.* 道 : 길 도, 도리·이치 도.   * 猶 : 오히려 유. * 篤 : 도타울 독.

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히려 독실하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로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거의 유일한 학자다.

그런데 퇴계는 평생 숨어서 학문만 한 것이 아니고, 문과에 합격해 벼슬이 부총리급인 좌찬성에까지 이르렀다. 본래는 학문만 하려고 했으나, 어머님이 원하고, 또 형들이 권유하기 때문에 1534년 34세 때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갔다. 그러나 그 시대는 세 번의 사화(士禍)가 있어 많은 선비 출신의 관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가거나 축출된 직후였다. 그래서 선비들이 공부를 멀리하고 기개도 없이, 간신들의 눈치나 보면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퇴계는 벼슬의 의미를 잃었는데, 1537년 모친상 이후로는 더욱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때부터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서 학문하며 지냈다. 퇴계의 본 뜻은 성현의 학문을 밝혀 우리나라에 보급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다가 1545년 을사사화 때는 간신 이기(李)에 의해서 삭탈관작(削奪官爵)을 당했다. 1550년에는 형님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간신들에게 몰려 죽임을 당했다. 그 이후로 더욱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 도산(陶山)에서 보내며, 학문을 연구하고 저술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신하로서 임금이 계속 부르는데도, 그냥 무심하게 있을 수만 없어, 10여 차례 벼슬에 나갔다가 곧 사직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567년 어린 나이로 즉위한 선조(宣祖) 임금은 꼭 퇴계를 불러와 도움을 받고자 했다. 퇴계는 부득이 1568년 음력 7월에 서울로 올라와 벼슬에 취임했다. 그러나 선조는 진정으로 퇴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는 의도는 없고, 단순히 퇴계 같은 대학자가 자기 조정에 참여한다는 효과만 노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여러 번 간청하여 1569년 3월 3일에 윤허를 얻어, 4일 길을 나서 17일 도산서당(陶山書堂)에 도착했다. 마지막 귀향길이었다. 이후 고향에서 학문을 완성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1570년 12월 8일 서거했다.

오늘날 퇴계를 배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남긴 글을 읽고, 학문과 생애를 연구하여 글로 남기는 것 등이 있다. 이런 방법은 정신적으로만 배우는 방법이다. 퇴계가 다닌 길을 직접 몸으로 따라 걷는 방법이 퇴계를 배우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주최로 지난 2019년 양력 4월 퇴계 서거 450주년 되는 해에 퇴계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걷는 행사를 진행하여 순조롭게 성공했다. 그러자 매년하자는 건의가 많아, 매년 하기로 결정했다. 2020년 4월에는 코로나로 준비만 하고 행사는 하지 못했다. 금년에도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다릴 수만은 없어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4명으로 구성된 대원들이 15일 경복궁을 출발했다. 14일간 걸어 28일 도산서원에 도착한다.

오늘날 퇴계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퇴계의 도덕을 흠모하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더욱 독실해져 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동방한학연구소장 [출처] (慕道猶篤) – 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히려 독실하다|작성자 몽촌

목후이관  沐후而冠

목욕할   沐.    원숭이   후.    어조사이而    갓 관    冠

목욕한 원숭이가 갓을 씀.  사람 행세를 못함.  표면은 근사하게 꾸몄지만 속은 난폭하고 사려가 모자람

홍문은(鴻門宴)을 통해 유방(劉邦)으로부터 진(秦)의 도읍 咸陽(일명 關中)을

손에 넣은 항우(項羽)는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해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劉邦이 예견한 터였다.

項羽는 스스로 황폐하게 한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팽성(彭城)으로의 천도(遷都)를 결심했다.

함양이라면 천혜의 요새로 패업(覇業)의 땅이었다.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수차례 간했지만 項羽는 화를 내면서 그를 멀리했다.

한생은 탄식하고 물러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 후而冠).” 그런데 이 말을 項羽가 듣고 말았다.

무식했던 그는 무슨 뜻인 줄 몰라 진평(陳平)에게 물었다.

“폐하를 흉보는 말인데 세 가지 뜻이 있지요.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못된다는 것,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고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격분한 項羽는

그를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 삶아 죽이고 말았다.  죽을 때 韓生이 말했다.

“두고 보아라. 劉邦이 너를 멸하리라.   역시 초(楚)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지.” 결국

項羽는 咸陽 뿐만 아니라 天下를 몽땅 劉邦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었다고 다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  沐후而冠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주]《史記》에 호이관(虎而冠)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몸은 사람의 의관을 하고 있으나 마음을 호랑이 같다는 뜻이다.

 

몽중상심(夢中相尋)

[요약] (夢: 꿈 몽. 中: 가운데 중. 相: 서로 상, 尋: 찾을 심)

몹시 그리워서 꿈에서까지 서로 찾는다는 뜻으로, 매우 친밀(親密)함을 이르는 말.

[출전] 《서언고사(書言故事)》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몽중상심(夢中相尋)

품안에 있는 연인 함께있는 세상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

사랑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꿈에서는 서로 그리워할 수 있어

국경 없는 사랑의 영토이기 때문

몽중상심(夢中相尋)은 몹시 그리워서 꿈속에서 서로 찾는다는 뜻이다. 꿈에서까지 연인을 사모함은 그만큼 사랑의 온도탑이 빨갛게 물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추가열이 부른 ‘상사몽‘ (작사·작곡 추가열)은 곡목이 시사하듯 남녀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내용의 꿈 노래이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품 안에 있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요

꽃비가 내리고

단비가 흐르는

그런 세상이요’.

화자에게는 지금까지 사랑을 키워오고 있는 아름다운 연인이 있다. 어느 날 꿈에 자신의 연인이 나타난다. 연인을 보게 된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즉 만남의 기쁨에 잔뜩 취해 마음이 하늘을 날아갈 듯하다. 꿈 속 세상은 두 발을 내딛고 있는 현실 세상이 아닌 신세계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연인과 함께 있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 된다. 즉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처럼 ‘꽃비가 내리고/단비가 흐르는’ 이상향이 그의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렇게 창조된 유토피아 공간에서 화자는 연인에게 마음을 적시는 사랑을 고백한다. ‘힘이 들 때면 내게 오오/사각거리는 저고리 품안에 안겨/꿈을 꾸어요’. 온갖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무거울지라도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안식의 꿈을 꾸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하다. 그래서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화자의 ‘품 안’은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겨울 필수템인 따뜻한 난로와 같을 듯싶다. 이러한 별천지 ‘꿈나라’는 ‘별나비’가 춤추고 ‘오색이 아름다운 노래로 수를 놓은’ 꿈의 세계이다. 별이 반짝이는 ‘꿈의 세계’에서 화자는 마지막으로 그리운 사랑의 맹세를 남긴다. ‘비단 도포 휘날리듯/산 바람 들 바람 부여안고/사랑할테요’.

김동률이 부른 ‘꿈속에서'(작사·서동욱, 작곡·김동률) 노랫말에서도 몽중상심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잠든 어느 캄캄한 밤에 화자는 ‘하얀 꿈’을 꾼다. 그 꿈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숨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꿈속 공간은 온통 어두운 세계이다. 게다가 화자는 점점 취기가 오르지만 자신을 ‘깨워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 바로 이 순간 절대 고독감이 파도처럼 마구 밀려든다. ‘몸을 뒤척여’ 그리운 연인 ‘너’를 불러본다. 그러나 그 노래는 그저 ‘까만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연인에 대한 사모의 정이 담긴 노래를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 없는 노래를 어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는 보고 싶은 연인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는 강력한 반어법적 역설이다.

연인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화자는 목이 메이며 ‘울먹’거린다. 큐피드는 화살을 가지고 있지만 멀리 날아가 상대방의 가슴을 늘 명중시킬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꿈속의 화자도 연인의 심장 과녁을 관통해서 당장이라도 사랑을 쟁취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암흑의 별 세계에 다시 ‘재우고’ 달아난다. 이때 그가 마시던 ‘술잔 속’에 가득 찬 쓰디쓴 ‘웃음’과 ‘한숨’이 ‘출렁이는 달빛에’ 유유히 흘러간다. 지금 곁에 연인이 없는 꿈속의 그는 이렇게 절규한다. ‘날 깨워줘/네가 없는 꿈속은 난 싫어/아무도 없는 하얀 꿈속에/너를 한없이 부르네’. ‘하얀 꿈속’은 순백의 청정 무풍지대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친다. 그래서 하루빨리 자신을 깨워달라고 간청한다. 이처럼 꿈속에서 그리운 임을 찾아 애원하는 사모의 정이 바로 몽중상심이다.

황진이는 명시 ‘상사몽(相思夢)‘에서 몽중상심을 이렇게 읊조린다.

‘서로 그리워 만나는 건

다만 꿈에서나 볼뿐

내가 임 찾아갈 때

임은 날 찾아왔네

바라거니 아득히 먼

다른 밤 꿈에서는

일시에 함께 꾸어

길 중간에서 서로 만나기를’.

이와 마찬가지로 곡명 ‘상사몽’과 ‘꿈속에서’는 연인과 만날 길이 꿈길 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꿈에서는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꿈길 세상은 국경 없는 사랑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경인일보] 2020-06-29 제18면  [출처] 몹시 그리워서 꿈에서까지 서로 찾는다(夢中相尋)|작성자 몽촌

무산지몽 巫山之夢(무산지몽)
巫山之夢(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
儒林 (323)에는 巫山之夢(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이 나오는데,
‘남녀간의 密會(밀회)나 情交 (정교)’혹은 ‘덧없는 한때의 꿈’을 이르는 말이다.
 

‘巫’는 工(공)자 모양을 가로 세로로 놓은 형태의 도구인데, 가로로 놓였던 부분이 小篆(소전)에서 人(인)자처럼 변하여 오늘날의 字形(자형)으로 변했다.用例(용례)로는 ‘巫覡(무격:무당과 박수),巫女(무녀:무당),巫俗(무속:무당의 풍속)’ 등이 있다.

‘山’자는 산 모양을 본뜬 것이다. 참고로 ‘岳’은 산 뒤에 두어 봉우리의 산이 더 보이는 글자이니 山보다는 더 높고 큰 산의 상형이다.山자의 用例에는 山戰水戰(산전수전: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었음),山海珍味(산해진미: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 등이 있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夢’자의 원형은 현재의 字形(자형)에서 ‘夕’(저녁 석)이 생략된 형태로,‘꿈’을 뜻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본래 ‘어둡다, 컴컴하다.’는 뜻의 ‘夢’자가 ‘꿈’의 뜻으로 자리잡더니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夢寐(몽매:잠을 자면서 꿈을 꿈),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夢死(몽사:헛되이 살다 죽음),夢想(몽상: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등에 쓰인다.

巫山之夢은 文選(문선)에 수록된 高唐賦(고당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시대 楚(초)의 襄王(양왕)이 宋玉(송옥)과 함께 雲夢(운몽)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高唐館(고당관)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왕은 때마침 기이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송옥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옥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선대의 어떤 왕이 고당관에서 宴會(연회)를 열고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을 巫山(무산)에 사는 여인이라고 소개하며 왕의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魅惑(매혹)되어 雲雨(운우)의 情(정)을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 머물면서 朝夕(조석)으로 그대만을 그리워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왕이 巫山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만난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朝雲廟(조운묘)라는 사당을 세웠다.

유사한 말로는 중국 당나라의 淳于(순우분)이 술에 취하여 홰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가지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槐安國(괴안국)으로부터 영접을 받아 20년 동안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유래한 ‘南柯一夢(남가일몽)’,盧生(노생)이라는 사람이 邯鄲(한단)이란 곳에서 呂翁(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잠깐 동안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邯鄲之夢(한단지몽)’이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서울신문’05.5.7

무용순후 (務用淳厚)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을 써야

1575년 9월, 선조가 하교했다. “교격(矯激)한 사람을 쓰지 말고, 순후한 사람을 쓰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勿用矯激者, 務用淳厚之人, 可也).” 교격은 스스로 바르다고 믿어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태도다. 임금은 원리원칙을 따져 좌충우돌하는 과격한 사람 말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사람을 원했다.

김계휘(金繼輝)가 한마디 했다. “순후한 사람을 쓰고 과격한 사람을 배척하려 하는 것이 옳은 말이기는 하다. 다만 임금이 이러한 뜻에 지나치게 주안을 두면, 부드럽게 아첨하는 자가 순후하다는 이름을 얻고, 강직한 사람은 과격하다는 비방을 받게 되니, 그 해로움이 얕지 않다.” 교격을 배척하려다가 바른말 하는 신하를 잃고, 순후함을 조장하려다가 아첨하는 예스맨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면 어찌하느냐는 말이었다.

집의(執義) 신점(申點)이 북변의 장수를 길러 오랑캐 기병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임금이 불쑥 말했다.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오랑캐의 기병이 쳐들어오면 그들을 시켜 막게 하시오.” 말 속에 빈정대는 뜻이 있었다.

율곡이 바로 말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큰소리치는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시는 것입니까? 실속 없이 큰소리만 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반드시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어찌 적을 막게 한단 말입니까? 지금 유자(儒者)의 말은 털끝만큼도 쓰지 않으시면서, 큰소리라고 지목하시며 적을 막으라 하시니, 옳지 않습니다.” 임금이 대꾸하지 않자, 한 번 더 말했다.

“전에는 임금께서 바른말을 즐겨 들으시고, 유신(儒臣)에게 뜻을 기울이셔서 온 나라가 기뻐했는데, 근래에는 마음이 갑자기 바뀌셔서 유신을 소외시키시니, 전하께서 무슨 연유로 이리하십니까?”

이듬해 2월, 율곡이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자, 임금이 말했다. “이 사람은 교격한 데다, 나를 섬기려 들지 않으니 내가 어찌 굳이 붙잡겠는가?” 앞서 말한 교격한 신하란 바로 율곡을 두고 한 말이었다. 바른말 하는 신하가 곁을 다 떠나고, 임금은 예스맨들로 일사불란한 진용을 만들더니, 끝내 방향을 잃고 다투다 임진왜란을 불렀다. 율곡의 ‘석담일기’에 전후 맥락이 자세하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添加]

*선조(수정실록) 8년 을해(1575)9월 1일(병신)

조강에 나아가 북방에 보낼 사람에 관해 논하다

상이 전(殿)의 조강에 나아갔다. 영상 홍섬(洪暹) 등이 모두 상선(常膳)으로 회복하기를 거듭 청하였으나, 상은 모두 답하지 않았다. 집의 신점(申點)이, 북병사(北兵使) 박민헌(朴民獻)은 나이가 늙고 재주가 없으니 체직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아뢰고, 또 북방(北方)이 텅 비었는데 오랑캐의 기병(騎兵)이 침입해올까 걱정스러우니, 미리 장수를 선택할 것을 청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정에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많으니 만약 오랑캐의 기병이 침입해 오면 큰 소리 치는 사람을 써서 막으면 될 것이다.”

하니, 이이가 나아가 아뢰기를,

“신은 상이 이른바 큰 소리 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큰소리만 치고 실상이 없는 자를 가리킨 것이라면 써도 반드시 일을 그르칠 것이니, 어떻게 적을 막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옛것을 좋아하고 성인(聖人)을 사모하는 사람을 큰소리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의 하교가 온당치 않습니다. 옛날 맹자(孟子)는 양 혜왕(梁惠王)과 제 선왕(齊宣王)을 만나서도 요(堯)ㆍ순(舜)으로써 기약을 삼았으니, 이 어찌 큰 소리 치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유자(儒者)의 말을 털끝만큼도 써주지 않은 채 한갓 큰 소리 치는 것으로 지목하여 북방에 보내어 오랑캐를 막게 하려고 한다면, 어진이는 기세를 잃고 어질지 못한 자는 때를 만났다고 할 것이니, 어찌 잘못된 말이 아닙니까?”

하니, 상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이가 또 아뢰기를,

“전에는 상께서 선언(善言) 듣기를 즐거워하여 유신(儒臣)에게 뜻을 기울였으므로, 안팎이 기뻐하면서 물러갔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상의 마음이 갑자기 변하여 유신을 소외하니 신은 진실로 그 까닭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거룩한 뜻을 되돌려 어진이를 친하고 착한 이를 좋아하여 사류를 흥기하게 하시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하였다.

○上御殿朝講。 領相洪暹等皆請復常膳, 反覆陳達, 上皆不答。 執義申點啓: “北兵使朴民獻, 年老無才, 不可不遞。” 且言: “北方空虛, 虜騎之來可虞, 請預擇將帥。” 上曰: “朝廷多大言者, 若虜騎來, 則可用大言者禦之。” 李珥進曰: “臣不識上所謂大言者, 指何等人乎。 若指大言無實者, 則用必僨事, 何可使之禦敵乎? 若以好古慕聖者, 謂之大言, 則上敎未當矣。 昔者孟子遇梁惠、齊宣, 尙以堯、舜爲期, 此豈好爲大言者乎? 今者儒者之語, 毫髮不見用, 而徒目之以大言, 欲置之有北而禦虜, 則賢者喪氣, 而不肖者彈冠, 豈非過言乎?” 上默然。 珥又曰: “向者自上樂聞善言, 傾意儒臣, 中外欣然而退。 近日天心忽變, 踈外儒臣, 臣實未測其故。 顧回睿志, 親賢好善, 使士類興起幸甚。“

선조수정실록 10권, 선조 9년 2월 1일 을축 2번째기사

이이가 부제학을 사면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박순이 매번 경연에서 이이는 어질고 재능이 쓸 만하다고 천거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과격하고 또 그가 나를 섬기려 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억지로 머물게 할 수 있는가. 옛날에 물러감을 허락하여 그 뜻을 이루게 한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가의(賈誼)는 글을 읽어 말만 잘할 뿐이지 실지로 쓸 만한 재주가 아니었으니, 한 문제(漢文帝)가 쓰지 않은 것은 진정 소견이 있었던 것이다.”

하였다. 어떤 이가 이이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상이 지금 과격하다고 비난하니 잠시도 지체하여 머물 수가 없겠다”

하니, 이이가 말하기를,

“진실로 물러가겠다. 상이 물러감을 허락했다는 말을 듣고도 물러가지 않으면 이는 거취로써 도의를 파는 것이 된다.”

○李珥辭免副提學, 歸鄕里。 先是, 朴淳每於經席, 薦珥賢且才可用, 上曰: “此人矯激, 且渠不欲事予, 予何爲强留乎? 自古許退而俾遂其志者, 亦多矣。 且賈誼讀書能言而已, 實非可用之才, 漢 文之不用, 眞有所見也。” 或規珥曰: “自上方以矯激非之, 未可以少遲留乎!” 珥曰: “固將退也。 聞上許退而不退, 是以去就爲市道也。” [정민의 世說新語] [612] 무용순후 (務用淳厚) 조선일보 기사입력 2021.03.04. 오전 3:02

무자기 毋 自 欺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성기의자(誠其意者)는 무자기야(毋自欺也)니 여오악취(如惡惡臭)하며 여호호색(如好好色)이 차지위자겸(此之謂自謙)이니 고(故)로 군자(君子)는 필신기독야(必愼其獨也)니라.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악취는 싫어하고 좋은 경치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자기 쾌족(快足)이라고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대학’ 전6장의 말씀이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善)은 천부(天賦)의 본연이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기가 진정한 자기일 텐데 때로는 외부 세력에 의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척하고, 작은 이해득실에 양심을 어기고 불선(不善)에 찬성하기도 한다. 모두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다.

나는 38년 전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조준하 선생께 ‘무자기(毋自欺)’와 ‘신기독(愼其獨)’을 배웠던 날의 충만감을 잊지 못한다. 내 좌우명이 된 게 바로 그때다. 하늘을 속이고 또 남을 속일 수는 있으나 어찌 자기를 속일 수 있으랴. 그 ‘무자기’의 실천을 위해 나는 ‘선불선’의 기로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사계(沙溪) 김장생 선생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무자기’는 내가 평생 힘써 온 바”라고 유고집에 썼다. 그뿐만이 아니라 퇴계 이황을 비롯, 조선의 많은 지식인도 ‘무자기’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위선을 경계하면서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 내부의 문제다. 그래서 주자는 ‘신기독’의 ‘獨’을 남이 알지 못하는 ‘내오(內奧)’한 곳이라 풀이했다. 의념(意念)의 최초 발단처로서 내면의 깊은 그곳이 선·악·정(正)·사(邪)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다음 문장. ‘소인한거(小人閒居)에 위불선(爲不善)하되 무소부지(無所不至)’라. 이 사람도 한가할 때 슬며시 딴생각이 나면 이 말씀(무자기)을 경책으로 삼곤 한다. <끝> 수필가  [문화]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무장대소(撫掌大笑)

[요약] (撫: 어루만질 (치다)무 . 掌: 손바닥 장. 大: 큰 대. 笑: 웃을 소)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는 뜻으로, 매우 기뻐함을 이르는 말.

[출전] <삼국지(三國志)卷54 오서 노숙전(吴書·周瑜、魯肅、吕蒙傳)>

[내용] 정사 삼국지 노숙전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주유(周瑜)가 파양(鄱陽)에서 조조(曹操)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손권(孫權)이 노숙(魯肅)을 주유에 보내 돕게했다. 노숙(魯肅)이 계책을 내 주유를 도와 조조를 격파하여 철수하게 하고, 노숙이 즉시 돌아오니 손권이 여러 장수와 함께 노숙을 크게 영접하려고 했다.

노숙이 전각에 들어와 절을 하려고 하니 손권이 일어나 예를 차리며 말했다.

“자경(노숙), 내가 말에서 내려 그대를 맞이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예우한 것 아니겠소.”

노숙이 다가 서며 말햇다.

“아니 좀 부족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노숙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주공의 위엄과 덕을 사방에 떨치게 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위업을 성취하시어 저의 이름이 역사에 남게 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저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손권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時周瑜受使至鄱陽,肅勸追召瑜還。遂任瑜以行事,以肅為贊軍校尉,助畫方略。曹公破走,肅即先還,權大請諸將迎肅。肅將入閣拜,權起禮之,因謂曰:「子敬,孤持鞍下馬相迎,足以顯卿未?」肅趨近曰:「未也。」眾人聞之,無不愕然。就坐,徐舉鞭言曰:「願至尊威德加乎四海。總括九州,克成帝業,更以安車軟輪徵肅,始當顯耳。」權撫掌歡笑。三國志/卷54吴書·周瑜、魯肅、吕蒙傳

무전일언 無傳溢言

無(없을 무) 傳(전할 전) 溢(넘칠 일) 言(말씀 언)

[지나친 말을 옮기지 말라]

고기는 십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지만 젊은이들의 결혼이나 취직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 ​

재산 상속에 관한 것, 이념이나 정치에 대해서도 되도록이면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말이 입 안에 있을 때는 네가 말을 지배하지만,  입 밖에 나오면 말이 너를 지배한다”(유대인 속담) 하지 않던가.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명절에 입 꽉 다물고 살 수도 없고.  어쨌든 말을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두구(杜口) 함구(緘口) 폐구(閉口)는 다 입 닫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그러지는 말고 결구(結口),

함부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실구(失口)하지 말아야 한다.  실구는 실언과 같은 말이다.

공자는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초(楚)의 대부 섭공자고(葉公子高)가 도움말을 요청하자 이런 충고를 해주었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글이다.

공자는 “평소 있는 그대로를 전하고 지나친 말을 전하지 않으면 우선은 안전하다”

[傳其常情 無傳其溢言 則幾乎全]는 말부터 한다.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 그런 격언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말이란 바람이나 물결과 같은 것이고 행위에는 득실이 있습니다.

 바람이나 물결은 움직이기 쉽고 득실은 위험에 빠지기 쉽지요.

그러므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고 간사스럽고도

그럴 듯하게 둘러맞추는 데 있는 것입니다.”

[夫言者風波也 行者實喪也 風波易以動 實喪易以危 故忿設無由 巧言偏辭]

어디까지나 진실되게 중용을 지키라는 뜻이다   제공 : 임철순 / 미래설계연구원장

 

물위모과(勿謂母過)

말 물(勿), 이를 위(謂), 어미 모(母), 허물 과(過)로,

어머니(계모)의 과실(過失)을 듣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중봉집(重峰集)’에 전한다.

조선 제11대 중종(中宗) 때 조헌(趙憲1544~1592)은 성리학자로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으로 호는 중봉(重峰)이며, 경기도 김포(金浦)출신이다. 조헌이 다섯 살 때 정자에서 천자문(千字文)을 읽고 있는데, 벼슬아치들이 떠들썩하자 아이들이 모두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데 조헌만이 홀로 남아 책을 읽고 있어 훈장이 기특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책을 읽을 때는 오로지 마음을 모아 책을 읽는 데만 집중하라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조헌은 12세 때 김황(金滉)에게 시서(詩書)를 배웠는데 집이 가난하여 추운겨울 옷과 신발이 다 헤졌는데도 먼 글방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또 농사일을 거들면서도 땔감을 해와 부모 방에 불을 때고 그 틈에 책을 읽었다. 심지가 굳은 조헌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어 의붓어머니와 살았다. 한 번은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니를 뵈었는데 외할머니께서 등을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어린 네가 계모의 학대를 받는다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구나!”

조헌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외가에 가는 발길을 끊었다. 그 후 오랜만에 외가에 가니 외할머니께서 물으셨다.

“그동안 어찌하여 오지 않았느냐?”

“외할머니께서 의붓어머니의 잘못을 말씀하시니 차마 듣기 거북하여 그랬습니다.”

그 후 외할머니는 다시는 계모의 과오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조헌은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인이며, 1567년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 1568년 홍주목의교수를 역임하면서 사풍(士風)을 바로 세웠다. 1572년 교서관 박사 때 국시에 반한 궁중의 불사봉향(佛寺封香)을 반대, 소(疏)를 올려 국왕의 진노를 샀다. 1574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시무 팔 조서’를 올린 뒤, 1582년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외직을 자청했고, 보은현감일 때 충청좌도에서 으뜸이었다.

159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을 칠 길을 빌리는 가도공명(假途攻明)을 청해오자 옥천에서 상경, 대궐문 앞에서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3일 동안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자 옥천에서 의병 1천700명을 규합하고, 8월 1일 영규(靈圭)의 승군(僧軍)과 합세하여 의병장으로 청주성을 수복했다. 금산으로 향하는 왜적을 맞아 8월 18일 아들 완기(完基)와 승병장 영규 등 의병 700명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피신을 권하자 ‘이곳이 내가 순절할 땅이다’며 장렬히 전사했다.

중봉은 방대한 독서편력으로 애국위민의 실학사상을 지향한 유학자였으며, 이이(李珥)의 고제(高弟)로 조선후기의 실학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학파실학자인 박제가(朴齊家)도 중봉의 애국위민의 사상을 본받았으며, 국란이 일 때마다 ‘물위모과’의 충정이 자주적인 민족사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이 든든하고 굳센 확호불발(確乎不拔)의 맥을 이어 병자호란 때의 김상헌이나 송시열, 한말의 최익현 등이 중봉을 숭상했다.

1734년 영의정에 추중되었으며 옥천에 표충사를 지어 기렸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문헌으로 ‘중봉집(重峰集)’과 ‘중봉동환봉사(重峰東還封事)’가 있다.(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출처] 외할머니께서 의붓어머니의 잘못을 말씀하시니 차마(勿謂母過)|작성자 몽촌

미음완보[ 微吟緩步 ]

[요약] (微: 작을 미. 吟: 읊을 음. 緩: 느릴 완. 步: 걸음 보)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는 뜻으로 한적하게 노닒을 가리키는 말.

작은 소리로 시를 외우거나 나직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뜻하는 미음(微吟)과 느리게 걷는 것을 가리키는 완보(緩步)가 합쳐진 말이다. 주로 자연 속에서 풍경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같은 뜻으로 소요음영(逍遙吟詠)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음완보 [微吟緩步] (두산백과)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620] 미음완보 (微吟緩步)  2021.04.29. 

김나영 시인의 새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를 읽다가 시 ‘로마로 가는 길’에 눈이 멎는다.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 봤으면서 속도에 미쳐 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정미조씨의 신곡 ‘시시한 이야기’를 다시 포개 읽는다.

“앞서 가는 사람들 여러분, 뒤에 오는 사람들 여러분. 어딜 그리 바삐들 가시나요. 이길 끝엔 아무것 없어요, 앞서 가도 별 볼 일 없어요, 뒤에 가도 아무 일 없는 걸요. (중략) 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마지막은 시시한 걸.”

시간은 물속에 고여 있는데, 마음의 부산함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서는 “미음완보(微吟緩步) 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明沙)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느니 도화(桃花)로다”라고 했다.

미음완보는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는 말이다. 숲 그늘로 들어서면 온통 농담(濃淡)이 다른 초록 세상이다. 뒷짐을 지고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다가 다시 느릿느릿 걷는다. 쏟아지는 새 소리 물 소리에 귀가 활짝 열린다.

지금 우리에겐 혼잣말하며 느릿느릿 거니는 미음완보의 시간이 필요하다. 종종걸음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권구(權榘·1672~1749)의 ‘임거잡영(林居雜詠)’ 제5수는 이렇다.

“낮잠을 갓 깨어도 문은 늘 잠겨있어,

지팡이 짚고 작은 동산 사이로 향해간다.

읖조리며 느릿 걷다 이따금 앉았자니,

한가한 이 모든 일이 한가함을 혼자 웃네.

(午睡初醒門常關, 扶藜起向小園間. 微吟緩步時還坐, 自笑閒人事事閒.)”

또 제6수는 “부자가 더욱 부자 되려 하니 마음 항상 근심겹고, 가난해도 가난 근심 않으면 즐거움이 넉넉하다. 묻노라 계손(季孫)이 만종(萬鍾) 재물 누렸어도, 안연(顏淵)의 단사표음(簞食瓢飮) 그 즐거움 어떠한가?(富求益富心常戚, 貧不憂貧樂自饒. 借問季孫萬鍾享, 何如顔氏一簞瓢.)”이다.

조금 부족하고, 많이 힘들어도 마음먹기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기만 하면 끝에 남는 것이 없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불우헌집 제2권 / 가곡(歌曲)

홍진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 紅塵에뭇친분네

이 나의 삶이 어떠한가 / 이내生涯엇더고

옛사람 풍류를 / 녯사風流

따를까 못 따를까 / 미가미가

천지간 남자 몸이 / 天地間男子몸이

나만 한 사람 많지마는 / 날만이하건마

산수에 묻혀 있어 / 山林에뭇쳐이셔

지락을 모른단 말인가 / 至樂을것가

몇 칸 초가를 / 數間茅屋을

푸른 시내 앞에 지어 놓고 / 碧溪水앏픠두고

송죽이 우거진 속에 / 松竹鬱鬱裏예

풍월 주인 되었도다 / 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울 지나 / 엇그제겨을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 새봄이도라오니

복사꽃 살구꽃은 / 桃花杏花

석양 속에 피어 있고 / 夕陽裏예퓌여잇고

푸른 버들 꽃다운 풀은 / 綠楊芳草

가랑비에 푸르도다 / 細雨中에프르도다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 칼로아낸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 붓으로그려낸가

조물주의 신이한 재주가 / 造化神功이

사물마다 야단스럽다 / 物物마다헌다

수풀에 우는 새는 / 수풀에우새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 春氣내계워

소리마다 아양을 떤다 / 소마다嬌態로다

물아일체이니 / 物我一體어니

흥이야 다르겠느냐 / 興이다소냐

사립문에 걸어 보고 / 柴扉예거러보고

정자에 앉아 보니 / 亭子애안자보니

소요하며 음영하여 / 逍遙吟詠야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 山日이寂寂

한가한 속에 진미를 / 閒中眞味

아는 이 없이 혼자로다 / 알니업시호재로다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 이바니웃드라

산수 구경 가자꾸나 / 山水구경가쟈스라

답청은 오늘 하고 / 踏靑으란오고

욕기는 내일 하세 / 浴沂란來日새

아침에 산나물 캐고 / 아에採山고

저녁에 낚시질하세 / 나조釣水새

막 익은 술을 / 괴여닉은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 葛巾으로밧타노코

꽃나무 가지 꺾어 / 곳나모가지것거

잔 수 세며 마시리라 / 수노코먹으리라

봄바람이 얼핏 불어 / 和風이건부러

푸른 물을 건너오니 / 綠水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잔에 지고 / 淸香은잔에지고

붉은 꽃잎은 옷에 진다 / 落紅은옷새진다

술동이 비었거든 / 樽中이뷔엿거

나에게 알리거라 / 날려알외여라

소동 아이에게 / 小童아려

술집에 술을 물어 / 酒家에술을믈어

어른은 막대 집고 / 얼운은막대집고

아이는 술을 메고 / 아술을메고

나직이 읊고 천천히 걸어 / 微吟緩步야

시냇가에 혼자 앉아 / 시냇의호자안자

명사 좋은 물에 / 明沙조믈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 잔시어부어들고

맑은 내를 굽어보니 / 淸流굽어보니

떠내려오는 것 복사꽃이로다 / 오니桃花ㅣ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 武陵이갓갑도다

저 들이 그곳인가 / 져이긘거인고

소나무 사이 작은 길에 / 松間細路에

두견화를 붙들고 / 杜鵑花부치들고

봉우리에 급히 올라 / 峰頭에급피올나

구름 속에 앉아 보니 / 구릅소긔안자보니

수많은 마을들이 / 千村萬落이

곳곳에 벌여 있네 / 곳곳이버러잇

안개에 비친 해는 / 煙霞日輝

비단 수를 펼친 듯이 / 錦繡재폇

엊그제 검은 들이 / 엇그제검은들이

봄빛도 완연하다 / 봄빗도有餘샤

공명도 날 꺼리고 / 功名도날우고

부귀도 날 꺼리니 / 富貴도날우니

청풍과 명월 외에 / 淸風明月外예

어떤 벗이 있을까 / 엇던벗이잇올고

단표누항에 / 簞瓢陋巷에

허튼 생각 아니 하네 / 흣튼혜음아니

아무튼 한평생 즐거움이 이만한들 어떠하리 / 아모타百年行樂어이만엇지리

ⓒ 한국고전번역원 | 김홍영 (역) | 1998   [출처]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微吟緩步)|작성자 몽촌

반구부추(反裘負芻)

가죽옷을 뒤집어 입고 풀을 지다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신서(新序)’에서 유래된 말이다. 전국(戰國) 시대 때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유람 중에 길에서 가죽옷을 뒤집어 입고 풀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見路人反裘而負芻). 문후가 그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가죽옷을 뒤집어 입고 풀을 지고 있는가(胡爲反裘而負芻)”라고 묻자, 그는 “저는 가죽옷의 털이 닳을까 아까워서 그렇습니다(臣愛其毛)”라고 대답했다. 문후가 다시 “가죽옷의 가죽이 닳아 없어지게 되면, 털이 붙어 있을 곳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는가”라고 했다.

이듬해 문후에게 동양(東陽)이라는 지방에서 이전보다 10배나 많은 조공을 바쳤다. 그러자 대부(大夫)들은 모두 문후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후는 “이는 축하할 일이 아니다(此非所以賀我也). 그곳은 땅도 백성도 늘지 않았는데, 어찌 조공만 10배나 늘 수 있단 말인가(今吾田地不加廣, 士民不加衆, 而錢十倍). 이는 그 지방관리가 무리하게 백성에게서 세를 무겁게 징수한 것임에 틀림없다.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면, 통치자도 그 자리를 누릴 수 없으니(下不安者, 上不可居也), 이는 축하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요즘 아주 달콤한 이야기가 많다.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등 참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포퓰리즘에 속아 허망한 복지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로 늘어가는 국가채무는 어찌할 것인지. 수지(收支)는 맞춰야 하지 않을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기 어렵다는 옛말처럼 이런 문제들은 해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러다 2세들이 빚잔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혹시 우리도 가죽옷의 털만 아끼려 하다가, 털이 붙어 있어야 할 가죽이 사라지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어 있을 수 있는가(皮之不存, 毛將焉附). 냉정하고 세심하게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잘못하면 복지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불러온 유럽의 몇몇 국가처럼 털만 남아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불러오고 만다. 풍전등화(風前燈火) 상황에 있는 그리스가 던지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충남대 중문과 교수·공자아카데미 부원장  [출처] 가죽옷을 뒤집어 입고 풀을 지다 (反裘負芻)|작성자 몽촌

반근착절 盤根錯節

盤:서릴 반.    根:뿌리 근.    錯:섞일 착.     節:마디 절

얽히고 설킨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형세

盤根(반근)은 槃根으로도 쓴다.

후한의 安帝(안제)가 13세로 즉위하자 어머니 鄧(등)태후가 섭정을 하면서 오빠 등즐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당시 강족과 흉노족의 세력이 강하여 서북 변경 지방인  幷州(병주)와 凉州(양주)는 여러 번 침략을 당했다. 

등즐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양주를 포기하고 병주만 방어하자고 주장했다.

대신들은 모두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던 등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허만이 고개를 저었다. 

早失父母(조실부모)한 그는 뛰어난 인재여서 일찍이 관리로 추천 받았으나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면서 거절하다가 할머니 死後(사후) 郎中(낭중)의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우허의 반대 의견은 이랬다.

“예로부터 양주는 열사와 무장이 많이 배출되는 곳입니다. 

이런 땅을 오랑캐에게 넘기다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대신들도 우허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어 등즐의 주장은 뒤엎어졌다. 

스타일을 구긴 등즐은 이때부터 우허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되었다.

 때마침 조가현에 수천명의 폭도가 들고 일어나 현령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자   등즐은 우허를 조가현 현령으로 임명했다. 

물론 전날의 수모에 대해 앙갚음하려는 인사 조치였다. 

​이건 死地(사지)로 떠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허의 친구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도 우허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얽히고 설킨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반근착절)를 만나지 않고서는 날카로운 칼도 그 값어치를 알 수 없는 법이야”

 조가현에 부임한 우허는 용기와 지혜로 폭도를 평정함으로써  등즐의 기대를 보란듯이 배반했다.

반룡부봉(攀龍附鳳)

[요약] (攀: 더위잡을 반. 龍: 용 룡(용). 附: 붙을 부. 鳳: 봉새 봉)

용의 비늘을 휘어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었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에 붙어 출세하는 것을 의미함. 또는 권세(權勢)있고 지위(地位)가 높은 이를 쫓아서 공명(功名)을 세움에 비유.

[출전] <한서(漢書) 권100>

[용례] 삼국연의(三國演義)第073回

촉땅을 평정한 후 뭇 장수 현덕(玄德유비)을 황제로 추대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가지나 감히 아뢰지 못하고 제갈공명(諸葛孔明) 군사에게 와 건의했다.

이에 제갈량이 법정(法正)등 신하을 이끌고 현덕(玄德)를 빕고 길일을 잡아 황제위(皇帝位)에 오를 것을 건의하니 유비가 크게 놀라 말했다.

“군사의 말은 틀렸습니다. 내가 비록 한나라 종실이지만 결국은 신하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이것은 한나라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공명이 설득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천하가 갈라지고 무너져 영웅들이 여기저기 일어나 제각기 한 지방에서 패권을 잡았습니다. 천하의 재능과 덕망 있는 인물들이 생사를 개의치 않고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그들 모두 반룡부봉(용과 봉황에게 붙음/ 세력가에게 붙음)하여 공명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의리만 고집하시면 사람들의 소망을 잃어버릴까 두렵사옵니다. 주공께서 이것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軍師之言差矣。劉備雖然漢之宗室,乃臣子也;若為此事,是反漢矣。」孔明曰:「非也。方今天下分崩,英雄並起,各霸一方,四海才德之士,捨死亡生而事其上者,皆欲攀龍附鳳,建立功名也。今主公避嫌守義,恐失眾人之望。願主公熟思之。

[기호일보] 삼국지에서 오늘을 읽는다 대권에 지지자들이 모여드는 이유<攀龍附鳳>  입력. 2021.05. 24

조비가 위 제국을 세우고 황제가 되자 제갈량이 서둘러 유비에게 황제에 오를 것을 건의했다(?). 유비는 자신이 한(漢)의 신하라며 그런 일은 반역이라고 거절했다. 제갈량이 타일렀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분열되었고 각지의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났습니다. 지금 재능과 덕망을 갖춘 인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군을 섬기는 까닭은 용과 봉황에 매달리듯이 지도자에 의지해 공명을 세우려는 것이지요. 이제 끝까지 사양하신다면 많은 인재들이 지지하기는커녕 실망한 나머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용과 봉황에 의지한다’는 말은 지도자 주변에 천하의 대권을 손에 넣으려 애쓰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공명을 이루고자 하는 뜻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늘날 서구식 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 정치에 있어 대권을 향한 지도자와 그 주변의 참모들을 보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으나 민주주의 쪽이 훨씬 위기에 처한 듯이 보인다. 공명이 지나쳐 이익과 출세에 눈먼 인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출처] 용과 봉황에 매달리듯이 지도자에(攀龍附鳳)|작성자 몽촌

반백불부대(斑白不負戴)

[요약] (斑: 얼룩 반.白: 흰백.不: 아닐 부. 戴: 일 대)

노인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태평한 세월을 의미함.

[출전] 조조(曺操)의 대주(對酒)

[내용] 대주가(對酒歌) :조조(曹操)

‘술 마시며 태평을 노래하니 관리는 오지 않는다 / 군주는 현명하고 신하들은 모두 충성스러우니 / 예를 알고 사양함에 백성에게는 송사가 없다 / 3년을 갈면 9년의 벌이가 있으니 / 양식은 창고에 그득하고 노인이 짐을 지지 않는다 / 은혜로운 비 이같이 내리니 백곡이 밭에 영글고 / 달리는 말이 필요 없어 분뇨는 논밭의 비료가 된다 / 공후백자남의 제후들은 각기 그 백성들을 사랑하니 / 권선징악 바로잡는 것이 부모가 자기 자식 키우듯 한다 / 예법을 어기면 경중에 따라 형을 가하니 / 길에 물건 줍는 자 없고 감옥은 비어 겨울에도 형벌이 없다 / 모두가 천수를 다하고 은덕이 초목과 곤충에 미친다’

對酒歌 作者:曹操

對酒歌,太平時,吏不呼門。王者賢且明,宰相股肱皆忠良。

咸禮讓,民無所爭訟。三年耕有九年儲,倉穀滿盈。班白不負戴。

雨澤如此,百穀用成。欲馬走,以糞其上田。

爵公侯伯子男,咸愛其民,以黜陟幽明。子養有若父與兄。

[기호일보]삼국지에서 오늘을 읽는다

노인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斑白不負戴>

조조는 정치가이며 병법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중국 근대문학을 이끈 노신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조조는 완고하며 편벽스러운 후한(後漢) 시대의 기풍에 반대해 통탈(通脫)을 역설했다. 통탈이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말하는 문장이 나왔고, 사상이 자유롭게 되고 완고함이 제거된 덕분에 이단과 외래사상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고리타분한 유교의 가르침 이외의 사상이 전국에 속속 흡수됐다.”

조조의 문학적 재능은 ‘단가행’을 비롯한 많은 시구에서 두드러져 ‘술 마시며 노래하자,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는가’ 하는 구절부터 ‘술 마시며 태평시절을 노래하지. 빼앗아가는 관리는 오지 않고 지도자는 현명하며 백성들은 다툴 일 없이 양식은 창고에 그득하니 노인들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는 ‘대주(對酒)’에서 활짝 꽃피운다. 이미 자신의 뜻대로 세상이 다스려지는 걸 자부한다는 평도 있겠으나 노인이 존중 받는 사회를 꿈꿨다는 점에서 요즘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연령대 순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출처] 노인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斑白不負戴)|작성자 몽촌

백두여신 白頭如新

白:흰 백.      頭:머리 두.      如:같을 여.       新:새로울 신

머리가 파뿌리처럼 되기까지 교제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안 통하면 새로 사귀기 시작한 사람과 같다

 추양(鄒陽)은 전한(前漢) 초기의 사람이다. 

그는 양(梁)나라에서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옥중에서 양나라의 왕에게 글월을 올려 사람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했다.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의협심을 존경하여,   그를 위해 진(秦)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갔었다. 

그러나 태자 단도 형가를 겁쟁이라고 의심한 일이  한 번 있었다.

또 변화(卞和)는 보옥의 원석을 발견하여 초나라 왕에게 바쳤는데,   왕이 신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을 기만하는 자라 하여 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발을 베는 형에 처했다.

이사(李斯)는 전력을 기울려 지나라 시황제를 위해 활동하고   진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나 마지막에 2세 황제로부터 극형에 처해졌다. 

정말 백두여신(白頭如新) 말대로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제하더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함은 새로 사귄 벗과 같다.

양나라 왕은 이 글을 읽고 감동하여 그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 상객으로 맞이해 후히 대접했다.

백성여능:

백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철산 최정준                                    

금융에서 최근 영미권에서 사용되는 ST라는 단어가 있다. 세계의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토큰시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증권과 토큰의 융합적 성격을 띤 자산거래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Security Tokens’라고 하고 혹은 ‘Tokenized Securities’라고 부른다. 증권형 토큰 혹은 토큰화된 증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구글번역기에서 보면 ‘Security Tokens’는 ‘보안토큰’이라고 뜨는데 이는 번역의 오류로 아직 구글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단계라서 벌어지는 오류이다.

코인 혹은 토큰시장은 최근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돈이 흘러가고 있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흐름이지만 여기에서 정책적으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자산유동화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온 말이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한 조건이 미비했기 때문에 대규모로, 보편적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한 시점이 된 것 같다. 토큰화란 정수를 분수로 바꾸는 것이다. n분의1로 바꾸면 참여하는 n의 숫자만큼 자산은 토큰화된다. 부동산을 비롯한 거래 가능한 모든 자산을 토큰화하면 자산소유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분만큼 공동소유하게 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부동산정책은 때려잡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라 n분의1로 유동화해야 백성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출처] 백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百姓與能)|작성자 몽촌

범이불교 ‘犯而不校’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어도 따지지 않는다

증자(曾子)가 말씀하셨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기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계교(計較)하지 않는 것을, 옛적에 내 벗이 일찍이 이 일에 종사하였었다.”(曾子曰 以能問於不能하며 以多問於寡하며 有若無하며 實若虛하며 犯而不校를 昔者에 吾友嘗從事於斯矣러니라. 「泰伯」5)

누군가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와도 따지거나 다투지 않을 수 있을까? ‘범이불교’에서 ‘교’는 ‘비교하고 계산하다’는 의미로서 이리저리 따져보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의 분별심을 갖지 않고 초월한 모습을 견지하며, 묵묵히 자신의 올곧음을 묵수(墨守)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수양이 되지 않고서야 보여주기 힘든 선비의 자세이다.

사실 이 『논어』 문구는 증자가 공문 제자였던 ‘안회’를 칭하는 장면으로 풀이되곤 한다. ‘안회’는 같은 제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스승이었던 공자에게도 ‘데미안’과 같은 존재였다. 안회는 20대에 이미 머리가 백발이었고, 스물 아홉의 짧은 나이에 지금의 결핵에 해당하는 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한 수제자(秀弟子)로 알려져 있다. 공자는 겉으로 보기에 아둔한 모습의 안회를 측은하게 여긴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의 초지일관된 배움과 실천의 자세를 지켜본 후, 그의 훌륭함에 자신조차 반성의 찰라를 가진 적도 있었다고 전한다.

조금 더 원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안회와 같은 사람의 성품을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건 잘 하면서도 서투른 자에게 배우려는 겸손의 태도,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보다 못한 이에게 묻고 배우려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하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듯한 여유로운 행동”은 실상 공문제자 중에서 안회를 왜 수제자로 지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아무리 ‘재주(才)’가 능한 자라 하더라도 ‘덕(德)’ 있는 자를 당해낼 수는 없다. 재주 많은 사람은 자신만을 이롭게 할 수 있지만, 덕을 품은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隣)”라는 공자의 말씀은 아마도 이를 대변해 주는 명제일 것이다.

그런데 안회는 ‘재덕(才德)’을 겸비한 제자였다. 그의 학식과 덕망이 사멸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이러한 겸손과 낮춤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먼 옛날 같이 동문수학했던 안회를 그리워하며, 그러한 친구 같은 선배를 회상하는 증자의 모습에서 역시 우리는 훌륭한 벗의 기운을 감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신문] <四字論語>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8-06-18 오후 10:58:40 [출처] ‘犯而不校’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어도 따지지 않는다|작성자 몽촌

법상당 [法三章]

[法:법 법/三:석 삼/章:글귀 장]

세장의 법조목, 진의 가혹한 법을 대신한 가장 간단명료한 법을 뜻함

[동]約法三章

[출전]『사기(史記)』고조본기(高祖本紀)

[내용] 한(漢)나라 원년 10월에 유방(劉邦)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패왕(覇王)이 되었다.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하여 궁궐로 들어갔다. 그 궁궐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으며, 재물은 산같이 쌓여 있고, 후궁들의 수도 천 명도 넘었다.

유방은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유방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챈 장수 번쾌(樊쾌)가 말했다. “밖에서 야영을 하십시오. 이러한 재물과 후궁은 모두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입니다. 이곳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유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장량(張良)이 간언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무도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에 들어와서 진나라와 똑같은 즐거움을 즐긴다면 진나라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고 합니다.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유방은 그래서 패상(覇上)으로 돌아가 야영을 했다. 그리고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렸습니다. 진나라의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온 집안 식구가 죽음을 당했고, 그것을 화제로 삼은 자도 시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먼조 관문(關門)에 들어온 사람이 왕이 된다고 약속하였으므오 관중(關中)의 왕이 될 것입니다. 나는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에게 약속하겠습니다.

법은 세가지만 둘 뿐입니다(法三章耳).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벌하겠습니다. 그 밖의 진나라 법은 모두 폐기 할 것입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생활을 하십시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패상으로 돌아가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제후가 이르기를 기다려서 약속을 정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벽창우 [碧昌牛]

[碧:푸를 벽/昌:성할 창/牛:소 우]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碧潼)지방의 크고 억센 소.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

[동]벽창호

[예문]

▷ 벽창호같은 소리 말라 /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 생각이 없겠나?<심훈, 상록수? / 내 것 내가 갖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하는 벽창호 같은 고집으로 일관했고···.<박완서, 미망>

▷ 엉터리, 벽창호같은 여당만 의식하지 말고 민심을 생각해 민심이 우리당으로부터 떠나기 전에 등원하자–한나라당 의원총회 중에서.

[참고1]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등으로 부른다. ‘고집(固執)’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이라고 한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복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통영갓’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명태’,’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라”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벽창우’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이 ‘벽창우’를 벽창호’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 곧-‘은 신체 명사 ‘목’과 형용사 ‘곧-‘이 결합한 구조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충북대–조항범>

 

병문졸속 [兵聞拙速]

[兵:군사 병/聞:들을 문/拙:졸할 졸/速:빠를 속]

용병(用兵)할 때는 졸렬하여도 빠른 것이 좋다

[출전]『손자(孫子)』

[내용] 지금 전쟁은 전쟁용 수레 천 대, 소송차 천 대, 병사 십만 명으로 천 리나 떨어진 먼 곳까지 식량을 수송하려 하고있다. 이처럼 큰 규모의 전쟁을 하려면 조정 안팎의 경비,외교 사절의 접대, 군수 물자, 무기 보충 등 하루 천금이나 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용된다.

이렇게 하여 싸움에 이길지라도 장기간의 싸움은 군사들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기 또한 저하시킨다. 이와 같이 된 이후에 당황하여 적을 공격하면 실패할 뿐이다. 그리고 병사들을 계속하여 전쟁터에 있게 하면 국가 재정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군사들이 피폐해지고 사기가 떨어지고 공격에 싶래하여 국력을 소모하면, 그 틈을 타고 다른 나라가 침략해 온다. 이렇게 된 후에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나와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해설]손자(孫子)는 싸움에 있어서는 지구전보다는 속전속결을 주장한 병법가이다. 손자가 신속한 싸움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지구전을 벌일 때의 불리한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치다. 그래서 선자는 단기간에 나라의 조망을 걸고 병사들의 힘을 규합하여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싸움이 된다고 보았다.

 

병심여상(秉心如常)

* 秉 : 잡을 병. * 心 : 마음 심.   * 如 : 같을 여. * 常 : 늘 상.

– 마음가짐을 정상적인 것 같이 한다

한 나라의 운명이, 대통령의 생각 하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가장 최선을 다해서 가장 공정하게 나라 일을 결정하여 판단했고, 가장 적임자를 발탁했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역대 대통령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법적으로만 국가 원수가 아니라, 사실 언행에 있어서도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위치에 있는 분이니, 젊은 사람들이 보고 배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원칙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고방식이 발라야 하고, 행동이 발라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가장 원칙이 없는 대통령이 문 대통령인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지금 읽어보면 자신이 취임사에서 한 말을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반대로 하고 있다. 자기가 야당 대표로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적했던 잘못을 자신이 지금 그대로 하고 있다.

능력을 갖추고도 도덕적으로 문제없는 전문가가 얼마든지 있다. 지난 2월 중학교 때 같은 운동부원을 괴롭혔다 하여 국가대표급 배구 선수 자매가 완전히 퇴출 당했다. 그밖에도 학교 다닐 적에 갑질한 것 때문에 당한 선수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논문표절, 공금유용, 밀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의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대통령이 장관으로 임명했다. 크게 잘못한 사람은 장관을 하고 조그만 잘못을 한 사람은 가혹한 징벌을 당했다. 동방한학연구소장 [출처] 병심여상(秉心如常) – 마음가짐을 정상적인 것 같이 한다|작성자 몽촌

보우지탄 [鴇羽之嘆]

[鴇:능에 보/羽:깃 우/之:어조사 지/嘆:탄식할 탄 ]

너새 깃의 탄식, 신하나 백성이 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함

[출전]『시경(詩經) 』보우(鴇羽)시 [동]#보우지차#(鴇羽之嗟)

[내용]

푸드득 너새 깃 날리며 상수리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없어 차기장 메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믿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한 곳에 안착할 것인가!

푸드득 너새 날개 치며 대추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메기장 차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엇 잡숫고 사시나?

푸드득 너새 줄지어 날아 뽕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일로 쉴 새 없이 벼 수수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억 잡숫고 지내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옛날로 되돌아갈 건가

[참고]너새는 날개가 60센티, 꽁지가 23센티 가량이나 되는데 기러기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닭과 유사하고 뒷발톱은 없는 새이다.

 

보원이덕 [報怨以德]

[報:갚을 보/怨:원망할 원/以:써 이/德:덕 덕]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

[출전]]『노자(老子)』

[내용]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것을 한다.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일을 한다. 인위적인 취미를 가진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생기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일어난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쉬운일에서 계획된다. 큰 일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은 일에서 시작된다.

천하의 모든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이러므로 성인은 끝까지 크게 되려고 하지 않으므로 크게 될 수 있다. 대개 가볍게 승낙을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고, 너무 쉬은 일은 반드시 어려운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성인은 도리어 쉬운 것을 어렵게 여기므로 마침내는 어려운 것이 없게 된다.

어떤 사람과 원수 관계가 되면, 그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자가 있고, 반면에 은덕으로써 갚는 자가 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일은 그 누구든지 할 수있는 일이다. 그러나 원한을 누그러뜨리고 은덕으로서 갚는다는 것은 평범한 보통사람들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자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노자는 천하의 모든 일은 처음부터 크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고 쉬운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복거지계[覆車之戒]

[覆:엎어질 복/車:수레 거/之:어조사 지/戒:경계할 계]

앞수레의 엎어진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을 이르는 말로, 앞사람의 실패를 뒷사람이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

[출전]후한서(後漢書)

[내용]《후한서(後漢書)》의 〈두무전(竇武傳)〉과 《한서(漢書)》의 〈가의전(賈誼傳)〉에 나오는 말이다. <두문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품행이 방정하고 귀족의 속물적인 악습에 물들지 않은 두무의 딸이 황후가 되자 두무는 장관이 되었다.

이때 환관의 세력이 강해 그들의 횡포는 날로 더해갔다. 그러자 이응(李膺)과 두밀(杜密) 및 태학생(太學生)들은 환관들의 횡포를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엿다. 그러자 환관들은 자기들을 모함하였다는 죄로 그들을 체포한 ‘당고(黨錮)의 금’사건을 일으켰다.

두무는 이 사건을 황제에게 “만일 환관의 전횡을 이대로 방치해 두면 진나라 때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며, 엎어진 수레의 바퀴를 다시 밟게 될 것입니다[覆車之戒]”라고 진언하였으며, 결국 체포된 관리 전원을 풀어 주었다.

<가의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한(前漢)의 효제(孝帝)는 제후로서 황제가 된사람이다. 그러자 세력이 강성한 제후들은 효제를 우습게 여겼다. 이를 염려한 효제는 가의, 주발(周勃) 등의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그 중 가의는 “엎어진 앞수레의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이 됩니다[前車覆 後車戒]. 하(夏), 은(殷), 주(周)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린 나라입니다. 이를 본받지 않는 나라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복차지계는 이전에 실패한 전철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역으로 생각하면 이전의 좋고 훌륭한점은 귀감으로 삼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의전>에 나타났듯이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戒)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전얼을 밟지 마라, 복철을 밟지 마라

그 중 가의는 “엎어진 앞수레의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이 됩니다[前車覆 後車戒]. 하(夏), 은(殷), 주(周)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린 나라입니다. 이를 본받지 않는 나라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복차지계는 이전에 실패한 전철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역으로 생각하면 이전의 좋고 훌륭한 점은 귀감으로 삼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의전〉에 나타났듯이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戒)라고도 한다. <두산 백과>

 

복경호우 [福輕乎羽]

[福:복 복/輕:가벼울 경/乎:어조사 호/羽:깃 우]

복은 새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자기의 마음 여하에 따라 행복을 찾는다는 뜻이다.

[출전]]『장자(壯子)』

[원문]福輕乎羽 幕之知載 禍重乎地 幕之知避.복경호우 막지지재 화중호지 막지지피 

[내용]”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이를 지닐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禍)는 땅덩어리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해설]깃털은 매우 가벼워서 좀 많이 지녀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땅 덩어리는 지극히 무거워서 사람이 이를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복은 쌓기가 쉬울 뿐 아니라 많이 지녀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복을 좀 많이 쌓고 지닐 법 한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화는 짓기가 뭡고 그 무게가 땅 덩어리처럼 무거운데 사람들은 이를 피할 줄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차지하고 싶고 화는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루기가 매우 쉽다. 복을 많이 쌓고 화를 적게 저지르기만 하면 된다.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만 가릴 줄 알면 된다. <이병한 서울대 명예교수>

 

복룡봉추 [伏龍鳳雛]

[伏:엎어질 복/龍:용 룡/鳳:봉황 봉/雛:병아리 추]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이르는 말.

[동]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유]기린아麒麟兒

[출전]『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내용]<촉지(蜀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주(注)에 나오는 말이다. 제갈 량(181~234)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난세 속에 숙부를 따라 현주(荊州)의 양양(襄陽:지금의 후베이성 양양현)으로 피난왔는데 숙부가 죽자 양양의 서쪽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정착하였다

그는 난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 속에서 별로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형주에 와서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다. 유비는 비로소 이때부터 인재를 찾으러 나선다.

어느 날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사마 휘(司馬徽)에게 시국에 대해 넌지시 묻자 사마 휘는 “글만 읽는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은 이곳에 계신 복룡과 봉추가 잘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글에서 복룡봉추가 유래하였고,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 량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을 가리킨다. 비록 제갈 량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였다.

이처럼 복룡봉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주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제갈 량을 가리켜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비슷한 말은 기린아(麒麟兒:재주와 슬기가 탁월한 사람)이다.

 

복수불수 [覆水不收]

[覆:엎을 복/水:물 수/不:아니 불/收:거둘 수]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른다.  또는 다시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만큼 일이 그릇됨.

[동]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엎질러진 물은 동이로 돌이킬 수 없다.**동이 분/甑已破矣(증이파의) : 시루가 이미깨졌다.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은.**시루 증/복배지수(覆杯之水), 이발지시 已發之矢-이미 떠난 화살

[유]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 파경부조(破鏡不照)-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한다 /기호지세騎虎之勢

[속담]쏘아 놓은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춰지지 않는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출전][출전]『拾遺記(습유기)』

[내용] :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바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란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 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아솨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자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若能離更合이나 覆水定難水라.)라 하고 마씨를 아내로 맞아 들이지 않았다

 

본연지성 [本然之性]

[本:근본 본/然:그럴 연/之:어조사 지/性:성품 성]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자연의 심성, 성리학의 심성론에서 유래

[내용]천명지성(天命之性) 또는 천지지성(天地之性)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성(性)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눈다. 주자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천부자연의 심성으로 지선(至善)이다. 기질지성은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가리키는데, 타고난 기질의 청탁(淸濁)과 편색(偏塞:편벽되고 막힘)에 따라 선하게도 나타나고 악하게도 나타난다.

이기론으로 말하면, 본연지성은 이(理)에 해당되고, 기질지성은 기(氣)에 해당된다. 그런데 기질지성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수양에 따라 탁한 것[濁]을 맑은 것[淸]으로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유가(儒家)에서는 기질을 정화시켜 지선의 본연지성을 회복하여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유가에서 이상으로 삼은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차이점은, 성인은 기질이 맑아서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는 반면에 범인은 기질이 탁하여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지 않는 데 있다.

:근본 본/然:그럴 연/之:어조사 지/性:성품 성]

본제입납 [本第入納]

[本:근본 본/第:집 제/入:들 입/納:들일 납]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묜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참고]–편지 봉투를 쓸 때 이름 아래 붙이는 칭호

氏(씨) : 나이나 지위가 비슷한 사람에게 존경의 뜻으로 쓸 때.

貴中(귀중) : 단체에 쓸 때,

님께 : 순 한글식으로 쓸 때,

女史(여사) ; 일반 부인에게 쓸 때,

大兄(대형), 人兄(인형), 雅兄(아형) : 남자끼리 친하고 정다운 벗을 높여 쓸 때,

座下(좌하) : 마땅히 공경해야 할 어른 조부모(祖父母), 부모(父母), 선배(先輩), 선생(先生)에게 쓸 때,

畵伯(화백) : 화가를 높여 쓸 때,

貴下(귀하) : 상대방을 높여 쓸 때,

君(군), 兄(형) :

친한 친구에게 쓸 때,

孃(양) : 처녀로서 동년배(同年輩) 혹은 아랫사람에게 쓸 때,

展(전) : 손아랫사람에게 쓸 때,

▷봉투의 글 씨

받는 사람의 성명은 정자로 쓴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주소의 글씨보다 좀 크게 하여 중앙에 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성명은 조금 작게 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생략하지 않고 정확하게 쓴다.

[봉투의유래]–미국 작가 A.비어스는『악미의 사전』에서 봉투를 “서류를 매장하는 관, 연애편지를 넣는 옷”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도 봉투를 “이루지 못한 연문의 관통이요, 사랑을 거절하는 답장의 칼집”이라했다. 봉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흙봉투에 다다른다. 당시 제왕 또는 권력자만이 보아야 하는 문서는 여느 사람이 볼 수 없게끔 해야 했는데, 그 시절 점토판에 글을 남기로 그 점토판을 포개어 양끝을 이겨서 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낙랑시대 유물로 흙봉투가 출토되어 있다. 봉니(封泥)가 그것이다. 봉투란 단어는 ‘구부려 덮어 봉한’데서 유래했다

 

부마 [駙馬]

[駙:곁말 부/馬:말 마]

임금의 사위/공주의 부군(夫君)

[출전]『搜神記(수신기』[원]駙馬都尉

[내용] 옛날 농서 땅에 신도탁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로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 대문을 두드렸다.

하녀가 나오자 “옹주로 가는 길인데 하룻밤 재워줄 수 없겠습니까?”하녀는 그를 안방으로 안내하여 식사까지 대접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나라 민왕의 딸이온데 조나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이제까지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사양을 하다가 결국 3일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더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됩니다.” 하며 정표로 금베게를 주었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기와집은 간데 없고 무덤만 있을 뿐이었다.

신도탁은 금베게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게를 저자거리에서 발견하고 신도탁을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관을 열어보니 금베게만 없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말과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에게 내 사위라 하며 駙馬都尉(부마도위)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원문]乃遣人發  啓柩視之 原葬悉在 唯不見枕 解體看之 交情宛若 秦妃始信之 歎曰 我女大聖 死經二十三年 猶能與生人交往 此是我眞女 也 遂封度爲駙馬都尉 賜金帛車馬 令還本國 

[예문]

▷ 부마로 삼다

▷ 부마를 뽑다

▷ 임금의 부마가 되다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

부생아신(父生我身)하고 모국오신(母鞠吾身)하며 복이회아(腹以懷我)하고 유이포아(乳以哺我)로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게 하시고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으니 배로써 나를 품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이셨도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구절이다. ‘호미도 날이언만은 낫같이 들 리가 없으니다.’ 옛글 한 토막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은혜를 낫에 비유한 것이다. 어느 날 술이 불콰하게 오른 아들은 집에 돌아와 노모를 보자 반색하며 등에 업었다.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는 어머니를 기어이 거북 등판 같은 등에 업었다.

‘장난으로 어머니를 등에 업었네. 너무나 가벼워, 세 발짝, 그만 걸음 멈춘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의 하이쿠다.
아들을 세 걸음에서 멈추게 하는 각성. 언제 이렇게 되셨는가? 어머니의 실체가 달아난 듯한 느낌, 그만 술이 확 깨고 만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남방으로 향하고 계셨다. 도중에 뼈 한 무더기를 만나자 그분은 오체를 땅에 대고 예배를 드렸다. 제자가 까닭을 물으니 “여기에는 내 전생에 전생의 부모님의 뼈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며 이 자리에서 ‘부모은중경’의 설법이 펼쳐진다. ​

“여자와 남자의 뼈를 둘로 나눠 보아라” 하시니 “살아있을 때는 겉모습을 보고 알 수 있지만 뼈만 보고 어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들이 다시 여쭙자 부처님은 이렇게 답했다.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운데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왜냐하면 자녀를 낳고 기름에, 한 번 아이를 낳을 때 서 말 서 되나 되는 엉긴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이나 되는 젖을 먹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실컷 우려먹은 사골 솥에서 뼈다귀를 건져 올릴 때 손끝에 닿던 그 섬뜩한 충격! 언제 이렇게 되셨을까.   수필가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문화]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부언시용 [婦言是用]

[婦:지어미 부/言:말씀 언/是:이 시/用:쓸 용]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

[출전]『書經』, 周書篇

[내용] : 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달려가는 요부(妖婦)에게 빠져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주색(酒色)을 즐겨 매일같이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일족(一族)들 마저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혼란하여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때 [무왕이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아니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오직 집안이 망할 뿐이다.

’(王曰 古人有言曰 牝鷄無晨이니 牝鷄之晨이면 惟家之索이라.)’. 이제 상(은)나라의 왕 수(주왕)는 오직 부녀자의 말만 옳다고 여겨서 따른다(今商王受 惟婦言是用)”라고 하였다(** 牝(암놈 빈) 索(쓸쓸할 삭)

[해설]이 구절에 나오는 암탉과 부녀자는 주왕의 애첩 달기를 가리키는데, 주왕은 어질고 현명한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달기의 말만 들었다. 부언시용은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부유의상(蜉蝣衣裳)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차운(次韻)’ 4수 중 제3수다.

“산에 기댄 낡은 집이 바로 나의 고향인데,

꽃나무로 이웃 삼은 침상이 편안하다.

곤경 처해 형통하니 길 얻었음 알겠고,

삶 기뻐함 미혹 아니니 어긋난 길 부끄럽네.

저물녘 노는 하루살이 의상이 화려하고,

맑은 날에 나는 황새 편 날개가 길구나.

작고 큰 것 살펴보매 성품 각기 정해지니,

몇 사람이나 휘파람 불며 높은 산에 있을는지.

(依山廢宅卽吾鄕, 花木爲鄰穩著牀. 處困猶亨知得路, 悅生非惑恥乖方. 蜉蝣晩戲衣裳麗, 鸛鶴晴飛翅翮長. 細大看看各定性, 幾人孤嘯在崇岡.)”

나이가 들어도 좀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은 드는 법이 없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금세 의심이 나서 쭈뼛댄다. 그래서 선생의 이 같은 수졸(守拙)의 태도에서 학문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산자락의 낡은 집에서 꽃나무를 이웃 삼아 산다. 꿈도 없이 잠이 편안하다.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삶을 기뻐함이 미혹됨이 아닐지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라고 했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곤경에 처해서도[處困] 생을 기뻐[悅生]하니, 삶이 제 궤도를 얻어 미혹됨이 없다. 낫게 살겠다고 삐뚠 길을 기웃대는 것이 부끄럽다.

제 삶이 끝나가는 저물녘에 하루살이는 제 고운 의상을 뽐내며 논다. 전 같으면 어리석다고 비웃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함이 아니라, 보석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다. 시원스레 날개 뻗은 관학의 비상은 그것대로 시원스러워 눈이 고맙다. 사물은 저마다 타고난 성품에 따라 삶을 영위해 간다. 크고 작고, 넉넉하고 부족한 것을 따지지 않는다. 내 가난한 삶은 편안한 잠 앞에서 안온하다. 나는 저 높은 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홀로 부는 휘파람에 기쁘다.

부유(蜉蝣), 즉 하루살이는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잡지(雜識)’에서 “내가 일찍이 잡아서 살펴보니, 그 깃이 정말 눈처럼 희고, 밝고 깨끗해 사랑스러웠다(予甞捕而觀之, 其羽正白如雪, 明潔可愛)”고 묘사했던 팅커벨이다. ‘시경’에도 ‘부유’ 시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작은 즐거움을 탐하여 먼 염려에 어두운 것을 탄식한 시로 알려져 있다. 내게는 아니다. [정민의 世說新語] [610] 부유의상(蜉蝣衣裳)2021.02.18. 오전 3:5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출처] 하루살이 의상이 화려하고(蜉蝣衣裳)|작성자 몽촌

부인지인(婦人之仁)

배신감은 무능한 자의 자기연민이다. 속았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다. ‘보는 것은 속이는 것’이라 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이는 법이다.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는 놓쳤거나 애써 무시했던 탓이다.

사람을 믿기는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어찌 남을 믿을 수 있나.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다’는 노래도 있다. 어떤 내가 진정한 나인지 과연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믿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 따라서 그냥 믿고,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그저 기다리는 것이 낫다. 후회도 때론 유예해 두는 편이 나중에 ‘새옹지마(塞翁之馬)’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예부터 군주에겐 삼심(三心)이 있다고 했다. 욕심, 의심 그리고 변심이다. 현대적으로는 조직이나 회사의 우두머리쯤이다. 조금이라도 지경을 넓히고 싶은, 재산을 불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비전의 부재로 비쳐질 것이다. 이리저리 살펴보고도 한번 더 의심해야 실수가 적을 것이다.

아무리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서로 보일 만큼 마음을 터놓고 사귐)하는 사이였더라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소매를 떨치고 돌아서는 것이 결단력이다. 먼저 떠난다면 진정 어린 배려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3년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시대에 창업 공신과 작별하는 것은 부득이하다. 궁하면 변하고, 변해야 통한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인사는 어렵다. 구멍가게에서 사람을 쓸 때도 요모조모 따지는데, 국가 경영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내가 나를 못 믿더라도 너는 믿는다’는 담대함과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도 네 것이다’는 아낌없이 베푸는 너그러움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초한(楚漢) 쟁패에서 100전 99패 끝에 단 한번의 승리로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야말도 인사의 귀재이다. 그에게는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을 보는 장량이 있고, 싸우면 이기는 한신이 있었으며, 군대 살림살이를 빈틈없이 챙기는 소하가 있었다. 위기에 빠지면 처자식을 버리고 달아나는, 믿을 수 없는 위인이지만 부하는 믿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세상을 덮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는 불세출의 전략가인 범증마저 떠나 보냈다. 무엇보다 한신을 잡지 못해 해하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고 말았다. 한신이 승부를 가르는 추였는데, 인사 문제로 기울었다. 항우는 한신을 창잡이쯤으로 썼지만, 유방은 소하의 말을 들어 대장군에 임명한다.

훗날 승리의 연회에서 유방이 한신에게 장수들의 역량을 평가하도록 한다. 한신은 이 자는 이러하고, 저 자는 저러하다 품평 끝에 자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말한다. 유방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매인 몸이 되었느냐고. 한신은 “병사의 운용은 내가 낫지만, 장수의 운용은 대왕이 낫다”고 대답한다.

한신이 제(齊)를 정복하고 가왕(假王)을 청했을 때, 유방은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무슨 소리냐. 사내 대장부라면 진짜 왕이 돼야지”라며 제왕으로 임명한다. 천하를 제패하고 논공행상할 때, 챙길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적었다. 불평불만이 쌓여 자칫 반란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이에 유방은 심히 못마땅해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옹치에게 벼슬을 내린다. 그러자 자리 다툼도 사라졌다. 이런 것이 인사기법이다.

한신이 항우를 평가했는데, 한마디로 ‘부인(婦人)의 인(仁)’이라 했다. 항우가 부하들과 한솥밥을 먹고 간난신고를 함께하지만, 논공행상에서는 막상 주기로 한 관직이 아까워서 관인(官印)을 만지작거리다 그 모서리가 닳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장수의 자리가 상당기간 비워졌다. 나중에는 그 자리를 받은 장수들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진이 빠진 것이다. 항우가 천하를 손에 넣었다가 놓친 것도 이런 인사 때문이다.

제왕학은 용인(用人)의 기법이 기초이다. 성공한 제왕은 널리 현명한 인재를 구하되 완전무결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작은 허물은 묻어주었으며, 과거 자신과의 불편한 관계를 기억하지 않았다. 제 환공은 자신을 반대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앉혔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데, 이 고사도 뒤집어 보면 환공의 뛰어난 용인술을 강조하는 것이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은 잔혹한 제왕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거역한 자는 9족이 아니라 10족을 멸했다. 그래도 천하를 손에 넣은 뒤 반대파를 적극 기용했다. ”지금의 성실함을 생각할 뿐, 이전의 과오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적이었던 원(元)의 장군과 관리들도 진심으로 복종해 제국의 기초를 닦았던 것이다.

적임자를 못 찾는 것은 시야가 좁거나 너그럽지 못해서다. 사람은 많다. 연못에서 찾는지 바다에서 찾는지가 문제다.

​[아주경제신문][박종권의 酒食雜記] 박종권 칼럼니스트 [출처] 부인지인(婦人之仁)|작성자 몽촌

부중지어 釜中之魚

釜:솥 부.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魚:물고기 어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後漢(후한) 말께 20여 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 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

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 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 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 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 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 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 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부화뇌동 [附和雷同]

[附:붙을 부/和:화할 화/雷:우뢰 뢰/同:같을 동]

소신없이 남의 의견을 그대로 좇아 따르거나 같이 행동하다.

[유]追友江南(추우강남) : 친구따라 강남간다. 남의 피리에 춤춘다.

[출전]기(禮『예기(禮記)』곡례(曲禮) 상(上) 

[내용]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라. 옛날 성현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를 하라.” 이것은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을 설명한 것이다.

또 <논어(論語)>“자로(子路)”편에도 이런 말이 보인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화합하되 부회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下同, 小人同而不和). “공자의 말은 이러한 뜻이다.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익을 좇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행동하지만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부회뇌동’이란 결국 우뢰가 한번 치면 천지 만물이 이에 응하여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공명정대한 명분이나 사리 판단보다는 이해 관계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당 [北堂]

[北:북녘 북/堂:집 당]

남의 어머니의 별칭

[참고]’남의 어머니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母堂, 慈堂,(자당) 令堂(영당), 萱堂(훤당).大夫人 /’자기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 : 慈親(자친), 慈浬(자리), 家母, 家慈. /’남의 아버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椿府丈(춘부장), 椿府, 椿丈, 椿府大人, 椿庭(춘정), 椿堂(춘당), 家尊, 令尊(영존). /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 : 家父, 家君, 家嚴, 家大人, 家親, 嚴君.嚴親(엄친)

[예문]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함이라 — 김진태

[참고]北堂은 18세기 초 중국 베이징[北京]에 건립된 프랑스 예수회 전교(傳敎)본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북창삼우 [北窓三友]

[北:북녘 북/窓:창 창골/三:석 삼/友:벗 우]

북쪽 창의 세가지 벗, 거문고(琴), 술(酒), 시(詩)를 뜻함

[내용]오늘 북창아래에서 무엇 하느냐고 자문하네

아! 세 친구를 얻었으니 세 친구는 누구인가?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니 세 친구가 번갈아 서로를 끌어주어 돌고 돎이 끝이 없구나

[원문]今日北窓下 自問何所爲 欣然得三友 三友者爲誰 琴罷輒擧酒 酒 輒吟詩 三友遞相引 循環無已時

[참고]歲寒三友[세한삼우]–松,竹,梅[소나무, 대나무, 매화]/문방사우文房四友–글을 쓰는 네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紙筆墨硯)

 

분골쇄신 [粉骨碎身]

[粉:가루 분/骨:뼈 골/碎:부술 쇄/身:몸 신]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다. 또는 남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음.

[유]犬馬之勞(견마지로) :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盡忠竭力(진충갈력) :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

驅馳(구치) : 말이나 수레를 몰아 빨리 달림. 또는 남의 일을 위하여 힘을 다함.

[예문]무투표당선과 3선의 영예를 안겨준 주민들에게 분골쇄신의 자세로 보답하겠습니다. 침체된 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각계 요로에 전달하고 해결책을 이끌어냄은 물론 낙후된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속리산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 아이디어 개발, 민자유치등을 위해 발로 뛰는 의원이 되겠습니다.–당선사례

 

분서갱유 [焚書坑儒]

[焚:불사를 분/書:책 서/坑:묻을 갱/儒:선비 유]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학자,학문이 정치적 박해, 탄압을 받음

진시황제[출전]『史記』/『십팔사략(十八史略)』

[내용]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주왕조의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의 군현제도를 채택했다. 8년후 함양궁의 잔치에서 순우월이 당시 군현제도를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가부를 묻자 군현데의 입안자인 승상 이사는 옛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는 자가 있으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고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이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버릴 것을 진언한다. 이 진언이 받아들여져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모두 불태워 졌다.

이듬해 아방궁이 완성되고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을 닦는 方士들을 불러 후대했다. 그들 중 노생과 후생이 재물을 사취한뒤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추자 시황제는 매우 진노했는데 그 때 시황제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다 가뒀다는 보고를 받고 460명이나 되는 많은 선비들을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불가사의 [不可思議]

[不:아니 불/可:옳을 가/思:생각 사/議:의논할 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 야릇함.

[유]微妙(미묘) : 야릇해서 잘 알 수 없음. /神秘(신비 : 보통 이론과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한 일. /不可知解(불가지해) : 알 수가 없음.

[예문]

▷ 불가사의하게 전개되는 운명

▷ 인간의 생명력은 불가사의하다

▷선우 중위는 그 양주호가 마치 어떤 커다랗고 불가사의한 괴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이청준, 이어도>

▷ 형사들과 노인은 불가사의한 종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눈초리로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인호, 지구인>

 

불가상서(不可尙書)

왕에게 ‘아니오’라는 상서를 올린 고려의 위계정에서 유래되었다. 왕이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불가합니다’라고 아뢰는 지조 있는 선비의 충언으로 ‘고려사절요’ 등에 전한다.

*상서 (尙書)

고려 시대에 둔 육부(六部)의 으뜸 벼슬. 성종 14년(995)에 어사(御事)를 고친 것으로 정삼품이며, 뒤에 판서(判書)ㆍ전서(典書)로 고쳤다.

고려 13대 선종(宣宗) 때 문신 위계정(魏繼廷?~1107)이 송나라에서 돌아와 예부시랑으로 있을 때였다. 왕의 애첩 만춘(萬春)이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누구도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다. 이에 위계정이 아랑곳 하지 않고 직언했다. 

“폐하, 만춘이 폐하를 속이고 사가((私家)를 크고 화려하게 짓고 있습니다. 청컨대 그것을 헐게 하소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거리낌 없이 아뢰었다. 과(過)하면 중지시키고 가(可)하면 흔연한 그의 성정은 저울과 같이 평정했다. 

상원 연등에서 선종이 계정에게 술을 권하고 취하자 춤을 추어 보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계정은 주저하지 않고 소신을 밝혔다.

“궁에는 광대가 있는 데 대신의 몸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전하의 말씀이지만 이만은 못하겠습니다(不(可).”

옆에서 대신들이 계정의 행동에 참견했다.

“폐하의 말씀에 ‘아니오’란 신하된 도리가 아니오. 전하의 말씀대로 춤을 추어야 옳은 일이오.”

그러자 계정이 예를 표하고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일찍이 선대인들은 전하의 말씀이라고 ‘예예’만 하면 그 나라는 정녕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소(尙書).”

끝내 춤을 추지 않은 계정은 숙종(肅宗)을 지나 예종(睿宗) 때는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차 퇴관할 것을 청하였으나 200일의 휴가를 주면서 국무를 보게 할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고려의 선종과 위계정을 보면서 닭이 소 보듯 하는 여계망우(如鷄望牛)의 속담이 맴돌았다.

우리가 어쩌다 좌우로 갈라져 돌아서고, 남북관계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를까?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이 왜 분단된 채 남아지게 되었는지 되묻고 싶다. 이제 4월이면 총선을 통해 선량들이 뽑히고, 그 다음 최고 권력자가 등장할 것이다. 권력은 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 힘은 바닷물의 조수를 움직이는 중력처럼 강력한 흡인력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선종이 당(唐)태종과 위징(魏澂)의 예를 더듬어 위계정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어떤 군주가 현명한 군주고, 또 어떤 군주를 어리석은 군주라 하는가?”

위계정이 그 뜻을 알고 아뢰었다.

“밝고 현명한 군주는 각계각층의 언론에 귀를 기울이는 군주이고, 어리석은 군주는 한쪽말만 듣는 군주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옛 상황을 오늘에 비길 때 한쪽 말만 듣고 패스트트랙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까지 밀어부친 것을 뭐라 할까? 그래도 위계정처럼 ‘불가합니다’와 같은 소리가 먹혀들지 않았다.

충직한 위계정이 위징의 옛 말을 선종에게 고담(枯淡)하게 아뢰었다.

“백성 중에 폐하를 비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위계정의 말을 들은 선종은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나에게 덕이 있어 비방을 듣는다면 언짢을 게 없다. 그러나 내게 덕이 없으면서 칭찬을 듣는다면 도리어 그게 탈이 아니겠는가?”

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두평 임종대 모현철 기자 momo@imaeil.com  [매일신문]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배포 2020-03-27 14:30:00 | 수정 2020-03-26 11:40:30     [출처] ‘불가합니다’라 말하는 판서(不可尙書)|작성자 몽촌

 

불구대천 [不俱戴天]

[不:아니 불/俱:함께 구/戴:머리에 일 대/天:하늘 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 죽여 없애야 할 원수

[동]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不共戴天(불공대천)

[출전]『禮記』

[내용] : 예기(禮記)는 오경의 하나로 周나라 말 부터 秦漢시대에 유학자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적은 책이다. 그 중 곡례(曲禮)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아버지의 원수는 더불어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 살려둘 수는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 무기를 가지고 올 사이가 없다.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원수를 만나면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죽여 없애야 한다.

 

불립문자 [不立文字]

[不:아니 불/立:설 립/文:글월 문/字:글자 자]

문자로써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입장을 표명한 표현

[동]以心傳心(이심전심) 敎外別傳(교외별전) 拈華微笑(염화미소,점화미소) 拈華示衆(염화시중)

[내용]교가(敎家)의 사람들이 경론(經論)의 문자와 교설만을 주로 하고 불교의 참 정신은 잃고 있다고 보고, 선가(禪家)에서는 참된 불법으로서의 정법(正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以心傳心]이라 하고, 체험을 중요시하여 불립문자·교외별전(敎外別傳) 또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선종을 중국에 전한 달마(達磨)에서는 이미 나타났었다. 그러나 특별히 강조되었던 것은 당나라 때로서 선종 제6조 혜능(慧能) 아래의 남종선(南宗禪)에서였다.

[참고1]불립문자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그러니까 문자를 부정적을 평가하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문자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면 팔만대장경의 그 무수한 문자는 또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립문자는 어디까지나 ‘문자에만’ 의지하지 말라 또는 ‘문자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의미이다.

 

불문곡직 [不問曲直]

[不:아니 불/問:물을 문/曲:굽을 곡/直:곧을 직]

굽고 곧음을 묻지 않음,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고 다짜고짜 행동함.

[출전]『사기(史記)』 열전(列傳) 이사전(李斯傳)

[내용]초나라사람 이사(李斯)는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종실 사람들과 대신들이 진나라 사람을 제외한 다른 제후국의 신하들은 믿을 수가 없으니 쫓아내야 한다는 ‘축객(逐客)’의 상소를 진시황에게 올렸다. 이사는 자신도 그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알고 진시황에게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지금 폐하께서 곤륜산의 옥(玉)과 수(隨)와 화(和)의 보배를 갖고 계시며, 명월주(明月珠)를 드리우고, 태아검(太阿劍)을 차시며, 섬리마(纖離馬)를 타시며 취봉기(翠鳳旗)를 세우시며, 영타고(靈타鼓)를 세우시니 이런 좋은 것 중에 진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폐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만 좋다하신다면, 야광벽으로 조정을 꾸미지 못하며, 서상기(犀象器)를 애호하지 못하며, 정나라 위나라의 여인들로 후궁을 채우지 못하며, 준마로 마구간을 채우지 못하며, 강남의 금석(金錫)을 사용하지 못하며, 서촉의 단청으로 꾸미지 못합니다. 또한 후궁을 꾸미고 진열하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 이목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어야 하나도 하면, 완주(宛珠)의 비녀와 부기(傅璣)의 귀걸이, 아호(阿縞)의 옷, 금수의 장식을 주상께 드릴 수 없으며 아름다운 조나라 여인을 곁에 세울 수 없습니다.

저 옹(甕)을 치고 부(缶)를 두드리며 쟁(箏)을 타고 허벅지를 두드리며 노래하여 이목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본래 진나라의 음악이요, 정위의 음악과 소우(昭虞)와 상무(象武)는 다른 나라의 음악이거늘 버리지 않고, 연주하게 하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뜻을 흔쾌하게 하는 것을 앞에 놓고 보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가부를 묻거나 곡직을 가리지도 않고서 진나라 사람이 아닌 자는 떠나가게 하고 손님들은 내 쫓으시려 하시니, 그렇다면 중시하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주옥이요, 경시하는 것은 인민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통치하고 제후를 다스리는 방책이 아닙니다.

 

불삼숙상 (不三宿桑)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묵지 않는다

이상호 시인의 새 시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읽다가 ‘감나무의 물관을 자르시다’에서 마음이 멈췄다.

“가을에 감을 따내신 우리 아버지

감나무에 더는 물이 오르지 않게

밑동에 뱅 둘러 물관을 자르셨다.

더는 감나무에 오르지 못하겠다고

목줄을 끊기로 작정하셨던가 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지키던 감나무에 생긴

톱날 자국에 잘려 나는 아득해졌다.

아들이 내려와 살지 않으리라 내다보신

아버지를 읽고 감나무처럼 숨이 턱 막혔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감나무에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고 감나무 밑동에 돌려가며 톱질을 했다. 나무가 더 이상 땅에서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하도록 물관을 잘랐다. 시인은 그 톱 자국에서, 정년을 하고 나면 아들이 혹 내려오겠지 하던 바람을 접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다. 70년 가까이 마당에서 해마다 붉은 열매를 내주던 감나무는 그렇게 제 소임을 조용히 마쳤다.

‘후한서(後漢書)’ ‘배해열전(裴楷列傳)’에서 배해가 말한다.

“승려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묵지 않는다. 오래 머물러 은애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려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진의 지극함이라 하겠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

석가모니의 시대에 출가한 사람들은 정한 거처 없이 걸식탁발로 살았다. 인도는 더운 나라라 밤중에는 나무 아래서 지냈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윤기(尹愭·1741~1826)는 생계가 막막해 살던 집을 팔고 지은 ‘하록의 집을 팔고 나서 읊다(賣荷麓宅有吟)’에서 노래한다.

“뽕나무 밑 사흘 자도 그리움이 남느니,

하물며 성 동쪽서 십년을 살았음에랴.

가족들아 길게 떠돎 탄식하지 말려무나.

그저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그만이니.

(桑下尙紆三宿戀, 城東况是十年居. 家人莫歎長飄泊, 只有身心却自如.)” 

가족의 역사를 함께 지켜본 감나무의 물관에 톱을 넣어 자르던 아버지의 심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은 집착을 끊고 미련을 덜어내어 조금씩 가벼워지는 일이다. 쥐었던 것 내려놓고, 먼 데 마음 두지 않고, 사뿐사뿐 걸어가기가 쉽지 않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정민의 世說新語] [626][출처]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묵지 않는다(不三宿桑)|작성자 몽촌

불식태산  不識泰山

不:아니 불.    識:알 식.   泰:클 태.    山:뫼 산

 태산을 몰랐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 했다

 태산(泰山)이라면 중국의 오악(五岳) 중 가장 유명한 산으로 山東에 있으며  천자가 봉선(封禪)을 행했던 산이다.

동방의 명산이었던 데다 당시만 해도 ‘하늘 아래 제일 뫼’라고 하여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 높이는 1,500여 미터에 불과하다.
불식 태산(不識泰山)이란 ‘태산을 몰랐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泰山은 산 이름이 아니라 춘추시대 노(魯) 나라 사람으로 노반(魯班)의 제자다.

노반은 공수반(公輸般)이라고도 불렸는데 천하의 세공(細工) 명장(名匠)으로 맹자(孟子)나  묵자(墨子)에도 등장한다.

태산이 갓 木工을 익힐 때였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노반의 맘에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산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배우려는 의욕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또 틈만 나면 배움터를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근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탁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들 잘 만들었지만 泰山 태산만은 엉망이었다.

 화가 난 노반은 그를 쫓아내고 말았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노반은 시장에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대나무 가구를 발견했다.

 너무도 놀라워 수소문해 본 결과 자기가 쫓아냈던 泰山이 만든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10여 년 전 그로부터 배울 때 泰山은 대나무의 유연성에 주목하여 대나무를 익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승이 나무만 고집하니까 하는 수 없이 대나무 숲으로 도망쳐 혼자 익혔던 것이다.
노반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눈을 가지고도 泰山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不識泰山)!’   후에 泰山은 죽공예(竹工藝)의 창시자가 되었다

 

불외입외(弗畏入畏)

[요약] (弗: 아닐 불. 畏: 두려워할 외. 入: 들 입. 畏)

참다운 두려움을 모른다면 진짜 두려움에 빠진다는 뜻으로, 관리들은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훈시.

[출전]《서경(書經) 주관편(周官篇)》

[내용] 이 성어는 서경(書經) 주관편(周官篇)에 나오는 말로, 온다. ‘주관(周官)편’은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온 나라의 잔적(殘賊)들을 물리친 후 관제(官制)를 정비할 때 쓴 글로, 주로 관료들이 지켜야 할 올바른 태도에 대해 기술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임금님이 또 말씀하셨다.

“오, 벼슬을 하는 모든 관리들이여, 그대들이 맡은 일을 공경하여 그대들이 내는 명령을 신중하게하기 바란다. 명령을 내리면 실행을 하여야지 취소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적 인 것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옛것을 배우고 관계로 들어가 제도로 일을 의논하면 정사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일정한 법을 스승으로 삼고 교묘한 말로 그대의 벼슬을 유지하려고 하지 마라. 의심이 쌓이면 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할 것이고 게으르고 소홀하면 정사가 거칠어질 것이다. 배우지 아니하면 벽을 향해 선 것 같아서 일을 처리함이 더욱 번거로워 질 것이다. 그대 경사(卿士)들에게 충고하노니 높은 공적은 의지에 달린 것이다. 업적의 크기는 근면에 있고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면 후환이 없다. 벼슬이 높으면 자연 교만해지기 쉽고 부유한자는 사치해지기 쉽다. 모든 일에 공경하고 삼가는 덕행을 쌓아라.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장차 위태로운 일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고(居寵思危), 항상 두려움을 잃지 마라(弗畏入畏)지혜로운 자를 추천하고 유능한 자에게 양보하면 모든 관료들은 화목할 것이다. 화목하지 않으면 정치란 어지러워지는 법, 추천된 자가 유능하면 추천한 자 역시 유능하며, 추천된 자가 무능하면 추천한 자 역시 무능하다.”

王曰:「嗚呼!凡我有官君子,欽乃攸司,慎乃出令,令出惟行,弗惟反。以公滅私,民其允懷。學古入官,議事以制,政乃不迷。其爾典常作之師,無以利口亂厥官。蓄疑敗謀,怠忽荒政,不學墻面,蒞事惟煩。戒爾卿士,功崇惟志,業廣惟勤,惟克果斷,乃罔後艱。位不期驕,祿不期侈。恭儉惟德,無載爾偽。作德心逸日休,作偽心勞日拙。居寵思危,罔不惟畏,弗畏入畏。推賢讓能,庶官乃和,不和政厖。舉能其官,惟爾之能,稱匪其人,惟爾不任。」[출처] 두려움을 잃지 마라(弗畏入畏)|작성자 몽촌

불요불굴 [不撓不屈]

[不:아닐 불/撓:흔들 요/不:아닐 불/屈:굽힐 굴]

뜻이나 결심이 꺾이거나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

[출전]『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내용]후한(後漢) 초기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지은, 기년체 역사서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로, 반고가 《한서》에서 왕상(王商)에 대해 “왕상의 사람 됨됨이는 질박하고 성격은 불요불굴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었다”에서 유래한다.

불요불굴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전한(前漢)시대 성제(成帝) 때 장안(長安)에 홍수가 들 것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대혼란이 일어났다. 성제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다. 성제의 장인인 왕봉(王鳳)은 조사도 해보지 않고 시급히 피할 것을 주장하였따. 그러나 왕상만은 헛소문이라고 왕봉의 의견에 조금도 굽히거나 꺾이지 않고 끝까지 반대하였다. 이후 왕상의 의견이 정확하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에 성제는 왕상을 신입하게 되었고, 왕봉을 불신하게 되었는데 왕봉은 왕상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또 왕봉의 일족인 양융이 실정(失政)하여 백성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이를 문제삼아 왕봉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왕상은 그를 처벌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양융은 파면되었다.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왕상의 성품을 말한 데서 불요불굴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보통 불요불굴을 말하기는 좋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공적인 위치에 있을 경우 불요불굴이가는 고사성어를 더욱 절실히 새겨 두어야 한다. 불요불굴은 대쪽 같이 곧고 올바른 성품과 일맥상통하다.

 

불원천리 [不遠千里]

[不:아니 불/遠:멀 원/千:일천 천/里:마을 리]

천리를 멀다하지 않다.,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옴을 뜻함

[출전『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내용]맹자가 양혜왕을 찾아 갔는데 양혜왕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천리를 멀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으니 앞으로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으신 것임니까?’

‘왕은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몸을 이롭게 할까하고 생갹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이 서로 이로움만 취하게 되어 나라가 곧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인의을 말씀하셔야지 어찌 이로움만을 생각하십니까?’

 

붕정만리 鵬程萬里 

鵬:붕새 붕,    程:정도 정,    萬:일만 만,    里:리 리

커다란 붕새가 날아가려는 거리는 말리 저쪽에 있다는 뜻으로,

목표가 웅대하여 전도가 아득히 먼 것.  사나이 대장부의 원대한 포부

莊子(장자)는 허무맹랑한 말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도 허풍이 세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차원이 다르다」고 일축해 버린다.

 마치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나 매미에게 가을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그가 쓴 『莊子』라는 책에 보면 소요유편(逍遙游篇)이 있다.

더 넓은 우주를 아무 거리낌 없이 훨훨 날아 다닌다는 뜻이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놈이 遁甲(순갑)을 하면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붕새의 등도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날개짓을 하면 颱風(태풍)이 분다.

그 태풍을 타고 9만리를 올라 6개월간이나 날아 남명(南冥·남쪽 어두운 바다)으로 날아간다.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속세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

곧 광대하기 그지 없는 붕새를 빌려 자신의 정신 세계를 아무 구속 없이 마음껏 자유롭게

소요(逍遙·노닐음)하고 싶었던 것이다.

 붕새는 곧 자신인 셈이다.

여기에서 鵬은 곧「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라는 뜻이 되어 鵬翼(거대한 날개),

鵬飛(거대한 날개짓),鵬圖(원대한 계획),鵬際(붕새가 나는 우주)등과 같은 말이 나왔다.

붕정(鵬程)이라면 붕새가 남쪽의 어두운 바다로 날아가는 길,

歷程을 일컫는다. 수만리,아니 수십만리가 넘는다.

 따라서 鵬程萬里는 사나이 大丈夫의 遠大한 抱負나 꿈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붕정만리 [鵬程萬里]

[鵬:붕새 붕/程:길 정/萬:일만 만/里:거리 리]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양양하다.

[출전]『장자(莊子』소요유편(逍遙遊篇)

[내용] 장자는 전설적인 새 중에서 가장 큰 붕(鵬)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 되었다. 날개 길이도 몇 천리인지 모른다.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았고[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날개 짓을 3천 리를 하고 9만 리를 올라가서는 여섯 달을 날고 나서야 비로소 한번 쉬었다.”

붕정만리는 말 그대로 붕어 날아 가는 만 리를 가리키는데, 거대한 붕이 만리나 나니 그 거리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원대한 사업이나 계획을 비유할 때,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여행하거나 앞 날이 양양한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반면에 작은 새들이 붕이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도대체 저 붕은 어디까지 날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비록 숲 위를 날 정도로 멀리 날지는 못해도 나는 재미가 그만인데”라고 빈정대며 말하는 것을 상식적인 세계에 민족하고 하찮은 지혜를 자랑하는 소인배에 비교하였다. 즉 소인이 대인의 웅대한 뜻을 모르는 것과 같으며, 한국 속담에도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냐’가 있다.

장자의 사상에서 ‘붕’에 비유하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 대부분 웅장하거나 원대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또는 물체를 비유할 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붕곤(鵬鯤)·붕배(鵬背)·붕비(鵬飛)·붕도(鵬圖)는 각각 상상을 초월한 사물이나 현대적인 의미로 거대한 항공기, 분발해 큰 일을 성취하려는 것,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대한 사업을 각각 비유할 때 사용된다.

‘도남(圖南)’은 고사성어 붕정만리에서 유래하였다. 도남은 한 번에 9만 리를 날아 6개월 동안 날아 남쪽으로 가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서 거대한 사업을 벌이려는 것을 뜻한다. 장자는, 소요유란 절대적인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며, 권력이나 신분·재산·권위를 초월한 완전하고 대자연의 크나큰 품인 자유 속에서 비로소 행복다운 행복, 즉 참다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불초 [不肖]

[不:아니 불/肖:닮을 초]

자기의 아버지를 닮지 않음.

매우 어리석고 못남.

자식이 부모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어버이의 덕망이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함.

[출전]『맹자(孟子) 』 만장(萬章)편 상(上)/『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중용(中庸)』

[내용]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했던 것처럼, 순(舜)의 아들도 또한 불초했다. 순이 요임금을 도운 것과 우(禹)가 순임금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많아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것이 오래되었고, 계(啓)는 착해서 공경스럽게 우왕의 도를 계승할 수 있었으며, 익(益)이 우왕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적어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순과 우와 익 사이에 시간적 거리의 길고 짧은 것과 그 자식들의 불초함은 모두 하늘이 시킨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는 할 바가 아니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지만 저절로 되는 것은 하늘이요, 사람의 힘으로 달성하려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은 천명이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불초해서 천하를 이어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권력을 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는 것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보지만, 단주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가 붕어하고 삼녀상을 마쳤을 때, 순은 요임금의 뜻에 따라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단주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자신은 남하(南下)의 남쪽으로 피했지만, 제후들이 봄과 가을에 천자를 알현하는 조근(朝覲) 때마다 단주에게로 가지 않고 순에게 왔고, 소송을 거는 사람들도 단주가 아니라 순에게로 해결해 달라고 왔으며, 송덕을 구가하는 자들은 단주가 아닌 순의 공덕을 구하였다. 그러자 순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뜻이로다!” 그리고서 도성으로 가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맹자>

[내용2]불초란 닮지 않은 것이고, 재능이 없는 것이며, 어질지 못한 것이고, 바르지 못한 것이며, 재주가 없는 것이다.<정자>

[내용3] 도가 밝혀지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질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고, 못난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중용>

 

불치하문 [不恥下問]

[不:아니 불/恥:부끄러울 치/下:아래 하/問:물을 문]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출전]『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 [동]공자천주 [孔子穿珠]

[내용]춘추시대 위나라에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시호는 문(文)이라하여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하였다. 논어 공야장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날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입니까?” “그는 머리가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

 

불출문정 不出門庭

문 밖에 나가지 않는다

                                    

올해 초 주역의 설시점을 통해본 괘가 ‘절괘(節卦)’였다.

절괘는 마디 절자로 대나무의 마디처럼 인체의 관절처럼 일정한 한계로서의 한절(限節)을 뜻한다. 보통의 나무는 줄기가 하나로 쭉 뻗어서 마디가 없지만 대나무는 일정한 마디가 있어 마디와 마디 간 제한이 있다. 없는 마디에 마디를 만들면 서로 구분되고 격리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절괘를 ‘지(止)’라고 정의하였다. ‘止’는 발을 상징한 글자인데 걷거나 뛰는 발이 아니라 멈추어있는 발을 상징한다. 그래서 멈추거나 그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올해는 ‘세계일가(世界一家)’나 지구촌을 말하는 중에 갑자기 각국이 서로 마디를 만든 형국이다.

절괘에 ‘문밖에 나가지 못해 흉하다’는 효사가 있다. 절은 조절의 의미도 있으니 사람이 나갈 땐 나가고 나아가지 않을 땐 나아가지 않는 것이 조절이나 절제를 잘하는 것이어서 ‘중절(中節)’이라고 한다. 나아가지 않아야 할 때 나아가고 나아가야 할 때 안나가 거꾸로 하면 ‘불절(不節)’이 되어 흉하다고 하였다.

전 세계가 몇 달 동안 서로 ‘불출문정(不出門庭)’의 형국이었다. 구한말 문호(門戶)를 개방하느냐 마느냐의 논의에 못지않게 지금 세계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과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절괘에서 문호를 열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면 흉하다 했는데 시의에 적절한 방법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출처] 문 밖에 나가지 않는다(不出門庭)|작성자 몽촌

비견계종 [比肩繼踵]

[比:가지런할 비/ 肩:어깨 견/ 繼:이을 계/ 踵:발꿈치 종]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부딪칠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는 모양. 뒤이어 연달아 끊어진 곳이 없음

[출전]『晏子春秋』

[내용]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大夫) 안영은 몸집이 작고 미남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초나라 영왕(靈王)은 자국의 강대함을 교만하게 뻐겼다. 그는 대신들과 상의해 안영에게 모욕을 주려고 계략을 세웠다. 안영이 탄 수레가 초나라 도성의 동문에 접근하자, 성문이 철컥 닫혀 버렸다. 그는 성루에 있는 문지기더러 문을 열알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문 옆의 조그만 문이 열렸다. 안영이 말했다.

“이건 개나 드나드는 문이 아닌가. 나는 군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는 개의 나라인가 보군. “

보고를 받은 영왕이 몹시 놀라며 말했다. “그를 우롱해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거꾸로 우롱을 당했군.”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성문을 열게 했다. 이튿날 오전에 안영은 왕궁으로 갔다. 궁전에는 문무 고관들이 쭉 늘어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안영에게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는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이윽고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영왕은 안영을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어지간히 인물이 없는가보군. 그대와 같은 자를 보내다니.” “게 무슨 말씀이오. 제나라 도성은 3만호. 소매를 뻗치면 하늘을 가리고, 땅을 뿌리면 비를 이루오.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소. 그런데 어째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영왕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물(小人物)을을 보낸거요?” 안영은 미소지었다. “제나라에는 사자를 보내는 기준이 있소이다. 대인물은 한군이 있는 나라로, 소인물은 암군(暗君)이 있는 나라로 보내기로 되어 있소. 나는 무능한 소인물이므로 그에 알맞는 나라에 보내진 것이요.” 영왕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안영을 새삼스레 재인식하고 예우를 갖춰 대접했다.

 

빈계지신 [牝鷄之晨]

[牝:암컷 빈/鷄:닭 계/之:어조사 지/晨:새벽 신]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겨 집안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

[속담]암탉이 물면 집안이 망한다

[출전]『書經』

[내용] : 주 무왕이 은(殷)나라의 주왕과 싸움을 앞두고 주왕의 좌상을 주나라 장병들에게 알리는 가운데 나온 말인데 주왕이 달기의 치마폭에서 달기의 말만 듣고 국정을 망친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은나라 왕은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팽개쳐버리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백이와 숙제의 후손들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빈자일등 貧者一燈 

貧:가난할 빈, 者:놈 자, 一 한一 한 일,   燈:등불 등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가난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부처님에게 바친 등불 하나가  부귀한 사람들이 바친 만개의 등불보다 공덕이 크다는 것으로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참다운 마음과 정성이 소중하다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 “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 한 양이야”  하면서 기름 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난타의 등불은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빈자일등 [貧者一燈]

[貧:가난할 빈/者:놈 자/一:한 일/燈:등불 등]

원래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

물직의 다과(多寡)보다는 정신이 더 소중하다는 말.

[내용] 불경(佛經)인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서 비롯된 말이다.

석가(釋迦)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신분에 걸맞는공양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어느 가난한 여인이 “모처럼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공양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다”라고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온종일 구걸하여 얻은 돈 한 푼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한 푼어치 기름으로는 아무런 소용도 되지 않았으나 그 여인의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갸륵하게 생각하여 한 푼의 몇 배나 되는 기름을 주었다.

난타(難陀)라고 하는 이 여인은 그 기름으로 등을 하나 만들어 석가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수 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이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흔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석가는 난타의 그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빈천지교# [貧賤之交]

[貧:가난할 빈/賤:천할 천/之:어조사 지/交:사귈 교]

내가 가난하고 천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준 벗은 내가 부귀하게 된 뒤에도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된다.

[내용]중국 후한(後漢) 때 광무제(光武帝)의 신하 중 송홍(宋弘)이란 사람이 있었다. 청렴 결백하고 유능하여 광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호양(湖陽) 공주가 과부가 되어, 광무제는 공주를 개가시킬 일이 걱정이었다. 공주의 의중을 물으니, 은근히 송홍이 마음에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송홍은 엄연히 처자가 있는 몸, 그래서 황제는 공주더러 병풍 뒤에 숨어서 보게 하고, 송홍을 불러 넌지시 물어보았다. “속담에 듣자 하니 고귀한 사람은 남을 사귀기가 쉽고, 부유한 여자는 누구든 데려가려는 법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송홍은 “貧賤之交를 잊어서는 안되고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제는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음을 깨닫고, 공주를 불러 송홍은 절대 조강지처를 버릴 사람이 아니므로 그를 포기하게 했다.

 

빈환주인(頻喚主人)

[요약] (頻: 자주 빈. 喚: 부를 환. 主: 주인 주. 人: 사람 인)

틈날 때마다 자주 주인공을 소환하라는 말로, 자주 자주 내 마음과 정면으로 맞서라는 뜻.

[출전] <월봉집(月峯集)>[내용]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624] 빈환주인 (頻喚主人)  기사입력 2021.05.27. 오전 3:02

이종수 교수가 번역해 출간한 월봉(月峯) 책헌(策憲·1623~?) 스님의 ‘월봉집(月峯集)’을 읽는데, 주인공(主人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주인공은 원래 불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내 몸의 주인공이 못 되면, 육체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허깨비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람은 마음 간수를 잘해야 한다.

‘응 판사에게 보임(示膺判事)’은 이렇다. “스님께서 불법에 투철하지 못하다면, 정좌하여 자주자주 주인공을 부르시오. 면목이 분명하여 해와 달과 같아져야, 육문(六門)이 늘 드러나 몸 떠나지 않으리니(尊師若未透玄津, 靜坐頻頻喚主人. 面目分明如日月, 六門常現不離身).” 시의 뜻은 이렇다. “스님! 깨달음의 한 소식을 얻고 싶으신 게로구려. 그러면 참선 정좌하며 내 안의 주인공을 불러 대면하시오. 이 뭣인고, 이 뭣인고? 그의 진면목이 해 달처럼 또렷하게 드러날 때까지 참구하시오. 그러면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바탕을 이루는 여섯 문이 활짝 열려 몸뚱이가 주인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일이 없게 될 게요.”

‘성스님의 물음에 답함(答性師問)’에도 주인공이 나온다. “우리 스님 공부 질문 기쁘다 할 만하니, 때에 맞게 자주자주 주인공을 부르시게. 옷 입고 밥 먹으며 경행(經行)하는 곳에서도, 부지런히 회광반조 수행을 다하시게(可喜吾師問做工, 時中頻喚主人公. 着衣喫飯經行處, 密密回光返照窮).” 제자 스님이 공부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그 대답으로 월봉 스님은 틈날 때마다 자주 주인공을 소환할 것을 말했다. 틈틈이 주인공을 불러내라는 말은 내 마음과 정면으로 맞서라는 얘기다. “밥 먹고 옷 입고, 경행(經行), 즉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화두를 들고 걸을 때도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수행을 놓아서는 안 되네. 내가 없이는 깨달음도 없지. 주인공을 놓치면 절대로 안 되네. 내가 내 마음의 참주인이 되어야지.”

회광반조는 빛을 돌려 되돌아 비춘다는 뜻이니, 참나를 엉뚱한 딴 데 가서 찾으려 들지 말고, 내면을 돌이켜 자성(自性)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사람들 천지다. 나의 주인공은 어디에 있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출처] 틈날 때마다 자주 주인공을 소환하라(頻喚主人)|작성자 몽촌

빙공영사 [憑公營私]

[憑:기댈 빙/公:공변될 공/營:경영할 영/私:사사로울 사]

공적인 일을 빌어서 사리사욕을 채움.

[예문]

▷오늘날에 나라로부터 급여를 받는 공직자가 백만도 넘는 수이지만 참다운 공인이 몇 사람이나 될 지 모르겠다. 이름만 공직자요 공무원이지 빙공영사[憑公營私]하는 사람이 있어 정권마다 개혁을 부르짖고 사정(司正)을 단행하였던 것이 아닌가?<박영호–다석강좌>

▷ 그의 계획정치에는 일종의 미학이 있어요. 그것은 방법론이 문제라기 보다 빙공영사 (공적인 일을 빙자해 개인의 이익을 )하지 안은 그의 인간성에서 우러난 것이지요” 작가가 대원군의 개혁정책 성패보다 존재양식에 맴력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국경제 한경초대석 –광화문 작가 서기원>

 

사반공배(事半功倍)

‘일은 반으로 줄고 성과는 배로 늘다’라는 뜻으로, ‘적은 힘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리는 경우’를 비유한다.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서 유래했다. ‘공손추’는 스승인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집권하게 되면 관중(管仲)이나 안자(晏子)처럼 정치를 잘 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맹자는 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나라 속담에 “지혜가 있더라도 형세의 흐름을 타는 것만 못하고(雖有知慧, 不如乘勢) 비록 호미라는 농기구가 있더라도 농사시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雖有자基, 不如待時)”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왕도(王道)를 행할 적기이다. 하, 은, 주나라가 흥성할 때에도 국토가 사방으로 천리가 된 적이 없었는데, 제나라는 이미 그만 한 땅이 있다. 또한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변방지역까지 사람들이 많으니 제나라는 백성도 충분하다. 땅도 더 개척할 필요가 없고 백성도 더 모을 필요가 없으니, 인정(仁政)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현명한 군주가 이렇게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백성들이 폭정에 이렇게 심하게 시달린 적이 없었다.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飢者易爲食, 渴者易爲飮). 공자 말씀에 “덕이 퍼져나가는 것이 역말로 명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때, 만승의 국가가 인정을 행하면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렸다 풀려난 것처럼 기뻐할 것이다(民之悅之, 猶解倒懸也). 그렇기 때문에 일은 옛날 사람들의 반만 하고도(事半古之人) 성과는 틀림없이 배가 될 것이다(功必倍之). 바로 지금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기이다.

맹자는 이처럼 적시(適時)에 일을 도모하면 가래로 막을 큰일도 작은 호미로 막을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다음 주 나라의 일꾼을 뽑는 총선이야말로 ‘사반공배(事半功倍)’할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선택을 잘못해 ‘사배공반(事倍功半)’하는 우(愚)를 범할까 두렵다. 충남대 중문과 교수·공자아카데미부원장

[출처] 일은 반으로 줄고 성과는 배로 늘다(事半功倍)|작성자 몽촌

사불삼거(四不三拒)

공직자가 하지말아야 할 네가지와 거절해야 할 세가지

조선시대에는 분경금지법을 통해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한편, 관료들은 공직자가 하지말아야 할 네가지와 거절해야 할 세가지를 일컫는 사불삼거(四不三拒)를 불문율로 삼았다.

사불은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부임지 특산물을 탐하지 않는 것이고, 삼거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청을 들어준 것에 답례하지 않으며, 경조사에 부조를 하지 않는 것이다.[출처] 뇌물, 역사에 기록되다|작성자 몽촌

사청사우 (乍晴乍雨)

[요약] (乍: 잠깐 사. 晴: 갤 청. 乍. 雨: 비 우)

잠깐 갰다 금세 비가 온다는 뜻으로, 세상 인심을 가늠하기 어렵기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보다 더하다는 말.

[출처] <매월당시집 권 4(梅月堂詩集卷之四) 사청사우 (乍晴乍雨)>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627] 사청사우 (乍晴乍雨)  기사입력 2021.06.17. 오전 3:01

조선 초 문인,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초상. 수양대군의 단종 왕위 찬탈에 반발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둔하다 승려가 되었다. 보물 제1497호. /문화재청

세상일이 참 뜻 같지 않다. 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는 피곤하고, 무심한 체 넘기자니 가슴에 남는 것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에서 노래한다.

“잠깐 갰다 비가 오고 비 오다간 다시 개니,

하늘 도리 이러한데 세상의 인정이랴.

칭찬하다 어느새 도로 나를 비방하고,

이름을 피한다며 외려 명예 구한다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봄과 무슨 상관이며,

구름 가고 오는 것을 산은 아니 다툰다네.

세상 모든 사람들아 모름지기 기억하라,

평생을 얻는대도 즐거움은 없다는 걸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

譽我便應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

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寄語世人須記認, 取歡無處得平生).”

세상 인심을 가늠하기 어렵기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보다 더하다. 나를 칭찬하던 사람들이 돌아서면 더 모질다. 거기에 취해 내로라하던 시간이 참담하다. 혼자 고상한 척을 다 하더니, 알고 보니 탐욕의 덩어리였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세상에 대한 환멸만 는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내가 바라고 기대한 것이 있어서다. 꽃이 늦게 피거나 일찍 시든다고 봄이 안달을 하던가? 구름이 오고 가는 것에 산이 성을 내던가? 이래야만 하고 저래서는 안 되는 잣대를 자꾸 들이대니 삶이 피곤해진다. 날씨 따라 마음이 들쭉날쭉하고, 상황을 두고 기분이 널을 뛰면, 정작 큰일이 닥쳤을 때 감당이 안 된다. 이러면서 기쁘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나 그런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색(李穡·1328~1396)의 ‘진관 스님이 와서 당시(唐詩)의 말뜻을 묻다(眞觀大選來問唐詩語義)’란 시는 이렇다. 

“진관 스님 찾아와서 당시를 묻는데,

비 오다가 개는 사이 산속 시간 옮겨갔네.

초당에 부는 바람 청신함 뼈에 저며,

조금 깊이 들어앉아 서재 장막 내린다네.

(眞觀釋子問唐詩, 乍雨乍晴山日移.  風入草堂淸到骨, 差夫深坐下書帷.)” 

바깥 날씨는 비 오다 갰다를 반복해도 두 사람의 대화는 조분조분 이어진다. 진진한 얘기를 이어가려고, 볕 나면 발을 걷고 바람을 쐬다가, 비 오면 발을 내려 깊이 들어앉는다. 아무 걸림이 없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출처] 잠깐 갰다 금세 비가 온다(乍晴乍雨)|작성자 몽촌

산고수장 [山高水長]

[山:뫼 산/高:높을 고/水:물 수/長:길 장]

산은 높이 솟고 강은 길게 흐른다.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다.

[유]태산북두(泰山北斗)–존경을 받는 사람[출전]『文章軌範』

[예문]

▷진안고원은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하며 군 지역의 대부분이 지형학상의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주위 다른 지역과의 고저가 확연히 드러난다.

북한의 개마고원에 비추어 볼 때 실로 산과 물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을 이루는 산고수장(山高水長)한 고장이다. 주위의 장수군, 무주군과 더불어 소백산맥 서사면의 청정 고랭지역으로 흔흐 ‘무진장’이라고 일컬어진다.

▷ 동소서금(東小西錦)이라! 동으로 소백산맥을 두르고 서쪽으로는 금강이 유유히 굽이치는 곳, 남덕유와 장안, 팔공산, 논개님… 장수는 정녕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충절고을이다.

 

산자수명 [山紫水明]

[山:뫼 산/紫:자주빛 자/水:물 수/明:맑을 명]

산색이 아름답고 물이 맑음, 햇빛을 받아서 산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물은 맑아서 또렷하게 보임.

곧 산수의 경치가 눈 부시도록 아름다움.

[유] 산명수려(山明水麗), [출전]『賴山陽』

[예문}

▷ 계곡의 언덕위에는 병자호란때 순절한 대양 김몽화장군의 갑옷과 투구를 묻엇다는 장군대와 옛 선현들이 고기를 낚으면서 이곳의 산자수명함을 노래했다는 조어대와 가사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 조국은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여전시 산자수명의 금수강산이었느니···<유진오, 구름 위으니 만상>

▷ 산자수명한 금수강산

▷ 산자수명한 자연경관

▷우리 고장처럼 산주수명하고 볼 만한 고적이 많은 명승지는 없다고···,<박완서, 미망>십여년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먹물 옷을 입은 우리 스님들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을 누리는 ‘산수부르조아’는 아닌가”라고, 머물던 사찰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일어난 망상이었는데, 가고정진하는 도반들에겐 미안한 일이 되었었다. <중앙일보–문화는 살아잇다>

 

산전수전 [山戰水戰]

[山:메산/戰:싸울 전/水:물수/戰:싸울 전]

산에서의 전투와 물에서의 전투를 다 겪음. 험한 세상의 일에 경험이 많음.

[동]百戰老將(백전노장)/ 萬古風霜(만고풍상)–갖은 고생

[출전『손자(孫子)』의 <모공편(謀攻篇)>과 유기(劉基: 1311~57)가 저술한 『백전기략(百戰奇略)』:역대의 병법서를 참고하여 100가지 전쟁을 수록한 책에 나오는 말이다.

[내용]산전은 산에서 싸우는 것이고, 수전은 물에서 싸우는 것으로, 육지에서 싸우는 것보다 강력한 체력과 고도의 전술이 필요하며 피해와 희생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휠씬 어렵다. 따라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지 않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평번한 병사를 이끌고 산전수전을 치르면 실패하기 쉽다.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것은 군사적인 면으로는 백전노장 또는 역전의 용사를 말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모진 풍파를 다 겪어 정신적 및 육체적으로 강인한 사람을 뜻하며, 어지간한 시련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삼고지례 三顧之澧 

三 : 석 삼    顧 : 돌아볼 고    之 : 어조사 지    澧 : 예도 례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와 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찾아가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초야에 묻혀 있는 재사)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삼고지례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崔州平)과 서서(徐庶)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出師表)》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초려(三顧焦廬) 또는 초려삼고(焦廬三顧)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三顧知遇)가 있다.

 

삼라만상 [森羅萬象]

[森:빽빽할 삼/羅:벌일 라/萬:일만 만/象:본 뜰 상]

빽빽하게 벌여있는 온갖 존재, 우주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뜻함

[출전] 법구경(法句經) [동] 만휘군상 [萬彙群象]

[내용] ‘삼라와 만상은 하나의 법으로 새겨진 것이다’ 삼라(森羅)는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듯이 우주에 펼쳐진 온갖 사물이고, 만상(萬象)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이나 형체이다. 따라서 삼라만상이라고 함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형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삼령오신 [三令五申]

[三:석 삼/令:명령할 령/五:다섯 오/申:펼 신]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 말함,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새서 명령하고 계고(戒告)함

[출전] 『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내용]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제24대 왕 합려(闔廬:BC 515~496 BC)는 손무(孫武)의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읽고 나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래서 합려는 손무에게 한 번 시범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손자는 궁녀 180명을 모아 놓고 두 편으로 나누었으며, 궁녀들 가운데 합려가 가장 총애하는 두 명을 각각 대장에 임명하였다.

손무는 자신이 세 번 시범을 보인 다음 다시 다섯 번 설명하였다. 설명이 끝나자 명령하면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하였으나 궁녀들은 웃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명령이 철저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전적으로 지휘관인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궁녀들로부터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다짐을 받았지만 두 번째 명령에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손무는 대장 두 명을 참수하려고 하였다.

왕이 극구 만류하였지만 손무는 “실전에서는 왕의 명령이라도 거역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참수하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궁녀들은 손자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훈련에 임하였다.<두산백과>

 

삼마태수 [三馬太守]

[三:석 삼/馬:말 마/太:클 태/守:지킬 수]

청백리를 가리킴

[내용]한고을의 수령이 부임지로 나갈때나 또는 임기가 끝날때 감사의 표시로 보통 그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여덟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선 중종때 송흠(宋欽)이라는 분은 새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의 말만 받았으니, 한 필은 본인이 탈 말,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이 각각 한필 그래서 총3필을 받아 그 당시 사람들이 송흠을 삼마태수라 불렸으니 청백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고려 충렬왕 때는 임기가 끝나는 부사에게 7필의 말을 바치는 법이 있었는데 최석이라는 승평(지금의 순천) 부사는 그 7마리의 말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받치려던 말이 망아지를 낳아 8마리의 말을 승평고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부민들이 최석의 뜻을 기려 비를 세웠는데 바로 팔마비(八馬碑)다. 지금도 순천을 팔마의 고장이라고 하여 청백리의 고장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때 맹사성은 공무를 수행할때도 말을 타고 다니지 않고 소를 타고 다니는 청백리로 유명하다.

 

삼매경 [三昧境]

[三:석 삼/昧:잠잘 매/境:지경 경]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삼마제·삼마지·삼매경

[출전]『대승의장(大乘義章)』 지론 (智論)

[내용] 삼매경이란 불교에서 오랜 수행을 통해 얻은 경지,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로서 범어인 Samadhi를 음차한 것인데, 한자로는 정(定) 또는 정(正)이라는 뜻에 어울리는 말이다.

수(隨)나라 혜원(慧遠)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용어를 풀이해 놓은 대승의장 (大乘義章)에는 “삼매는 고요함을 체득하여 사악하고 어지러운 데서 멀어진다”고 풀이했다. 즉 한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시켜 흔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지혜에 관한 글인 지론에는삼매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선정과 섭심을 삼매라고 한다. 진(秦)은 말하기를 ‘바른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은 시작이 없는 것에서 나와 항상 굽어 있고 바르지 않은데, 삼매를 얻은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된다. 비유하자면 뱀은 항상 구불구불 다니는데 대통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곧아지는 것과 같으니,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한 경지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삼복백규 [三復白圭]

[三:석 삼/復:되풀이할 복/白:흴 백/圭:옥 규,홀 규]

백규를 세 번 반복함, 말이 신중함, * 홀(笏: 제후를 봉할 때 사용하던 옥으로 만든 신인(信印))

[출전] 『논어(論語)』 선진(先秦) 편

[내용]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하여 외우니 공자께서 그 형님의 딸을 그에게 아내로 삼게했다.

남용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이며, 그가 외운 시는 시경(詩經) ‘대야(大雅) 억(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흰 구슬의 흠집은 그래도 갈면 되지만

말의 흠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네

이 시는 본래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여왕(廬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남용은 이

구절을 하루에 세번씩 반복하여 외웠으므로 말에 신중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조카딸을 그의 아내로 준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화근이 세 치 혀끝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삼불행 [三不幸]

[三:석 삼/不:아니 불/幸:요행 행]

맹자가 말한 불행의 세 가지,

축재에 전념하고,

자기 처자만 사랑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참고]

삼불혹三不惑(미혹할 혹) 빠지지 말아야 할 세가지. 술·여자·재물

삼불효三不孝(효도 효) 세가지 불효, 부모를 불의(不義)에 빠지게 하고, 가난 속에 버려두며, 자식이 없어 제사가 끊어지게 하는 일

삼불후三不朽(썩을 후) 세가지 썩어 없어지지 않는 것. 세운 德, 이룬 功, 교훈이 될 훌륭한 말.

 

삼생유행 [三生有幸]

[三:석 삼/生:날 생/有:있을 유/幸:행복할 행]

세 번 태어나는 행운이 있다는 뜻으로, 서로 간에 남다른 인연이 있음을 비유한 말

[내용]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중국에 불교에 대해 학식이 뛰어나고 수행을 많이 한 승려 원택(圓澤)과 그의 친구 이원선(李源善)이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여행 길을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원택이 만삭이 다된 어느 부인을 보고 “저 부인은 임신한지 3년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내가 환생하여 자기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 지금까지 이를 피해 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네.

3일 이후에 그녀는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가 바로 나네. 그리고 13년 후 중추절 밤에 항저우(杭州)에 있는 천축사(天竺寺)에서 다시 만나세.”라고 말하였다. 이원선은 친구의 말을 듣고 그냥 웃기만 하였다. 정확히 3일 후 이원선은 친구 원택이 입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전에 원택이 한 말을 상기하여 그 부인의 집에 가 보니 막 태어난 아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것이었다.

이후 13년이 지나서 이원선은 천축사에 갔다. 막 절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소를 탄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삼생의 인연으로 맺어진 영혼인데 정든 사람이 멀리서 찾아왔네.”라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삼생유행은 아주 특별하고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비유하는 말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이 말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불교에서 삼생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인 전생(前生),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인 금생(今生), 죽은 이후의 세상인 후생(後生)을 말한다.<두산백과>

 

삼성오신[三省五身]

[三:석 삼/省:살필 성/吾:다섯 오/身;몸 신]

날마다 세 번씩 자신을 반성함.

[출전] 『논어』[동] 日日三省

[내용]『曾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날마다 세 번 내 몸을 살피니, 사람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추성스럽게 아니 하였는가? 벗과 더불어 사귀되 믿음을 잃지는 않았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아니 하였는가?”이니라

[해설] 첫째, 남을 도와 주면서 정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도와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건성에 불과할 뿐이니 진정한 도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둘째, 친구와 交際(교제)를 하면서 혹 信義(신의)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信義를 해치는 것이되며 나아가 자신의 害惡(해악)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요즘 깊이 새길 만하다 하겠다. 여기서 ‘친구’는 굳이 ‘벗’의 개념을 넘어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셋째, 스승에게 배운 바를 잘 익혔던가 하는 점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게을리 하면 결국 그 道(도)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또한 잘못된 지식을 다시 제자에게 전하는 이중의 罪惡(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眞實(진실), 信義(신의), 勞力(노력)을 강조한 것이다<문화가 흐르는 한자>

 

삼순구식 [三旬九食]

[三:석삼/旬:열흘 순/九:아홉 구/食:먹을 식]

한달에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 집이 몹시 가난한 것.

[동]上漏下濕(상루하습) :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 / 이순구식(二旬九食)

[출전]도연명(陶淵明) ‘의고시(擬古詩)’

[내용]

동방에 한 선비가 있으니 옷차림이 항상 남루하였고

한달에 아홉끼가 고작이요

십년이 지나도록 관직하나로 지내더라

고생이 이에 비할 데 없건만 언제나 좋은 얼굴로 있더라

내 그 분을 보고자 하여 이른 아침에 하관(河關)을 넘어 갔더니

푸른 소나무는 길옆에 울창하고 흰 구름은 처마 끝에 잠들더라

내 일부러 온 뜻을 알고 거문고 줄을 골라 연주하니

높은 음은 별학조 졸란 듯한 가락이고,

낮은 소리는 고란이 아닌가

이제부터 그대 곁에서 늙을 때까지 살고 싶네

*別鶴操: 남편과 이별한 아내의 슬픈 노래 *孤鸞:배우자가 없음을 슬퍼하는 노래

 

상가지구 [喪家之狗]

[喪:죽을 상/家:집 가/之:어조사 지/狗:개 구]

상가집의 주인 잃은 개여위고 지칠대로 지친 수척한 사람을 비유한 말. 또는 궁상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

[출전]『史記』, 孔子世家

[내용] : 孔子가 魯나라의 재상(대사구大司寇:지금의 법무부 장관)으로 국정개혁(國定改革)에 실패한 후 왕종 삼화(三桓)에게 배척당해 편력(遍歷)의 여행을 하였으나 아무도 공자를 받아주지 않았다.

공자가 56세때 鄭나라에 갔을 때『정나라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자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동문에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마는 요임금과 같고 그의 목은 고요와 같고 그의 어깨는 자산과 같다. 그러나 아래로 우왕에 미치지 못하기를 세 치요, 지치 모습은 상가의 개와 같았다. “자공이 공자에게 이실직고하니 공자가 기뻐 웃으면서 말하기를” 모습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상가의 개와 같다는 말은 그렇도다.”라고 대답하였다.』

 

상궁지조 [傷弓之鳥]

[傷:다칠 상/弓:활 궁/之:어조사 지/鳥:새 조]

활에 상처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한 번 궂은 일을 당하고 나면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①한번 놀란 사람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어 위축(萎縮)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②어떤 일에 봉변(逢變)을 당(當)한 뒤에는 뒷일을 경계(警戒)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동]경궁지조 [驚弓之鳥]

[속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상사병 [相思病]

[相:서로 상/思:생각 사/病:병 병]

서로 생각하는 병, 남녀 사이에 사랑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해 생긴병≒연병(戀病)·연애병·화풍병·회심병.

[출전]수신기(搜神記)』

[내용] 춘추시대 강왕(康王)은 성격이 포악하여 간(諫)하는 신하는 모조리 죽였다. 강왕의 시종중에 한빙(韓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절세미인이었다.

강왕은 강제로 한빙의 부인을 데려와 후궁으로 삼고 한빙에게는 없는 죄를 만들어 성단(城旦)의 형(변방에서 낮에는 도적지키고 밤에는 성을 쌓는 인부 일을 하는 형벌)에 처했다.

이때 한빙의 아내는 남편을 못잊어 ‘비는 그칠줄 모르고 강은 크고 물은 깊으니 해가 나오면 마음이 좋을 것이다’라고 짧은 편지를 보냈는데 아쉽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강왕의 손에 들어갔다. 이편지를 본 강왕의 신하 소하는 ‘당신을 그리는 마음을 어찌 할 길 없으나 방해물이 많아 만날 수 없으니 죽고 말 것을 하늘에 맹세한다’라고 그럴 듯 하게 해석하여 강왕에게 보고했다.

얼마 뒤 한빙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하씨가 성위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 ‘임금은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나는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바라건대 한빙과 합장해 주십시요’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강왕은 괘씸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두사람의 무덤을 멀리하여 장사지냈다.

그날밤 두 그루의 나무라 각각의 무덤 끝에 나더니 열흘도 안되어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서로 맞닿았다. 그리고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원앙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우니, 듣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며 이 새는 한빙 부부의 넋일 것이라고 했다.

송나라 사람들은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했는데, 상사병(相思病)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아탑 [象牙塔]

[象:코끼리 상/牙:어금니 아/塔:탑 탑]

대학(大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 비니의 태도를 비평하며 쓴 데서 유래한다.

[예문]

▷ 베이컨은 인생을 넓게 살았다. 학문의 상아탑 속에 홀로 들어박혀서 책밖에 모르는 대학교수나 학나는 결코 아니었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 그 사람들은 문서가 가짜 증언이라고 믿고 있는데요. “티빙이 킬킬 웃었다. “로버트, 하버드의 상아탑이 자네를 연약하게 만들었구먼.

▷ 행동을 상반된 것으로 보면, 그 둘이 투쟁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상아탑에 ㅁㄷ힌 현실성 없는 엘리트주의자’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기꾼’이니 하면서 어느 한쪽을..<책-미운오리새께의 출근>

[참고]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동족들이 죽은 장소로 모이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끼리의 무덤은 상아만이 남아 탑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육중한 몸은 다 썩어 없어져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상아가 코끼리의 진수이다? 뭐 이런 의미에서 상아탑이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을 일컫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중지희 [桑中之喜]

[桑:뽕나무 상/中:가운데 중/之:어조사 지/喜:기쁠 희]

남녀간의 밀회, 음사(淫事), 간통(姦通)

[출전] 『詩經(시경)』〈용풍편(風篇)〉

[내용]

爰采唐矣 沬之鄕矣 원채당의 매지향의

云誰之思 美孟姜矣 운수지사 미맹강의

期我乎桑中 要我乎上宮 送我乎淇之上矣 기아호상중 요아호상궁 송아호기지상의

새삼을 캐는 곳이 매읍의 마을이라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아름다운 맹강이구나

나와 뽕밭에서 기약하고 상궁에서 맞이하며 기수에서 전송했다네

爰采麥矣 沬之北矣 원채맥의 매지북의

云誰之思 美孟弋矣 운수지사 미맹익의

期我乎桑中 要我乎上宮 送我乎淇之上矣 기아호상중 요아호상궁 송아호기지상의

보리를 베는 곳이 메음의 북쪽이라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아름다운 맹익이구나

나와 뽕밭에서 기약하고 상궁에서 맞이하며 기수에서 전송했다네

爰采葑矣 沬之東矣 원채봉의 매지동의

云誰之思 美孟庸矣 운수지사 미맹용의

期我乎桑中 要我乎上宮 送我乎淇之上矣 기아호상중 요아호상궁 송아호기지상의

순무를 캐는 곳이 매읍의 동쪽이라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아름다운 맹용이구나

나와 뽕밭에서 기약하고 상궁에서 맞이하며 기수에서 전송했다네

[해설] 1절, 2절, 3절에 채당, 채맥, 채봉이 나오는데, 이는 야채를 채취한다는 의미에서 처녀성을 딴다는 뜻이 간접적으로 들어 있다. 상중지희는 부모나 주의 사람들의 축복을 받지 못한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말하며 때로는 불륜 관계도 뜻한다. 줄여서 상중이라고 하며, 동의어로는 상중지기(桑中之期), 상중지약(桑中之約), 상중지환(桑中之歡)이 있다. 한국 현대 소설에도 뽕나무 밭에서의 정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향의 소설<뽕>이 그것이다.

 
 

서시빈목  西施嚬目              

西:서녘 서.    施:베풀 시.     嚬:눈살 찌푸릴 빈.  目:눈 목.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

②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  ③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원말]효빈(效嚬)[效:본받을 효. 嚬:눈살 찌푸릴 빈]:

찡그린 것을 본뜬다.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서시(西施)는 원래 월나라의 가난한 나무꾼의 딸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빼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서시의 미모는 널리 소문에 퍼져 오나라 왕 부차에게 미녀를 바쳐 미인계를 쓰고자 했던

범려가 그녀를 한 번 보고 즉시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서시의 얼굴이 얼마나 예뻤던지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고자 하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기 때문에 

서시를 태운 수레는 길이 막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사흘만에 궁전에 도착했는데 그녀를 본 궁전의 경비병이 그 아름다움에 빠져 기절해 버렸다. 

그후 서시의 얼굴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범여는 그녀를 구경하는 데 일 전씩 돈을 내도록 했는데 돈이 산처럼 쌓였다.

 그 돈은 무기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범여는 서시를 극진하게 대우해주었으며 3년 간에 걸쳐 문장을 가르치고 예절을 배우도록 하는 특수 훈련을 시켰다.

드디어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내졌는데 부차는 첫눈에 서시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후 부차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게 했고, 특히 그녀가 뱃놀이를 좋아 했기 때문에 대운하 공사를 벌였으며 

이는 오나라 국력을 낭비시키고 높은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의 넋을 빼앗아 부차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환락의 세월을 보내고 되었고

 이 틈에 월나라는 무섭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시는 어릴 적부터 가슴앓이병이라는 지병이 있었는데 가슴이 아플 때마다 얼굴을 몹시 찡그렸다.

 그러나 그 찡그리는 모습은 오히려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났다. 

부차도 그 찡그린 모습에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였다.

이 소문이 궁중 밖으로까지 퍼지자 어느 시골의 아주 못생긴 추녀(醜女)가

자기도 찡그리면 예쁨을 받을까 하여 항상 얼굴을 몹시 찡그리고 다녔다. 

그러자 인근 동네 사람들이 그 추녀의 찡그린 모습에 모두 이사를 갔다 하니 이를 효빈(效嚬:찡그린 것을 본뜬다)이라 했다.

 또한 빈축(嚬蹙)을 산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서제막급 [噬臍莫及]

[噬:씹을 서/臍:배꼽 제/莫:말 막/及:미칠 급]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 곧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음의 비유.

[동] 후회막급(後悔莫及)

[출전]『春秋左氏專』〈莊公六年條〉

[내용]기원전 7세기 말엽, 주왕조(周王朝) 장왕(莊王) 때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었던 신(申)나라를 치기 위해 역시 하남성에 있었던 등(鄧)나라를 지나가자 등나라의 임금인 기후(祁侯)는 ‘내 조카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하여 진수성찬으로 환대했다.

그러자 세 현인(賢人)이 기후 앞으로 나와 이렇게 진언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머지 않아 저 문왕은 반드시 등나라를 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 [噬臍莫及].'”

그러나 기후는 펄쩍 뛰며 듣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문왕은 군사를 이끌고 등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리하여 등나라는 일찍이 세 현인이 예언한 대로 문왕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석과불식(碩果不食)

 클 석      실과 과      아닐 불      밥 식

큰 과일은 다 먹지 않고 남김자기 욕심을 버리고 자손이 복을 받도록 염려해 줌소인(小人)은 많고 군자(君子)는 겨우 몇 명만 남음을 비유하며, 여러 음(陰)이 아무리 올라와도 상구(上九)의 한 양효(陽爻)는 남아 있음을 뜻하기도 함.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석과불식 군자 득여 소인 박려 ; 커다란 과일이 먹히지 않으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헐리리라.)

[네이버 지식백과] 석과불식 [碩果不食] (한시어사전, 2007. 7. 9., 전관수)

[경남신문]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82) 석과불식(碩果不食) –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

우주 조화의 변화의 원리를 밝힌 주역(周易)의 64괘(卦)는 각각 그 운세를 나타내는데, 그 23번째 괘인 박(剝)괘는 극도로 혼란한 괘다. 괘의 여섯 효(爻) 가운데서 아래 다섯 효는 음(陰)이고, 맨 위의 하나만 양(陽)인 괘로 천지에 음기가 가득하여 양기를 해쳐 없애려는 괘다. 곧 소인들이 득세하여 설쳐대며 착한 사람을 몰아내려는 괘다. ‘박(剝)’자의 뜻은 ‘벗긴다’, ‘빼앗아간다’의 뜻이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착한 사람이 잘 처신해 살아남아 그 다음 24번째 복(復)괘로 이어진다. 복괘는 ‘회복한다’, ‘돌아온다’는 뜻이다. 소인들이 극도로 나쁜 방법을 쓰면 세상이 멸망하지만, 그래도 지도자를 인정하고, 추대하면 세상은 망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뜻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기 욕구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자기는 성공하고 경쟁상대는 없어질 줄 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면 다른 사람이 죽지만, 자기도 같이 죽는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로 돌입하여 나만 살고 다른 사람은 죽이겠다는 사고방식이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손잡고 같이 가겠다는 사람을 바보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잘못된 학교 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각급학교에서 필수적으로 도덕이나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것은 군사문화의 잔재라 하여 싹 다 없애버렸다. 정통성이 약한 군사정권에서 국민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도덕 윤리과목을 지나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성교육은 완전히 폐기되어 버렸고, 출세를 위한 경쟁교육만이 가장 가치 있는 교육이 되어 버렸다. 지금 집권여당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서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대통령도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모든 인사를 자기 방어용으로 하고 있다.

‘큰 과일을 다 먹지 않듯이’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은 관대한 여유를 가지고 국가민족의 먼 장래를 바라보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등학교 친구의 말에 의하면 문 대통령은 소풍갈 때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처음부터 업고서 갔다고 할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던 사람이다. 이런 마음을 계속 유지하면서 더 발달시켰으면 좋겠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옛날보다 훨씬 못해진 것 같다.

어떤 학자는 주역의 이 구절을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라고 해석해 왔다. 큰 인물은 소인들이 떼 지어 해쳐도 슬기롭게 극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역할을 다한다는 뜻이다. 먹히지 않은 큰 과일이어야 씨를 남겨 후세에 영원히 전할 수 있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는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국가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또 주변의 소인배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군자답게 혼란한 국면을 국력 회복의 국면으로 전환해 나가기를 바란다.  동방한학연구소장 

[출처] 큰 과일은 다 먹지 않고 남김(碩果不食)|작성자 몽촌

석권 [席卷]

[席:자리 석/ 卷:말 권]

자리를 마는 것과 같이 토지 등을 공략하여 모두 차지함 

[출전] 『史記』

[내용] 유방의 한(漢)나라와 항우의 초(楚)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다투고 있을 때였다. 위(魏)나라를 평정한 위표는 항우로부터 위왕에 봉해졌다.

그러나 유방이 한중(漢中)으로부터 동쪽으로 진군, 황하를 건너오자 이번에는 유방편에 붙어 팽성에서 항우의 군사를 토벅하는데 앞장섰다.

나중에 유방이 수세에 몰리다가 패하자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편에 붙었다. 기회를 보아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위표의 간사스러운 태도에 분개한 유방은 그를 잡아오게 했다. 결국 장군 한신에게 잡힌 위표는 유방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당하고 만다.

또 당시에 팽월이란 자가 있었는데 유방편에 붙어서 게릴라전으로 항우의 초나라 군대를 괴롭히곤 했다. 그의 공적을 인정한 유방이 그를 양왕(梁王)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항우군을 해하(垓下)에서 격파하는데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5년 뒤 유방이 반란군토벌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데 듣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유방은 팽월에게 반란의 흔적이 있다고 덮어씌워 잡아 죽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위표와 팽월은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천리의 땅을 석권(席卷)했는데··· 그 명성이 날로 높아졌지만 반란의 뜻을 품다가 결국 잡혀 죽음을 당했다. “두 사람은 지략에 뛰어나 한 몸이 무사하면 나중에 다시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여겨 포로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결국 천리의 땅을 석권한 위표와 팽월은 천하를 석권한 유방의 비위를 건드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건전곤 旋乾轉坤

돌   선  旋    하늘건  乾    구름 전 轉    땅   곤 坤

하늘과 땅을 뒤집는다는 뜻

나라의 잘못된 오랜 관습을 뿌리째 고쳐 개선함,  대란을 평정함  

선농단 [先農壇]

[先:먼저 선/農:농사 농/壇:제단 단]

조선시대와 중국에서 농사와 인연이 깊은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풍년들기를 기원하던 제단.

[해설]조선 태조 때부터 동대문 밖 전농동(典農洞:현 동대문구 祭基洞) 선농단에 적전(籍田)을 마련하고 경칩(驚蟄) 뒤의 첫번째 해일(亥日)에 제(祭)를 지낸 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하었다.

기원은 신라 때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은 이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를 올렸다.

선농단 앞에는 밭을 마련하여 제사가 끝나면 왕이 직접 경작을 하면서 권농에 힘썼다. 행사 때 모여든 많은 사람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를 고은 국물에 밥을 말아낸 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이라고 한다.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음(音)이 변한 것이다.

제단은 사방 4m의 석춘단(石築壇)이었는데, <한경식략(漢京識略)>에는 1476년(성종7)에 선농단을 축조하여 왕이 친히 제를 지내고 적전을 갈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선농단 친경(親耕)은 1909년까지 행해지다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폐지되었다.

[참고]설렁탕 : 설렁탕의 원말은 ‘선농탕‘이다. 이것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에 진열했던 음식에서 비롯된다. 고려 이후 조선조까지 매년 경칩을 지나 첫 해일(亥日)이 되면 동대문밖 보제원 동쪽 마을에 선농단을 쌓아 두고 농사짓는 법을 후대에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의 신위를 모셔 놓고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선농악(先農樂)을 연주하며 제를 지냈는데 이때 주된 음식이 선농탕이었다.

 

선비정신

몸에 재능을 지니고 나라에 쓰이기를 기다리는 자는 선비다. 선비란 뜻을 고상하게 가지며, 배움을 돈독하게 하며, 예절을 밝히며, 의리를 지니며, 청렴을 긍지로 여기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이나, 세상에 흔치 않다. (생략)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의 문집에 있는 글이다. “선비로서 선비의 행실을 가진 자를 ‘유(儒)’라 하는데 공자께서 말한 ‘유행(儒行)’이 그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조선 중기(명종 21년∼인조 6년) 문신으로 도승지·이조판서·대제학·삼정승의 요직을 거쳤으며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을 몸소 겪으며 나라가 어려울 때, 요구되는 선비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시대는 달라도 사람 속성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세상에서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어떠한가? 숭상하는 것은 권세이며, 힘쓰는 것은 이익과 명예이며, 밝은 바는 그때의 유행이고, 가진 바는 이야기이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바는 겉치레이며, 잘하는 바는 경쟁이니, 이런 6가지를 갖고 날마다 중인(重人)의 문 앞에서 저울질하며 그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엿보고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다가 눈여겨봐 주면 흐뭇해 우쭐대고, 따뜻한 입김을 입으면 소곤소곤 서로 축하한다. 이 같은 사람을 ‘선비’라고 한다면 이 땅 위에 가로의 눈과 세로의 귀가 달린 사람은 모두 선비일 것이고, 이 같은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라 안에 선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선생은 개탄한다.
다산 정약용은 선비에 대해 “도(道)를 배운 사람을 선비(士)라 했는데, 사란 벼슬을 가진 것으로 그것으로써 인군을 섬기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천하 국가를 위하는 자를 선비라 한다”고 했다. 지금의 관료들은 그 직함을 갖고서 누구를 위해 애쓰는가? 나라인가, 자신인가? 
수필가 [문화]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문화일보 : 2021년 03월 08일(月)

선시어외  先始於隗

先:먼저 선.    始:비로소 시.    於:어조사 어.    隗 험할 외

‘먼저 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일부터 먼저 시작하라.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전국 시대, 연(燕) 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 나라에 빼앗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郭 )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몇 일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만큼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옵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부터 [先始於 ]’ 스승의 예를 받도록 하오 소서.

 그러면 외 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중에는 조(趙) 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근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주] 買死馬骨(매사마골) : 쓸데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쓸데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면 현인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선종외시 [先從隗始]

[先:먼저 선/從:따를 종/隗:높을 외/始:시작할 시]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속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落落長松(낙락장송)도 근본은 種子

[내용] : 전국시대 燕나라는 齊나라에게 영토의 태반(太半)을 정복당했다. 어느 날 소왕(昭王)은 재상 곽외(郭隗)와

그 방법을 의논하니, “옛날 어느 임금이 천금(千金)을 걸고 천리말을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해 사람을 시켜 구하도록 하여 천리마를 찾았으나 도착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곽외가 죽은 말의 뼈를 500금에 사 임금에게 바치니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으나 그는 죽음 말의 뼈를 오백 금이나 주고 샀으니 천리마를 가진 자들이 훨씬 높은 가격으로 받기 위해 몰려들 것이라고 진언하였습니다. 소왕(昭王)은 반신반의 하였으나 채 1년도 되지 안항 천리말을 끌고 이른 자가 세사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현재(賢才)를 구하시려 한다면 이 외(隗)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저와 같은 사람도 후대받고 있는데 하물며 그보다 어진 사람들이야 이를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선즉제인 [先則制人]

[先:먼저 선/則:곧 즉/制:누를 제/人:사람 인]

먼저하면 남을 제압한다. 무슨 일이든 남보다 빨리하면 유리하다.

[출전]先則制人 後則制於人(論語),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을 당한다/ 先則制人 後則人制<史記 항우본기>

[동]先發制 人(선발제인) : 먼저 시작하면 남을 제압한다. /先聲奪人(선성탈인) : 먼저 큰 소리를 쳐 남의 기세를 꺽다.

[속담]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다.

설부화용 [雪膚花容]

[雪:눈 설/膚:살갗 부/花:꽃 화/容:얼굴 용]

흰 살결에 고운 얼굴. 미인의 얼굴.

[동]]花容月態(화용월태),丹脣皓, 齒(단수호치),明眸皓齒(명모호치),傾國之色(경국지색),傾城之美(경성지미),

(半夜佳人)반여지인,(澹粧佳人)담장가인, (榛首蛾眉)진수아미,(斷腸佳人)단장가인,(斷腸佳人)천황국색,

羞花閉月(수화패월), (沈魚落雁)칭어낙인

[동]花容月態,(화용월태),丹脣皓齒(단순호치),明眸皓齒(명모호치),傾國之色(경국지색),傾城之美(경성지미), 반야가인(半夜佳人), 담장가인(澹粧佳人),진수아미(榛首蛾眉), 단장가인((斷腸佳人)) , 천황국색(斷腸佳人)), 羞花閉月수화폐월,(沈魚落雁)칭어낙인

[예문]논개가 옷을 안 입은 채 설부화용의 고운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면야….≪박종화, 임진왜란≫

설부화용 [雪膚花容]

[雪:눈 설/膚:살갗 부/花:꽃 화/容:얼굴 용]

흰 살결에 고운 얼굴. 미인의 얼굴

 
 

성경익륜 (誠敬翼輪) 

 성(誠)과 경(敬)을 날개와 바퀴로 삼아

1748년 7월 14일, 황경원(黃景源)과 임순(任珣), 이의경(李毅敬) 세 신하가 사도세자를 모시고 시강(侍講)을 막 마쳤을 때였다. 세자가 갑자기 물었다. “계방(桂坊)은 집이 어디요?” 이의경이 엎드려 대답했다. “강진(康津)입니다.” 세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글 뜻을 그대가 잘 풀이해 일깨워주니 마음으로 깊이 훌륭하게 여기오. 감사의 표시요.” 한 폭의 종이를 꺼내 내시에게 전달하게 했다.

세자가 친필로 쓴 자신의 시였다. 시의 내용이 이랬다. “가장 즐거운 중에 책 읽기가 즐겁고, 천금이 귀하잖코 덕행이 귀하다네(最樂之中讀書樂, 千金不貴德行貴). 꿈에 좋은 신하 얻어 천하를 다스리니, 성(誠)과 경(敬)이 날개나 바퀴와 다름없네(夢得良弼治天下, 曰誠曰敬如翼輪). 등불 빛 휘황하게 자리 앞에 늘어섰고, 날마다 밤낮으로 어진 선비 접견하네(光燭煒煌坐前列, 日日晝夜接賢士). 동령에 해가 떠서 사해를 비추이니, 아침 기운 맑고 밝아 독서를 할만하다(日出東嶺照四海, 朝氣淸明可讀書).”

나머지 시는 이랬다. “기강이 바로 서야 상벌이 분명하고, 상벌이 분명해야 나라를 다스리리. 국가가 다스려져 백성이 편안하고, 크게 공정한지라 조금의 사(私)가 없다. 조금의 사(私)가 없어 천도를 깨달으니, 천도를 깨달아야 임금 덕에 합당하리(紀綱樹兮明賞罰, 賞罰明兮乃治國. 國家治兮百姓安, 大公正兮少无私. 少无私兮體天道, 體天道兮合君德).” 꼬리 따기 식으로 맞물려 세자의 포부를 적은 내용이었다.

바로 전날 필선(弼善) 황경원이 세자에게 친필 글씨를 청했을 때 세자는 대꾸도 않다가 그가 자꾸 조르자 마지못해 중관(中官)을 시켜 다른 시를 베껴 써주게 했었다. 그러고는 그 이튿날 보란 듯이 이의경에게 이 친필 시를 써주었다.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이의경이 친필로 남긴 ‘동궁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보묵(寶墨)의 뒤에 쓰다(題東宮特賜寶墨後)’란 글에 전한다. 성(誠)과 경(敬)을 날개와 바퀴로 삼아, 좋은 신하를 얻어 기강을 세우고 상벌을 분명히 하며, 공정 무사의 정신으로 천하를 다스리고 싶었던 사도세자의 묻힌 꿈을 떠올려 보게 하는 시다.  [정민의 世說新語] [614] 성경익륜 (誠敬翼輪) 기사입력 2021.03.1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출처] 성(誠)과 경(敬)을 날개와 바퀴로 삼아(誠敬翼輪)|작성자 몽촌

성동격서 [聲東擊西]

[聲:소리 성/東:동녘 동/擊:칠 격/西:서쪽 서]

병법의 하나로 동쪽을 친다고 소리 질러 놓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내용] 제·한·위가 연합하여 연나라를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연나라를 돕기 위해 북진한 초나라 군사가 위나라의 중요한 성을 함락시키자 세 나라는 모두 놀라서 도망을 갔다. 그런데 목적을 이룬 초나라 군사가 본국으로 돌아오려 하자 성의 서쪽에 한나라 군사가 진을 치고 있고 동쪽에는 제나라 군사가 진을 치고 있어서 군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초나라 군사를 지휘하는 경양(景陽)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우선 서쪽 성문을 열고 낮에는 전차와 군마, 밤에는 횃불을 움직여 초나라의 군사(軍使)가 한나라 군사와 자주 연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제나라 군사는 한나라가 초나라 군사와 은밀히 연합하여 자기를 공격해 오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군사를 이끌고 철수해 버렸다. 놀란 것은 남아 있는 한나라 군사였다. 그들은 우수한 초나라 군사가 반격해 오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야음을 틈타 황급히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래서 초나라 군사는 유유히 귀국할 수 있었다.

 

성하지맹 / [城下之盟]

[城:성 성/下:아래 하/之:어조사 지/盟:맹세할 맹]

적에게 성을 정복당하고서 항복하여 맺은 강화(講和)이 맹약(約), 대단히 굴욕적인 강화.

[참고] 성(城)의 역사를 살펴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은 최고 통치자의 안보를 위해 세워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양의 성(castle)은 정권의 상징적 공간으로 생성되었기에 건물의 형태로 발달한 반면, 동양의 성(城)은 거주민들의

안보를 위해서 생성되었기에 도성, 산성 등의 형태로 구분되고 발달했다.

기록상 나타난 최초의 성곽은 춘추시대(BC770~476)다. [만국사물기원역사]에 따르면,”오월춘추(吳越春秋)에

城을 쌓아 군을 지키고 郭을 만들어 백성을 지켰으니, 이것이 성곽의 효시다.

중국의 성문은 기본적으로 한 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성문 전면에 옹성이라는 소곽(小郭)을 설치했다. 이 옹성의 상징성은 매우 강해서 농성(籠城)이란 말을 낳았다.

즉 정예 병사들이 지키던 옹성이 무너지면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철저하게 성을 지켰는데 이를 농성이라 했다. 이에 유래하여 오늘날 농성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뜻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장군이 있는 성의 한가운데에 호화스런 깃발을 세우고 장군의 위세를 과시했다. 이 깃발은 깃대의 끝을 황백색의 상아로 장ㅎ식하고 거기다 교묘한 조각을 하는 등 볼품있다. 이 깃발을 아기(牙旗)라 불렀고, 대장군이 있는 성을 아성(牙城)이라고 했다. 오늘날 아서은 아주 중요한 근거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은 외적으로는 어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그 주위를 둘러막은 성곽의 개념이 강했다. 수도의 보위를

위해서 도성, 왕궁의 보위를 위해서 궁성(宮城), 각 지방의 행정 소재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읍성(邑城) 등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처에 미리 쌓아놓은 성들도 적지않다. 그런 성의 하나로 우리 편의 근거지를 삼기 위

하여 산 위에 쌓은 것을 산성(山城)이라 하고 요지를 따라 한 줄로 쌓아 적을 방어하는 것을 행성(行城)이라 한다.

남한산성은 한 맺힌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이 이곳에 피신하였으나,

강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 수항단으로 나가 항복하는 굴욕을 치렀다.

 

세한고절 [歲寒孤節]

[歲:해 세/寒:추울 한/孤:외로울 고/節:계절 절]

추운 계절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 겨울.

[예문]

눈 마자 휘어진 대를 뉘라셔 굽다턴고.

구블 節(절)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歲寒孤節(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원천석, 병와가곡집>

[참고]

●傲霜孤節(오상고절) :가을,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 충신 또는 국화, 가을

국화야, 너난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氷姿玉質(빙자옥질) : 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살결과 아름다운 지질, 매화의 이칭, 봄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마니 향기 노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안민영, 매화사>

 

소국과민 [小國寡民]

[小:작을 소/國:나리 국/寡:적을 과/民:백성 민]

적은 나라 적은 백성,  노자가 이야기하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

[출전]『노자(老子)』

[내용] 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서, 다른 사람의 열 배나 백 배의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어도 쓰지 못하게 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여기게 하고, 멀리 이사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고 갈 곳이 없고, 갑옷과 군대가 있어도 진칠 곳이 없게 해야 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새끼줄을 묶어 다시 문자로 사용하게 하고 그 음식을 달게 여기며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해설]노자는 계속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 새끼를 묶어서 문자로 사용하게 하며, 그 음식을 달게 여기고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노자는 문명의 발달이 생활을 풍부하고 화려하게 하지만, 인간의 노동을 감소시키고 게으름과 낭비와 생명의 쇠퇴현상을 가져온다고 하면서 소박하고 작은 소국과민의 사회를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사회, 이상국가로 보았다.

즉 소국과민이란 발달이 없지만, 갑옷과 무기도 쓸데가 없는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이상적 사회요 이상적 국가임을 일컫는 말이다. <네이버백과>

 

소인필문 小人必文’

소인은 반드시 꾸며댄다

자하가 말하였다.

“소인의 허물은 반드시 꾸며댄다.”(子夏曰 小人之過也는 必文이니라.「子張」8)

문(文)이란 글자는 보통 ‘글·문장’의 뜻으로 쓰이지만, ‘소인필문’에서 ‘문’은 ‘무늬·꾸밈(紋)’을 뜻한다. 따라서 ‘소인필문’이란 ‘못난 소인이 자신의 잘못을 꾸미는 데에 열중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사람(「學而」8)”을 군자라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가능한 빨리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군자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뜻이다. 공자를 동양의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것은 단지 그가 이렇게 멋진 말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는 몸소 자신이 말한 것을 실천하며, 자신의 말이 옳았음을 삶을 통해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위대함이요, 그가 오래도록 존경받는 이유이다.

한 가지 실례로, 공자는 진(陳)나라 사패(司敗)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나라인 노나라 소공(昭公)을 두둔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공자는 자기의 잘못을 지적한 사패의 말을 전해 듣고서 그 잘못을 기꺼이 인정했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이 말한 군자의 도리를 몸소 실천했다.

‘실수’란, 부지불식간에 사리와 도리를 잃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악(惡)이란, 고의로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반성하고 고치는 데 열중한다면 허물이 도리어 선(善)이 될 수 있지만, 자칫 반성하는 데에 게으르거나 변명하기에 급급한다면 허물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악으로 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공자는 “사람의 허물이 각각 그 종류가 있으니, 허물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진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里仁」7)”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군자나 소인이 허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잘못을 왜 저질렀으며 또한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실수나 허물을 잘 살펴보면, 그 일을 한 사람이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 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예컨대, 돈에 인색한 사람은 돈 문제에서 실수하기 쉽다. 또한 명예에 민감한 사람은 명예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실수를 한 그 다음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해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기꺼이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즉, 이왕에 발생한 일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려는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인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결점 없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도리어 불가피한 상황만을 내세우며 허물을 포장하려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소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끊임없이 변명하고 포장하다가 실패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이 아주 많다. 공자는 바로 이런 소인의 모습을 경계한 것이다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출처] ‘小人必文’ 소인은 반드시 꾸며댄다|작성자 몽촌

송양지인(宋襄之仁)

[농민신문][인문학의 뜰] 좋은 덕목이 폐단이 되는 이유

‘어짊’은 평상시 중요하지만 전쟁에서 고집하면 패배 불러

‘仁·知·信·直·勇·剛’ 여섯 덕목 배움 통해 얻어야 폐해 없어

때와 상황에 맞게 행동해야

<한비자>에는 ‘송나라 양공의 어짊’이라는 뜻을 가진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가 실려 있다.

송나라 양공이 탁곡 강가에서 초나라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송나라 군대는 이미 전열이 정비된 상태고 초나라 군대는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대부 구강이 송양공에게 계책을 간언했다.

“초나라 군대는 많고 우리 송나라 군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강의 중간쯤에 도달하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그들을 공격하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자 양공이 대답했다.

“군자의 도리는 이미 상처를 입은 자에게 또 상처를 주지 않으며, 백발노인을 붙잡지 않으며,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며, 좁은 곳으로 몰아넣지 않으며, 전력을 미처 갖추지 못한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초나라가 전열을 갖추기 전에 습격을 한다는 것은 도의가 허락하지 않는다. 초나라 군대가 완전히 강을 건너고 진을 구축한 다음 북을 치고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결국 강을 건너 전열을 정비한 초나라 군대에게 송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 초나라 군대가 훨씬 대군이었던 만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많은 군사가 죽었고 양공 역시 다리에 상처를 입고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이 고사를 보면 전장에서 마치 도덕 선생처럼 인의 타령을 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인의를 통해 정의롭게 다스리려던 나라는 피폐해졌고, 좋은 가르침을 통해 바르게 이끌려던 백성들은 적의 손에 들어가 도탄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전쟁이 일상사처럼 벌어지던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이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 국가를 지배하고 나라가 번창하지만, 만약 패하면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다. 최고의 병법서로 꼽히는 <손자병법>의 첫머리에 실린 글이 잘 말해준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사다. 백성의 삶과 죽음을 판가름하는 마당이며, 나라의 보존과 멸망을 결정짓는 길이니, 깊이 삼가며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병자 국지대사 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

이어서 “전쟁은 속임수의 도다(兵者詭道也·병자궤도야)”라고도 실려 있다. 전쟁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부득이 할 수밖에 없다면 그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로써 보면 생사가 오고 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적에게 인의를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치는 전쟁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덕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논어> ‘양화’에서 공자는 용기는 뛰어나지만 학문이 부족한 제자 자로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유(由·자로의 이름)야, 너는 여섯가지 덕목과 그로 인한 여섯가지 폐단을 알고 있느냐?” 자로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가르쳤다.

“인(仁)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어리석게 된다. 지혜로움(知·지)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분수를 모르게 된다. 신의(信·신)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남을 해치게 된다. 정직함(直·직)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박절하게 된다. 용기(勇·용)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질서를 어지럽히게 된다. 강직함(剛·강)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좌충우돌하게 된다.” 仁·知·信·直·勇·剛(인·지·신·직·용·강)의 여섯가지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갖추도록 항상 강조하던 덕목들이다. 이런 좋은 덕목들도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리 분별력이 없으면 반드시 폐해를 가져온다는 가르침이다. 때와 상황에 맞지 않게 덕목을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은 평상시에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전쟁터에서 고집한다면 처절한 패배를 가져오게 된다. 전장에서는 전쟁의 덕목과 장수의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송양지인’처럼 군주가 자신의 소신과 덕목만을 고집한다면 나라가 망하고 만다. 지도자가 자신의 소신과 능력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일을 맡겨야 하는 이유다.  조윤제 (인문고전연구가) 입력 : 2021-03-19 00:00   [출처] 좋은 덕목이 폐단이 되는 이유|작성자 몽촌

쇄복중서(曬腹中書)
 (曬: 쬘 쇄. 腹: 배 복. 中: 가운데 중. 書: 책 서)
내 뱃속의 책을 말린다는 뜻으로,

귀족의 풍속을 풍자(諷刺)한 말. 曬=晒
이 성어는 진(晉)나라에서는 음력 7월 7일 볕에 의복을 말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날 학륭(郝隆)이라는 선비가 한 행동을 표현한 말이다.
“학륭은 자가 좌치이며, 곽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박학하였는데,  칠석날 부잣집에서 옷을 햇볕에 말리는 것을 보고는 땡볕에 나가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 채 누웠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배 속의 책을 말리고 있다.’ 하였다.

〔郝隆字佐治崞縣人, 少博學, 無書不讀. 七月七日,

見富室曝衣, 乃出日中仰卧. 人問其故, 曰我曬腹中書耳.〕”
음력 칠월 칠일을 칠석(七夕)이라 하는데, 견우(牽牛) 직녀(織女)에 얽힌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다.

하늘의 은하수(銀河水)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지상에서 올라간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 준 오작교(烏鵲橋) 다리를 건너가 만난다고 한다.

 칠석날 밤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에 칠석날 밤에는

반드시 비가 온다고 되어 있고, 실제로 이 날 밤에는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쯤 되면 대개는 입추(立秋)가 지나 초가을로 접어드는데  공기 중의 수증기가 없어져 날씨는 맑고 하늘은 높다.

그래서 여름내 습기를 머금어 눅눅해진 옷이나  책 가재도구 등을 꺼내어 말리는데 이를 포쇄(曝曬: 햇볕 쬘 포(폭), 햇볕 쬘 쇄)라 한다.

칠석날에 포쇄하는 풍속이 우리나라나 중국(中國)에서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
중국(中國)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진(晋)나라는 북쪽 이민족(異民族)들의 침략을 받아

 양자강(揚子江) 남쪽으로 옮겨가 다시 건국(建國)하여 동진(東晋)이 되었다.
이 때 진(晋)나라는 주로 왕씨(王氏) 사씨(謝氏) 등 몇몇 귀족(貴族)들만이

 권력(權力)을 나누어 가지고서 국사(國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큰 권력(權力)을 손에 쥐었으므로 당연히 많은 재부(財富)도 축적(蓄積)하였다.
어느 해 칠석날 여러 귀족들의 집안에서 과시하듯 다투어 비단(緋緞)그림 책 가재도구 등등을 밖에 내놓고 포쇄하고 있었다.

내놓고 말릴 것이 없는 가난한 서민(庶民)들은 마음속으로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학륭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성격이 강직(剛直)하고 자존심이 대단했다.

때때로 날카로운 풍자(諷刺)로 귀족정치인들의 비리와 정치적 모순(矛盾)을 지적하였다.

이 칠석날에 이웃의 귀족들이 많은 값진 물건을 내놓고

 포쇄하는 꼴을 못마땅해 한 학륭은 웃옷을 벗고 배를 드러내고서 길에 드러누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여 다가와 물었다.
『선생은 지금 무엇 때문에 웃옷을 벗고 길에서 누워 있습니까?』
학륭은, 『내 뱃속의 책을 말리고 있소』라고 대답했다.
귀족들이 금은보화(金銀寶貨)와 비단 책 등을 가지고 자기를 과시(誇示)하자,

 학륭은 축적(蓄積)된 자기의 학문(學問)에 대해서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서 귀족들의 재물(財物)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부귀(富貴)로써 한다면 자기는 자신의 독서량(讀書量)을 가지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

지식인(知識人)이라면 이 정도의 자부심은 갖고 있어야 하겠다.

자기의 지식을 미끼로 해서 정치권력이나 명리(名利)를 얻으려다가 정치인이나 재산 가진 사람의 이용물이 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처신(處身)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인들은 전문지식인 그 자체로서 자부심을 갖고서

만족하며 인류사회에 기여(寄與)하면서 전문 지식인으로서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

* 修 : 닦을 수. * 己 : 자기 기.    * 治 : 다스릴 치. * 人 : 사람 인.

– 자신을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유교(儒敎) 경전 가운데 대학(大學)이란 책은, ‘대인(大人)의 학문’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대인이란 ‘큰 사람’인데, 곧 지도자란 뜻이다. 대학이란 곧 지도자의 학문이다.

대학의 내용은 크게 자신을 수양하는 영역인 수신(修身)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영역으로 나뉜다. 치인이라 해서 다른 사람에게 군림해서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모범을 보여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 따르게 하는 것이다.

수신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 그 첫 단계가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격물(格物), 그 다음이 이치를 궁구해서 얻은 지식을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치지(致知), 그다음이 마음에서 나간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성의(誠意), 그다음이 뜻의 바탕인 마음을 바로잡는 정심(正心), 그다음이 자기 몸을 닦는 수신(修身)이다.

“수신만 하면 되지 복잡하게 앞 단계는 왜 필요합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는데, 앞 단계를 모르면 수신이 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누가 “바르게 살겠다”라고 다짐을 하고 실천하려고 해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알아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신의 바탕 위에서 치인(治人)의 단계에 들어가는데, 치인의 단계는 삼단계이다. 먼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齊家)이다. 수신된 자기 몸으로 가족들에게 모범을 보여 감화시키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집안을 잘 다스리면, 추대되어 나라 일을 맡아 다스리는 치국(治國)을 한다. 더 나아가서는 훌륭한 임금을 도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평천하(平天下)이다. 유교의 이상적 목표는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이 세상을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도록 만드는 것이다.

선비라면 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치인의 경지에까지 가야만, 선비로서의 역할을 다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신이 안 된 자들이 단계를 뛰어넘어 치인을 하려서 설치대는 경우가 많았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이 적었는데, 요즈음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요즈음 학교 교육은 수기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가정교육이 없다. 옛날에는 마을에서는 마을 교육이 있었고, 문중에서도 문중교육이 있었다.

오늘날 각급학교에서는 오로지 지식교육으로 출세하는 길만 가르치고 있다.

진짜 공부는 사람 되는 공부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장관, 대법관 되겠다고 청문회에 나온 후보들의 저지른 행위는 거의 범법행위다. 그들은 수기는 안 하고 치인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교육의 내용을 개선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경제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서로 해치는 시대가 될 것이니까.

[출처] 자신을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修己治人)|작성자 몽촌

수불석권 手不釋卷  

手 : 손 수     不 : 아닐 불    釋 : 놓을 석    卷 : 책 권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가 없이 항상 열심히 글을 읽음을 이르는 말

삼국시대 초엽, 오왕(吳王) 손권(孫權:182∼252)의 신하 장수에 여몽(呂蒙)이 있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공을 쌓아 장군이 되었다. 

어느 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지(戰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수불석권)’ 학문에 정진했다

그 후 중신(重臣) 가운데 가장 유식한 재상 노숙(魯肅)이 전지 시찰 길에 오랜 친구인 여몽을 만났다. 

그런데 노숙은 대화를 나누다가 여몽이 너무나 박식해진 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보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자네는 이제 ‘오나라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닐세그려.”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지 사흘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대면할(刮目相對)‘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라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가 없이 항상 열심히 글을 읽음을 이르는 말

 

 

수어지교  水魚之交

물 수  水     물고기 어魚    어조사 지之       사귈교   交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부부나  군신 관계의 서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사이를 뜻한다.

별하지 않는 깊은 교우 관계에도 이 말을 쓴다.

 -삼국지(三國志); 촉지 제갈량전-

 [고사] 후한 최후의 황제인 헌제를 세워 그 그늘 밑에서 제멋대로 행동을 자행하던 대신 동탁이 멸망하자

오(吳)를 본거지로 한 손책, 손권은 주유, 노숙 등 지모가 뛰어난 인재를 모아 강동에 세력을 구축해 갔고,

한편 조조는 산동에서 황하 유역을 제압했다.

 그러나 한(漢)의 재흥을 목표로 군사를 일으킨 유비는 비록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천하제일의 용장을 거느렸으나,

거점으로 한 기반이 없어 종형뻘 되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유비는 서서의 권유로 공명을 찾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자신의 군사(軍師)로 맞이하게 되었다.

 공명의 높은 식견과 원려(遠慮)에 감복한 유비는 스승의 예로써 대하며 침식을 같이 하였다.

당시 37세였던 공명을 이처럼 극진히 우대하자 관우,

장비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공명이 나이도 어리거니와 학식이나 재주도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형님께선 어찌하여 그처럼 후한 대접을 하십니까?”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것이니 두 번 다시 거기에 대해 여러 말하지 말라.”

 고 하여 유비는 두 동생을 나무랐다고 한다 

 

  수전노 [守錢奴]   

[守:지킬 수/錢:돈 전/奴:종 노]

돈만 지키는 노예.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구두쇠, 노랭이, 자린고비

[참고]프랑스 고전주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으로 고대의 희극적 인물 구두쇠를 근대적으로 묘사한 작품. 파리에서도 이름안 알부자 아르파공은 세상에 둘도 없는 구두쇠이다. 그에게는 아들 클레앙트와 딸 엘리즈가 있는데 딸은 돈 많은 앙셀므 영감과, 아들은 돈 많은 과부와 결혼시키려 한다.

어느 날 남매는 아버지 때문에 사랑에 지장이 많다고 한탄한다. 엘리즈는 발레르를 사랑하고 클레앙트는 젊고 아름다운 마리안을 사랑한다. 그런데 아르파공은 적게 먹는다는 이유로 마리안과 결혼하려 한다. 어는 날 아르파공이 땅에 묻어둔 돈을 하인인 라 플레슈가 훔친다.

아르파공은 돈을 잃어버려 죽을 결심을 하지만 죽음은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때 발레르가 앙셀므 영감의 잃어버렸던 아들임이 밝혀진다. 아르파공은 라 플레슈에게 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남매의 혼사를 허락한다.

몰리에르가 창조한 구두쇠는 돈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비인간적이지만 ‘광기와 병적인 고독’등은 오히려 인간적이다. 그래서 괴테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적이며, ‘인간의 정신과 의지의 힘은 비인간적인 목표’를 위해 봉사함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플라우투스의 <냄비>를 모방한 작품으로 초연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물질에 노예가 되는 현대인들을 비판, 현실에 맞게 재해석되어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극작가이지 배우이기도 한 몰리에르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도 교회와 왕실로부터 극장을 폐쇄당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왕실과 교회는 좀더 활기찬 작품을 원했고 몰리에르는 17세기 프랑스 귀족과 교회를 비판하는 연극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는 인간적이며 역설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고 부조리한 것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볼테르는 그를 일컬어 ‘프랑스의 화가’라고 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프랑스적임을 뜻하는 말이다.

[예문] 비록 고래대금을 하고 수전노와 같이 오직 돈 하나만 아는 진실치 못한 인간이라 할지라도…<이기영, 고향>

수주대토 [守株待兎]

[守:지킬 수/株:그루터기 주/ 待:기다릴 대/兎:토끼 토]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이 구습에 젖어 어리석게 요행을 바람

[출전] 『韓非子』, 五履篇

[내용] :「송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거늘, 이로 인하여 그 쟁기를 풀어 놓고 나무 그러터기를 지키어 다시 토끼를 얻고자 하였으나, 토끼를 다시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 거리가 되었다」

 

수즉다욕 [壽則多辱]

[壽:목숨 수/則:곧 즉/多:많을 다/辱:욕될 욕]

장수하면 욕됨이 많다.

오래도록 살면 그만큼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게 된다.  또는 사람이 모질어서 남 못할 짓을 함을 욕함

[출전]『莊子』, 天地篇

[내용] 堯임금이 화주(華州)에 갔을 때 변방을 지키던 사람이 “성인이시여! 오래오래 사시고 부자가 되시옵고 아드님도 많이 두기를 비옵니다”하니 요임금이 대답하기를 「아들을 많이 두면 걱정 근심이 많고 부유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됨이 많으니라 세 가지는 덕을 길러 주는 까닭이 못되느니라.」하였다.

그 사람이”자식이 많다 해도 각각 제 할 일을 맡겨주면 되고 부자가 되더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또한 삼환(三患: 병·늙음·죽음)과 재악이 없다면 오래 산다 해도 무슨 욕됨이 많단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떠나려 하자

그 말에 감탄하여 요임금이 물을 것이 있다고 청했으나 돌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수진지만 守眞志滿 

수 지킬 수  守   진 참   진  眞    뜻 지    志      만 찰 만    滿

사람의 도리( 道理 )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君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便安) 함

 

수처작주 [隨處作主]

[隨:따를 수/處:곧 처/作:지을 작/主:주인 주]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이다.

[출전] 「임제록」–중국 당나라 때의 불교 서적, 임제종의 시조인 임제 의현 선사의 법어와 언행을 제자인 삼성 혜연(三聖慧然)이 편집한 것으로 어록(語錄), 감변(勘辯), 행록(行錄)의 3부로 되어 있다. 2권.

[내용] 내가 가는 (이르는)곳 마다 주인이 된다. 모든 일은 먼 데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것이 풀어진다.

 

수청무대어 [水淸無大魚]

[水:물 수/淸:맑을 청/無:없을 무/大:클 대/魚:고기 어]

물이 (너무)맑으면 큰 물고기가(몸을 숨기지 못해)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 하지 않음의 비유

[출전]]『後漢書』『班超專』,『孔子家語

[내용]후한 시대 초엽,<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鄯善國: 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이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고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 (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숙맥불변 [菽麥不辨]

[菽:콩 숙/麥:보리 맥/不:아니 불/辨:분별할 변]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

[출전]<좌전(左傳)>성공 18년

[내용]춘추시대 진(晉)의 도공(悼公)에게 형이 있었는데 우둔하여 아무 일도 맡길 수 없었다. 그래서 관직이 없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콩과 보리도 구별못한다 하여 ‘숙맥불면’이라 표현했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 바보롤 가리키는 말로 한국 속담에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와 같은 뜻이다.

 

순결무구 [純潔無垢]

[純:순수할 순/潔:깨끗할 결/無:없을 무/垢:때 구]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다.

[예문]

▷ 순결무구한 아기의 눈동자 / 순결무구한 처녀 / 그런 작가들에 비하면 자네야 순결무구한 일꾼이지.<이문열, 영웅시대>

▷ 가장 효과적으로 겁을 주려면 전혀 죄없는 순결무구한 사람을 본보기로 처형하는 것이 좋다. 죄가 조금이라도 있는 모든 사람을 발발 떨게 할 수 있다. 사형이 잔혹하다지만 징역살이도 비인도적이다 맥베이가 평생 감옥에서 썩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버티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죄가 워낙 무거워 논외로 칠 수밖에 없으나, 젊은이에게 징역 살이는 너무 잔인하다.

 

순물신경(徇物身輕) 

(徇: 주창할 순, 쫓다. 物: 만물 물. 身: 몸 신. 輕: 가벼울 경)
물질을 따르고, 몸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으로, 물질을 중히 여겨 따르는 자는 몸을 잃게 된다는 말.
《명나라 왕달(王達)의 필주(筆疇)》

 

“재앙은 많은 탐욕보다 큰 것이 없고, 부유함은 족함을 아는 것보다 더함이 없다.

욕심이 강하면 물질을 따르게 되니,  이를 따르면 몸은 가볍고 물질만 중하게 된다.

물질이 중하게 되면 어두움이 끝이 없어, 몸을 망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저 물질만을 따르는 자는 족함을 알지 못해서다.

 진실로 족함을 알면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일이 줄어들며,

일이 줄어들면 집안의 도리가 화목해지고, 집안의 도리가 화목해지면 남들이 모두 알게 된다.

이 때문에 부유함은 족함을 아는데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禍莫大于多貪, 富莫富于知足. 欲心勝則徇物, 徇物則身輕而物重矣.

 物重則 然無窮, 不喪其身不止矣. 彼徇物者, 由不知足之故也. 苟知足,

則心安, 心安則事少, 事少則家道和, 家道和則人無不知矣. 故曰富于知足).”  
명나라 왕달(王達)이 ‘필주(筆疇)’에서 한 말이다.
 
부자는 재물이 이만하면 됐다 싶은 사람이다.   세상에 부자가 없는 이유다.

족함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그는 현재의 삶을 기뻐하므로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탐욕은 크기에 비례해 재앙을 부른다.

 탐욕이 물질의 집착을 낳고, 그 집착으로 인해 몸을 함부로 굴리며 못 하는 일이 없게 된다.

 그 결과 어리석음으로 제 몸을 잃고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현재의 삶에 만족해 마음이 편하면 딴 데 마음 둘 일이 없다.

 

“아! 백 년 인생은 한정이 있고,   뜻과 일은 어긋나게 마련이다.

빈손으로 태어나 죽을 때는 가져가지도 못한다.

몸이 바쁜 사람은 누리기가 쉽지 않고, 늙어 힘이 다한 자는 아쉬움을 늘 품는다.

 미래를 망상하느니, 방외에다 마음을 노니는 것만 못하다.

 경영하려 애쓸 바엔 차라리 글을 쓰는 것이 낫다.

마침내 결단하면 힘들고 편안함이 드러날 것이요,

애오라지 즐거움에 뜻을 부칠진대 얻고 잃음을 볼 수가 있으리라

 

(嗟乎! 百年有涯, 志事互違. 生無帶來, 死不將去. 身忙者未易消受,

 力匱者每懷歉恨. 與其妄想於未來, 孰若游心於方外. 有殫經理,

毋寧就成于筆端. 畢竟斷置, 勞逸顯矣. 聊復寄娛, 得失可見矣).”  
조선후기 문인 유경종(柳慶種·1741~1784)의 ‘의원지(意園誌)’에 나온다.

 

젊어서는 바빠서 다 놓치고, 늙어서는 힘이 빠져 할 수가 없다.  이 누구의 허물인고!
[출처] 물질을 따르게 되니, 이를 따르면 몸은 가볍고(徇物身輕)|작성자 몽촌

 

순사고언(詢事考言)

[요약] (詢: 물을 순. 事: 일 사. 考: 살필 고. 言: 말씀 언)

일을 시켜보고 말을 살펴보다

[출전] 상서 순전(尚書舜典)

[내용] 상서 순전(尚書舜典)에 요임금이 순에게 양위하는 말을 했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이리 오라! 순(舜)아(그대 순에게 고하노라).

일을 시켜보고 말을 상고하건대 너의 말이 공적을 이룰 수 있음을 본 것이 3년이니,네가 제위에 오르라.” 하였다.

순(舜)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사양하고 잇지 않으셨다

帝曰:「格!汝舜。詢事考言,乃言厎可績,三載。汝陟帝位。」舜讓于德,弗嗣。正月上日,受終于文祖。

[정민의 世說新語] [619] 순사고언 (詢事考言)조선일보 2021.04.22. 오전 3:06 최종수정 2021.04.22

1728년 12월 7일, 숭문당(崇文堂)에서 영의정 이광좌(李光佐) 등이 영조를 모시고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했다. 이날의 주제는 ‘변인재(辨人才)’ 즉 ‘성현이 인재를 살피는 방법(聖賢觀人之法)’에 관한 내용이었다.

본문을 읽은 뒤 시독관(侍讀官) 김상성(金尙星)이 말했다. “요순 시절에는 네, 아니오의 사이에도 절로 옳고 그름의 뜻이 있었습니다. 아랫사람의 말이라도 옳으면 네라고 했고, 윗사람의 말이라도 그르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옳으면 네라 하고 그르면 아니라 하여, 아첨하여 빌붙어 따르는 뜻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임금이 유념하겠다고 대답했다.

김상성이 또 말했다. “치국의 도리는 인재를 알아보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을 벗어나지 않고, 백성을 편안케 함은 인재를 알아보는 것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인재를 못 알아보면 임용할 때 적임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덕택이 아래에 이를 수가 없고, 백성의 원망이 위에 전달될 길이 없어,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인재를 가려 뽑을 때에는 반드시 명실이 상부해야 백성이 편안해집니다. 전하께서는 인재를 알아봄을 급선무로 삼으소서.” 임금이 유념하겠다고 대답했다.

다들 하는 말이 하도 번드르르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로 화제가 넘어가자, 김상성이 다시 아뢰었다. “순사고언(詢事考言)의 방법이 진실로 좋습니다. 하는 말만 듣고서 일을 어떻게 행하는지를 살피지 않는다면 어찌 박필현 같은 역적의 흉역을 놓치는 데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 얼마 전 윤대관(輪對官) 박필현이 역변(逆變)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순사고언은 말을 듣고 나서 실제의 일에 비추어 살펴본다는 뜻이다. ‘서경’ ‘순전(舜典)’편에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양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순(舜)은 나아오라. 일을 함께하고 말을 살핀 것이 3년이 되었다. 네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라.(格汝舜. 詢事考言, 乃言底可續三載. 汝陟帝位.)” 실행 없이 입만 가지고 떠드는 것은 누구나 다 한다.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려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안목이 가장 먼저다. 안정을 원하는가? 안목이 먼저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출처] 일을 시켜보고 말을 살펴보다(詢事考言)|작성자 몽촌

순식간 [瞬息間]

[瞬:눈깜짝할 순/息:숨쉴 식/間:사이 간]

눈 깜짝하고 숨 한번 쉴 사이,   아주 짧은 시간을 뜻함

[출전]불경『우파색계경(優婆塞戒經)』

[내용]눈 깜짝하고 숨 한번 쉬는데 색계가 무색계에 이른다 <불경 우파색계경(優婆塞戒經)> 여기에 ‘순식(瞬息)’이 라는 말이 나오며 세월의 무상함을 뜻하는 말이다.

두보의 시중에는 ‘득실순식지간(得 失瞬息之間)’이란 구절이 있는데 ‘눈깜짝하며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얻고 잃는다’는 뜻이다. ‘순식(瞬息)’이라는 말은 아주 잠깐, 아주 짧은 시간 (찰나:刹那)을 뜻하는 말이다.

순천자존 (順天者存)

하늘을 따르는 자는 보존된다 <출전: 맹자> 

저 높고 푸른 하늘은 아무 말도 없지만 고인들은 인간생활의 모든 원천을 그리로 돌렸다. 만물을 낸 것도 하늘이고 세월을 운전하는 것도 하늘이고 인간의 현불초와 부귀를 관장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의 일이 잘못돼도 하늘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았다.

공자는 하늘이 아무런 말도 없지만 사시를 운행하며 만물을 내니 나도 하늘을 닮고 싶다고 하였다. 맹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존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여기서 하늘은 무얼까? 맹자에 의하면 하늘은 두 가지의 경우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덕(德)의 손을 들어주는 하늘이고, 또 하나는 힘의 손을 들어주는 하늘이다. 덕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선량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이런 덕이 통하는 시절을 도(道)가 통하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힘은 덕과 달리 현실을 움직이는데 직접 관여하는 인간의 에너지이다. 맹자는 이 힘이 좌우하는 시절을 도(道)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하늘은 이 둘 다를 의미한다. 도가 통하는 시절에는 덕이 작은 이가 큰 덕의 소유자에게 부림을 받는다. 도가 통하지 않는 시절에는 힘이 약한 이가 힘이 강한 이에게 부림을 받는다. 어쨌든 보존하고 싶다면 도가 있는 세월이든 없는 세월이든 그 추세를 거스르면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시절에 해당할까?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발행일 2021-04-22 

順天者存 逆天者亡

순천자존 역천자망

孟子(맹자)의 離婁上篇(이루상편)에 나오는 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엔 작은 덕을 지닌 이가 큰 덕을 지닌 이에게 부림 당하고, 조금 어진 이가 많이 어진 이에게 부림 당한다.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엔 작은 이가 큰 이에게 부림 당하고, 약한 이가 강한 이에게 부림 당한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의 이치이니, 하늘의 이치를 순종하는 사람은 보존되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은 없어진다.

孟子曰: “天下有道, 小德役大德, 小賢役大賢; 天下無道, 小役大, 弱役强. 斯二者天也. 順天者存, 逆天者亡.

술이부작 [述而不作]

[述:말할 술/而:말이을 이/不:아니 불/作:지을 작]

성인의 말을 술하고(전하고) 자기의 설(說)을 지어내지 않음.

[출전]『논어』

[내용]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은(殷)의 현인 팽(彭)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시오설  視吾舌   

視:볼 시.     吾:나 오.     舌:혀 설.

‘내 혀를 보아라’는 뜻.  곧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

 

전국 시대, 위(魏)나라에 장의(張儀)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권모 술수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웠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과는 동문이 된다.

장의는 수업(修業)을 마치자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는 끝내 부인했다.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했어요?”
그러자 장의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그럼 됐소.”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傷)해선 안된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했다.

[주]합종책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
연횡책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귀곡자 :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모사). 성명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반 지식에 통달했다고 함.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

《귀곡자(鬼谷子)》3권을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음.

 

시위소찬 [尸位素餐]

[尸:주검 시/位:자리 위/素:흴소/餐:음식 찬]

입은 벼슬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봉록만 먹는다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부정부패를 일삼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말.

[출전]『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내용]옛날 중국에서는 제사지낼 때 조상의 혈통을 이은 어린아이를 조상의 신위에 앉혀 놓는 풍습이 있었다. 영혼이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려는 신앙에서 나온 풍습이었다.

이 때 신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시동이라 한다. 시위(尸位)는 그 시동이 앉아 있는 자리이고, 소찬(素餐)은 맛없는 반찬이란 뜻으로 공짜로 먹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앉아 공짜밥이나 먹고 있다는 뜻으로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축내는 관리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운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오늘날 조정대신들이 위로는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 백성들을 유익하게 못하니 다 공적없이 녹만 받는 시위소찬자들이다.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부정부패를 일삼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기리켜 말한다.

 

시지칙지(時止則止)

時 때 시    止 그칠 지    則 법칙 칙    止 그칠 지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知足之爲足, 此恒足矣.”(지족지위족, 차항족의) “만족할 줄 알면 만족하게 되리니, 이것이 한결같은 만족이다.”

“재앙으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강조하려고 이 짧은 구절에서 무려 세 번이나 足(족)을 썼다.

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노자는 그토록 강조하는가?  이는 사람들이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왜 만족할 줄 모르는가?  만족이란 무엇이기에 만족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또 만족하는 것과 만족할 줄 아는 것은 같은가, 다른가?

만족이란 모자람이 없이 넉넉함을 뜻하며, 그리하여 마음으로 흐뭇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는 글자가 足(족)이다.   족은 무릎 아래 부분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넉넉함이나 흐뭇함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우선은 발이 인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성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을 뜻하는 人(인)은 사람의 옆모습을 형용한 글자다.

그러나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걷는 모습이다.

 이로써 이 글자는  “사람은 걷는 존재다”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걷는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무엇일까?  당연히 다리일 것이고, 그 가운데서 특히 발이 중요하다.

발이 없으면 서 있기도 불편한데, 하물며 걷거나 뛸 수 있겠는가?

 발이 있어야 비로소 걷는 존재는 온전해진다. 아마도 여기에서 충분하다,

넉넉하다는 뜻이 나왔으리라.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갓난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이윽고 일어서게 되면,  매우 기뻐한다.

 갓난아기가 뒤뚱거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론 흐뭇하다.
그런데 아기가 두 돌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하고 세 돌이 지나도 걷지 못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 일어서서 걸어야 비로소 건강하고 온전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이 걷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이는 발이 있으므로 가능하다.

그러니 두 발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두 발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 거의 잊고 산다.

“간은 멈춤이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가야 할 때 간다.

움직이든 고요하든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환히 빛난다.

간은 멈춤이니, 마땅한 곳에서 멈춘다는 뜻이다.

” 멈출 줄 안다는 것은 욕심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

제 고집대로 하지 않고 때와 곳에 따라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이미 갖추고 있다.  노자 또한 그런 뜻으로 足(족)을 썼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다.

생각할 줄 알고 말할 줄 알며, 가진 재능을 알맞게 쓸 줄도 알고 필요한 것을 만들 줄도 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구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신에게 있는 그 넉넉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바깥에 있는 것들에만 마음을 둔 채 어지러이 쫓아다닌다.

​고전학자     [출처]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時止則止)|작성자 몽촌

 

식소사번 [食少事煩]

[食:먹을 식/少:적을 소/事:일 사/煩:번거루울 번]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다

[출전]『삼국지』

[내용]두번 째 출사표를 내고 위나라 공략에 나선 제갈 량이 사마 의와 대치하고 있을 때이다. 제갈 량은 속전속결하려고 했으나 사마 의는 제갈 량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며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사자들만 자주 오고 갔다.

하루는 사마 의가 촉의 사자에게 “공명은 하루 식사와 일처리를 어떻게 하시오?”하고 물었다. 사자는 “승상께선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을 처리하시며 식사는 아주 적게 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마 의는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으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食少事煩 安能久平)”라고 말했따.

사자가 돌아와 사마 의의 말을 전하니 “그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라고 제갈량은 말했다.

결국 제갈 량은 병이 들어 54세의 나이로 오장원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만 많이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즈음에는 생기는 것도 없이 헛되이 바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식자우환 [識字憂患]

[識:알 식/字:글자 자/憂:근심 우/患:근심 환]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거리가 됨.  ▷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거리가 됨.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 /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음을 이름. /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른다.

[속담] 모르는 것이 부처.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 / 무자식이 상팔자.

[출전]<三國志 >/ <石蒼舒醉墨堂>

[내용] 유비(備)가 諸葛亮(제갈 량)을 얻기 전에는 徐庶(서서)가 軍師(군사)로 있으면서 曹操(조조)를 괴롭혔다. 어떻게 해서든 서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조조즌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획을 꾸몄다.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魏(위)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의 어머니

衛夫人(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잘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謀士(모사) 程昱(정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내어 급히 위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복 위부인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안다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구나”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에서 蘇東坡(소동파)도 이렇게 읊고 있다. “문자를 알게 되면서 사람의 우환은 시작되느니 (인생식자우환시) / 제 이름자나 겨우 쓸 수 있다면 편히 쉴 수 있으리 (성명조기가이휴)”

 

십목소시 [十目所視]

[十:열 십/目:눈 목/所:바 소/視:볼 시]

‘열사람의 눈으로 봄’으로 풀이되며, 무수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숨길 수 없을을 뜻함

[출전]『大學』

[내용]’증자가 말하기를 열사람의 눈으로 보며, 열사람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엄할진저’ 이말은 남이 지켜보면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손가락질한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십목(十目)이라고 한 것은 열 개의 눈이 아니라 사방의 모든 시선을 말하고, 십지(十指)라고 한 것은 열 개의 손가락질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한 행동을 바라본 다른 사람들이 무수한 비난을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뿐 아니라 자기 혼자 있을 때라도 스스로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유가에서 혼자 있을 때 삼가라는 ‘신독(愼獨)’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식전방방 [食前方丈]

[食:먹을 식/前:앞 전/方:모 방/丈:열자 장]

사방 열 자짜리 상에 차린 잘 차린 음식이라는 뜻으로 호화롭게 많이 차린 성찬

[출전]『맹자』

[내용]”대인(大人)을 설득시킬 때는 그를 멀리 다루고 그의 위세(威勢) 좋은 것을 보지 말아야 한다. 집의 높이가 여러 인이 되고 서까래가 여러 척(尺)이 되는 집은 내가 뜻을 이루어도 짓고 살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사방 열 자되는 상에 늘어놓고(食前方丈), “시중 드는 첩을 수백 명을 두는 짓은 내가 뜻을 다 이루어도 하지 않는다. 대판으로 즐기며 술 마시고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내가 뜻을 이루어도 하지 않는다. 천승의 수레를 뒤따르게 하는 것은 내가 뜻을 이루어도 하지 않는다. 저에게 있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 것들이고, 나에게 있는 것은 다 옛날의 제도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두려워하겠는가?”

 

신신의의(信信疑疑)
 (信: 믿을 신. 信. 疑: 의심할 의. 疑)

꼭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의심해야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믿음이라는 뜻.
[출전]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 第六》
[내용]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이 신(信)이요,  의심할 만한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신이다.

어진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인(仁)이요,   불초한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도 인이다.

말하여 도리에 합당하면 지(知)요, 침묵하여 합당한 것도 지다.

따라서 침묵의 의미를 아는 것과 말할 필요성을 아는 것은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말이 많아도 그것이 법과 이치에 맞으면 성인(聖人)이요,

말은 적지만 이치와 맞으면 군자와, 말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모두 이치에 맞지 않으면 소인이다.
信信,信也;疑疑,亦信也。貴賢,仁也;賤不肖,亦仁也。言而當,知也;默而當,亦知也。故知默猶知言也。故多言而類,聖人也;少言而法,君子也;多言無法而流湎然,雖辯,小人也。

이하 전북일보 [한자교실] 자신감(自信感)의 글.
자신감(自信感)스스로 자(自), 믿을 신(信), 느낄 감(感)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실하게 믿는 느낌 
인간의 뇌(腦)는 확고한 자신감(自信感)이 있을 때  회로(回路)가 막힘 없이 가장 조화(調和)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신이 과거 성공하였던 경험(經驗)을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거나 자신감(自信感)을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人)의 말(言)은 믿어야 한다’에서 나왔다고 생각되는  ‘믿을 신(信)’은 꼭 ‘믿다’는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서신(書信)·통신(通信)·송신(送信)·수신(受信)에서는 ‘편지’라는 의미이고,

신호(信號)·발신(發信)에서는 ‘표지’의 의미이며, 신상필벌(信賞必罰)에서는 ‘반드시’라는 의미인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믿는 것을 맹신(盲信)이라 하고, 꽃이 피는 소식을 화신(花信)이라 하며,

믿어서 근거나 증거로 삼는 일을 신빙(信憑)이라 한다.

그리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함을 일러 신실(信實),  믿고 일을 맡김을 신임(信任)이라 한다.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美言不信)”이라 하였다.

진실성이 있는 말은 결코 아름답게 수식하지 않고, 화려하게 수식한 말에는 진실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신신의의역신야(信信疑疑亦信也)”라고도 하였다.

믿을만한 것을 믿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믿음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에 “신이후로기민(信而後勞其民)”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君子)는 자신이 믿음을 얻은 이후에 그 백성들에게 힘든 일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출처 : 전북일보(http://www.jjan.kr)

이하 고대 교우회비 [이향애 칼럼 (22)]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의 글. “믿음의 마력”등록일 : 2010-03-16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자신이 있을까?

순자는 “신신신야, 의의역신야(信信 信也, 疑疑 亦信也)”라고 했다.

 “꼭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의심해야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믿음이다”라는 뜻이다.  
[출처] 의심해야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믿음이다(信信疑疑)작성자 몽촌

신언서판 [身言書判]

[身:몸 신/言:말씀 언/書:글 서/判:가를 판]

인물을 선택하는 표준으로 삼던 네 가지 조건사람을 평가할 때나 선택할 때가 되면 첫째 인물이 잘났나 즉 , 둘째 말을 잘 할 줄 아는가 즉 , 셋째 글씨는 잘 쓰는가 즉 , 넷째 사물의 판단이 옳은가 즉 의 네가지를 보아야 한다 하여 이르는 말. 중국 나라 때 유래된 것으로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

[출전]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

[내용]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따르면 사람을 고르는 방법으로 네 가지를 말하며 이것이 과거에서 인재를 고르는 기준으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무릇 사람을 고르는 방법에 네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몸이니 체모가 풍성하고 커야하며, 둘째는 말씨인데 말이 반듯하고 논리가 분명해야 한다. 셋째는 글씨이니 필법이 옛 법을 따르면서도 아름다워야 하고 네째는 판단력이니 이치를 따지는 것이 뛰어나야 한다.’ 이와같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사람을 선택하는 기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선택법이었던 것이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이는 사람을 처음 대햇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그래서 은 풍위(豊偉)일 것이 요구되었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언은 변정(辯正)이 요구되었다.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한 데서 서에서는 준미(遵美)가 요구되었다.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하여 문리의 우장(優長)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상 네 가지 조건을 신언서판이라 하여, 당나라 에서는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덕행·재능·노효(勞效)의 식적을 감안한 연후에 등용하였다.

신진대사(新陳代謝)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진(陳)’은 해묵어 진부(陳腐)하다는 뜻이다. 신(新)은 ‘renewal’로, 신진은 진부한 묵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사(謝)는 ‘시들다’ ‘떨어진다’이고, 대(代)는 ‘replace’이니, 대사는 시든 것을 싱싱한 것과 대체한다는 뜻이다. 묵은 것을 새것과 교체하고시든 것을 신선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신진대사다.

신체는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건강하고, 조직은 신진대사가 순조로워야 잘 돌아간다. 묵은 것이 굳어 피가 도는 길을 막으면 혈전이 된다. 막히다 어느 순간 터지면 큰일 난다. 낡은 사고로 자리만 차지해 호령하면, 그 조직은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자꾸 막히는데 이제껏 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 하다가는 한순간에 훅 간다. 신체건 조직이건 핵심은 잘 흘러가는 소통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러자면 바꿀 것은 제때 바꾸고, 바꿔서 안 될 것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새것만 좋을 수 없고, 해묵은 옛것을 덮어놓고 홀대해도 안 된다. 변화가 꼭 필요하지만 반대로 하면 망한다. 바꿀 것은 안 바꾸고, 지켜야 할 것을 바꾸면 열심히 바꿀수록 비극이다.

이색(李穡·1328~1396)은 “신진대사 중지시키기 어렵거니, 평생에 솔 잣나무 사모하였네(代謝難中止, 平生慕後凋)”라고 노래했다. 신진대사를 멈추지 않아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의 변함없는 자태를 사모한다는 말이다. 모든 변치 않음이란 끊임없는 변화 상태를 유지한 결과일 뿐이다. 신흠(申欽·1566~1628)도 시 ‘백상루(百祥樓)’에서 “인간 세상 신진대사 이루기가 어려운데, 산하는 혼자서 흥망성쇠 지켜봤네(人世不堪成代謝, 山河空自閱興亡)”라 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친다. 세상은 늘 변화할 타이밍을 놓쳐 고단하고, 산하는 순환의 질서를 따르기에 언제나 장구하다. 장자(莊子)는 ‘각의(刻意)’에서 “날숨 불고 들숨 마셔, 묵은 것을 토해내고 새것을 들이마신다(吹呴呼吸, 吐故納新)”고 했다. 숨이 안 가쁘려면 들숨과 날숨의 조절이 필요하다. 신구(新舊)의 교체가 매끄럽게 이뤄져야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조직에 활기가 넘친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출처] 묵은 것을 새것으로, 시든 것을 신선한 것으로(新陳代謝)|작성자 몽촌

실사구시 [實事求是]

[實:사실 실/事:일 사/求:구할 구/是:이 시]

실제에 임하여 그 일의 진상을 찾고 구함.

[내용]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과 같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실사구시이다.

이것은 ≪후한서(後漢書)≫<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나오는 “수학호고 실사구시(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비롯된 말로 청(淸)나라 초기에 고증학(考證學)을 표방하는 학자들이 공리공론(空理空論)만을 일삼는 송명이학(宋明理學)을 배격하여 내세운 표어이다.

그 대표적 인물로 황종희(黃宗羲) ·고염무 (顧炎武) ·대진(戴震) 등을 들 수 있고 그들의 이와 같은 과학적 학문태도는 우리의 생활과 거리가 먼 공리공론을 떠나 마침내 실학(實學)이라는 학파를 낳게 하였다. 이 실학사상은 조선 중기, 한국에 들어와 많은 실학자를 배출시켰으며 이들은 당시 지배계급의 형이상학적인 공론을 배격하고 이 땅에 실학문화를 꽃피우게 하였다.

그러나 실학파의 사회개혁 요구는 탄압을 받고 지배층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이 때문에 경세치용적(經世致用的)인 유파는 거세되고 실사구시의 학문방법론이 추구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정희(金正喜)이다. 그에 앞서 홍석주(洪奭周)는 성리학과 고증학을 조화시키는 방향에 섰지만, 김정희는 실사구시의 방법론과 실천을 역설하였다. 저서≪해국도지(海國圖志)≫는 높이 평가된다.<네이버백과>

 

심술지동(心術之動)

 心 마음 심    術 법 술    之 갈 지    動움작일 동

심술의 움직임, 마음씨의 움직임

역서(易序)는 웅장한 문장과 기운이 들어있는데 아직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글이다. 정이천이라는 말도 있고 소강절이라는 말도 있는데 확실치 않다. 그 글에 보면 정신을 움직이고 심술을 움직이는 가운데 이치를 터득한다(得於精神之運心術之動)는 말이 나온다. 정신을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신이 움직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심술을 움직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심술이 움직인다고도 할 수 있다. 타동이냐 자동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얼마전 구글 계정에 들어가 자세히 보니 거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20년 동안 행했던 모든 기록이 들어 있었다. 행적을 분석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걸 이용해 기업들은 개인정보에 관한 각종 비즈니스를 한다. 몸은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데 마음은 무엇을 따라 움직이는가? 마음의 움직임 또한 일정한 습성이 있고 관성이 있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면 일정한 관성적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정신과 심술은 습성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무의식적 일상에서의 심신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렇게만 내버려두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가끔 정신을 움직이고 심술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변화의 양면을 온전히 구가할 수 있다. [添] 주역서문(周易序文)

그러므로 정신의 운용과 마음씨의 움직임에서 체득해서 천지와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그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 뒤에야 역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故로 得之於精神之運과 心術之動하야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然後에야 可以謂之知易也라.

[경인일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발행일 2021-03-25  산 최정준  [출처] 마음씨의 움직임(心術之動)|작성자 몽촌

십년한창 [十年寒窓]

[十:열 십/年:해 년/寒:추울 한/窓: 창 창]

10년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寒窓).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한 세월.

[동]십년창하(十年窓下)

[출전]『귀장지(歸潛志)』

[내용]옛 사람이 이르길 10년동안 창문 아래 묻는 이가 없더니 한번에 이름이 나니 천하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

 

십보방초 [十步芳草]

[十:열 십/步:걸음 보/芳:꽃다울 방/草:풀 초]

열 걸움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   도처에 인재(人才)가 있다.

[출전]『설원(說苑)』

[내용] 10보 안에 반드시 방초가 있고, 10채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성스런 선비가 있다.

 

십일지국 [十日之菊]

[十:열 십/日:날 일/之:어조사 지/菊:국화 국]

국화는 9월 9일이 절정기 이니 십일 날의 국화, 무엇이나 한창 때가 지나 때 늦은 것.

[출전] : 정곡 (鄭谷)『十日菊』

[내용]

節去蜂愁蝶不知하고,

계절이 바뀌니 벌의 근심을 나비는 알지 못하고,

曉庭還折有殘枝로다.

새벽 정원엔 다시 꺾인 나무 가지가 남아 있구나.

自緣今日人心別한대,

인연이 오는 사람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데,

未必秋香一夜衰로다.

반드시 가을의 흥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로구나.

 

악목불음#[ 惡木不蔭 ]

惡 : 악할 악 木 : 나무 목 不 : 아닐 불 蔭 : 그늘 음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로, 덕망이 있는 사람 주변에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는 뜻

법가(法家)인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선비는 덕망이 있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나쁜 나무도 이것을 수치스러워 하는데 하물며 악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순자(旬子)》에는 ‘수음조식(樹陰鳥息)’이란 말이 나온다. 즉 나무에 그늘이 있어야 새가 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사람이 덕망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만한 대인관계에 힘쓰고 인격과 덕망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뜻에서 쓰인 말이다.

 

안불망위(安不忘危)
[요약] (安: 편안할 안. 不: 아닐 불. 忘: 잊을 망. 危: 위태할 위)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안정을 이루고 있을 때에도 마음을 놓지 않고 항상 스스로 경계함을 비유하는 말.
[출전]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 第四章》                                     

[내용] 이 성어는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 제4장에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孔子)가 말했다.
”위태한 자는 그 지위에 안주하는 자이고, 망하는 자는 살 것만을 생각하는 자이고, 난(亂)을 일으키는 자는 그 다스림만을 마음에 두는 자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편안하되 그 위태함을 잊지 않고, 생존하되 그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리되 난(亂)을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이 편안하여 국가를 보호할 수 있다. 
역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하여 새둥지가 떨어져 내릴까 걱정되어 뽕나무 가지에 새둥지를 묶어 놓는 듯 튼튼하다.’ 하였다”
子曰:「危者,安其位者也。亡者,保其存者也。亂者,有其治者也。是故君子安而不忘危,存而不忘亡,治而不忘亂,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易曰, ‘其亡其亡, 繫于苞桑.’

 

 

안정지길(安貞之吉)

安 편안 안     貞 곧을 정   之갈 지    吉길할 길

편안하고 정고해야 좋다

땅이 들썩인다. 주역에서 땅에 대해 이야기한 괘가 곤괘(坤卦)이다. 땅은 늘 하늘과 상대적인 관계에서 인식되어왔다. 이와 관련해 보면 꽤 많은 표현이 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다. 하늘은 열려 있고 땅은 닫혀 있다. 하늘은 양물이고 땅은 음물이다. 하늘은 말이고 땅은 소이다. 하늘은 경청하고 땅은 중탁하다. 하늘은 정신이고 당은 육체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등등 많은 표현이 있다. 곤괘에서는 땅에 대해 암말이라는 뜻으로 빈마(牝馬)라고 표현하였다. 말은 예로부터 굳세게 잘 달리듯 성격이 강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순한 소와 비교해서 하늘로 상징되었다. 하늘이 말이라면 땅은 그 말과 배합이 되어 생산을 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암말이라고 한 것이다. 이 암말이 뜻하는 것으로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땅은 하늘의 시간과 맞물려 돌아간다. 하늘이 사계절을 운행하면 땅은 그에 따라 만물을 내고 기르고 거두고 감춘다. 하늘의 춘하추동이 그대로 땅에서 발현되는 것이 생장수장이다. 이 중에 하늘과 차별적인 부분이 겨울이다. 겨울은 만물을 땅속에 품고 밖으로 내지 않는 계절이기 때문에 잉태의 개념으로 통변된다. 하늘은 이 잉태가 불가능한데 땅은 잉태가 가능하다. 잉태가 가능하지만 늘 하늘과 발을 맞춘다. 이런 두 가지 양상을 아우른 말이 암말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땅은 임산부가 그렇듯이 안정이 필요하다. 땅이 시끄럽게 들썩거리는 모습은 이런 차원에서 불안과 요동을 이끄는 흉조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籤] 周易 第二卦

 坤下坤上

坤, 元, 亨, 利, 牝馬之貞。 君子有攸往。

곤坤은 만물을 시작케 하는 근원이고, 만물을 형통하게 성장시키고, 만물을 촉진시켜 이롭게 하고, 만물을 완성시키는 암컷 말의 올바름이다。 군자는 나아갈 바가 있다。

彖曰 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坤厚載物 德合無疆 含弘光大 品物咸亨

牝馬地類 行地無疆 柔順利貞 君子攸行

先迷失道 後順得常 西南得朋 乃與類行 東北喪朋 乃終有慶

安貞之吉 應地無疆

단에 이르기를, 지극하도다. 곤은 으뜸이다. 만물이 바탕하여 생하니, 이에 순하게 하늘을 받든다.

곤이 두텁게 만물을 실음이 덕이 합하는데 경계가 없고 넓게 머금음이 크게 빛나서 만물이 다 형통하느니라.

암말은 땅의 무리이니 땅을 다님에 경계가 없으며, 유순하고 이정함은 군자의 행하는 바이다.

먼저 하면 아득해서 길을 잃고, 뒤에 하면 순해서 항상함을 얻으리니, 서남에서 벗을 얻음은 무리로 더불어 행함이요, 동북에서 벗을 잃음은 이에 마침내 경사가 있다. 안정된 바름의 길함은 땅에 응하여 경계가 없다[출처] 편안하고 정고해야 좋다(安貞之吉)|작성자 몽촌

애별리고(愛別離苦)

[요약] (愛: 사랑 애. 別: 헤어질 별. 離: 떠날 리. 苦: 괴로울 고)

불교의 여덟 가지 고통 중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을 말함.

[출전] 석현기()

[내용]

불교용어로 팔고(八苦) 중 하나이다. 팔고는 불교에서 중생들이 받는 여덟 가지 괴로움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지은 소행에 따라 현세에 대가를 치르거나 갚음을 받는다고 하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괴로움의 종류를 여덟 가지로 구체화한다. 팔고는 생고(生苦)·노고(老苦)·병고(病苦)·사고(死苦)·애별리고(愛別離苦)·원증회고(怨憎會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음성고(五陰盛苦)이다. 순서대로 앞에 네 가지 괴로움은 사고(四苦)라고 하여 인생의 네 가지 고통인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인한 아픔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별리고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원증회고는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하는 괴로움, 구부득고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오음성고는 오음(五陰)이 성하게 일어나서 만들어지는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별리고 [愛別離苦] (두산백과)

[경인일보][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애별이고(愛別離苦)

‘용두산 엘레지’ 화자처럼

아픔을 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

마음먹기 따라 열정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애별이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뜻한다. 부모 또는 이성과의 이별로 인한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특히 현재 열애에 빠진 정인과의 헤어짐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최근 대세 중의 대세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가창을 통해 대중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용두산 엘레지'(작사 최지수·작곡 고봉산) 노랫말에서 애별이고의 예를 찾아보자. 엘레지(elegy)는 슬프고 애잔한 노래인 비가(悲歌) 또는 슬픈 마음을 읊은 노래인 애가(哀歌)이다. ‘용두산 엘레지’의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용두산아 용두산아/너만은 변치 말자/한 발 올려 맹세하고/두 발 디뎌 언약하던/’.

용두산은 고유명사로서 사물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치 용두산을 사람에 비기어 사람처럼 생명과 성격을 부여하면서 의인화시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을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변치’ 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에는 ‘맹세’를 하거나 ‘언약’을 한다. 즉 손가락 걸고 맹세 다짐을 하거나 말로 굳은 약속을 한다. 그러나 인용한 곡의 화자는 한 발을 올려 서약하고 두 발을 디뎌서 언약한다. 아마도 화자와 연인은 계단을 오르며 밀어를 속삭이며 사랑의 맹세를 하는 듯싶다. ‘일백 구십 사 계단’을 함께 오르며 사랑을 다짐할 때 두 연인은 심장이 콩닥콩닥 숨이 가빠온다. 물리적으로 숨이 차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폭풍이 휘몰아치듯 사랑의 감정이 용솟음칠 것이다. 드디어 화자는 연인의 마음 깊은 곳에 ‘사랑 심어 다져’ 놓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화자의 과거 플래시백 회상이다. 이제 그는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과거 연인인 ‘그 사람은 어디 가고/나만 홀로 쓸쓸히도/그 시절 못 잊어/’ 괴로움과 슬픔에 젖는다. 절대 고독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교제 기간 동안 별리의 아픔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대체 연인에 대한 사랑의 가로 세로 깊이 넓이가 얼마나 방대하길래 ‘그 시절’을 이토록 잊지 못할까. 화자는 감격과 희열로 가득 찼던 연인과의 사랑의 순간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의 상실감에 괴로워 목 놓아 우는가 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같이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남녀 간 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좋아할 땐 질풍노도 같은 미친 사랑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증오로 바뀌면 변심하여 사랑의 파국을 맞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인과 ‘둘이서 거닐던’ 194 계단에서 확인한 사랑을 화자는 이렇게 상기한다: ‘즐거웠던 그 시절은/그 어디로 가버렸나/’. 아마 그는 광풍이 부는 광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름다운 사랑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그 어디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없다. 자신의 심장에 사랑의 꽃을 피우게 했던 연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쓰라린 작별의 엘레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꽃피던 용두산/아~아~아~아~용두산 엘레지’.

가수 이미자는 애별이고로 대변되는 엘레지의 여왕이다. 그녀 이후 오디션 우승과 함께 신데렐라로 등장한 송가인이 엘레지의 여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한 많은 대동강’ 등 그녀가 부른 비가는 이별의 슬픔을 온몸으로 그려낸다. 또한 최근 윤민수, 치타 등과 소름 돋는 환상적인 콜라보로 열창한 ‘님아’도 애절한 애가의 전형이다. 곡명 ‘용두산 엘레지’의 화자처럼 애별이고의 아픔을 쓸개처럼 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 마음먹기에 따라 열정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헤어짐의 쓰라림은 오히려 미래에 아름다운 사랑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발행일 2019-09-16 제22면[출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작성자 몽촌

애자필보(睚眥必報)

전국시대 위(魏)나라에서 태어난 범저(范睢)는 일세를 풍미할 만한 재능과 언변까지 갖추고 있었으나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를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 범저가 제(濟)나라로 파견되는 사신(使臣) 수가(須賈)의 수행원으로 참여할 일이 있었다. 제(齊)나라의 관원들은 정사(正使)인 수가보다 말단 수행원에 지나지 않는 범저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범저의 뛰어난 언변과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이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수가는 귀국하자마자 재상(宰相) 위제(魏齊)에게 범저가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무고(誣告)해 버렸다.

그로 인해 죽도록 매를 맞은 뒤 죽은 줄 알고 변소에 버려졌던 범저는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며 이름마저 장록(張祿)으로 바꾸고 숨어 지냈다.

범저는 그 후 진(秦)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왕계(王稽)의 도움을 받아 몰래 위나라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구변이 뛰어난데다 왕계의 추천까지 받은 그는 얼마 후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발탁돼 벼슬이 재상에까지 올랐다. 재상에 오른 범저는 자신을 버린 위나라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위나라에서는 수가를 진나라에 보내 군사를 거두어 줄 것을 교섭하게 했다. 수가 일행이 전쟁을 막기 위해 진나라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범저는 거지 행색을 하고 수가 일행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처참한 거지꼴을 하고 찾아온 범저를 알아본 수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비단옷을 한 벌 내주며 위로했다.

며칠 후 재상 공관으로 방문한 수가는 진나라 재상이 다름 아닌 범저임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웃통을 벗은 채 꿇어 앉아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범저는 그 자리에서 수가에게 망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놓고 각국의 사신들 앞에서 그의 죄악을 일일이 따지고 난 다음 자신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 위나라 재상 위제의 목을 베어 오지 않으면 위나라를 짓밟아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범저는 자신에게 비단옷 한 벌을 선물한 수가의 목숨만은 살려 주었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은 범저를 일컬어 “밥 한 술 얻어먹은 은혜도 반드시 갚으며(일반지덕필상:一飯之德必償 ), 남이 자신에게 눈 한 번 흘긴 자그마한 원한도 잊지 않고 갚는 사람”(애자지원필보(睚眥之怨必報))이라고 했다.<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출처 : 충청투데이(http://www.cctoday.co.kr)[출처] 눈 한 번 흘긴 자그마한 원한도 잊지 않고 갚다(睚眥必報)|작성자 몽촌

엄이도령 掩耳盜鈴

掩:막을 엄,    耳:귀 이,    盜:훔칠 도,    鈴:방울 령

‘귀를 가리고 방울을 훔친다’라는 뜻으로

제 귀가 들리지 않으면 남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짓을 일컬음.

눈 가리고 아웅하다.  엄이도종(掩耳盜鍾)이라고도 함.

진(晉) 나라 명문가에 범 씨(范氏)가 있었다.

무상하고 무심한 게 세월이라는 것처럼, 몇 세대를 거치면서 범 씨 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집안이 어수선하자 자연 도둑이 들끓었다.
어느 날 한 어리석은 도둑이 소문을 듣고 종을 훔치러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 종을 몰래 등에 지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종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 도저히 훔쳐내 올 수가 없었다.

별의별 방법을 다 궁리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하는 수 없이 종을 깨뜨려 조각 내어 가져가기로 하고 커다란 망치를 가져와 힘껏 종을 내리쳤다.
“쿵!”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낫다.

그는 깜짝 놀랐다.

누군가 소리를 듣고 달려와 종을 놓고 다툴 것만 같았다.

당황한 나머지 그는 얼른 자신의 귀를 틀어 막았다.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呂氏春秋(여씨춘추)에 나오는 寓話(우화) 한 토막으로 뻔한 사실을

가지고 또 얕은 수를 써서 남을 속이려 들 때 하는 말이다

 

여세추이 與世推移

 與:더불 여.     世:인간 세.   推:밀 추.    移:옮길 이

 세상의 변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함.

 후한 환제(桓帝) 때 왕조의 쇠운을 만회하기 위해  천하에 조서를 내려 정의로운 선비를 널리 등용했다. 

탁군(琢郡)의 최식(崔寔)이라는 사람도 천거되었으나, 

병을 칭하고 천자의 하문에 대한 책(策)을 바치지 않고 벼슬을 사퇴했다. 

그리고 정론(政論) 한편을 써서 공표했다.

“대저 성인은 집착하거나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변천에 따라 행동하는 것(與世推移)이나, 

범속한 선비는 융통의 재능이 부족하여 마음을 괴롭힐 뿐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당치도 않은 시세에 벗어난 언설을 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 있다. 

범속한 선비는 예컨데 태고적의 결승(結繩)의 정치(새끼로 매듭을 지어 일을 표시했다)나 

간우(干羽)의 춤(하의 우왕이 춤으로써 오랑캐족을 귀순시켰다)으로 

세상이 쉽게 다스려지는 것이라고 어느 시대에나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은 인정도 소박한데다 일이 간단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좋았지만  지금은 인간의 지혜도 발달하고  일의 줄거리도 복잡해졌기 

때문에 예전의 그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결승:《역경》<계사전 하(繫辭傳 下> 에 ‘상고결승이치(上古結繩而治)’라 했다. 

태고적 사람들이 순박하므로 아직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약속하는 일에 있어서 큰 일은 새끼의 매듭을 크게 만들고, 

작은 일은 새끼의 매듭을 작게 만들어 잊지 않도록 하여 그것으로 세상이 다스려졌다는 것이다.

간우《서경》<대우모(大禹謀)>에 

‘무간우우양계 칠순유묘격(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이라 했다. 

크게 문덕(文德)을 펴 간(干)과 우(羽)를 섬돌에 춤추게 하니 70일 만에 유묘가 이르렀다는 것이다.

연수육자(延壽六字)

(延끌 연   壽목숨 수   六여섯 욱    字글자 자)

목숨을 연장하는 여섯 글자 

조선 시대 대학자로 알려진 퇴계 이황 선생은 20대 주역 공부를 하다 병이 나서 깊이 파고들 수 없었다. 그 후에도 몸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서적을 보고 실험하였다. 명나라 주권이 저술한 ‘구선활인심법’을 읽고는 다시 정리한 책이 ‘활인심방’이란 책이다. 그 책에 보면 육자결(六字訣)이란 제목으로 호흡시 음성으로 건강을 예방하고 회복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먼저 신장이 안 좋으면 대체로 정이 부족하며 몸이 여위고 얼굴이 검고 생식기능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이 때는 호흡법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코로 공기를 들이마신 후 입으로 ‘취(吹)∼’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심장이 안 좋으면 심화(心火)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마음이 초조하고 번잡하거나 입과 목구멍이 부스럼이 나고 열이 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는 ‘훠(呵)∼’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간장이 안 좋으면 피로하고 해독능력이 떨어지고 눈과 관련된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이 때는 ‘휴(噓)∼’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폐장이 안 좋으면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는 ‘스( )∼’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비장이 안 좋으면 전체적인 장부 운화(運化)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는 ‘후(呼)∼’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삼초가 안 좋으면 ‘히()∼’ 소리를 낼 때의 입 모양을 통해 날숨을 내보낸다.

이상의 한글 음은 활인심방의 한글 표기를 따른 것이다.

현재 중국어의 발음과는 약간 상이하지만 중국에서는 기공으로 인식되어 육자결이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오행의 원리로 우주의 변화를 이해하기 때문에 음악이나 인체는 모두 통합적인 원리로 이해한다. 구체적으로는 오행과 음양의 원리로 이해하기 때문에 소리를 통해서도 인체의 장부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출처] 목숨을 연장하는 여섯글자(延壽六字)|작성자 몽촌

엽취명위(獵取名位)

* 獵 : 사냥할 렵. * 取 : 취할 취.   * 名 : 이름 명. * 位 : 자리 위.

– 이름과 자리를 사냥하듯 차지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도덕적으로 사람답게 바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또 한쪽에서는 ‘되는대로 재미있게 편하게 살자’라는 생각도 있다. 늘 두 가지 마음이 속에서 대결을 한다. 서로간의 세력은 반비례하여 한쪽이 강해지면 반대쪽은 약해진다.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자기가 굳게 마음 먹고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점점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만, 마음을 풀어놓고 되는대로 살면 점점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는 데는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지만 가정, 주변 환경 등이 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덕적인 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아주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도 점점 바르게 살게 된다. 조그만 잘못도 철저하게 반성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주변에 사람들이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면, 자기가 바르지 않은 처신을 하고서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 반성도 하지 않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원래 그런데 뭐 어때?’하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한다.

좋은 집안이라는 것은 벼슬이 많이 나온 집안이 아니라, 바른 사람이 많이 나오는 집안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고, 그 뒤 순자(荀子)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후세의 유학자들이 맹자는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으로 높였지만, 순자는 성인으로 높이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어느 말이 꼭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본래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되려고 노력하므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마음이 본래 악하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 점점 나쁜 줄을 모르게 되어, 사람들을 나쁜 길로 인도하게 된다.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지금 집권세력에서는 한동안 성폭력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다. 그러고도 세월이 지나자 합리화하여 지금은 잘못한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집권세력의 사람들은 그동안 공정하고 청렴한 것을 가장하여 많은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의 떨어진 구두 뒤축,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자의 대중교통 이용, 김상조 정책실장의 떨어진 가방, 박주민 의원의 헝클어진 머리 등은 한동안 언론 등에서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 김상조 실장의 떨어진 가방은 청와대에서 화제가 되어 대통령이 신기한 듯 만져보고 흐뭇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들이 한 짓은 대부분이 공정 청렴을 자기 지위 획득하는 데 이용했을 뿐이고, 실상은 공정하고 청렴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원래 정말 공정하고 정의롭고 청렴한 사람은, 이런 말들을 입에 올리지 않고,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대통령부터 이 정부 들어서는 유독 공정 정의 청렴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은 공정 정의 청렴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동방한학연구소장

[경남신문]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출처] 이름과 자리를 사냥하다(獵取名位)|작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