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자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논문을 보면서 좀 의아했다. 소행성 베누에서 가져온 시료를 분석한 내용으로 고농도의 염을 함유한 용액에서 여러 광물이 형성된 과정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같은 날 자매지인 ‘네이처 천문학’의 사이트는 베누 시료에 존재하는 분자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단백질 합성에 쓰이는 아미노산 20종 중에 14종을 포함해 아미노산 33종을 확인했고 핵산(RNA와 DNA)을 구성하는 염기 5종 모두가 존재했다.
좀 이상하게 느낀 점은 두 가지다. 먼저 아무래도 본지가 지명도가 높은데 왜 의미가 더 커 보이는 논문이 자매지에 실렸을까.
실제 언론에서도 ‘네이처 천문학’ 논문에 초점을 맞춰 ‘생명체의 흔적을 찾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다음으로 미항공우주국(NASA)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2016년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인 오시리스-렉스 미션의 성과를 사이트에 뉴스로 발표하는 정도로 조용히 넘어갔을까 하는 점이다. 생명체의 흔적을 찾았다면 놀라운 성과가 아닌가.
문득 2010년 전 ‘비소 박테리아’ 해프닝이 떠올랐다. 당시 NASA는 미국의 모노 호수에서 채취한 박테리아의 DNA가 인(P) 대신 비소(As)를 이용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논문 발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주기율표에서 인 바로 아래 있는 원소인 비소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지만 불안정해 화학자들은 DNA 뼈대를 이루는 재료로 쓰일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당시 NASA는 “외계생명체 발견 가능성이 커졌다”며 의미를 부풀렸고 이를 받아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몇몇 과학자들이 분석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NASA도 발을 빼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자 NASA가 외계생명체 관련 예산이 주는 걸 막으려고 무리수를 뒀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논문을 실은 학술지 ‘사이언스’ 역시 “저자들의 잘못된 행위가 없고 논문 철회를 요청하지 않았다”며 논문을 그대로 둬 비난을 받았다.
● 기대했던 결과 안 나와
‘네이처 천문학’에 실린 논문을 읽어보니 이번에 NASA가 자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행성 베누에서 상당량(121.6g)의 시료를 채취해 오염되지 않게 회수한 뒤 최첨단 기기로 분석해 1만 가지가 넘는 분자를 확인했고 그 가운데 생체분자 수십 종도 확인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생체분자 호모키랄성(homochirality)의 기원에 대한 문제다.
분자 가운데 상당수가 손이나 발처럼 생김새는 같지만 서로 겹치지 않은 쌍으로 존재한다. 이들을 키랄 분자라고 부르는데 서로 거울을 비춘 모습이다. 몇몇 생체 키랄 분자는 둘 중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고 이를 호모키랄성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단백질의 재료인 아미노산은 왼손잡이, 핵산의 구성 요소인 리보스는 오른손잡이 분자다. 이처럼 한쪽만 있어야 정보가 안정적으로 저장되고 생체 반응이 정밀하고 빠르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키랄 분자 쌍은 물리화학적 특성이 같고 따라서 생명체가 없는 환경에서는 같은 양으로 만들어지거나 분해될 것이다. 그럼에도 생명체가 있는 지구에서 주요 생체 키랄 분자가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게 된 과정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런데 아미노산과 리보스의 치우침이 생명체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정해졌다면 얘기가 쉬워진다. 초기 생명체가 이를 이용하며 극단화해 호모키랄성이 나온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앞서 키랄 분자 쌍은 물리화학적 특성이 같다고 했지만 몇몇 조건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원형편광으로 빛이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나선을 그리며 진행하는 현상이다. 빛 에너지가 관여하는 화학반응의 경우 원형편광의 방향에 따라 만들어지는 키랄 분자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
실제 분자가 만들어지는 성간 공간에서 원형편광이 관측됐고 운석을 분석한 결과 키랄 분자 쌍에서 한쪽이 더 많은 경우가 보고되기도 했다. 다만 운석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할 때 고열로 변형되고 오염도 일어날 수 있어 시료 자체를 믿을 수가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소행성 베누에서 채취해 회수한 시료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을 분석한 결과 유의미하게 치우친 종류가 없었다. 지구의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호모키랄성(왼손잡이 분자만 존재) 기원을 초기 지구에 공급된 소행성의 아미노산의 키랄성에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L(왼손잡이)-아이소발린의 치우침 데이터로, 소행성 베누(왼쪽에서 두 번째)는 오히려 R(오른손잡이)-아이소발린보다 4% 적은 것으로 나왔지만 다른 소행성 또는 운석 시료들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유의미한 치우침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제공
반면 소행성 베누의 시료는 온전할 뿐 아니라 양도 많아 연구자들은 농도의 비대칭을 기대했다. 예를 들어 존재가 확인된 단백질 아미노산 14종 가운데 키랄 분자 13쌍 모두 왼손잡이 분자 농도가 오른손잡이 분자 농도보다 유의미하게 높게(20% 이상) 나온다면 오늘날 아미노산의 호모키랄성은 생명체가 등장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초기 지구에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운석으로 떨어지며 생명체의 재료가 되는 분자를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밀한 기기로 분석한 결과 키랄 아미노산 쌍은 비슷한 농도로 존재했다. 우주에서 비생물적으로 만들어지는 생체분자는 물리화학적(열역학) 법칙을 따라 반반씩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모든 키랄 아미노산에서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초기 태양계가 왼손잡이 아미노산에 치우친 데 영향을 받아 지구에서 왼손잡이 단백질에 기반한 생명이 등장했다는 가설에 어긋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 연구자가 희생양 돼
지난주 ‘뉴욕타임즈’에 실린 과학 기사 목록을 훑어보다 깜짝 놀랐다. 베누 시료 분석 논문을 읽다 떠오른 비소 박테리아 해프닝의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한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10년도 넘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읽어봤는데 좀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2010년 NASA는 비소 박테리아 발견을 두고 “외계생명체 발견 가능성이 커졌다”며 기자회견까지 열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회견장에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실험을 주도한 울프사이먼도 나왔는데(맨 왼쪽) 반짝스타가 된 뒤 역풍을 맞아 학계에서 퇴출됐다. 그 뒤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최근에야 작은 프로젝트의 연구비를 확보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NASA 제공
기사는 2010년 연구를 주도한 미생물학자 펠리사 울프사이먼 박사가 그 뒤 겪은 일과 함께 근황을 들려주는데 한마디로 사건의 희생양이 돼 고생하다 이제 막 재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논문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불과 수일 사이 언론과 여론의 태도가 180도 바뀌면서 희생양을 찾았고 박사후연구원인 젊은 여성 과학자 울프사이먼이 걸려들었다.
인터넷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 외모(염색한 머리카락)까지 걸고넘어졌다. 결국 울프사이먼은 논문 발표 직후 실험실을 떠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로 옮겼지만, 연구비를 구하지 못하고 논문도 실어주는 곳이 없어 학계를 떠나야 했다. 이에 대해 울프사이먼은 “나는 (다들 피하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됐다”고 회상했다.
‘엉터리 논문으로 대중을 속였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울프사이먼은 미생물학자로서 실험에 최선을 다했지만 분석을 맡은 사람들의 전문성이 부족했다(참고로 논문 저자는 11명이다).
게다가 ‘사이언스’도 생물학에 초점을 맞춰 리뷰어(논문심사자)를 선정하는 바람에 이들이 화학분석의 엄밀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놀라운 결과’라고 평가하자 게재를 승인한 것이다. 당시 ‘사이언스’는 NASA가 이 논문을 “외계생명체의 증거”라는 식으로 부풀리자 당황했다고 한다.
이들의 잘못을 홀로 뒤집어쓰고 퇴출된 울프사이먼은 음대 대학원에 진학해 오보에 연주자와 파트타임 강사가 됐고(아마 청소년 시절 배웠던 것 같다) 바이오 스타트업 자문을 하거나 빵집 아르바이트(발효 과정이 있어 산업미생물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오클랜드주 밀스칼리지에서 과학세미나를 주관하는 일을 맡았고 그 뒤 연구 공간을 얻어 2024년 마침내 연구비를 타내는 데 성공했다.
울프사이먼의 연구 주제는 지구 자기장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미생물을 찾는 것이다(모터와 비슷한 원리). 독립영양체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화학반응과 빛에너지변환(광합성) 두 가지로 울프사이먼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세 번째 양식으로 획기적인 발견이다.
비소박테리아로 혼이 난 울프사이먼은 연구가 성공하더라도 ‘사이언스’ 같은 유명 학술지에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배지(근거)를 마련하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좋은 과학을 과학을 위해 하고 싶다”는 울프사이먼은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는 비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놀라운 발견은 다음 기회에…
소행성 베누 시료 분석 결과가 평범해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화성이나 엔셀라두스(토성의 위성)처럼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한때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천체에서 회수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키랄 생체 분자쌍이 한쪽으로 치우쳐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 분자의 기원 역시 소행성이나 혜성일 것이므로 만일 생명체가 없었다면 지구와 달리 여전히 반반씩 있어야 한다.
오시리스-렉스 미션 다음으로 유럽우주국(ESA)의 엑소마스 미션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착륙선 제작을 맡은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임무가 중단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수년 내 재개해 화성에서 시료를 채취해 가져오는 데 성공하고 모든 키랄 아미노산이 왼손잡이 분자 치우침을 보인다면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한때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야말로 큰 의미를 부여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