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

고난 앞에 오히려 강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이 습관

고난 앞에 오히려 강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이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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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언제나 활기차고 열정이 가득 넘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고난이 닥쳐도 오히려 더 강해지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무한한 동기부여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욕을 부여해 주는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가끔씩 의욕을 느끼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들은 의욕을 부여해 주는 루틴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한다는 점에서 남들과 다릅니다.즉, 가만히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의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활동으로 설계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루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심리학자 Nick wignall이 끊임없이 동기부여가 되고, 활기 넘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6가지 행동 패턴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 시간 IT 아웃소싱 플랫폼, 위시켓과 함께 Nick wignall이 말하는 동기부여를 루틴에 녹여내는 법을 알아보시고, 활기 넘치는 하루하루를 맞이해보세요.

1.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관리한다.

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이 다른 점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바로 에너지이다.
토마스 아놀드 (Thomas Arnord)

에너지는 동기부여에 있어서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과 습관 구축에 대한 대부분의 조언들을 보면,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과 요령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조언들에서는 업무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일상에서 시간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나누는 등 온갖 종류의 기술과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동기부여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의 문제라는 것.

여러분이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면, 여러분은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반대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에너지와 열정으로 충만하다면 엄청난 양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시간 관리에 대한 것은 잊으시고, 대신에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은 가장 재미있는 활동으로 하루를 시작하세요. 즐거운 활동은 여러분에게 하루 종일 기운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서 달려나갈 수 있는 것도 쉽게 만들어 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여러분이 정말로 좋아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소진되는 작업은 외부에 아웃소싱해보세요. 다국적 기업처럼 거창하게 아웃소싱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필수적인 작업이라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작업이라면 과감하게 아웃소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아낀 에너지와 의욕을 보상으로 얻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2.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다.

당신은 당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 다섯의 평균이다.
짐 론(Jim Rohn)

우리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의 사소한 관계 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동기부여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자신을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 금방 에너지와 의욕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과는 그저 잠깐 스치기만 해도, 여러분의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하루 종일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죠.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습관적인 기분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고 있다면, 여러분도 기본적으로 열정적이거나 에너지 넘치는 기분을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늘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의 열정과 의욕이 여러분에게도 전염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여러분 삶에서 보다 의욕을 느끼고 싶다면,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세요.

3. 자신의 성공을 축하한다.

좀 더 의욕이 충만해질 수 있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 거둔 성공을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성공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보상이 뒤따르는 행동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인간 심리의 기본 법칙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을 축하하고 의욕을 얻기 위해, 값비싼 물건을 사거나 성대한 파티를 열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 심리가 재미있는 점은, 보상의 크기보다는 그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은 보상이라도 즉시 손에 쥐는 것이, 나중에 커다란 보상을 받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최근의 인사평가에서 A를 받은 것에 대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말해보세요.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쳤다면, 사무실 문을 닫은 후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혼자서 작은 댄스파티라도 열어보세요.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고 난 다음에는, 예쁜 잔에 커피를 가득 따라서 맛있는 머핀과 함께 즐겨보세요.

일을 잘 마무리 한 다음에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여러분의 자존감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더 큰 성취욕을 가지게 만듭니다. 일을 잘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심리적인 논리 체계를 통해 스스로를 고취시켜보세요.

4. 실패에 대해서 관대해져도 괜찮다.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할 수 있는 용기이다.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실패나 좌절을 겪은 후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보다 의욕을 꺾는 데 있어서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의욕이 부족한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지른 후에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해거나 비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로 스스로 자책하고,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죠. 이런 잘못된 방식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좌절감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에너지나 의욕을 부여하는 것만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좌절하고 실패할 때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의 의욕을 관리할 줄 압니다.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스스로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네보세요. 자기 자신에게 공감을 보내고, 여러분은 그 정도의 실수에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여러분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혹시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이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 닥쳐도 보다 빠르게 털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5. 에너지 넘치는 환경을 만든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안에는 여러분 스스로가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의욕과 에너지를 느끼는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무 공간이 지저분하고 어지럽혀져 있다면, 쉽게 산만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고, 일에 대한 에너지를 잃기 쉽습니다.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것은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들에게 비장의 무기입니다. 목표에 보다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여, 더 많은 에너지와 의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 정리를 해두면, 집으로 돌아와 더욱 편안하고 깔끔한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업무 서류나 쓰고 난 물건들을 제자리에 잘 정리해두면, 나중에 필요시에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매일 저녁 퇴근하기 전에 책상을 정리한다면,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는 데 거슬리는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정리하는 데 1분씩만 들여도,
1시간을 벌게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단순히 의지력을 갖는 것은 의욕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습관만으로도 꾸준한 동기부여가 가능해집니다. 정리하는 습관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차이를 만듭니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도해보세요.

6. 아닌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노(NO)라고 말한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정하게 된다.
그렉 맥커운 (Greg Mckeown)

의욕이 낮은 가장 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예스(Yes)라고 말해서 의욕을 꺾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동기부여는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에너지로 가득 찼을 때, 우리는 의욕을 느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허비했다면, 정작 여러분에게 중요한 일을 위해 사용할 의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매일 저녁마다 2시간 동안 유튜브를 꼬박꼬박 시청해야 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취미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탁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예스(Yes)라고 말한다면, 스스로의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은 언제 만들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충분히 많은 의욕이 있습니다.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낭비하지 않도록 하세요. 동기부여라는 것은 대부분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면, 친구들이 제안하는 술자리에 노(No)라고 거절하고, 그날에는 온종일 사업제안서를 만드는 데 보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매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낭비한다면, 정작 중요한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지금 당장은 여러분이 무기력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글을 읽고 나서 한순간은 열정에 불타오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라는 엔진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싶다면 이를 습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루틴만 몇 가지 가지고 있어도, 여러분은 기쁜 순간이든 힘든 순간이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출처] https://www.wishket.com/news-center/detail/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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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

[윤석만의 인간혁명] 윤미향 ‘친일 프레임’ 소크라테스 죽게 한 궤변론과 같아 – 진실의 죽음

[윤석만의 인간혁명] 윤미향 ‘친일 프레임’ 소크라테스 죽게 한 궤변론과 같아

[윤석만의 인간혁명]진실의 죽음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목적을 위해 진실과 기억을 조작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명백한 사실로써 중대한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사과는커녕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매도합니다. 최근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의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문제를 지적했을 때 이 할머니의 기억을 문제삼거나, 목돈이 필요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낙인찍은 게 대표적입니다. 나중엔 여당까지 나서 친일 프레임을 만들었죠.
 
잘못을 인정 않고 부끄러움도 모르니 책임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이성적으로 지적한 사람은 바보가 되고 달콤한 말로 진실을 왜곡하고 선동하는 이들이 사회 주류인양 목소리를 높입니다. 마치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처럼 잘못한 자가 오히려 비판자를 몰아세우는 꼴이죠.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이미 2400년 전 아테네에서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과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과연 인간의 이성과 문명은 발전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

1787년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 육체보다 정신을 강조했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침대에 등 돌리고 고개숙여 앉아 있는 사람이 수제자인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무릎에 손을 얹은 이가 ‘절친’인 크리톤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1787년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 육체보다 정신을 강조했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침대에 등 돌리고 고개숙여 앉아 있는 사람이 수제자인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무릎에 손을 얹은 이가 ‘절친’인 크리톤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나자.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어디가 옳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 재판정의 한 노인은 이 같은 말을 남긴 채 독배를 들었습니다. 배심원 500명 중 280명이 첫 평결에서 유죄를, 360명이 다음 평결에서 사형을 언도했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한 불경 및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프레임이 씌어졌죠. 훗날 플라톤의 표현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는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이날 재판은 젊은 시인 멜레토스의 고발로 열렸습니다. 배후는 30인 참주정을 무너뜨린 민주정의 권력자 아뉘토스였고요. 정치적 반대파인 소크라테스를 제거하려던 의도였습니다. 시민들은 아뉘토스가 퍼뜨린 ‘가짜뉴스’를 진실로 생각해 ‘불경’이라는 추상적 죄목으로 사형을 내렸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거짓으로 고발돼 왔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것은 거짓말로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지도 않은 죄로 나를 비난한 사람들이다. (거짓 고발이기 때문에) 그림자와 싸워야 하고 대답할 자가 없는 상태에서 논박해야 한다. 내가 파멸 당하면 그것은 비방 때문이며, 앞으로 더 많은 선량한 사람을 죽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유죄도 무죄로 만들던 궤변론자

플라톤

플라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28세의 청년 플라톤은 어리석은 대중을 증오하게 됩니다. 훗날 그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비판하고 ‘철인정치’를 내세우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죠. 그리스 고전의 권위자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김헌 교수는 “시민이 지성과 인격 모두 합당한 자질을 갖출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었다”며 “모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모두가 권력 주체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죽고 14년 뒤(기원전 385년)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무죄를 규명합니다. “그가 불경한 짓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년들에게도 솔선수범을 보이며 스스로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겠는가?”
 
당시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로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의회·행정·사법의 3권이 모두 시민들의 아고라에 있었죠. 그런 이유로 대중을 설득하는 ‘수사학’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민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진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궤변론자로 불린 일부 소피스트는 돈만 주면 공공연히 있는 죄도 없게 해주겠다고 광고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품성),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논리적이면 로고스만 있으면 된다”고 했죠. 하지만 사람은 늘 감정과 편견에 휘둘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고, “고통스럽거나 즐거울 때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듯 감성에 끌려 결정”을 내립니다.
  

독선은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켜

그리스코드. 아고라 일대의 모습.오른쪽 붉은 기와의 건물이 아탈로스 주랑,가운데가 아고라 유적지,왼쪽의 신전은 헤파이스토스신전.이 신전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모신 곳으로 거의 완벽한 형태를 보존되어 있어 그리스 신전의 구도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스코드. 아고라 일대의 모습.오른쪽 붉은 기와의 건물이 아탈로스 주랑,가운데가 아고라 유적지,왼쪽의 신전은 헤파이스토스신전.이 신전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모신 곳으로 거의 완벽한 형태를 보존되어 있어 그리스 신전의 구도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뤼쿠르고스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아테네 10대 연설가 중 신분이 가장 높았던 그는 시민들의 신망이 높았습니다.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아테네군을 무찌르자 대부호였던 레오크라테스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 로도스섬으로 탈출합니다. 훗날 뤼쿠르고스는 그를 법정에 세우고 격정적인 연설로 “배신자를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법은 그를 처벌할 조항이 없었죠. 혼자 도망간 것이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순 있어도 반역죄에 해당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오크라테스는 불과 한 표 차이로 사형을 면합니다. 김헌 교수는 “합리적이었다면 여유 있는 표차로 무죄 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라며 “단 한 표차뿐인 것은 뤼쿠르고스의 말이라면 뭐든 믿어줄 준비가 돼 있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뤼쿠르고스는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존경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에토스와는 별개로 레오크라테스에 대한 공격이 비이성적이고 지나쳤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뤼쿠르고스의 말을 맹신했죠. 맹목적 믿음이 없는 죄도 있게 만든 것입니다.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대중 선동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앞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델포이 신탁에서 한 무녀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내가 지혜로워 이런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단지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옳고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자기의 무지조차 인식 못 하고 있다는 뜻이죠.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신에게 절대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명적 독을 품는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을 확신하는 사람은 절대 권력이나 맹목적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독선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영혼을 오염시키고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독단과 독선으로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거짓과 음모를 사실로 둔갑시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본질은 주관적 경험의 총합일 뿐이죠. 눈을 가리고 만진 코끼리의 형상이 제각각이듯, 경험적 사실은 애초부터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밀의 자유론적 비판

포퍼

포퍼

밀은 특히 “각 시대에는 수많은 주장과 의견이 잉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후회되는 경우도 많다”며 “과거가 현재로 부정되듯, 현재도 미래에 번복될 것이며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언젠가는 폐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밀은 ‘진리’나 ‘절대선’ 같은 표현을 쓰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독선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자유주의고요. 그래서 밀은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다양한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세상의 어떤 현자도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고 강조하죠.“반증 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칼 포퍼의 말과 비슷한 맥락이죠.
  

옳고 그름은 이성, 좋고 싫음은 감성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서초달빛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서초달빛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실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경험이 하나의 단편적 사실이라면, 진실은 전체의 모자이크입니다. 진실에 닿으려면 최대한 많은 사실 조각을 모아야 하죠. 수많은 주장과 논증이 오가고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진 뒤에야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말한 ‘사상의 시장’과 같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실이 패할 일은 없다”는 것이죠.
 
요컨대 진실을 위해선 수많은 의견과 논박이 있어야 하고 그 토론에는 이성과 논리가 전제돼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에토스를 가진 사람 또는 집단이라고 해서 무조건 맹신해선 안 되며, 달콤하고 선동적인 언어에 취해 감성적 결정을 내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에토스와 파토스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성은 ‘좋고 싫음’의 취향을 결정할 때 쓰는 것인데,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리는 데까지 쓰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스타일의 커피를 갈아 마시듯 ‘정의(正義)’를 취향처럼 소비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린 오직 논리만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제일 먼저 ‘모든 권리를 문프께 양도한’ 광신적 팬덤과 각종 음모론을 생산하는 극우 유튜버를 걸러낼 수 있어야겠죠. 또 밀턴의 사상의 자유·공개 시장처럼 사실의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특정 프레임을 씌워 토론 자체를 입막음 하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윤미향 비리 의혹에 친일 프레임

논란 키운 윤미향 당선인의 해명.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논란 키운 윤미향 당선인의 해명.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정의기억연대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과 이들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정의연에 대한 비판을 친일로 매도하는 것은 로고스로 판단해야 할 일을 파토스를 끌어들여 본질을 흐리는 것입니다. 대중을 홀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간 궤변론자들의 교묘한 수사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게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지 알기 위해선 로고스가 필요합니다. 제일 먼저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A의 부정과 비리를 의심할만한 사실들이 제기되면, A는 무죄를 입증할 만한 사실적 논거로 반박하는 게 정석입니다. 그렇지 않고 ‘보수 언론의 모략’이라거나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공격’이라며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반박할 논거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이 프레임 또한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견’을 사실처럼 받아들여 A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플라톤이 말한 ‘중우’에 가깝습니다. 사실에 대한 반박은 사실로써만 가능합니다. 의견을 냈으면 이를 뒷받침할만한 논거 역시 사실에 기인해야 하고요.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볼 수 있는 혜안만 갖고 있어도 프레임을 내세워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2400년 전 아테네의 시민들과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현대인이 알고 있는 절대적 지식의 양은 늘었지만, 우리가 더욱 지혜롭고 성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sam@joongang.co.kr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399). 절대 진리를 강조했고 탐구방법으로 귀납적 문답(산파술)을 제시했다. 정신을 강조한 그의 철학은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어졌다. 공자처럼 책을 직접 쓰지 않고 제자들이 기록을 남겼다.
 
플라톤

플라톤

플라톤

 (기원전 427~347).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일 뿐”이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이 구축한 이데아와 현실의 이분법은 니체에 의해 깨질 때까지 이천년간 공고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이상을 좇던 스승과 달리 현실 세계를 중시했다. 그 결과 철학, 수학, 문학, 천문, 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로 학문의 아버지라 불린다.
 
존 밀턴

존 밀턴

존 밀턴

 (1608~1674). 서사시 ‘실낙원’을 쓴 영국의 시인. 셰익스피어에 준한다는 평가다. 그가 쓴 『아레오파지티카』는 천부인권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는 존 S. 밀의 『자유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윤석만은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출처: 중앙일보] 윤미향 ‘친일 프레임’ 소크라테스 죽게 한 궤변론과 같아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8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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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

일상 ‘행복’과 ‘성공’, 두마리 토끼 잡는 방법은?  스티브 잡스가 매일 아침 수련한 ‘이것’

일상 ‘행복’과 ‘성공’, 두마리 토끼 잡는 방법은? 

스티브 잡스가 매일 아침 수련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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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목적 지향적·유위(有爲)적 삶 속에서 살았다. 전 세계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Yes, we can!’ 구호가 말해주는 성과주의적 삶, 긍정과잉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소진되고 실존적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노력하는 데도 불만스럽고, 부족하며, 허기지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휴일을 맞아도 휴가철 리조트로 놀러가도 우리 마음은 종일 잠시도 쉬지 않고 에너지를 소모시켜왔다.
시대마다 고유 질병이 존재한다. 100년전 인간의 주요 질병이 박테리아?바이러스성 등 세균성 질환이었다면 지금은 암, 심장병, 우울증 등 비세균성 질환 시대다. 마음에서 비롯된 병들이 대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21세기 ‘정신없이(mindless)’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신 차리고(mindful)’ 살아갈 수 있을까. 
일상의 행복과 성공, 두 마리 토끼를 과연 잡을 수 있을까.  그렇게 열심히 사는 당신에게 나는 ‘애플 신화의 창조자’ 스티브 잡스의 명상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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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10대 시절, 고향 샌프란시스코의 선(禪)명상 센타에서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을 접한 뒤 평생 매일 수련하면서 모든 스트레스와 인생의 질곡을 극복하고 심신의 건강, 행복과 함께 세계적 성취를 이뤄냈다.  
비록 그가 56세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떴지만 그는 우리 같은 범인 수백~수천만명이 평생 해도 이루지 못할 일을 성취해 냈다.
스티브 잡스가 신봉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은 초기 불교(소승불교)의 마음수행 전통에서 유래한 명상법의 하나로 동남아에서 ’위파사나‘ 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다.
우리 대승불교에서 행하는, 특정 대상에 고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집중명상(concentrative meditation)과 달리, 모든 대상에 마음을 열고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림(awareness)’을 중시하는 통찰 명상(insight meditation)이다.
196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과학적·의료적 체계를 갖추게 됐고, 무엇보다도 바쁜 현대 생활에 맞춰 언제 어디서 단 몇 분의 짧은 시간에도 할 수 있도록 간편화됐다. 일종의 ‘휴대용(portable) 명상’으로 진화됐다.
마음챙김은 늘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강박’에 쫓겨 사는 우리의 ‘행위양식(Doing Mode)’를 ‘비행위양식(Non-Doing Mode)’으로  바꾸라고 권유한다. 유위(有爲) 대신 무위(無爲)로 기어 변속을 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속세를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바로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짬을 내 마음챙김을 하라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집, 심지어 지하철이나 걸어가면서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평정, 기쁨, 행복, 지혜, 통찰력을 얻게 된다. 마음챙김 명상은 세속을 넘어선 구도(求道)가 아니라 세속에서 구도를 찾는 길이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일어나 20~25분간 명상을 수련해왔다. 그는 평소 명상 속에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을 관찰하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에 더 미묘한 것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때 바로 직관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더 명료하게 사물을 보게 되며, 더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유튜브 영상: 스티브 잡스의 20분 명상 (클릭해 보세요)

 
        ◇ 스티브 잡스의 20분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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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장소와 앉기 <그림 1·2 참조>
▶ 조명은 어둡게, 창문은 닫자. 은은한 아로마 향초 정도는 적당하다.
▶ 방석은 두 개 준비해 하나는 깔고 다른 하나는 반을 접어 엉덩이 아래쪽에 받친다. 무릎보다 엉덩이 높이가 올라감으로써(7~15㎝) 자세가 안정된다.
▶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최근에는 각자 ‘편한 자세’로 앉는다. 의자에 앉아도 좋다.
▶ 눈은 감고 등은 곧추세운다.
▶ 턱은 낮추고 어깨의 힘은 빼고 손은 편안하게 둔다.
  
   ② 몸 풀기 <그림 3 참조>
▶ 명상의 준비운동이자 명상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깊게 숙여 몸을 늘린다.
▶ 양손도 앞쪽으로 길게 뻗고, 머리도 충분히 앞으로 숙여서 늘여준다.
▶ 앞쪽으로 뻗었던 손을 끌어당기며 역순으로 아주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15~20초)
  
   ③ 인(印) 맺기 <그림 4 참조>
▶ 양손은 엄지와 검지 끝을 맞대어 둥근 원을 만들자. 이어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수인(手印)을 만든다. (인은 명상하다가 조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깜박 졸면 인이 풀린다. 나중에 명상에 익숙해지면 손을 무릎 위나 배꼽 아래 단전에 둔다.)
  
   ④ 호흡하기 <그림 5·6 참조>
▶ 먼저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힘껏 내뱉는 가슴 호흡을 몇 번 하다 호흡이 안정되면 복식호흡으로 들어간다. 다른 신체 부위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아랫배로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⑤ 정식 명상하기
▶ 등이 곧게 펴진 자세를 다시 확인한다.
▶ 명상이 시작되면 마음속으로 자신의 ‘만트라(주문)’를 외운다. 천천히 호흡에 맞춰서 정성을 다해 만트라를 암송한다.
▶ 명상 도중 온갖 잡념이 떠올라도 따라가지 않는다. 설령 따라갔더라도 이를 알아채고는 곧바로 만트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잡념에 대해 마음속으로 ‘절대 하면 안 돼!’라고 부정·억압해선 안 된다. 단지 ‘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마음으로 그 생각을 인정하고 흘려보내라. 즉 지나가는 구름처럼 잡념을 바라만보라.
▶ 이렇게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조절하면서 15분간 명상에 몰입한다.   
   ⑥ 통찰명상하기
▶ 마음이 매우 고요한 상태에 이르면 성찰과 통찰의 공간이 생긴다. 내 앞에 환한 빛이 비추는 느낌이나 얼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 더 이상 만트라가 필요 없으며 통찰을 시작한다. 직관력과 명료함을 체험하면서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여러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명상의 핵심이다. 명상은 호흡에 주의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코를 통한 호흡의 드나듦을 관찰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원하는 특정 주문이나 진언(眞言)을 외는 만트라 명상을 할 경우 고도의 주의력 집중이 된다. 보통 호흡명상의 패턴은 △1단계: 호흡 주의 △2단계: 주의 이탈 알아차림 △3단계: 주의 호흡 복귀의 순환을 거듭한다. 2단계와 3단계를 거치면서 알아차림·생각 놓기·주의력 복귀와 집중 근육이 강화된다. 거듭할수록 주의 이탈은 적어지고 호흡에 집중되면서 번뇌와 잡념에서 극복하게 된다.

  
   ⑦ 끝내기 <그림 7 참조>
▶ 명상 시작 때 하던 워밍업을 다시 한다.
▶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바닥에 붙이면서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숙인 다음 충분히 앞으로 뻗는다.
▶ 다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정좌 좌세로 돌아온다.
▶ 이때 내부로 향했던 내 의식도 현재 의식으로 돌아온다.
  
   ⑧ 휴식 취하기
▶ 현재 의식으로 돌아온 뒤 감았던 눈을 뜨고 천천히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
▶ 두 다리를 쭉 뻗거나 그 자리에 눕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도 된다. 
[출처] http://mindgil.chosun.com/client/board/view.asp?fcd=F1031&nNewsNumb=20200569145&nCate=C01&nCateM=M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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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

환경보호 기술 쏟아지지만 기후변화는 계속된다…기술이 정말 지구 구할까

환경보호 기술 쏟아지지만 기후변화는 계속된다…기술이 정말 지구 구할까

2020.04.24 06:00
캐나다 스타트업 ′카본 엔지니어링′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바로 땅속에 저장하기 위해 계획 중인 대규모 이산화탄소 포집기의 상상도다. 기후변화를 막을 기술은 아직 상용화에 접어들지 못했음에도 전 세계와 각국의 배출 감축 목표에 포함되고 있다. 카본 엔지니어링 제공

캐나다 스타트업 ‘카본 엔지니어링’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바로 땅속에 저장하기 위해 계획 중인 대규모 이산화탄소 포집기의 상상도다. 기후변화를 막을 기술은 아직 상용화에 접어들지 못했음에도 전 세계와 각국의 배출 감축 목표에 포함되고 있다. 카본 엔지니어링 제공

1970년 4월 22일 지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지구의 날’이 제정된 후 인류는 기후변화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했다. 지난 1992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회의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체결했고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으로 이어졌다. 이들 협약이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전세계 의지를 담았다면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도구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됐다. 이산화탄소 포집기술(CCS)과 바이오에너지 기술, 지구공학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지구를 지키려는 국제적인 노력과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지구 환경 파괴는 걷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독일 함부르크대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를 비롯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50년 북극에서 여름철 해빙이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지난 2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그린란드 빙하가 녹는 속도가 1990년대보다 7배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기술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인류의 낙관적 믿음이 오히려 더 강력한 대응과 실천을 미루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따끔한 경고가 나왔다.

● 기후변화 정책, 새 기술 나올 때마다 다섯 단계로 진화

던컨 매클라렌 영국 랭커스터대 환경센터 교수 연구팀은 이달 20일(현지시간) 기후변화 정책과 기술 발전이 함께 이뤄진 결과 기후변화를 막는 강력한 실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 정책이 새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다섯 단계로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가장 앞서 열린 리우회의에서는 기후변화를 완화할 기술적 방안으로 원자력 발전과 에너지 효율 개선이 제시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각국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인 탄소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합의과 전략 마련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이산화탄소 포집기술(CCS)’이 나오자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은 2012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보다 평균 5.2% 줄이자는 정책 방향을 명시했다.  CCS는 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모은 뒤 높은 압력으로 액체로 만들어 땅 속에 묻는 기술이다.

CCS는 다시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기술(BECCS)’ 기술로 거듭났다. BECCS는 이산화탄소를 잘 빨아들이는 나무를 키워 바이오매스로 태워 에너지를 얻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다시 CCS 기술로 저장하는 기술이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회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15)에서 BECCS가 소개되며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100만분의 1)으로 낮추는 계획이 제시됐다. 협약은 결국 무산됐지만 이산화탄소 농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개념이 출현했다.

지난 2012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구가 지금까지 배출한 탄소 전체를 관리하자는 ‘탄소예산’이 등장했다. 지구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을 2900Gt(기가톤·2조9000억t)으로 억제하자는 내용이다.  2011년까지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1900Gt로 추산됐다. 탄소예산이 등장한 배경에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제안된 다양한 기술들이 있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땅에 뭍는 기술과 식물을 심어 이산화탄소 저장량을 늘리는 방안, 나무를 가열해 만든 ‘바이오 숯’으로 탄소를 대량 흡착하는 기술들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지난 2014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5차 종합보고서에는 ‘지구공학’이라는 기술이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구공학은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기온 등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기술이다. 당시 보고서는 여러 지구공학기술 가운데 태양복사관리(SRM)에 주목했다. 데이비드 키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이 제안한 대기에 에어로졸 입자를 뿌려 햇빛을 차단하는 기술이 대표기술로 손꼽힌다.

● 강력한 실천 유예시키는 ‘기술 착시 효과’

문제는 이들 기술이 제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데도 IPCC보고서나 각국 기후정책에 무분별하게 예상 배출 감축량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기술 착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기술로 손꼽히는 CCS만 해도 여전히 ‘유망주’에 머물고 있다. 각국은 아직 CCS의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는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6년 발간한 보고서는 CCS가 이산화탄소 감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일기술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 보고서조차 2050년에서야 총 감축량 중 14%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클라렌 교수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아직 효과가 나타난 기술이 없음에도 예측치 분석이나 정책시나리오 모델에 계속 포함되면서 각국이 기후변화 관련 강력한 실행 조치를 미루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만 탄소 배출 감축 의무를 부여하고 기후변화를 되돌리기엔 목표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코펜하겐과 도하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각국은 기후변화 대응 기술 도입에 따른 부담을 빌미로 새 합의를 차일피일 미뤘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2016년 파리협약 이행을 위해 제시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보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기술(CCUS)을 통해 온실가스 2820만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제시됐다. CCUS는 이산화탄소 포집과 이를 유용한 물질로 전환하는 기술을 아우르는 용어다. 하지만 2018년 발표된 새 로드맵에서는 감축분은 1030만t으로 줄었다. 하향된 목표치마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30년까지 추진하는 ‘ECC2030’ 사업이 지난해 예비타당성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추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매클라렌 교수는 “기후변화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 최근 40년간 기술은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해 왔다”며 “새 기술이 기존 기술들과 경쟁하며 효율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상황이 긴박하다는 의식마저 희석해 의미 있는 대응을 지연시켜 왔다”고 말했다. 매클라렌 교수는 “신기술에만 희망을 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며 “실질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정치, 사회, 문화의 변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6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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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

‘로봇vs인간’의 전쟁, 평화 가능할까  

‘로봇vs인간’의 전쟁, 평화 가능할까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65년 동안 지속된 긴장과 갈등의 체제를 끝낼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죠. 특히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향후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됩니다. 이젠 전쟁의 상처를 모두 씻고 평화의 미래만 그릴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반복이었습니다. 처음 지구상에 인간이 태어나고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면서 인간집단 간의 반목과 갈등은 수없이 계속됐습니다. 3만5000년~4만 년 전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전쟁도 마찬가지였죠. 전쟁의 양상은 후반부로 갈수록 사피엔스의 네안데르탈인 학살로 진행됐습니다. 사회성이 뛰어난 사피엔스가 ‘팀워크’를 발휘해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한 것이죠. 결국 유럽 대륙에 먼저 정착해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에게 삶의 터전을 뺏기고 종들의 전쟁에 밀려 지구에서 멸종됩니다.  
 
 이처럼 현생 인류는 침략과 정복의 토대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문명이 태동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전쟁 ‘트로이’를 다뤘습니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죠. 이후 역사책을 장식한 대부분의 내용도 전쟁과 제국의 역사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진의 시황제, 몽골의 칭기즈칸 등 오늘날 위인으로 칭송받는 이들의 상당수가 누군가에겐 영웅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침략자였습니다.  

일리아스에 나온 전쟁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

일리아스에 나온 전쟁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

 그런데 미래 사회에도 엄청난 전쟁 가능성이 예고됩니다. 바로 인간과 로봇의 전쟁입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많은 이들이 경고를 하고 있죠.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100년 후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세계 정부를 구상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처럼 전쟁이 벌어지면 로봇의 전력이 월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조만간 다가올 ‘특이점(singularity)’ 때문입니다. 원래 물리학 이론인 특이점은 부피는 0이 되고 밀도는 무한대로 커져 블랙홀이 되는 순간을 뜻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구글 기술책임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는 책에서 처음 정리한 개념입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특이점이 2045년 전후에 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렇다면 미래 ‘인간 vs 로봇’ 전쟁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오늘 ‘인간혁명’은 SF ‘미드’의 수작으로 불리는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이야기로 특이점 이후의 시대를 조망해보고자 합니다. 잠시 미지의 먼 우주 공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시죠.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드라마는 ‘12 콜로니’라 불리는 행성 집단에서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이 때 인간은 지구가 아닌 여러 행성에 나뉘어 살고 있었죠. 그리고 인간의 궂은 일 대부분을 ‘사일런(cylon)’이라 불리는 인조인간이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이죠. 하지만 어느 날 사일런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사일런은 인간보다 월등한 사고와 신체 능력을 갖고 있었죠. 전쟁에서 강력한 공세를 펼치는 사이런을 인간은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엔 그들이 살고 있던 모든 행성에 수소폭탄이 떨어져 멸종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오래된 구식 전함인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그 안에 타고 있던 5만명의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드라마는 우주 어딘가에 인간의 원조 행성 ‘지구’가 있다는 전설을 따라 탐험을 떠납니다. 그러다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진 한 원시 행성에 도착하죠. 이 곳엔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대로 된 언어도 없이 초기 부족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이곳에 온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인간들은 불행한 전쟁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들이 높은 과학기술을 폐관(閉關)합니다. 그 대신 이 행성의 이름을 ‘지구’라고 붙인 후 원주민과 동화해 자연의 상태로 살아가죠. 그리고 15만 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 사이 원주민의 문명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들 역시 과거 사일런과 같은 AI를 만들어 냅니다. 이 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영화는 15만 년 전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인간이 살고 있었고, 이들이 로봇과의 전쟁에서 패해 지구로 오게 됐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원주민의 문명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현재와 같은 과학문명을 이루게 됐죠.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사일런 때문에 지구로 쫓겨 왔던 인간의 후손들이 다시 그와 같은 AI를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플레이를 누르면 재생됩니다. [유튜브]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인간과 로봇의 우주전쟁을 그리고 있다. [미국 Syfy 채널]

 4개의 시즌으로 완료된 이 드라마는 사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전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에겐 파괴와 침략의 본능이 내재돼 있죠. ‘총, 균, 쇠’의 저자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제3의 침팬지’에서 사람과 침팬지의 DNA가 98.4%는 같고, 1.6%만 다르다고 합니다. 700만 년 전 하나의 종에서 갈려나온 두 종은 현재까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침팬지가 갖고 있는 폭력성이 인간에게도 내재돼 있는 것이고요.  
 
 문제는 인간이 만드는 AI도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겁니다. AI는 잘 짜인 알고리즘입니다. 알고리즘은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죠. 사람들은 같은 문제를 풀더라도 서로 다른 해법을 갖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든 가장 정확하고 빠른 해법이 존재하죠. 같은 문제라도 어느 방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집니다. 알고리즘은 다양한 해법 중 가성비가 가장 높은 최적의 경로를 찾도록 설계돼 있고요.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페이스북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을 추천하고, 넷플릭스가 감쪽같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만 골라 리스트로 보여주는 것도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추천 서비스가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고, 기업 입장에선 최적화 된 콘텐트를 보여줘야 매출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의 기본 패턴을 좇아 콘텐트를 추천하기 때문에 평소에 자신이 가진 취향과 생각만 더욱 강화되는 거죠. 이는 장기적으로 개인의 주관과 인식을 왜곡시켜 보편적인 것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것만 옳다고 여기며 자신과 다른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는 올바른 사고의 발전을 가로막고 결국엔 나와 타인을 분리해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죠.  
 
 조슈아 그린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옳고 그름’에서 인간이 벌이는 전쟁의 원인이 자기 확신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과 다른 ‘우리’가 강조되고, 우리의 도덕적 가치와 철학을 확신할수록 ‘그들’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상대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들 때 ‘제3의 침팬지’가 가진 폭력성이 극대화 됩니다. 즉,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폭력성은 지나친 자기 확신과 이를 통한 구분 짓기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입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AI도 인간의 취향과 본성에 맞춰가는 알고리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확증편향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AI도 인간처럼 자신을 타자와 분리해 생각하고 인간을 ‘그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AI가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면 ‘배틀스타 갤럭티카’처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요.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미래의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요? 합리적 이성과 도덕적 가치, 그 안에서 파생된 제도와 문화의 힘이 어두운 본성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전쟁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와 남을 구분 짓고 편을 가르는 ‘자기 확신’부터 근절해야겠죠.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지적한 알고리즘의 문제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죠.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내용들을 보면 인간의 교양과 지혜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마치 ‘적’을 대하듯 하고, 내 생각과 다르면 모두 ‘거짓’으로 모는 행태는 타인을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 갉아먹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빅데이터로 모여 AI가 학습하게 된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알고리즘적 확증편향이 미래 AI 로봇들에게도 그대로 심어질 수 있는 것이죠.  
 
 20세기의 대석학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념만 옳다고 믿는 독선이 ‘악’보다 위험하다는 이야기였죠. 독선은 선을 가장해(위선)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악에 물들입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 한 ‘장미의이름’. 작품 속엔 중세의 몰락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담겨 있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 한 ‘장미의이름’. 작품 속엔 중세의 몰락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담겨 있다.

 인간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미래 로봇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그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일 뿐이라는 ‘오픈 마인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남북의 정상과 그들을 응원하는 양측의 국민 모두 이런 마음을 가져야만,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의 이권 다툼 속에서도 한반도의 밝은 내일을 약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과 로봇’, ‘인간과 인간’의 평화는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그 원리는 같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로봇vs인간’의 전쟁, 평화 가능할까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2578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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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

[윤석만의 인간혁명]코로나 리더십과 과학 

양자역학 어벤져스, 메르켈은 있고 트럼프·아베는 없는 것
[윤석만의 인간혁명]코로나 리더십과 과학 

과학계의 ‘어벤져스’가 모인 1927년 솔베이 회의.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탔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막스 플랑크와 마리 퀴리, 헨드릭 로렌츠, 알버트 아인슈타인. 둘째줄 맨 오른쪽은 닐스 보어, 셋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다. [위키피디아]

과학계의 ‘어벤져스’가 모인 1927년 솔베이 회의.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탔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막스 플랑크와 마리 퀴리, 헨드릭 로렌츠, 알버트 아인슈타인. 둘째줄 맨 오른쪽은 닐스 보어, 셋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다. [위키피디아]

등장인물·이론
알버트 아인슈타인

알버트 아인슈타인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양자역학’ 6일간 토론
과학의 왕좌는 이성·논리로만 차지
17C 교회 ‘지동설’ 주장 학자 화형
지금은 정치가 과학적 사고 배척

 (1879~1955) 베른의 특허심사관이던 26세 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는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과학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이후 중력장방정식으로 불리는 일반상대성이론과 광자론, 통일장이론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기틀을 다졌다.
 

중력장방정식

중력장방정식

중력장방정식
뉴턴이 중력 현상을 발견했다면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원리를 규명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중력이 시공간을 뒤트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정리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명명했다. 훗날 빅뱅과 블랙홀 등을 설명하는 기초이론 중 하나가 됐다.
 

광자(光子)론

광자(光子)론

광자(光子)론
빛의 본질이 파동이라는 것은 오랜 불문율이었다. 반대로 뉴턴은 빛이 알갱이라는 가설을 처음 제시했고 아인슈타인이 규명했다.(1921년 노벨상) 광자론은 양자역학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인 전자도 파동의 성격을 갖는다.
 

코펜하겐 학파

코펜하겐 학파

코펜하겐 학파
닐스 보어(1885~1962)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 폰 노이만(1903~1957) 등이 주축이 된 학파. 원자 같은 미시세계의 물리량은 뉴턴역학에서처럼 확정된 값이 존재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양자역학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난민 신분으로 이주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사진)과 엔리코 페르미. [중앙포토]

난민 신분으로 이주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사진)과 엔리코 페르미. [중앙포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시대적 명언이 나온 1927년 솔베이 회의는 ‘전자와 광자(光子)’가 주제였습니다. 빛도 입자라는 광자론에서 발전한 양자역학의 학문적 기틀을 다지는 행사였죠. 기부자의 이름을 딴 솔베이 회의는 물리·화학계의 권위 있는 행사로 이날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탔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인슈타인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신진 물리학자 그룹인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 이론을 공식 인정하는 자리였습니다. 양자역학은 뉴턴역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미시 세계를 다룹니다. 빛이 알갱이(광자)이듯, 입자도 파동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위치 등 정확한 상태를 규정할 수 없고 오직 확률로만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원자모형’으로 유명한 닐스 보어는 이를 원자에 적용합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주변을 도는 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때 전자는 특정 궤도로만 움직이는데, 어느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가려면 그냥 뛰어넘어야(퀀텀점프) 합니다. 특히 전자 같은 미세 입자는 관측 시 광자에 부딪혀 상태까지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어의 이론에 아인슈타인은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우주에는 명확한 인과법칙만 존재할 뿐, 확률과 같은 애매한 이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관찰 행위에 따라 대상의 실재가 바뀐다는 보어의 주장에 대해선 “달을 보지 않는다고 달이 없는 것이냐”며 강하게 비판했죠. 자연에는 명확한 ‘신의 뜻’이 있을 뿐 주사위 놀이 같은 우연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자모형.내부 원 안에 있는 것은 원자핵이며 세개씩 뭉쳐 있는 것은 쿼크들이다.외부 원에 있는 점은 전자들이다.

원자모형.내부 원 안에 있는 것은 원자핵이며 세개씩 뭉쳐 있는 것은 쿼크들이다.외부 원에 있는 점은 전자들이다.

그러자 보어는 과학계의 대선배에게 “신이 뭘 하든 그냥 놔두라”며 맞섰습니다. 곧바로 회의장은 아인슈타인과 보어·하이젠베르크 등 젊은 과학자들의 논쟁터가 됐습니다. 6일 동안 열린 회의에서 매일 아침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모순을 지적하는 문제를 냈고, 저녁이면 젊은 학자들이 해답을 내놨습니다.
  
과학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런 과정을 거쳐 양자역학은 더욱 정교해졌고 현대 물리학의 주축이 됐습니다. 반대로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골리앗(아인슈타인)은 수많은 다윗들의 도전으로 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죠. 질서정연한 우주를 설명하는 완벽한 법칙을 꿈꿨던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논리와 증거로 무장한 양자역학을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양자역학은 주위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우리는 양자역학 없이 살 수 없다”는 김상욱 경희대 교수(물리학)의 말처럼 오늘날 양자역학은 반도체, 원자력, 양자컴퓨터 등의 핵심이론이 됐습니다.
 
과학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떤 권위적 이론도 반증이 나오면 왕좌의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논증과 논리만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죠. 제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이론과 석학의 주장도 합리적인 반증 앞에선 무릎을 꿇습니다. 이처럼 현상을 탐구해 가설을 세우고, 논증과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학적 사고’는 근대 문명의 발전에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역사, 과학과 신』에서 “17세기 과학혁명은 종교의 출현 이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대안을 찾는 과학적 방식은 인류 역사를 급속도로 발전시켰습니다. 과학적 사고는 철학 등 인문학으로부터 여러 학문을 독립시켜 사회학·정치학·행정학·경제학·법학 같은 사회과학의 기틀을 다졌고요.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반면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 행동은 역사의 과오로 기록됐습니다. 1633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과 함께 종교재판에 넘겨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0년 동안 구금돼 있다 옥사했습니다. 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주장하다 가톨릭교회에 의해 화형당합니다.
 
훗날 가톨릭은 잘못을 인정합니다. 갈릴레이가 죽은 지 115년 만에 그가 쓴 『두 세계관의 대화』를 금서 목록에서 해제했고, 1992년 10월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죄했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다른 것은 신념과 실증의 차이입니다. 종교는 일단 ‘믿고 보는 것’이며, 과학은 ‘보고 믿는 것’입니다. 종교는 신념을 재판대에 올리고, 과학은 실증으로 판결 내립니다. “언제든 새로운 증거로 부정될 수 있어야 과학”(칼 포퍼)입니다. 절대불변의 진리는 종교적 믿음에만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 과거 종교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정치입니다. 정치인들은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정략적 결정을 내리거나, 정치적 목표에 맞춰 전문가의 이야기를 짜깁기하고 통계를 다듬죠. 맹목적 팬덤을 활용해 비합리적인 결정도 서슴없이 밀어붙입니다.
 

기자회견 중 의료용 면봉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기자회견 중 의료용 면봉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행태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7일 뒤늦게 긴급사태를 선언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올림픽과 경제 타격 등을 이유로 코로나19 검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올림픽을 1년 연기한 것도 자신의 임기(내년 9월) 안에 개최하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학자들이 1월 말부터 경고했지만 당국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전문가를 싫어하는 아마추어”라고 비판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기자회견 중 “뉴욕타임스는 완전히 가짜뉴스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태 초기 위험성을 경고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을 무시했다는 신문 보도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죠. 그러면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홍보하는 영상을 틀었습니다.
  
메르켈의 과학적 리더십

EU 정상회의 참석 중인 메르켈 독일 총리. [EPA=연합뉴스]

EU 정상회의 참석 중인 메르켈 독일 총리. [EPA=연합뉴스]

 
누구보다 과학적이어야 할 세계보건기구(WHO)도 중국을 의식한 초동 대처 미흡으로 비판받았습니다. 국내서도 논란이 된 마스크 착용 여부를 놓고 처음에는 ‘안 써도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입장을 바꿨습니다. 의사들의 초기 경고를 무시하고 은폐하다 사태를 키운 중국의 관료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학으로 해결할 일을, 정치논리가 주도하며 벌어졌습니다. 과거의 종교처럼 정치가 과학을 무시하고 통제하면서 큰 비용과 희생을 치른 것이죠.
 
반대로 혼란스런 유럽에서 독일이 선방할 수 있던 것은 화학박사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과학과 증거에 근거해 정책을 폈습니다. 국민들에게 직접 ‘기초감염 재생산수’ 논리를 설명하는 등 이성적 리더십을 선보였죠.
 
과학이 발전하려면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과학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과학과 인간의 가치』)의 말처럼 사상·비판의 자유, 이를 받아들이는 성찰적 지혜가 있어야 과학이 꽃을 피웁니다.
 
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조지 가모프와 원자폭탄의 아버지 엔리코 페르미는 각각 스탈린과 무솔리니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이데올로기에 학문을 꿰맞춘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학자들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억압했죠. 아인슈타인, 한나 아렌트 같은 지식인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과학적 사고가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로 자리 잡아야 역사가 진보합니다. 특히 복잡해진 현대사회는 리더 한 명이 모든 분야를 알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일수록 전문가 의견을 잘 듣고 과학적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트럼프·아베 같은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과연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양자역학 어벤져스, 메르켈은 있고 트럼프·아베는 없는 것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6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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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

[윤석만의 인간혁명]자유주의란 무엇인가

한국 보수가 사랑한 ‘자유’···그들이 외친 ‘자유’는 따로 있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자유주의란 무엇인가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어제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미래통합당의 직전 당명이 자유한국당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자유당부터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3당 합당해 만든 민주자유당까지 자유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된 것을 보면 한국의 보수가 ‘자유’를 사랑한 것은 맞다. 번외로 김종필의 충청권 맹주 역할을 가능케 했던 자유민주연합,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등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자유’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개념이 혼재한다는 사실이다. 어제 “미래통합당은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통합만 부르짖었다,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말로 글을 시작했다. 글의 논지는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보수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몰락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개념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어제는 보수의 개념을 살펴봤고, 오늘은 ‘자유’, 나아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따져보고자 한다. 논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의 보수는 말로는 자유주의를 외쳤는데, 왜 그들이 운영하는 정당 구조와 그로부터 파생된 정치의식과 문화에는 자유주의가 없냐는 점이다. 역사의 시계를 60년 전 오늘로 돌려보자.

 
 

60년 전 오늘 4.19 혁명

김영삼ㆍ김종필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당의원들이 민주자유당 현판을 걸고 있다.

김영삼ㆍ김종필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당의원들이 민주자유당 현판을 걸고 있다.

 오늘은 4.19 혁명 60주년이다. 알다시피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운동의 초석과 같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번 법을 개정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사사오입 개헌이다.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없애려 자유당을 중심으로 헌법 조항을 고치려 했다.  
 
 알다시피 개헌은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당시 의석수 기준으로는 135.3석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6표, 무효 1표가 나왔다. 처음엔 135.3석에 못 미쳤어 부결됐다. 그러나 여당이던 자유당은 135.3을 반올림(사사오입) 하면 135이므로, 찬성 135표를 받아 가결됐다고 선포했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정권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60년 야당의 유력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이 뇌수술 도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실시되면서 관심은 부통령 선거로 쏠렸다. 당시 국민들은 야당의 장면이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한 부정선거로 치러졌다.

 
 개표를 해보니 이승만·이기붕 정부통령 후보의 득표가 95~98%에 육박하는 지역이 속출했다. 조작이 너무 티나는 개표 결과에 당황한 자유당은 당시 최인규 내무장관에게 이승만은 80%, 이기붕은 70~80% 선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최종 집계 결과 이승만 88.7% 이기붕 79.2%의 압도적 당선이었다. 이것이 바로 3.15 부정선거다.

 
 

눈에 최루탄 박힌 고교생 시신

1961년 3월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혁신계 단체의 야간 횃불시위. 수백 명이 손에 횃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경찰차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사회 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1961년 3월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혁신계 단체의 야간 횃불시위. 수백 명이 손에 횃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경찰차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사회 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는데 그 시작을 알린 것은 마산 3.15 의거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한달 후 김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유기된 그의 시신을 보면서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4월 18일 고려대생 1000여명이 서울에서 처음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반공청년단 소속 폭력배들에게 공격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대학의 학생과 고교생, 시민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기록에는 20만 여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자유당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발포해 120명이 사망했다.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분명 인정하지만, 그의 말로가 좋지 않던 것은 분명한 과실이다.
 
 건국 이후 제대로 기틀을 갖춘 최초의 보수정당인 자유당은 이렇게 몰락했다. 당의 핵심 가치는 당명대로 분명 ‘자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개별성과 다양성, 관용의 가치를 자유당이 갖고 있진 못했다. 그런데도 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또 역대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은 그를 왜 자유주의라고 기억할까.

 
 

냉전과 국가 이데올로기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br〉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br〉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먼저 건국 이후의 시대적 상황을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어제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살펴봤다. 사회계약론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정치철학이다. 그러나 홉스의 사상에는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그는 국가가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의 계약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스스로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이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오히려 ‘신약(新約·covenant)’에 가깝다. 물론 홉스가 이런 믿음을 가졌던 이유는 당시 그가 살던 국가의 체제는 왕정이었고, 그곳의 최고 권력자는 절대군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홉스의 ‘국가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시리아에선 정부군과 반란군이 전쟁을 벌여 수백만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런 비극이 생긴 결정적 이유는 홉스가 말한 국가적 물리력이 반군을 제압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통해 수백만 명이 죽고 지금까지도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이유 역시 국가에 강력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6.25 이후 반공이 국시로  

1956년 5월 제3대 정·부통령 선거 개표 장면. 대통령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1956년 5월 제3대 정·부통령 선거 개표 장면. 대통령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자연스럽게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명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내란과 범죄·무질서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체제를 이식받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국체로 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발명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프랑스, 자유주의를 기치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미국과는 그 배경이 달랐다. 민주주의를 이식받긴 했지만 기본 토양이 되는 시민적 역량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가 존중받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자유세계’라는 진영 논리의 의미가 강했다. 특히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20세기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강력한 정치·사회 체제로 떠오르면서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며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반공십자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반공십자군』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선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므로 전후 한국에 이식된 ‘자유민주주의’는 미국 보수의 아버지들인 파운더스가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자유주의와는 전혀 달랐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까지 국가가 강조한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는 ‘리바이어던’식 국가주의의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2000년대까지만 해도 보수정당은 ‘자유주의’를 공산화로부터 지켜내는 것, 즉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다. 지금도 보수 유튜버와 그들의 주된 시청층은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공산화를 반대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 역사의 과정을 살펴볼 때 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북한의 적화통일과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한국을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나라로 굳건히 지켜낸 공은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인정해야 한다.

 
 만일 당시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우리도 지금의 시리아와 같이 어지러운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은 인정하되 잘못된 부분도 지적해야 한다. 즉, 과거 보수를 표방한 정치세력은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만 있을 뿐, 자유주의 즉 ‘시민의 자유’를 깊게 생각지 않았다. 결국 보수정당이 자유당, 민주자유당, 자유한국당과 같은 당명에 썼던 ‘자유’의 뜻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가깝다.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

 그렇다면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미국의 파운더스 중 한 명인 패트릭 헨리가 외쳤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의 뜻은 무엇인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이 신문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계속 트럼프의 실정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제 우리는 자유주의의 교과서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살펴볼 때가 됐다. 밀이 살았던 19세기 영국으로 가보자. 1857년 여름의 어느 날 영국 남서부의 콘월(Cornwall)이란 지역에선 한 남자가 크리스트교를 비판하는 말을 대문에 써놨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얼마 후 런던의 중앙형사법원인 올드 베일리(Old Baily)에선 2명의 배심원이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배심원 자격을 빼앗겼다. 이들은 당시 재판장에서 엄청난 수모와 야유를 견뎌야 했다.

 
 이처럼 종교를 비난했다고 실형을 선고받고 무신론을 펼쳤다는 이유로 배심원에서 쫓겨난 것은 당시 영국에선 크리스트교를 모독해선 안 된다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속으로는 신을 부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을 믿는다’고 거짓 증언했다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양심을 속이면 이익을 얻고, 진실을 말하면 처벌받는 모순된 법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주의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광기와 집착을 불렀다. [네이버]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광기와 집착을 불렀다. [네이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밀은 “어떤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을 금지하는 법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며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법과 질서가 영국 정신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적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처럼 현실적인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론, On Liberty』)

 
 밀은 이와 같은 사회 제도와 관습을 과거의 유물이 남긴 ‘박해의 구습’이라고 규정한다. 절대적인 종교적 믿음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옥죄며 독단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진리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어렵고 불관용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거짓으로 위장하게” 된다. 그 때문에 밀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모든 신념과 이론, 주장 등이야말로 진짜 ‘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신에 대한 믿음을 국가에 대한 믿음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국가에 대한 비판은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그 통치자에 대한 비난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신처럼 전지전능한 권력을 갖고 있고, 국민은 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처럼 국가의 뜻이라면 언제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신념을 우리는 ‘국가주의’라고 부른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

영화 변호인.

영화 변호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에선 공안 검사와 경찰이 독서 모임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이적 행위’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학생들을 기소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이 말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체제로서의 그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법정에서 E.H 카가 ‘빨갱이’라는 검사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는 존경받는 외교관이자 학자”라는 영국대사관의 공문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원조 국가인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학자의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왜 ‘빨갱이’냐고 반문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며 사실상 국가주의를 맹신했던 과거의 권력들에겐 체제로서의 자유진영만 있을 뿐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다행히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가주의 사회를 벗어났다. 시민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고, 그 핵심 가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법과 폭력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자유주의 사회다.  

 
 

보수 정치인들의 오해

애덤 스미스 '국부론'.

애덤 스미스 ‘국부론’.

 하지만 아직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반공’으로 착각하고 있다. 영향력이 큰 보수 정치인들은 최근까지도 국가주의 시대의 향수를 자극해 표를 얻으려고 했다. 21세기를 사는 국민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여전히 20세기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주의적 사고에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칭해 시민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보수 정치인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한다. ‘000과 자유의 힘’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자유주의 리더’라며 알렉시스 드 토크빌, 존 로크, 아담 스미스 등 사상가와 함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제시했다. 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며,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분명한 공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로크의 법치주의 원리대로 시민의 뜻을 대표하는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사용했는가. 개인의 자유와 공감의 원리를 강조한 스미스의 철학을 실천하고 전파했는가. 누차 말하지만 한국의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업적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이들이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실천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수 정치인이 이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과거의 관념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보수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자유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오해다.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자유주의로 무엇에 대항해 싸워야 하나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 '래리플린트'.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 ‘래리플린트’.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정립되려면 이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업적을 인정하되, 그들이 갖고 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논리를 벗어나 진짜 자유주의로 가야 한다.  
 
 특히 4차 혁명 시대는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우리가 패스트 팔로워로 20세기 산업화의 모범생일 순 있었지만, 21세기엔 퍼스트 무버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 전제 조건이 자율과 창의, 개방과 관용의 정신이며 이런 핵심 가치가 녹아있는 것이 자유주의다.

 
 그렇다면 21세기 새로운 보수가 싸워야할 지점은 어디인가. 자유주의 기본부터 따져야 한다. 시민의 권리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만일 이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유령이 보인다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막아내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국가주의 시대를 향수하는 보수 유튜버이든, ‘문프께 모든 것을 양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맹목적 친문 세력이든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비판 없는 건 종교적 믿음뿐

 과거의 국가주의와는 다른 양상으로 오늘날 한국에서 자주 목격되는 전체주의 현상이 있다. 지나친 정치적 팬덤에 의해 시민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억압되고 있다. 크리스트교를 비방하면 처벌한다는 19세기 영국법이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제한했던 것처럼 말이다.    
 
 밀은 “과거에 허무맹랑했던 주장이 오늘날엔 상식인 경우가 많다”며 “진리를 얻기 위해선 어느 한 개인의 의견에도 재갈을 물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뉴턴을 예로 들며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론은 그 타당성을 더욱 인정받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반증될 수 없는 주장은 종교적 믿음뿐이라고 강조한다.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 끝에 살아남은 생각만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작과 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막무가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정 언론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거짓과 가짜뉴스로 궤변을 늘어놓는 데도 능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기자들과 설전을 벌일지언정, 표현의 자유까지 막진 않는다.  
 
 며칠 전 기자회견 중 그가 코로나19 대응에서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는 홍보동영상을 틀자 몇몇 방송사가 생중계 화면을 꺼버렸다. 또 몇 년 전에는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리가 익명으로 뉴욕타임스에 그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그 만큼 미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매우 존중받는 가치란 이야기다. 진보든, 보수든 할 것 없이 자유주의의 대원칙은 다양성과 상대성에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한국 보수가 사랑한 ‘자유’···그들이 외친 ‘자유’는 따로 있었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5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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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

한림대 경제학과 대응사 : 그들의 뇌구조의 사고방식

한림대 경제학과 대응사 : 그들의 뇌구조의 사고방식

 

 

자신에게 이익이거나 이롭다면 : 진리, 선(善), 참, 좋은 것, 착한 것, 정의로운 것, 윤리적인 것.  모두와 국가를 위한 것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해롭다면 : 거짓, 악(惡), 나쁜 것 , 못된 것, 부도덕한 것, 배신자,  불의(불의)한 것, 천하의 나쁜놈, 민족 반역자, 공공의 적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진리고 정의고 양심적인것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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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

反문재인, 反김정은만이 보수 아니다···통합당이 놓친 한가지

反문재인, 反김정은만이 보수 아니다···통합당이 놓친 한가지

[중앙일보] 입력 2020.04.18 11:00 수정 2020.04.18 14:22 

[윤석만의 인간혁명]보수란 무엇인가 

“미래통합당은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통합만 부르짖었다,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막판 통합당에 영입돼 선거를 진두지휘 했던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이야기다. 그는 총선이 끝난 직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이데올로기가 작용을 안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그걸 안 하고 막연하게 ‘보수’ ‘보수’만 외쳤다, 여당 비난만 했지 뭘 할 생각을 안 했다”고 지적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

 
 김종인 위원장의 말대로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만 외친”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반문재인, 반김정은 정도를 보수의 충분조건으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핵심 선거 구호가 ‘문재인 정권 심판’이었는데,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입장에선 “X 묻은 개가 덜 X 묻은 개에게 뭐라고 한다” 생각했을 것이다. 현 정권에 비판적이어도 차마 통합당을 지지할 순 없었다는 뜻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6일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6일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고, 지금도 이미 몇몇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선 ‘보수 혁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과정이 빠졌다. ‘보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서는 2년 후 대선, 4년 후 총선에서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연구할 때는 핵심이 되는 개념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인마다 생각하는 보수의 개념이 다르니 혁신도, 개혁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는 무슨 뜻이고, 보수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지 정확한 기준이 정해져야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꿀 수 있다. 이제 보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자.
 

국가는 선의를 위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보수가 무엇인지 답하려면 먼저 국가와 정치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정치학』에서 처음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정치(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타자에 견주어 자아를 발견하며, 그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실현을 한다.  
 
 가정에서 시작해 혈족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한다. 마을이 커지면 지역사회가 되고, 종국엔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면서 정치체제라는 것을 만들어 공동체가 지켜야할 규율과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국가가 존재한다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는 공동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면서 공공의 복리를 증대시키는 행위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혼란 같은 갈등과 범죄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공동체와 각 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조직과 집단, 개인 간의 의견 차이나 이해 충돌이 생긴다.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이제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곧 정치 체제의 문제로,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정부의 형태가 달라진다.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 알기위해선 필연적으로 국가와 정부 형태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고,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는 세속의 신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주권국가인 이란을 침공해 영국군 및 러시아군과 싸운 오스만튀르크의 군대.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주권국가인 이란을 침공해 영국군 및 러시아군과 싸운 오스만튀르크의 군대. [위키피디아]

 오늘날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사회계약론이다. 자연 상태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회적 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고 그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정체성을 ‘선의’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했다. 보통 이런 입장을 목적론적 국가관이라 부른다. 반면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엔 그런 숭고한 목적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과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목적론적 국가관과 대비해 발생론적 국가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계약론의 원조는 홉스다. 1651년에 쓴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는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 등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계약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이다.  

시리아 난민들.

시리아 난민들.

 그런데 여기서 ‘세속의 신’은 현대적 관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절대왕정 시대에 살았던 홉스는 신성한 권력을 휘두르는 주체인 국가에게 개인이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국가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개인을 떠난 존재다. 국가는 그 스스로 이미 ‘인격’을 가진 존재이기에 국익은 언제나 개인의 이익보다 최상위에 존재한다. 여기서 사회계약은 ‘신약’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국가론은 현대 민주주의보다는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논리에 적합했다.  
 
 하지만 홉스의 국가론은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을 보자. 국가의 대응 방식에 따라 나라마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의 강도가 달랐다. 또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내전과 기아 등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 나라도 많다. 이는 국가의 역량이 달랐기 때문이다. 훌륭한 방역체계, 반란군을 진압할 공권력 등 여러 요소들이 합쳐 우수한 국가를 만든다.  
 
 35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 대한제국은 국민을 보호할 물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때문에 다른 나라의 침략에 쉽게 무너졌고, 수 십 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했다. 6.25 전쟁 때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 됐을 수 있다. 그 만큼 국가의 역량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국가는 여전히 ‘세속의 신’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국가의 원형 법치주의

 『리바이어던』이 국가의 탄생 이유를 설명했다면 로크는 국가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했다. 1689년 로크가 쓴 『통치론』은 홉스와 달리 국가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설정했다. 로크의 국민주권론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하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헌법의 기본 이념이다.  
 
 우리 헌법의 1조 2항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저항권’이다. 국가가 주권자의 의사에 반할 때 국민은 사회계약을 해지해 국가를 부정할 수 있다. 이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맹자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로크는 국가가 언제나 옳은 일만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주권자인 국민이 만들어 놓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이는 절대권력인 국가의 명령에 모든 인민이 따라야 한다고 했던 홉스와 다른 입장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창출되며, 국가권력을 대리하는 사람들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정치를 펼쳐야 한다. 권력을 행사할 때는 국민이 합의한 기준 ‘법’에 의해서만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우리 사회의 지도자, 특히 정치인들은 법치주의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법치주의는 법에 따라 국민을 ‘통치’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가가 법에 의해서만 정치, 즉 ‘법치’를 하란 이야기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자를 구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발전시켜 완성한 이는 루소다. 루소는 국가와 정권을 구분함으로써 저항권의 개념을 좀 더 현실에 맞게 다듬었다. 국민의 뜻에 맞지 않는 국가에 매번 저항권을 행사하긴 어렵다. 그래서 루소는 국가와 이를 운영하는 정권을 따로 떼어내면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있고, 이들이 각각 경쟁을 벌여 정권을 잡으면 국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정권이 잘못된 정치를 펴면, 국가를 전복할 필요 없이 정부만 교체하면 된다. 이는 현대 정당 중심의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됐다.  
 

국가는 착취의 도구인가

 마르크스 이론의 기본 전제는 유물론이다. 물질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정신과 의식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관념을 우선하는 관념론과 대비된다. 물질의 세계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정신과 의식 같은 관념은 물질에 기초해 성립한다.  
 
 그런데 이런 물질의 본성은 늘 변화한다. 고정된 상태로 불변하는 물질은 없다. 그 변화의 에너지는 내부에서 나온다. 겉에서는 하나로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끊임없이 대립된 것들 간의 투쟁이 일어나고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로 변해간다.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를 국가의 생성과 소멸, 역사의 발전 과정에 적용한 것이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이다. 원시 공동체 이후 인간의 모든 사회는 내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서로 상반되는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투쟁 과정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폭력적 기구였다. 귀족과 노예, 봉건 영주와 농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건물주와 세입자 등으로 모든 사회엔 착취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생산관계다. 이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말한다. 중세 지주들은 땅을, 산업혁명기 부르주아는 공장을, 현대 건물주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농민과 공장 노동자는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 만큼 적은 보상을 받지만 영주와 부르주아는 가만히 있어도 큰돈을 번다. 월세를 얻어 장사하는 세입자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가 가져간 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365일 놀기만 하는 건물주에게 줘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사적 유물론의 핵심이다.
 

현대에도 살아있는 마르크스 

오는 21일 출간 170주년을 맞는 1882년 러시아어판 『공산당선언』과 1883년 독일어판 원본.

오는 21일 출간 170주년을 맞는 1882년 러시아어판 『공산당선언』과 1883년 독일어판 원본.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생산수단(땅, 공장, 부동산 등)을 소유한 지배층은 경제활동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 중 최소한의 몫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대부분의 몫을 이윤의 형태로 가져간다고 봤다. ‘일하지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출발인 셈이다.  
 
 이런 생산관계를 깰 방법은 혁명뿐이라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짖은 것도 그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착취와 지배 구조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수단도, 불평등을 완화시켜주는 장치도 아닌, 착취와 폭력의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혁명이 완료된 세상에선 국가도 사라진다고 봤다. 이를 통해 ‘인간 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론을 따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간은 해방되지 않았고 국가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더 많은 구속과 착취를 당했다. 다만 억압의 주체가 자본가에서 독재자 또는 소수의 공산당 지도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마르크스의 사상은 물질과 계급으로 역사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정작 사회주의 혁명 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대립물의 투쟁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잉여가치의 차등 분배로 설명한 하나의 ‘가설’일 뿐, 혁명이 성공한 다음엔 어떤 정치와 경제 체제를 갖춰야 하는지 등의 로드맵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완전히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그의 해석은 현대 사회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이 전 사회에 퍼져 있겠는가. 『21세기 자본』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토마 피케티의 문제의식도 마르크스와 궤를 같이 한다. 이상주의적 이론은 현실에서 실패로 끝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놀라운 통찰은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

 오래 기다렸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정의해보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치와 국가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국가를 최고의 선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 해방을 위한 조건으로 없어져야할 대상으로 국가를 본 마르크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언뜻 보면 둘은 양 극단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동일한 인식의 지점이 있다. 바로 인간이 세상을 설계하고, 의지에 따라 바꿔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실천하는 국가를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했다. 그 방법론을 정치학이라고 명명했다. 마르크스는 사적 유물론에 따라 역사 발전 단계를 서술하며 역사의 최종 종착지를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 사회로 설정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설계한 그림대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재해 있다.
 
 반면 사회계약론은 인간이 불가피하게 계약을 맺긴 했지만 국가는 필요악이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계약을 맺어 국가를 탄생했지만, 계약서에서 손을 놓는 순간 계약 주체인 인간의 손을 떠나 버린다.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 돼버리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저항권을 사용해 국가를 전복시키거나 그 권력을 법치의 테두리에 묶어두는 것뿐이다. 사회계약론에선 인위적으로 사회를 설계하고 유토피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은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얻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낳는다. 즉, 한 편에서 인간은 충분히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노력을 통해 이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편에선 세상은 인간이 그린 설계도대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그 어떤 개인도 인류의 집단 문화유산인 과거의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도와 문화 역시 바뀌어야 하겠지만 이를 급진적으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구분에서 앞의 것을 우리는 진보라 부르고, 뒤의 것을 보수라 칭한다. 즉, 보수와 진보는 단순히 변화의 속도 차이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이 같은 구분을 체계화 해놓은 대표적인 사람이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에드번드 버크(1729~1797)다.  
 

보수의 아버지 버크

『프랑스 혁명론』(1790)의 저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반동’이 아니었다. 버크는 ’여러분은 절대 과거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프랑스 혁명론』(1790)의 저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반동’이 아니었다. 버크는 ’여러분은 절대 과거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버크는 1790년 발간된 『프랑스 혁명의 고찰』을 통해 혁명 정부와 계몽주의를 비판했다. 그의 이론은 현대 보수주의 사상의 시발점이 됐다. 그의 논지는 명쾌하다. 당시 유럽에선 인간의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계몽주의가 지식의 주류를 형성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자신감은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버크는 인간의 이성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불완전함을 완전히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다가 올 미래를 완벽히 설계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부실한 설계는 미래를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혁명 이후의 프랑스는 유토피아라기보다는 혼란과 갈등이 극심해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그 때문에 버크는 역사의 발전과 진화는 뛰어난 소수 엘리트의 설계가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과거의 유산이 때로는 극복해야 할 인습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이 오랜 시간 인류 역사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평소 우리가 식당에 갈 때 블로그의 호평이 많고 줄이 많은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버크에게 역사의 진화와 사회의 발전은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한 점진적 개선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혁명과 같은 급진적 변화는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하는 자세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도전을 행하는 것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검증된 전통에 따른 보수적 개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버크는 소수 엘리트의 뛰어난 이성보다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형성된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자유주의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이는 오늘날 자유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1859년 출간된 『자유론』은 정치·사회적 자유의 뜻과 필요성을 역설한 자유주의의 교과서다. 이전까진 주로 철학의 영역에서 ‘의식의 자유’가 논의됐고, 한 세기 전의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관점에서 ‘경제적 자유’를 논했다. 잘 알다시피 밀의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선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이론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와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한 사람만의 생각으로는 제 아무리 그가 천재라고 하더라도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말했던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이념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주장들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살아남은 주장만이 그 시대의 진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가 바뀌면 진리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는 모든 종교적 교리와 도덕적 윤리, 과학적 이론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밀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유로운 토론이라고 제시한다. 서로 다른 의견이 치열하게 치고받는 과정을 거쳐야 더욱 합리적인 의견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A라는 주장에 대해 B라는 잘못된 반박이 나온다 하더라도 결국 A는 그 정당성을 더욱 분명히 더욱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논쟁과 의심이 필요 없는 생각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국가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난다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혁명은 보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미국 의회의사당]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혁명은 보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미국 의회의사당]

 이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적이다. 다만 보수와 진보는 그 방법론과 속도에 있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보수라고 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선 보수가 마치 ‘수구’인 것인 양 오해되곤 한다. 수구는 현재를 맹목적으로 고수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며 합리적이며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진보와 비교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보수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단순히 태도와 성향만으론 판별하기 어렵다. 누구나 보수와 진보, 양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반공주의와 색깔론 등 이념 공세와 그에 대반 반작용의 과정을 통해 양 측이 나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경제적 측면에서 더욱 명쾌하게 갈린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이 틀에서 보면 보수는 시장에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부가 가급적 간섭해선 안 된다. 규제를 없애고 세금을 줄이며 자본가와 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반대로 진보는 정부가 더 많은 일에 개입하려 하고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려 한다. 하지만 최근엔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묻지마 복지공약’으로 포퓰리즘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구분도 애매해졌다.
 
 지금까지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느 정도로 용인할 것이냐는 측면에서 주로 보수와 진보가 나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북과 경제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 젠더, 미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어서도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또 합의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보수가 해야할 일

아테네학당(라파엘로)

아테네학당(라파엘로)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을 개혁하고, 부패한 관료사회와 편법이 난무하는 기업 관행을 바로 잡는 일은 보수와 진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그 방법과 속도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한다. 여기서 이제 중요한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그렇다면 보수의 정체성, 또는 보수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가다.
 
 핵심 가치가 정해져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입장과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보수정당이 원칙도 명분도 없이 그저 반문재인, 반김정은만 외친 것은 스스로 체화한 공통의 가치, 즉 이것만은 꼭 지켜야하겠다는 정치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 무엇이냐. 바로 자유주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수는 역사의 발전이 뛰어난 소수 엘리트(한국의 진보로 치면 586 운동권 및 강남좌파)의 설계도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선배들이 그런 문화를 만들고 지켜온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주장들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살아남은 이론만이 당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된다.  
 
 자유주의는 시민 각자의 자유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성과 개방성, 관용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집단보다 개인을, 통제보다 자율을,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 국가가 대중을 획일화하고 통제할 때 이로부터 시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켜내고 이를 실천할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짜 보수가 할 일이다.  
 
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反문재인, 反김정은만이 보수 아니다···통합당이 놓친 한가지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57214?cloc=joongang-home-toptype1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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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

‘책임 회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반하장,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책임 회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반하장,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흔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되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거나 ‘네가 원만히 넘어갔으면 괜찮았을 일’이라며 더 화를 내는 경우나, 해당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는 피해자의 평소 인성을 지적하는 등 적반하장으로 구는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심까지 들게 하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한 가지 설명을 보여주는 연구가 있어서 소개한다(Sullivan at al., 2012).

집단적 피해의식(Competitive victimhood)은 ‘우리 집단도 당한 게 많다!’ 라는 말 그대로 집단 단위의 피해의식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집단의 도덕적 정체성(moral identity)이 위험에 처하면 이런 피해의식이 높아진다고 한다.

예컨대 남성이 여성을 폭행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본인이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남성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에 좀 더 주목한다던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적응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요즘은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 남성이야말로 피해자다!’같은 인식을 비교적 강하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비슷하게 학부생을 타겟으로 학부생이 잘못한 사건을 얘기 하면 이번엔 ‘학부생들이 대학원생들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 우리도 피해자다!’같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집단 정체성에 의해 자신도 왠지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게 생기게 될 텐데 그런 ‘불편한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서 이런 방어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일 수 있겠다.

또한 집단 정체성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도 결국 연결된 부분이라 (우리는 자신을 규정할 때 스스로의 고유한 모습-나는 뭘 잘 하고 뭘 좋아한다-뿐 아니라 어디 학생, 어디 직원, 어디 국민 같이 소속된 집단을 통해서도 자신을 규정한다)집단의 정체성 훼손은 결국 내 정체성에 상처가 가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 본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기도 할 테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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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잘못에 대해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로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고들 여기지만. 현실은 책임 회피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걔네도 나쁘다’가 좀 더 디폴트 모드인 듯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적반하장들이 횡행한 것일까.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게임을 하게 해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한 다음 승자의 행동을 관찰하니까 왠지 미안한 마음에 패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는커녕 되려 이 기회에 확실히 밟아버리겠다는 것 마냥 승자가 패자에게 (패자가 승자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이며 게임이 끝난 후에도 끝가지 패자를 괴롭히더라는 연구가 있었다. 승자의 입지를 굳히게끔 하는 나름 합리적인 행동일지 모르겠으나 역시 그 ‘정도’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시스템이 원래 생겨 먹은 대로 굴러가다 보면 좋은 결과들을 낼 때도 많지만 얘기치 못한 부조리한 결과들을 낼 때도 많기 때문에 감독의 마음으로 항상 의식하고 때로 너무 많이 나갔다 싶을 경우 STOP!을 외쳐주는 게 많이 필요한 듯 보인다.

대부분의 정신적 프로세스가 의식 바깥에서 일어나고 의식은 일이 다 치뤄진 후 최종 보고를 받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어쨋든 ‘최종 보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보고를 받고 잘못된 것 같으면 최대한 시정하고자 하는 힘이 최종 결재자에게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우마이스터 등의 학자들은 의지, 자아(self)의 역할을 CEO나 조종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비행기의 자동항법장치처럼 우리가 일일이 조종하지 않아도(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알아서’ 흘러가지만 비행기도 때로 필요할 때, 중요한 상황에서는 핸들을 잡고 수동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자아가 그런 대장 역할을 하지 않냐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고서 도덕적 정체성을 지켜보겠다고 적반하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약자에게 불필요하게 잔인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자신을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출처]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1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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