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밑줄친 문장]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격동의 AI 시대,2500년 전 공자에게 길을 묻다
격동의 AI 시대,
2500년 전 공자에게 길을 묻다
2025년 3월 26일, 이미지 생성 기능이 추가된 ChatGPT-4o(이하 챗지피티)가 공개된 이후 ‘AI’는 더욱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전 세계는 지금 챗지피티나 딥시크, 제미나이 등 AI의 놀라운 생산성과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에 열광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한 시사 프로그램은 AI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실제 사례를 조명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영화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AI와의 연애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12년 만에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이렇듯 지금의 AI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일같이 ‘인간보다 으레 뛰어날 것이라 기대되었던’ 일뿐 아니라,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 온 일까지도 점차 대체하고 있다. 이제, 누구라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AI는 어디까지 발전할까? 나는 이 엄청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언젠가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세상은 우리를 향해 한층 깊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언젠가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외형의 AI 로봇이 등장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쓸모없어질까? 계속 진보할 세상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가?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은 인공지능 시대가 던지는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논어 속 공자의 가르침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책이다. 지금, 왜 하필 공자인가?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저자는 공자가 평생에 걸쳐 마주했던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공자가 가장 중시했던 “사람다움의 회복”이라는 가치에 주목한다. 《논어》는 인류 문명이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로부터 탄생했다. 철기 사용으로 인간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지만, 당시 사회 지도층은 백성의 삶은 나 몰라라 한 채 권력 투쟁에만 몰두했다. 평범한 이들이 지켜 온 사람 사이의 도리와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점차 파괴되어 갔다. 공자는 바로 이 시기에,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문명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2500년 전에 공자가 마주했던 질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국 “그래서 AI와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즉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논어》를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논어》의 구절들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순서에 따라 ‘사람’ ‘올바름’ ‘관계’ ‘배움’이라는 주제 아래 나누었고, 인의예지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인생의 다양한 시기에서 곱씹을 만한 구절들은 ‘삶’이라는 주제로 한데 모았다. 책에 소개된 모든 구절에는 AI 시대에 걸맞은 생각의 틀로 《논어》를 새롭게 바라본 저자만의 해석과 의견이 덧붙었다. 저자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은 결코 낡고 고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한 공자의 가르침은, 논리적 사고와 구조적 언어에 익숙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고 수업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비단 이공계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AI가 일상 깊숙이 스며든 지금,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은 우리 모두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은 그 성찰의 여정에 함께할 든든한 길잡이다.
계엄 및 탄핵 정국, 연일 국가의 위기를 진단하는 책이 출간되고 있다. 2023년 미국서 나온 이 책(원제 End Times)은 역사의 패턴을 수학적 모델을 통해 분석하는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의 렌즈로 국가 붕괴의 원인을 파헤친다. 이론생물학자인 저자 피터 터친 코네티컷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교수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위기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왜 모든 사회는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 분석한다.
네 가지 구조적 요인이 국가의 위기를 추동한다. 엘리트 과잉 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엘리트 과잉 생산이다. 사회학에서 ‘엘리트’란 남들보다 많은 사회 권력을 가진 이들, 즉 ‘권력 소유자’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1960~1970년 박사 학위 소지자 수는 세 배 증가했지만 이들을 수용할 일자리는 모자란다. 저자는 “고학력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 무산 계급)가 사회 안정에 가장 위험한 계급”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현대사회의 고학력자 급증으로 권력을 갖고자 하는 ‘엘리트 지망자’는 늘어나는데, 정부 요직의 수는 한정돼 있다.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이 반(反)엘리트 세력이 되어 체제 전복을 꿈꾸면서 국가가 위기에 봉착한다”고 주장한다. 빈부 양극화로 궁핍해진 대중의 불만이 다수의 엘리트 지망자 집단과 결합하면 가연성이 매우 높은 조합이 되어 2016년 트럼프 집권과 같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이끄는 반엘리트 그룹이 엘리트를 갈아치우는 ‘혁명’을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정치 경험 없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첫 번째 수퍼리치가 아니다. 스티브 포브스가 1996년과 2000년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로 나왔고,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992년과 1996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왜 트럼프는 성공했을까? “2016년엔 대중의 궁핍화가 1992년보다 훨씬 심해졌다. 트럼프를 지지했다기보다는 지배 계급에 대한 불만이 분노로 바뀌어 표현된 것이었다.” 게다가 2016년에 이르면 엘리트 과잉 생산 게임이 분기점에 이르렀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엔 총 17명의 후보자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로스쿨은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미국에선 법학 학위가 공직으로 진출하는 최선의 경로로 꼽히므로, 정치적 야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로스쿨에 진학한다. 전국법률가협회에 따르면, 1991년 로스쿨 졸업생 초봉 분포 그래프에서 가장 흔한 연봉을 반영하는 최고점은 3만달러였다. 분포의 왼쪽 꼬리 부분에서 2만달러 이하는 없었다. 오른쪽 꼬리 부분은 9만 달러가 최대였다. 2020년 졸업생 분포에서는 대다수가 4만5000~7만5000달러의 연봉을 보고해 전체 연봉의 50%를 차지했다. 하지만 오른편 봉우리는 19만 달러로 전체 분포의 20% 이상이었다. “지망자 게임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이런 모양이 된다. 연봉 19만 달러인 오른쪽 봉우리의 20%는 기성 엘리트층에 순조롭게 진입하는 중이다. 왼쪽 혹 부분에 있는 4만 5000~7만5000 달러 소득자들은 곤란한 상태다. 2020년 로스쿨 졸업생의 절반이 16만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들 가운데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책은 사회 안정에 가장 위험한 직군은 ‘법률 전문직’이라 주장한다. “로베스피에르, 레닌, 카스트로는 변호사였다. 링컨과 간디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미국의 원형적 반엘리트’라 지목한 J.D. 밴스 부통령 역시 변호사 출신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 “프롤레타리아는 족쇄 말고 잃을 것이 없다”고 썼다. 저자는 “하지만 마르크스는 틀렸음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궁핍해진 프롤레타리아는 성공적 혁명의 주체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혁명가는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로, 그들은 특권과 교육, 연줄 덕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연봉 19만 달러를 받는 로스쿨 졸업생의 20%처럼 곧바로 엘리트 지위에 오르는 소수조차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전반적인 불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학력 프레카리아트(노동 무산 계급)로 전락할 운명인 고학력 젊은 층이야말로 불안정성 말고는 잃을 것이 없는 집단이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엘리트 내부 충돌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성 엘리트 성원들을 무너뜨리고 경쟁하는 지망자들을 앞지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은 탈색된다. 좌·우파 모두 굉장히 파편화돼 있으며, 격렬한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종주의자와 백인우월주의자, 그리고 트럼프에 표를 던진 ‘한심한 사람들(deplorables)’을 비난한다. 다른 사람들은 ‘멍청이 진보주의자(libtard)’를 비난한다. 심각한 피해망상에 빠진 비주류들은 공산주의 중국 첩자들이 최고위층부터 말단까지 미국 정부에 침투했다고 상상하거나 푸틴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꼭두각시 인형 트럼프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지만, 미국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국민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이후 2023년까지 2배 이상 증가했고, 전 세계에서 대졸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는 점을 짚는다. 그런데 한국은 고학력 젊은 인재들을 소화할 만한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고학력 청년 남성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정치적 안정성의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인구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