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알아봅시다] 전화기의 탄생, 얼마나 알고 있니?
2023.11.04 20:53
[알아봅시다] 전화기의 탄생, 얼마나 알고 있니?
전화기의 탄생, 얼마나 알고 있니?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Alexander Graham Bell (왼쪽) /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오른쪽)1인 1폰 시대, 전화기에 대해 말하다
오늘날 통신 세상이 열릴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전화’가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선물이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화기는 누가 최초로 발명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역사적으로 뜨거웠다.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다, 전화의 발명
흔히 ‘인류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고 하면 ‘벨’을 떠올린다. 미국의 과학 자 겸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 이엄 벨(AlexanderGraham Bell, 1847~1922)’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의 발명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다.
벨은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고 그 다음 달인 3월 7일 ‘전기 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로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이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고 주장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의 또 다른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ElishaGray, 1835~1901)’다. 그레이 역시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러 갔다.
하지만 그는 벨보다 두 시간 늦게 도착했고, 특허 사무국은 벨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레이가 벨보다 더 유명했다. 그레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었고, 1874년부터 이미 전화를 공개적으로 시연한 바 있다. 하지만 단 두 시간 차이로 남은 인생을 평생 억울하게 살아야 했다. 실제로 특허 신청 당시 벨의 전화는 이론에 불과했다. 특허를 획득하고 사흘 후에나 전화 통화에 성공했으니, 그레이가 억울해 할 만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이탈리아의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AntonioMeucci, 1808~1889)’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무치는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한 뒤 특허를 내기 위해 서부유니언전신회사와 의논했지만, 회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설계도를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몇 년 후 벨이 전화 발명으로 특허권을 취득한 걸 보고 무치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한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2002년 6월 미국 의회가 공식적으로 무치를 최초의 전화 발명가로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는 타이틀은 126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선을 없애고 자유로워지다, 휴대전화의 탄생
전화기는 선이 없어지면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집 안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게 된 건 ‘마틴 쿠퍼(MartinCooper, 1928~)’ 덕분이다.
“Joel, this is Marty. I'm calling you from a cell phone,a real handheld portable cell phone(조엘, 나 마티일세. 난지금 자네에게 휴대전화로, 진짜 손으로 들고 다니며 쓰는 휴대용 폰으로 전화하고 있단 말이네).”
1973년 4월 3일, 미국 뉴욕의 한 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음성이 퍼져나갔다. 쿠퍼는 당시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조엘 엥겔(미국벨연구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전화 발명 소식을 알렸다. 이 통화로 쿠퍼는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개발자 겸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통화자가 됐다.
마틴 쿠퍼는 당시 모토로라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휴대전화의 아이디어는 당시 인기를 끌던 TV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얻었는데, 우주인이 손에 들고 다니며 통화를 하는 ‘커뮤니케이터’를 보고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전화를 꿈꿨다.
쿠퍼는 그의 연구팀과 개발에 매진한 끝에 1973년, 약 1㎏의 무게에 25㎝의 길이를 자랑하는 휴대전화 ‘다이나택(DynaTac)’을 선보인다. 외견으로 상상할 수 있듯이, 초창기 다이나택은 ‘벽돌(the brick)’ 혹은 ‘신발(the shoe)’ 폰으로 불리곤 했다. 성능 역시 초창기 모델다웠는데, 다이나택으로 20분간 통화하기 위해서는 10시간 동안 충전해야 했다. 결국 10년 뒤 무게를 절반으로 줄인(450g) 후에야 1983년 ‘다이나택8000x’라는 이름으로 상용화에 성공한다.
휴대폰 그 이상의 휴대폰, 스마트폰
이제 휴대전화는 ‘휴대용 컴퓨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카메라나 MP3, TV, 컴퓨터 등의 다양한 기능을 담은 스마트폰이 탄생한 것이다.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꼽히는 휴대전화는 1992년 IBM에서 개발한 ‘사이먼(Simon)’이다. 사이먼은 지금의 스마트폰과는 달리 크기도 크고 단색 화면이었다. 하지만 계산기와 메모장, 전자우편, 팩스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도 있었다.
스마트폰이 처음 개발될 당시에는 휴대전화를 만들던 회사가 아니라 PDA(일정관리나 이메일,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개인용 휴대기기)를 만들던 회사들이 PDA에 전화 기능을 추가해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면서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스마트폰의 기능이 급속도로 업그레이드됐다. 당시 애플의 대표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스마트폰의 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꼽힌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만 3,900만 명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어느덧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를 구겨 넣은’ 것 같았던 아이폰의 탄생 이후 스마트폰의 외형과 성능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전화기가 휴대전화를 거쳐 스마트폰까지 발전해 왔듯, 스마트폰의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이 될지 자못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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