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틀릴 때' 더 큰 희열 얻는 '지적 겸손'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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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이 맞지 않아서 친구와 티격태격 했던 때가 있다. 그 때 대화를 마무리하며 친구가 “너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사회에 필요할 거야”라고 했었는데 그 친구는 그냥 지나가면서 한 말이겠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서로 의견이 맞지는 않았지만 ‘다를 수도 있지’에서 나아가서 ‘(어쩌면 내가 잘 모를 뿐)네 의견도 일리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도 생각이 서로 다를 때가 있지만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통 의견이 부딪히게 되면 무조건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며 언성을 높이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흘러갈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뭘 모르는 것일 가능성, 나의 경험과 식견이 부족해서 다른 견해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 내가 틀렸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과거에 분명히 무엇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된다. 무엇이건 간에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는 데에는 위험부담이 있다.

저명한 연구자이고 인격적으로도 많이 존경스러운 선생님 한 분은 자신이 옳을 때보다 '틀릴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고 이야기하셨다.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이 맞았을 때는 그저 그렇지만,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하셨다.

아직도 더 배워야 하고 아직도 연구할 것이 많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고 했다. 누군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면 자신이 틀렸다는 데서 상처를 입기보다 하나 더 배웠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 보였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여러가지 한계로 인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인간이 그 중에서도 평범한 인간인 내가 뭘 좀 잘 못 알았다거나 틀렸다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인지 싶은 것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 자의식을 유지하며 혼자만의 세상에서 기뻐하는 것과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체득하는 것 중 후자가 더 나아 보인다.

이렇게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을 '지적 겸손 (intellectual humility)'이라고 부른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지적 겸손은 마치 기질적인 성격 특성처럼 매우 안정적이고 잘 변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자의식 사수하기'에 몰두해 있는 경우 거기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 같다.

일반적으로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단순하기보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즐기며, 어떤 주장을 믿기 전에 여기에 제대로 된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더 즐기는 편이라는 것 등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사람들,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지식은 '타인'을 통해 전달된다. 양육자를 통해 처음 세상을 만나고, 말을 배우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계속 자신과 잘 맞거나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은 무엇이 좋고 싫은지 저 사람과 나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정보들을 얻는다. 또 책과 영화,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또는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립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삶을 배우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삶을 접할수록 삶과 세상에 대해 배우는 깊이와 너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들의 비밀은 일찌감치 나와 다른 '타인'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 결국 나의 배움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피곤하기보다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PorterT., ElnakouriA., MeyersEA., ShibayamaT., JayawickremeE., & GrossmannI. (2022). Predictors and consequences of intellectual humilityNature Reviews Psychology, 1(9), 524-53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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