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포인트 [트렌드 돋보기] 분노상업주의와 한국 영화
2017.02.22 18:55
[트렌드 돋보기] 분노상업주의와 한국 영화
입력 : 2017.02.22 03:12
영화 '재심'을 보러 간 이유가 지금 흥행 1위여서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2000년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공분(公憤)이 먼저였을 것이다. 목격자에 불과했던 15세 소년이 택시 기사 살인범으로 몰렸고, 재판 끝에 10년 징역을 살았고, 만기 출소 뒤의 이례적 재심(再審)으로 지난해 11월 무죄가 확정된 사건. 이제는 청년이 된 소년의 무죄판결에 누구 못지 않은 탄성을 질렀음을 고백한다.
배우 강하늘을 '누명 쓴 살인범'으로, 그리고 정우를 '재심 변호사'로 캐스팅한 영화는 예상대로였다. 영웅의 등장과 바로잡은 정의. 그 명분과 선의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던 대목이 있다. 배우 이동휘가 연기한 로펌 변호사 창환 역이다. 정의의 사도로 개과천선하는 주인공 '재심 변호사'와 달리, 착해 보이던 친구 창환은 점점 악의 화신이 된다. 친구를 배신하고 의뢰인의 비밀을 팔아넘겨 '한 방'에 수백억을 버는 것. 창환은 영화를 위해 창조한 캐릭터다. 이 인위적 설정 덕에 영화는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얻었겠지만, 관객은 대한민국 사법제도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얻었다.
실화를 옮긴 영화라고 해서, 모두가 사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를 위한 축소와 생략, 과장과 미화는 흔한 일. 게다가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자막을 내보냈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지 모른다.
죄책감을 못 이긴 수사 경찰 중 한 명이 자살했지만 영화는 보여주지 않았고, '재심 변호사'의 모델인 박준영 변호사가 진정한 영웅이라 부른 군산경찰서 수사반장 역할은 단역으로 축소됐다. 그는 이 사건의 진범을 잡은 형사였다.
경찰은 소년을 때려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검찰은 강압 수사를 묵인했으며, 법원은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정당한 분노와 사리에 맞는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대중의 정의감을 이용해 분노를 만들어내고, 그 분노를 이용해 돈을 버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베테랑' '더 킹' 등 재벌의 횡포와 검찰의 탈선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극대화했던 영화들에 비하면, '재심'의 분노상업주의는 극히 사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픽션인 전작들과 달리, '재심'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것도 전술했듯, 진실과 정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였 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축소와 과장의 단순 이분법보다 삶의 복잡한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상관없다는 신념이 세계를 어떻게 망쳐왔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분노와 증오가 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감정적 카타르시스. 게다가 연출된 진실 때문에 만들어진 분노라면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1/20170221034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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