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우주개발 역사를 연 영웅들
2012.11.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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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봅시다] 우주개발 역사를 연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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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액체로켓을 개발한 미 로버트 허친스 고다드 박사와 그가 만든 액체로켓(왼쪽)세계 우주발사체의 원형이 된 `V2 로켓`을 개발한 독일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 |
폰브라운 NASA 설립 기여
태고 적부터 인류의 오랜 염원은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또 여기서 한발 나아가 달 여행과 같이 우주로 향하는 꿈을 꿔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동력비행기를 발명해, 하늘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세계 우주개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65년 쥘 베른은 `지구에서 달로'라는 작품에서 정확한 과학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달 여행에 대해 묘사했습니다. 이 책은 1902년 조르쥬 멜리어스가 제작한 흑백 무성영화 `달나라 여행'의 원작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이 커다란 대포에 인간을 넣고 달을 향해 쏘아올려 달나라를 여행하고 그곳의 동물들과 원주민들을 만난 뒤 지구로 귀환하는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주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문학과 영화에서의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온 사람은 콘스탄틴 에두라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1857∼1935)라는 러시아인이었습니다. 그는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로켓을 구상하고,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이론을 주창하는 등 우주여행을 공상이 아닌 과학으로 연구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반작용 장치에 의한 우주 탐험'이라는 책에서 액체수소를 연료로,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이용한 현대적인 액체로켓을 구상했으며, 오늘날의 로켓 제작에도 사용되는 `치올코프스키 공식'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무관심과 재정적 궁핍 속에 이론으로만 남았습니다.
이를 실용화한 사람은 로버트 허친스 고다드(1882∼1945) 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였습니다. `근대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모든 운동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법칙을 이용하면 로켓을 진공에서도 날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1926년 액체연료를 사용한 현대적인 로켓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그의 첫 실험에서 로켓은 2.5초 동안 약 12미터를 날아올라 56미터를 비행하는 데 그쳤지만 이 실험이 인류 우주개발 역사에 차지하는 의미는 지대했습니다. 이후 실험을 거듭한 끝에 1935년 5월 31일에는 로켓이 음속(약 시속 1224㎞) 돌파에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켓이 진공에서도 작동한다는 고다드의 주장에 대해 1920년 `지식조차 없다'며 혹평을 가했던 뉴욕타임스는 49년 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딛기 사흘 전인 1969년 7월 17일 고다드에게 `실수를 후회한다'는 사과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치올코프스키 공식과 고다드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의 역사를 연 나라는 독일이었습니다. 세계 우주발사체의 원형이 된 `V2' 로켓이 바로 독일에서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연 주인공은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1912∼1977)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고 평생 동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아 새 역사를 써냈습니다. 그는 열두살 때 이미 자동차에 불꽃을 장착하고 로켓실험을 해 큰 소란을 일으켜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지원 하에 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로켓 연구를 시작해 A1, A2, A3, A5 로켓, 항공폭탄 V1로켓을 개발한 데 이어 당시 최고의 로켓인 V2(A4) 로켓을 개발했습니다. V2는 액체산소와 알코올을 터빈펌프로 연소실로 보내는 방식의 액체로켓으로, 유도제어 장치를 이용한 자동조정이 가능했습니다. 1t의 폭약을 탄두에 싣고 목표를 향해 날아가다가 규정속도에 도달하면 엔진을 끄고 약 300㎞을 날 수 있었습니다. V2는 약 4000기가 제조돼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나 유럽 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폰 브라운 박사는 그러나 독일의 패전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해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힘쓰다가 1958년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어를 발사한 데 이어 미 항공우주국(NASA) 설립, 유인우주선을 이용한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 수립 등을 주도하면서 미국 우주개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러시아(구 소련)의 우주계획을 이끈 인물은 우주비행이론의 아버지로 꼽히는 세르게이 코롤료프 박사(1907∼1966)입니다.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종전 후 확보한 V2 로켓의 잔해와 독일 기술자들을 토대로 우주개발을 시작했지만 미국에 비해서는 확보한 양이 훨씬 적었습니다. 그런 불리함을 극복하고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코롤료프 박사의 천재성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인류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에 이어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의 유인우주비행까지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냉전시대에 정보 누출 우려 때문에 그는 존재 자체가 일급비밀에 부쳐져 이름마저 사망 후에야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우주관제센터가 있는 모스크바 근교 도시의 이름을 코롤료프시라고 명명할 정도로 그는 러시아 우주개발사의 영웅으로 꼽힙니다.
중국의 우주개발은 1955년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썬이 미 NASA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일본은 펜슬로켓의 개발자인 이토가와 히데오 박사가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꼽힙니다. 그의 진두지휘 하에 일본은 1970년 자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오오스미를 자체 개발한 로켓인 `람다-4S-5'를 이용해 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같이 각국은 우주개발 초기에 국가적 영웅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미래로 가는 또다른 공간을 열어줄 우리 우주개발의 길에도 그런 영웅과 열정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안경애기자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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