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많은 학자들은 지적 겸손, 자신의 의견이나 지식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여긴다.

여기에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생각에 대해 반추하고 생각해 볼 줄 아는 메타인지적 사고력, 어떤 상황적 맥락에서 대체로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 좋거나 나쁘다의 이분적 사고 방식을 넘어서는 유연한 사고방식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온갖 ‘지침’들이 존재해서 예를 들어 올바른 육아의 경우 아이들에게 스크린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스크린의 해악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들 중 일부는 부풀려져 있고 일부는 사실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때가 많다.

일례로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터에 아이를 데려가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일도 하고 아이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스크린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대체로 나쁜 것 같은 행동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나름 최선의 선택일 때가 있다.

또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음을 보고 쉽게 괘씸해하지만 그 사람에게 어떤 남모를 질병이나 힘듦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명함은 이렇게 우리 지식과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어떤 사람이나 행동이 옳거나 그르다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나 유행에 따라 이번에는 이 지침을 따르고 다음에는 저 지침을 따르는 것도 성급하게 기준을 수용해서 결국 쉽게 판단하고 마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쉽게 판단하지 않는 데에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정상’이라고 여기는 삶의 방식 또는 행동의 범주가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조건들이 사실은 ‘행운’인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불운들에는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있고 이들에 의해 삶이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사고할 줄 아는 것도 내 생각과 삶의 방식만이 옳다고 믿는 아집에서 벗어나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적 겸손이나 사고의 유연함이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부정하거나 자기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게 옳은 것들을 잘 알더라도 여기에 어떤 제약이나 한계, 또는 특정 조건이 전제되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좋은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데, 내게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 처한 타인에게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대담한 추측임을 알아야 한다.

보다 넓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면 서로 자기 말만 옳다고 고집하며 싸우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 지혜를 내적 평화와 연결 지은 학자들도 있는데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황희 정승의 설화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발달심리학에서는 흔히 만 4세부터 모두의 상황과 관점이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계속해서 인생의 복잡함을 더 깊게 깨닫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Grossmann, I., Weststrate, N. M., Ardelt, M., Brienza, J. P., Dong, M., Ferrari, M., ... & Vervaeke, J. (2020). The science of wisdom in a polarized world: Knowns and unknowns. Psychological Inquiry, 31(2), 103-13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본 웹사이트는 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광고 클릭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모두 웹사이트 서버의 유지 및 관리, 그리고 기술 콘텐츠 향상을 위해 쓰여집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천체물리 - 우주(과학)] [강석기의 과학카페] 기대이하 소행성 '베누' 시료…과학에 절제도 필요 file 졸리운_곰 2025.02.20 65
60 [천체물리 - 우주(과학)] [표지로 읽는 과학] 소행성 138개 발견…지구 충돌 위험 행성 포함 file 졸리운_곰 2025.02.08 45
59 [천체물리 - 우주(과학)] [표지로 읽는 과학] 손상 없이 지구에 온 소행성 '베누' 샘플 file 졸리운_곰 2025.02.01 44
58 [천체물리 - 우주(과학)] 태양과의 ‘키스’…NASA 탐사선, 시속 69만㎞로 610만㎞ 거리 역대 최근접 [아하! 우주] file 졸리운_곰 2024.12.27 79
57 [천체물리 - 우주(과학)] "우주, 기존 예측보다 빠르게 팽창할 수도" file 졸리운_곰 2024.12.11 77
56 [천체물리 - 우주(과학)] 태양 질량 100억배···‘우주의 괴물’ 극대질량 블랙홀의 비밀 [아하! 우주] file 졸리운_곰 2024.12.09 56
55 [천체물리 - 우주(과학)] [사이테크+] "16만 광년 밖 외부 은하 내 적색 초거성 확대 촬영 성공" file 졸리운_곰 2024.11.22 66
54 [천체물리 - 우주(과학)] 5년 후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 ‘아포피스’…지구 중력에 산사태 [아하! 우주] file 졸리운_곰 2024.11.15 70
53 [천체물리 - 우주(과학)] 부모 없는 떠돌이 행성, 알고 보니 이렇게 생긴다 [아하! 우주] file 졸리운_곰 2024.09.01 70
52 [천체물리 - 우주(과학)] 중력이 만든 빛의 예술…‘우주의 보석 반지’ 퀘이사 포착 [우주를 보다] file 졸리운_곰 2024.07.12 111
51 [천체물리 - 우주(과학)] 제임스 웹, 가장 오래된 은하 발견했다 [우주로 간다] file 졸리운_곰 2024.06.04 91
50 [천체물리 - 우주(과학)] 한국에도 오로라 내린 '태양폭풍' 비밀 400년만에 풀릴까 file 졸리운_곰 2024.05.24 153
49 [천체물리 - 우주(과학)] [화보] 올해 최고의 천체사진은 태양의 '민낯' file 졸리운_곰 2024.04.22 151
48 [천체물리 - 우주(과학)] '빅뱅이론'이 흔들린다...기존 우주론 위협하는 연구들 file 졸리운_곰 2024.04.20 237
47 [천체물리 - 우주(과학)] 우주론·빅뱅이론 유효기한 끝났다?…의문 제기하는 천문학자들 file 졸리운_곰 2024.04.15 139
46 [천체물리 - 우주(과학)] “화성아 미안해”…NASA 우주선 충돌 소행성서 튀어나온 바위 ‘화성행’ [아하! 우주] file 졸리운_곰 2024.04.14 141
45 [천체물리 - 우주(과학)] 토성 위성 '미마스' 땅 속에 바다 숨어있다 file 졸리운_곰 2024.02.09 109
44 [천체물리 - 우주(과학)] 두 은하의 ‘중력의 춤’으로 탄생한 ‘우주의 하트‘ [우주를 보다] file 졸리운_곰 2024.02.09 141
43 [천체물리 - 우주(과학)] 우주 차단막으로 태양열 막기…뜨거운 지구 구할까 file 졸리운_곰 2024.02.04 174
42 [천체물리 - 우주(과학)] 日 달 착륙선 '슬림' 동력 복구 후 운용 재개…첫 촬영 이미지 공개 file 졸리운_곰 2024.01.30 154
대표 김성준 주소 : 경기 용인 분당수지 U타워 등록번호 : 142-07-27414
통신판매업 신고 : 제2012-용인수지-0185호 출판업 신고 : 수지구청 제 123호 개인정보보호최고책임자 : 김성준 sjkim70@stechstar.com
대표전화 : 010-4589-2193 [fax] 02-6280-1294 COPYRIGHT(C) stechstar.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