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부터 광신적 ‘○빠’까지  [출처: 중앙일보]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부터 광신적 ‘○빠’까지

[윤석만의 인간혁명]가짜 민주주의

미국 대선 기간 러시아 조직이 만든 페이스북 계정에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부추기는 글이 많았다. [사진 BBC]

미국 대선 기간 러시아 조직이 만든 페이스북 계정에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부추기는 글이 많았다. [사진 BBC]

등장인물
티머시 스나이더

티머시 스나이더

티머시 스나이더
(1969~). 한나아렌트상(2013) 등을 수상한 유명 역사학자(예일대)다. 홀로코스트 전문가로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와 전작인 『폭정』을 통해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트럼프 ‘스캔들 부인시 사면’ 제안”
뮬러 특검 “러시아가 미 대선 개입”
러 조직, 반힐러리 가짜뉴스 유포
괴벨스식 선전·선동이 우중 만들어

 
프랜시스 후쿠야마

프랜시스 후쿠야마

프랜시스 후쿠야마
(1951~). 1989년에 쓴 논문 ‘역사의 종언’을 통해 구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를 예측했다.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승리하며 냉전의 역사는 끝났다고 말했다. 현재 스탠퍼드대 교수.
 
로저 스톤

로저 스톤

로저 스톤
(1952~). 19세 때 ‘워터게이트’ 관련자로 이름을 올린 전설적인 로비스트. 1980년대 트럼프와 처음 인연을 맺고, 적극적으로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 그의 일대기는 넷플릭스 다큐로도 제작됐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알렉시스 드 토크빌
(1805~1859). 프랑스 귀족이자 정치가. 미국 여행 후 집필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와 시민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한 정치학의 고전이다.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는 결사·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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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영국의 대표적인 공리주의 철학자. 이전 학자들은 주로 ‘의지의 자유’를 논의했지만 밀은 『자유론』에서 사회적(시민적) 자유를 고민했다. 자율과 개별성, 다양성 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지난주 미국 정가는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줄리안 어산지의 추가 폭로로 시끄러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부인하는 대가로 사면을 제안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면 백악관은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죠. 정부 기밀문서를 누설한 어산지는 현재 방첩법(Espionage Act)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있습니다.

 
어산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과 외교 문서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연방수사국(FBI)은 러시아 해커가 자료를 빼냈고, 이를 위키리크스에 전달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5월 로버트 뮬러의 특검이 시작됐죠.

 
지난해 3월 특검은 “트럼프 측과 러시아가 직접 공모한 사실은 입증하지 못했다”고 결론냈습니다. 다만 뮬러 특검은 “그렇다고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면서 러시아 조직의 대선 개입은 사실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특검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라는 조직을 통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미국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뮬러 특검이 밝힌 러시아식 ‘댓글부대’인 IRA는 다양한 SNS 계정을 활용해 선전 활동을 벌였습니다. IRA는 470개의 페이스북 계정을 마치 미국의 정치·시민 단체가 만든 것처럼 위장하고 각종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습니다.

 
2017년 10월 페이스북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IRA는 2015년부터 2년간 8만 건의 게시물을 올리고, 약 2900만 명이 이를 뉴스피드로 받아 봤습니다. IRA가 운영한 ‘블랙 매터스 유에스(Black matters US)’ 페이지는 백인에 대한 흑인의 적개심을 키우며 “힐러리는 흑인의 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선동했습니다.

  
미 지식인들 “트럼프식 정치에 참담”

 
2018년 5월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서도 IRA는 총기 규제, 이슬람교, 동성애, 이민자 등과 관련한 자극적인 글과 사진을 올리고 확산을 유도한 것으로 나옵니다. ‘허트 오브 텍사스(Heart of Texas)’라는 계정은 2016년 7월 경찰관 5명을 살해한 댈러스 총격범 미카 존슨에 대해 “이슬람 소유의 건물을 테러에 이용했다. 1만 명의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텍사스에서 보고 싶지 않다”고 썼습니다.

 
이는 물론 거짓이었습니다. 존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베테랑 군인으로 자신의 집에서 다량의 무기가 발견됐습니다. 당시 블룸버그뉴스는 “러시아가 미국인들의 불만을 자극해 혼란에 빠뜨린 명백한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명 역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IRA의 6개 페이지가 올린 콘텐츠는 시민들에게 3억4000만 번 공유됐다”며 “미국인 1억 3700만 명이 투표했는데 1억2600만 명이 러시아 조직이 올린 글을 봤다”고 지적합니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의 심장처럼 여겨지는 미국 대선의 한복판에서 러시아 조직이 주도한 선전·선동 활동이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미국 지식인들은 트럼프 당선 전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비판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7년 9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의 종언’ 이후) 민주주의가 어떻게 퇴보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도 분명히 후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30년 전 소련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선 자본주의가, 권위주의(독재)와의 경쟁에선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봤죠. 이렇게 자유민주주의의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냉전의 프레임으로 작동했던 20세기의 역사는 끝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미국의 지식인 사회는 오랫동안 쌓아온 민주적 가치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트럼프식 정치에 큰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가짜 뉴스로 치부하고, 해명이 어려울 땐 거짓말도 거리낌 없습니다. 지난 10일에는 사법권 침해 발언도 서슴지 않았죠. 자신의 참모 로저 스톤이 ‘러시아 스캔들’ 관련 위증 혐의로 기소되자 “끔찍하고 불공정하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심지어 법무장관인 윌리엄 바는 법원에 스톤의 형량을 낮춰 달라고 했죠. 그러자 법무부 전직 관료 1143명이 바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트럼프는 삼권분립의 원칙까지 훼손하며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지만 그의 지지율은 49%(2월 4일 갤럽)로 여전히 굳건합니다. 공화당 지지층에선 94%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죠.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거짓말과 전문성 무시, 민주주의 경멸을 스스로 합리화한다”며 “사실에 대한 무관심, 이성을 대체한 감성, 좀먹은 언어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진실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일찌감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극찬했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스나이더 교수는 이를 ‘가짜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논리보다는 자극적인 언사가 대중의 사고를 좌우하면서 중우정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죠.
  
맹목적 ‘○빠’도 가짜 민주주의

 

2016년 댈러스 총격범과 무슬림이 연관됐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린 SNS. [사진 미국의회]

2016년 댈러스 총격범과 무슬림이 연관됐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린 SNS. [사진 미국의회]

한국도 마찬가집니다. SNS에선 거짓이 사실로 쉽게 둔갑합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논리보다 광기가 대중을 선동하는 경우도 많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김어준’과 ‘유시민’을 예로 듭니다. 지난 1월 jtbc 토론에서 그는 증거 인멸을 ‘증거 보전’으로, 부모의 대리시험을 ‘오픈북’으로 두둔한 ‘유시민’에 대해 궤변이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괴벨스같이 선동하고 대중을 멍청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세뇌된 대중은 명백한 사실조차 믿지 않는”(티머시 스나이더) 상황에 놓입니다. 아직도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거나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7시간’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들이 대표적이죠. ‘음모론’은 픽션처럼 잘 짜여 있어 때론 사실보다 더욱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안병진 교수는 “과학과 이성, 사실이 부정되고 궤변과 독선, 거짓이 대중을 움직일 때 ‘가짜 민주주의’가 확산된다”며 “합리적 토론이 사라진 공론장엔 비판적 시민 대신 맹목적 팬덤만 남는다”고 말합니다. 이때 정치가와 지지자를 엮는 것은 민주적 원칙이 아닌 종교적 맹신입니다. 소위 ‘박빠’ ‘문빠’ 같은 정치 팬덤은 상대를 ‘악’으로 몰고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재단하는 독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짜 민주주의’를 막는 길은 합리적 이성과 논리로 거짓 선동과 독선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독선은 절대적인 권력과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한다”며 ‘진리’ ‘절대선’ 같은 표현을 쓰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죠. 그 대신 “표현의 자유와 상대적 다양성을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상의 어떤 현자도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유론』)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어떨까요.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유튜브에서도 인간혁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pp-I9olmN4 


[출처: 중앙일보]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부터 광신적 ‘○빠’까지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1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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