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0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혜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혜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혜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입력
오픈AI 제공

오픈AI 제공

평소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거나 틀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이따금씩 틀리더라도 자신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체로 다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대체로 옳다’고 여기는 자신감이 쓸데없이 과한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지적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특성을 ‘지적 겸손’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연구들에 의하면 이는 꽤 안정적인 특성이라서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한 가지 설명(보통 자신의 시각)에만 매몰되어 있기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에 열려 있는 편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적대시하는 일도 비교적 적다. 복잡한 현상에 대해 지나친 단순화나 과한 일반화를 좋아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양한 층위의 원인들을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와 달리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들의 경우 보통 자신의 시각에 지나치게 과한 가중치를 두고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의견만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싫어하거나 배척하는 일이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고 문제의 복잡함에 반해 지나치게 ‘간단명료한 설명’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지적 겸손도에 따라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옳고 그름이 명확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나마 지적 겸손도가 낮은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지적 겸손도가 낮기보다 높은 사람들의 의견을 더 잘 청취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의 경우에도 지적 겸손도가 높을 때(또는 높다고 여겨질 때), 사람들이 더 과학자들이 한 연구 내용을 신뢰한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또 조직 내에서도 리더의 지적 겸손도가 높을 때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더 많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었다.

비교적 ‘정답’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입장이 상충하는 사회적 문제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상황에서도 지적 겸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나 코에트키 피츠버그대 연구자의 연구에 의하면,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다양한 ‘갈등’ 상황을 더 잘 해쳐나가는 편이다.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갈등 상황에서

① 긍정적 정보 전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② 긍정적 회피: 사람들이 여러 대안을 더 잘 검토할 수 있도록 문제를 차후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
③ 긍정적 개방: 어떤 해결책을 제안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핌
④ 긍정적 연대: 함께 마음을 모아 해결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건설적인 행동을 더 자주 한다고 보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반면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들에 비해

⑤ 부정적 공격: 상대방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거나
⑥ 부정적 회피: 갈등이 불편해서 침묵을 지키거나 대화 주제를 바꾸는 등의 해로운 행동은 덜 하는 편이라고 보고했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첨예한 국가 간, 집단 간 갈등 상황에서도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양쪽의 입장에 좀 더 균등한 관심을 보이고 팔이 안으로 굽기보다 외집단 사람들의 피해 상황과 고통에 대해서도 인지하며 폭력적이기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점점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에서 꼭 ‘한 가지 정답’만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서로 다른 의견들이 부딪히는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이 반드시 옳거나 특히 내 생각만 옳을 가능성은 아마 매우 적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 이런 지혜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반드시 옳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의 지적 겸손도를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8 10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행, 개인 탓만은 아니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행, 개인 탓만은 아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행, 개인 탓만은 아니다

입력
오픈AI 제공

오픈AI 제공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왜?”, “어쩌다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집에 불이 나거나 실직을 하는 등 부주의나 실수 같은 개인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큰 병에 걸리는 것처럼 항상 뚜렷한 원인이나 책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문제들에 대해서도 나름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물론 나쁜 일에 대해 어떤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유용할 때가 많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최소한 자신의 힘으로 나쁜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통제감’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런 노력이 개인에 대한 지나친 비난과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고 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예측 가능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세상에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고(예> 불경기, 운) 한 치 앞도 살필 수 없는 것이 삶이지만 노력하고 착하게 살면 나쁜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상은 대체로 공정하다는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이다.

이 믿음 덕분에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즐비함에도 내가 하는 행동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의미감과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착하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닥치는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재난 뉴스에 “그러게 거기 왜 갔냐”는 댓글들이 달리고 무고한 피해자에게 “걔도 뭔가 잘못을 했을 거다”라는 추측과 2차 가해가 따라붙는다.

자신의 통제감과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가난’에 대해서도 빈부격차나 높은 물가와 실업률, 낮은 임금 같은 문제들을 전부 ‘게으름’ 같은 개인 내적 문제로 환원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개인 내적·외적 요소들이 얼키고설켜 만들어지고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것들을 너무 단순하게 축소시켜 버린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치고 괜한 사람들만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종결시키고 만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내가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은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특히 ‘남들도 대체로 자신에게 걸맞은 결과를 얻는다’는 믿음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을 찍는 것이나 이미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을 더 차별하고 처벌하려는 행동과 관련을 보인다.

나의 상황과 타인의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고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삶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어쩌면 생각보다 해결 방법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삶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고 많은 문제들이 개인 내적·외적 요소들에 걸쳐 복잡하게 꼬여 있으며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차원의 문제들도 존재함을 인정하면 적어도 타인의 삶을 쉽게 판단하는 행동은 삼가게 되지 않을까?

연구들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우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임을 아는 편이다. 이 세상에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란 없음을 기억해야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2 10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달콤한 디저트도 가끔 먹어야 맛있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달콤한 디저트도 가끔 먹어야 맛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달콤한 디저트도 가끔 먹어야 맛있다

입력
오픈AI 제공

오픈AI 제공

늘 자신에 대해 불만이 많고 자신은 부족함 투성이라고 하는 지인이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부족함은 당연히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에 못지 않게 멋진 점도 엄청 많은데 그것들을 다 제쳐두고 자신에게 없는 부족한 것들만 바라보며 우울감에 빠져드는 편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개인 내적인 문제들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그 중에서도 한참 성취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만 둘러싸여 있는 것이 한 몫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이야기할 때 항상 ‘다른 사람들은’, ‘직장 동료 누구는’ 무엇 무엇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식이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이 어느 정도 성취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쓸모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한다. 예를 들어 모두가 10 정도를 하고 있는 사회에서 나 혼자 6을 하고 있다면 좀 더 분발해야겠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15를 하고 있다면 이미 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비교가 ‘의미 없는’ 문제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수학 능력에 대해 파악하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나의 수학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이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내 내면세계의 풍부함, 생각의 깊이, 오늘 나는 행복했는지 같이 객관적인 기준보다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에 있는 문제들은 비교가 유용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또 도움이 되는 비교라고 해도 정도껏, 딱 1절까지만 해야 하는데(성취도가 좀 부족한 것 같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계속해서 온갖 것에 대해 비교하며 나는 왜 이렇게 남들에 비해 부족한지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인 게 아닐지 등등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으로 빠져들고 우울감과 무력감에 허우적 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쉬듯이 비교를(불필요한 영역에서+지나치게) 하다 보니 웬만하면 비교하지 말라는 조언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주변에 성취도가 너무 높은 사람들만 잔뜩 알고 있거나 이런 사람들에게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이 보다 어려운 일이 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부러워할 때면 보통 겉으로 보이는 한 두 가지 반짝이는 면에만 꽂혀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삶의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는 보통 신경 쓰지 않을 때가 많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에는 피상적인 정보를 전체로 일반화 해서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삶을 불만족스러워 할 때에는 좋은 부분도 많지만 싫은 부분도 많기 때문에 나쁘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내가 그러하듯 내가 부러워 하는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머리가 복잡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누구한테 어떤 좋은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소문들도 쉽게 부럽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곤 하지만 살아가면서 겪는 특별히 좋은 일이란 보통 아주 가끔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삶은 긴 일상들이 연속되는 ‘시간’이고 매일 특별함으로 가득한 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설령 늘 좋은 일이 생긴다 해도 인간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금방 적응하는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아주 좋아 보였던 것도 막상 가지고 나면 처음의 기쁨은 금새 없어지고 다시 평범하고 당연한 무엇이 되기 마련이다. 감정은 어떤 종류이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생존에 크게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는 전제 하에) 어떤 몇 가지 거대한 이벤트로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행복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너무 좋을 것 같은 일도 대략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의 감정 상태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러한 점 때문에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즐거움의 크기를 계속해서 늘리기보다 기준점을 낮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매일매일 달콤한 디저트를 먹기보다 가끔씩 먹는 것이 더 먹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는 매일매일 생일파티를 하는 것보다 일년에 한 번 하는 것이 더 생일파티의 즐거움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누군가는 생일 파티를 매일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적어도 행복에 있어서는 크게 부러워할 필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9 10월 2025

[사회과학] [알아봅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기 과몰입’ 불행의 원인

[사회과학] [알아봅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기 과몰입’ 불행의 원인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기 과몰입’ 불행의 원인

입력
오픈 AI 제공

오픈 AI 제공

많은 연구들이 자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저주, ‘자신에 대한 생각’ 외에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 갖기)이 잘 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자기 과몰입(self-preoccupation)이 불행의 주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다가도 ‘과연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같은 생각을 시작하면 얼마든지 갑자기 내 인생은 망한 것 같다는 파괴적인 결론을 내리며 깊은 우울감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로 지나친 자기 집중,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우울증과 깊은 관련을 보인다.

자기 몰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모든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안녕을 중시하는 이기심(egoism),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타율성(heteronomy) 등이 흔히 나타난다.

이에 반해 마크 리어리 듀크대 심리학자 등의 연구자들은 저(低) 자기 몰입(hypo-egoic) 상태가 우리 삶 속에 불필요한 불행을 줄여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의 상황에 더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들여다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추상적이고 과장된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준에서 바라보고(예를 들어 나는 성공한 인간인가? 같은 추상적인 질문보다 오늘 하루 즐거웠나?라고 묻기) 다른 사람의 평가를 덜 신경 쓰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저(低) 자기 몰입 상태는 자기 과몰입 상태에 비해 나나 내 집단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돕고 기존의 자아상이 위협을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 좀 더 적응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

● 자기 자비, 수용, 그리고 회복탄력성

자기 과몰입 상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경직된 자아관’이다.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적어도 얼마를 벌어야 하고 어떤 배경들을 가져야 하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등 촘촘하고 세세한, 때로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자아관을 강하게 밀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실패에도 금방 부러지고 만다.

‘○○하지 않으면 살 필요가 없어’ 같은 생각이 마치 벗어날 수 없는 함정처럼 촘촘한 그물을 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작은 일에도 나라는 사람 전체가 쉽게 꺾이는 듯한 일반화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아관이 경직되어 있을수록 자신의 실패를 잘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탓’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해 버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여기에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자기 자비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예를 들어 물론 슬프지만 인간인 내가 실수하고 일을 망치는 건 당연한 일), 힘들어하는 친구를 대하듯 자신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곧 내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성급함에서 한 발 물러나 좀 더 넓은 상황을 바라보며 인간일 뿐인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음을 힘들다는 것은 내가 멍청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뜻할 뿐임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이 특히 경직된 사회적 기준을 내면화해서 경직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비가 불필요한 괴로움을 줄여주고 보다 쉽게 마음의 평화를 가지도록 돕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힘든 것이 인간으로서 겪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뜩이나 힘든데 더 윽박지르고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보다는 위로와 친절,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과몰입에서 한 발 물러서서 자기 비판적인 생각을 “진짜 나의 본질”로 여기지 않고 단순히 어려움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 기억해 보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27 9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속 시끄러운’ 자아 비워야 진정한 나를 찾는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속 시끄러운’ 자아 비워야 진정한 나를 찾는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속 시끄러운’ 자아 비워야 진정한 나를 찾는다

입력
오픈AI 제공

오픈AI 제공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이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 창밖에서 홀딱 젖은 새를 보고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춥고 축축한 게 싫겠지만 새는 “아 정말 오늘 날씨 왜 이래. 춥고 축축해서 짜증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살기 싫다!” 같은 피곤하고 파괴적인 자기 대화(self-talk)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더 괴로운 것 같다는 얘기였다.

‘자아의 저주(The curse of the self)’라는 말처럼 인간은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시시각각 평가적이고 말이 많은 자아를 가진 탓에 이미 존재하는 삶의 괴로움에 더해 자아가 만들어낸 괴로움까지 추가로 지고 살아간다.

개미들도 부지런히 일하느라 힘들겠지만 자신이 다른 개미들보다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함, 인플루언서 개미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등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때문에 가만히 잘 있다가도 불안감이 엄습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일은 잘 겪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남들과 다른 ‘나’에 대해 생각하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 하나 세세히 평가하고 시공간을 넘나드며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정신적 기능을 ‘자아’라고 부른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모니터링하고 자아 성찰, 미래에 대한 계획 세우기 등이 가능해진 덕분에 장기적 목표 달성 같은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물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해로울 수 있는 것처럼 뭐든지 지나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아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지 않아도 될 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과 평가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한 생각’ 외에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눈 앞에 있는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귀 담아 듣기,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 갖기 같은 것이 잘 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현상(self-preoccupation)이 나타난다.

또 세상 모든 일을 내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안녕을 중시하는 이기심(egoism),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다가 자신이 원하는 삶보다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타율성(heteronomy) 등이 흔히 나타난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과한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에 불과한 것에 심하게 집착하는 상태를 ‘과도한 자기 몰입(hyper-egoic states)’이라고 부른다.

이미 많은 종교와 철학적 가르침들이 자아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 있을 것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으로 불교에서는 이상적인 자아상에 대한 집착이 갈망, 분노, 질투의 근원이라고 보고 명상 등을 통해 자기 대화를 잠재우는 법을 가르쳐왔다.

신기하게도 과학적 발견들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으로서 갖는 본질적인 부족함들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보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 자신의 지식과 자아를 분리해서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괜찮다고 할 줄 아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 힘들 때 ‘나만’, ‘내가 제일’ 고통받고 있는 것 같다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인생은 원래 어느 정도 고통을 내포하고 있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할 줄 아는, 고통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 등이 행복과 정신 건강, 평정심, 회복탄력성, 이타심과 자비로운 마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알더라도 우리의 자아는 여전히 말이 많고 대체로 안 좋거나 편향되어 있는 말을 쏟아낸다. 그래봤자 내 머리 속에 떠다니는 말들일 뿐이지만 깨어 있는 동안 계속해서 듣게 되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실’로 여기고 우울이나 불안에 빠져든다.

자아만큼 나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전문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게 또 있을까. 안타깝게도 자아는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적인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자아가 하는 말을 적당히 걸러 듣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시도가 필요하다. 명상이든 운동이든 맛있는 거 먹기, 영화 보기, 또는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가 되었건 내 자아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게끔 도와주는 활동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해보도록 하자.

바로 어제만 해도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 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꿀잠을 자고 나니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나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시간들을 가져보도록 하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3 9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많은 학자들은 지적 겸손, 자신의 의견이나 지식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여긴다.

여기에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생각에 대해 반추하고 생각해 볼 줄 아는 메타인지적 사고력, 어떤 상황적 맥락에서 대체로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 좋거나 나쁘다의 이분적 사고 방식을 넘어서는 유연한 사고방식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온갖 ‘지침’들이 존재해서 예를 들어 올바른 육아의 경우 아이들에게 스크린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스크린의 해악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들 중 일부는 부풀려져 있고 일부는 사실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때가 많다.

일례로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터에 아이를 데려가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일도 하고 아이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스크린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대체로 나쁜 것 같은 행동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나름 최선의 선택일 때가 있다.

또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음을 보고 쉽게 괘씸해하지만 그 사람에게 어떤 남모를 질병이나 힘듦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명함은 이렇게 우리 지식과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어떤 사람이나 행동이 옳거나 그르다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나 유행에 따라 이번에는 이 지침을 따르고 다음에는 저 지침을 따르는 것도 성급하게 기준을 수용해서 결국 쉽게 판단하고 마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쉽게 판단하지 않는 데에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정상’이라고 여기는 삶의 방식 또는 행동의 범주가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조건들이 사실은 ‘행운’인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불운들에는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있고 이들에 의해 삶이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사고할 줄 아는 것도 내 생각과 삶의 방식만이 옳다고 믿는 아집에서 벗어나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적 겸손이나 사고의 유연함이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부정하거나 자기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게 옳은 것들을 잘 알더라도 여기에 어떤 제약이나 한계, 또는 특정 조건이 전제되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좋은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데, 내게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 처한 타인에게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대담한 추측임을 알아야 한다.

보다 넓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면 서로 자기 말만 옳다고 고집하며 싸우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 지혜를 내적 평화와 연결 지은 학자들도 있는데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황희 정승의 설화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발달심리학에서는 흔히 만 4세부터 모두의 상황과 관점이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계속해서 인생의 복잡함을 더 깊게 깨닫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Grossmann, I., Weststrate, N. M., Ardelt, M., Brienza, J. P., Dong, M., Ferrari, M., … & Vervaeke, J. (2020). The science of wisdom in a polarized world: Knowns and unknowns. Psychological Inquiry, 31(2), 103-13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6 9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삶을 바꾼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삶을 바꾼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삶을 바꾼다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 하나만으로 사람의 인생은 많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학창 시절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선생님이 느닷없이 요즘 이혼율이 높아서 문제라며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범죄자가 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은 일찍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내게 엄청난 상처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그런 편견 어린 시선이야말로 (어쩌면 부모님의 이혼보다도 더)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딱 한 분,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던 선생님이 계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나의 말에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 참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해주셨고, 정말 1초 만에 아픔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다.

이 선생님 말고도 살면서 만났던 다양한 어른들 중 (물론 상처가 되는 말을 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를 전해주었던 존재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특히 사춘기 시절 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믿어주고 따뜻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오코노푸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학생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믿음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발휘한다. 연구자들은 약 160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그룹의 교사들에게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 여전히 아이를 신뢰하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공감적 사고방식’을 갖도록 했고, 또 다른 그룹의 교사들에게는 교육 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접하도록 했다.

공감적 사고방식 그룹의 경우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예를 들어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과 교사의 긍정적인 반응이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하는지 또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찍는 것이 어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반복되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계속해서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 경고를 주고 교실에서 나가도록 하는 등의 처벌을 줄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아이와 둘이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등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1년 후 살펴보니 결과는 놀라웠다. 공감적 태도를 취하게 된 교사들의 학급에서는 정학률이 절반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남학생: 14.6% → 8.4%, 흑인 및 라틴계 학생: 12.3% → 6.3%, 과거 정학 경험 학생: 51.2% → 29.4%). 특히 이전에 정학 경험이 있었던 학생들의 경우 선생님들이 처벌보다 대화하려고 다가갔을 때 교사에 대한 ‘존중’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많은 교사분들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한국의 경우 양육자들의 지나친 민원과 교권 침해가 아이들의 성장을 더 방해하는 요소일 것이다.

또 신뢰와 따뜻한 태도의 중요성은 비단 교사-학생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존재이든지 간에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성장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살아온 데에는 아마 그런 은인들의 존재가 한몫할 것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그런 도움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왔다. 그렇기에 더욱더 타인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마치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룬 척하지 말 것, 도움을 받기만 하지 말고 다시 돌려줄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나이도 꽤나 먹었고 슬슬 나잇값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순간들을 늘려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Okonofua, J. A., Paunesku, D., & Walton, G. M. (2016). Brief intervention to encourage empathic discipline cuts suspension rates in half among adolescent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3(19), 5221-522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584/0000034266

Loading

29 8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억지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억지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억지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살다 보면 결국 ‘꾸준함’, ‘버티는 것’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잘하더라도 금방 질려서 그만두면 실제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경험과 전문성, 인맥, 기회 등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잘 버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왠지 초인 같은 의지력, 싫어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끈질긴 정신력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영역에서 (어느 정도 잘 맞는다는 전제 하에) 꾸준함과 좋은 자기 통제력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행동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카타리나 베르네커 베른대 사범대와 취리히대의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그저 기분이 좋은 일을 고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예를 들어 새로운 것 배우기, 자기 관리)을 고르는 편이었다.

이들은 또한 비슷한 활동을 해도 자신이 선택한 활동을 더 의미 있다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집 청소를 해도 평소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겹고 하기 싫고 의미 없는 잡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느끼고 더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었다.

비슷하게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운동과 같은 활동을 해도 하기 싫지만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종합하면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활동에서도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재능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 꾸준히 오래 열심히 해서 계속해서 경험과 능력치가 향상되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든 비교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적 의미를 잘 찾는 사람들인 것 같다.

주변에 있는 연구자 선생님들과 대화하다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어도 본인이 자기 연구를 좋아하는 것이 학계에 오래 남는 비결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의미 있게 여기거나 즐기지도 못한다면 오랜 시간을 바쳐 그 일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항상 의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ernecker, K., Becker, D., & Guobyte, A. (2025). High self-control individuals prefer meaning over pleasure.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Advance online publication.
Moshontz, H., & Hoyle, R. H. (2021). Resisting, recognizing, and returning: A three-component model and review of persistence in episodic goals.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15(1), e12576. doi:https://doi.org/10.1111/spc3.1257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7 8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나쁜 기분을 견디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평소 웬만해서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지인이 있었다.

물론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오랫동안 접하는 것은 충분히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쉬어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불편함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역사적 만행에 대해 지금도 그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도리어 왜 자신에게 그런 짐을 지우느냐며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기도 하는 것처럼(힘들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더 경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때로는 부정적인 경험들 특히 사회 정의와 관련된 일일수록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널리 이롭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해롭지 않은 길을 갈 것인지가 정해지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편한 마음을 참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여전히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다 지난 일이니 그만하라”거나 “나는 온전히 내 힘으로 자수성가했고 그러므로 타인이나 사회에는 단 한 푼도 나눠줄 수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버게트 쿱만 홀름 산타클라라대 연구자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부정적 정서(슬픔 불행 외로움 두려움 긴장되는 느낌 졸림 축 처지는 기분) 등의 소위 불편한 감정들을 피하려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종차별’ 특히 사회 구조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정서들에 비해 유독 부정적 정서를 피하고 싶은 정도를 측정하고 이것이 인종차별 사례들에 대해 실제로 얼마나 인종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지와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부정적 정서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세대를 걸쳐 전해지는 가난이나 미디어에서 유색인종이 묘사되는 방식 등에서 인종차별을 ‘덜’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피하도록 지시하거나 최대한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했을 때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 인종차별적 상황을 더 인종차별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자들은 부정적 감정을 피하고 싶을수록 타인의 고통을 쉽게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인의 고통 특히 사회적 불의를 직면하면 화, 분노, 슬픔, 무력감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에 노출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또한 부정적인 감정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를 피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약자혐오가 심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보고 죄책감이나 기타 불편한 감정을 크게 느낀 사람들일수록 이후 노숙자들에 대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저런 처지가 된 것’이라는 식의 내적, 부정적 귀인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약자들을 악마화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약자를 비난하는 것만큼 ‘값싼’ 문제(적어도 당장 찝찝한 기분을 해결하는 방법)가 없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어떤 종류의 불의든지 ‘과거보다는 지금이 낫다’거나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정당화하고 직면하기를 피하는 사람들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설 확률이 낮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불편한 감정들이 괴로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그 불편함의 근원이 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지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장기적으로도 안녕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이다.

특히 언젠가 사회 곳곳에 퍼진 약자 혐오가 자신을 향한 혐오로 돌아올 때 내가 묵인한 문제들이 나에게 쏟아질 차례가 될 때 우리는 과연 편안할 수 있을까.

Murray, K., & Koopmann-Holm, B. (2024). Facing discomfort: Avoided negative affect shapes the acknowledgment of systemic racism. Emotion, 24(6), 1522-153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6 8월 2025

[chatGPT] “박사급이라더니 대통령 이름도 몰라”… 조롱 쏟아진 GPT-5 답변

[chatGPT] “박사급이라더니 대통령 이름도 몰라”… 조롱 쏟아진 GPT-5 답변

01 ZTG4CG4HDVL2RJJTL2UJSMTGEI.png
 
오픈AI 챗GPT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야심 차게 내놓은 최신 모델 ‘GPT-5’가 기본적인 오류 연발로 일부 이용자들에게 조롱받고 있다.

미국 CNN 등 외신은 오픈AI가 선보인 GPT-5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성능을 보여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앞서 GPT-5는 지난 7일 첫 공개 당시에만 해도 AI 업계와 이용자들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박사급 전문가 수준의 모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GPT-5는 달랐다. 오류가 연이어 발생하고 명백히 잘못된 답변이 반복된 것이다. 그 예로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 12명의 사진과 이름을 넣어 표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조지 워싱턴을 ‘기어지 워싱지언’(Gearge Washingion)으로, 토머스 제퍼슨을 ‘토머슨 제퍼슨’(Thomason Jefferson)으로 적는 등 조금씩 이가 빠진 결과물을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지도를 그리고 주(州) 이름을 표시하라는 명령에 캘리포니아를 ‘칼포히아’(CALFORHIA)로, 아이다호를 ‘1오아호’(1OAHO)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이용자는 GPT-5를 조롱하며 비웃는 이미지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전 버전인 GPT-4o보다 성능이 부족하다며 기존 모델을 되살리라는 온라인 청원 운동도 벌어졌다.

02 YQBK45NOVFAP5CKLAU7S3PSD3M.png
 
일부 이용자가 GPT-5의 성능을 조롱하며 만든 이미지. /X(옛 트위터)

결국 올트먼 CEO는 지난 9일 X(옛 트위터)에 글을 써 “(모델의) 자동 전환 장치가 고장 나 사용 불가 상태였기에 GPT-5가 실제보다 더 멍청해 보였다”며 “오늘부터는 더 똑똑해 보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GPT-5에는 이용자 질문에 따라 여러 성능의 모델 중 가장 적합한 하나가 답변을 생성하는 자동 전환 장치가 있는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CNN은 올트먼 CEO의 해명 이후 똑같이 미국 지도를 그리라는 명령을 내려봤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AI 비판 인사로 유명한 게리 마커스 뉴욕대 명예교수는 “오픈AI가 이렇게 어중간한 수준의 모델에 브랜드 이름을 내걸 줄 몰랐다”며 “합리적인 세상이었다면 그들의 기업 가치가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5/08/17/MUM67WIRPZDBVFV5FKY5BHZVC4/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