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설명하려 할 때 공감은 사라진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설명하려 할 때 공감은 사라진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설명하려 할 때 공감은 사라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생은 고통’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편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은 오직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는 물론 좋은 일도 가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존재하기에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어느 정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하고 그 외에도 아마 생기지도 않을 일들로 인해 과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예를 들어 만약 XX하면 어떡하지?), 진실과 거짓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허상을 좇는(예를 들어 XX만 있으면 행복해질 거야) 우리 마음의 경향 때문에 생기는 고통도 적지 않다.
또 자신의 잘못은 쉽게 합리화하면서 타인의 흠은 쉽게 판단하는 경향 역시 많은 고통을 만들어 낸다. 내 집단을 편애하고 외집단은 배척하는 편향, 또 내가(우리 집단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편향으로 인해 많은 집단 간 갈등과 차별, 소외,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세상사 대부분의 문제는 내적·외적 과정을 아울러 ‘사람’의 문제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우리가 ‘인간’인 한, 우리의 삶과 세상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의 즐거운 일들은 고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은 많은 즐거움이 그 자체로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중하기 때문에 집착하고 걱정한다(예를 들어 자식 걱정).
사람이든 목표이든 소중한 만큼 잃었을 때의 상실감 또한 크고 심한 경우 삶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명절날 가족 모임을 괴로워하는 정도가 지구에서 가장 심하다는 한국인들은 특히 공감할 수 있겠지만 포기할 수도 쉽게 연을 끊을 수도 없는 대상들로 인해 평생 짊어지게 되는 고통 또한 적지 않다.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는 복잡한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다. 결국 인생은 고통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이런저런 고통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 생각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불행은 ‘그럴 만한 사람들’, 열심히 살지 않았거나 착하게 살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찾아오고 열심히·착하게 산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경우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공정한 세상 신념)처럼, 삶의 다양한 고통을 어떤 잘못에 대한 ‘벌’로 여기는 인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인생은 고생의 연속이지만 결국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식으로 고통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통과의례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경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그럴 만한 사람’으로 쉽게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 어려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경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칸 드림이나 자수성가 신화에 깊이 빠진 사람들의 경우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능력·성실성·도덕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연민 또한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간의 삶과 고통은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과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집착하고 허상을 좇는 우리의 마음 자체가 이미 큰 고통을 만들어 내지만 지긋지긋한 인연들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들에서 비롯되는 고통 또한 적지 않다.
여기에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천재지변, 질병, 경제난 같은 문제들, 더 나아가 역사적·사회문화적 요인까지 고려하면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점심을 먹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기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겪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한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만큼은 다양한 고통을 판단하거나 재단하기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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