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충동구매가 자존감을 높여주진 않는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충동구매가 자존감을 높여주진 않는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충동구매가 자존감을 높여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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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를 나타내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충동구매를 나타내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간단하게 말해서 ‘자신이 그럭저럭 가치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존감이나 자기가치감이라고 부른다.

어디까지나 ‘내가’ 나에 대해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건이 훌륭하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가치감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이나 한 여름 수박의 달달함을 알기 때문에 나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객관적으로 과시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이 있어야만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자존감을 채우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부작용이 적은(양질의 인간관계, 소소한 행복 등) 자재로 자존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좋은 차나 비싼 물건으로 자신을 꾸미고 어느 정도 과시할 수 있어야 불안하지 않고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늘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뒤처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광고들을 통해 만들어진 불안과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제로 주입되는 세상에서 소비를 통해 자기가치감을 채우려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때로는 불안을 잠시 해소해주긴 해도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고 자기혐오를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로라 박(Lora Park) 버팔로대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자신의 재정 상태를 통해 자기가치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과소비나 충동구매를 많이 하면서도 동시에 돈을 아끼거나 저축하려는 마음도 크기 때문에 매번 돈을 쓸 때마다 불안감과 죄책감, 후회도 함께 쌓인다고 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자신을 작게 느낄수록 ‘지르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충동구매를 하게 되지만 그 만족감은 짧고 이후에는 더 큰 불안과 후회, 자기혐오가 뒤따를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소비가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크고 작은 소비 외에 ‘셀프 케어’를 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더욱 과소비와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꽤 자주 아무 생각 없이 특히 SNS 등을 통해 손끝까지 파고드는 광고들을 보면 갑자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이것저것을 사서 그 부족함을 메우려 하는 마음에 사로잡히곤 한다. 물론 그때는 정말 필요해서 사는 거라는 믿음이 잠시 들지만, 결제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온다. 그런데도 이런 행동을 끊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아주 간편한 행위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그 손쉬움 때문에 더 중독성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 않고(예: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손가락만 까딱하면 (잠깐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충분히 빠져들 만도 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더 깊은 후회와 비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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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6월 2025

[사회과학] 정신을 갉아 먹는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5가지 수법

[사회과학] 정신을 갉아 먹는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5가지 수법

정신을 갉아 먹는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5가지 수법

  •  성진규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승인 2021.07.06 10:59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 생각을 부인하게 만드는 감정적인 학대이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통제력과 권력을 얻기 위해 ‘피해자의 기억이 부정확하다’,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니야?’, ‘모든 건 다 너의 상상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피해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말에 의존하게 만든다. 결국,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현실을 부정, 불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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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라이팅

가스라이팅과 같은 감정적 학대의 시작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다. 예를 들어,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이야기나 기억의 작은 부분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매우 교묘하게 시작되기 때문에, 결국 피해자는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기 불신에 빠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의 자기 신뢰를 무너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의지하게 만들고 관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교묘하고, 치밀하게 시작되는 가스라이팅,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불안 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가스라이팅 수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거짓말을 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정보를 숨기고 왜곡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통제력을 얻거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한다. 이를 위해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노골적이거나 교묘한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가해자는 자신의 주장과 상반되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실을 제시했을 때에도 거짓말을 계속 반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배우자에게 명백한 증거나 문자를 제시해도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부인할 수 있다. 또한,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가 알고 있거나, 직접 목격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2.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투영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투사’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격성, 불안, 죄책감, 성적 본능 등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자신들이 피해자이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모욕, 무관심, 무고 등으로 피해자가 분노하게 만들고, 피해자가 화를 내면 “우리 관계를 망치는 건 내가 아니고 너야”라는 식으로 말한다.

3. 피해자에게 미쳤다거나, 너무 예민하다고 말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 가해자는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가 너무 예민하고 작은 것에 과민 반응한다고 비난함으로써 피해자의 정신 건강을 비난한다. 가해자는 때론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에게도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말하며 피해자가 외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만든다.

4. 피해자를 깎아내린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피해자를 통제하려 한다. 만약 피해자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면, 가해자는 곧바로 그 약점을 자신의 무기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를 돕는다는 미명 아래 계속해서 피해자의 약점을 쥐고 흔들 것이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농담이라는 핑계로 사람들 앞에서 피해자를 성과나 능력에 대해 모욕하거나 비꼬는 칭찬을 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에게 사치품을 사도록 설득하고, 가족들 앞에서 피해자가 사치스럽다고 비난하거나, 피해자가 재정 관리에 무능하다고 느끼게 해서 피해자의 재정이나 계획을 통제한다.

5. 피해자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동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한다. 가해자는 감정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관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피해자의 잘못이며 이건 모두 피해자의 문제라고 말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의 걱정이나 고민을 공감해 주거나 해결해 주지 않고, 오히려 대화의 초점을 피해자의 단점에 맞춘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가 말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해자에게 관철시키고 피해자의 판단력을 흐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현재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나 사실관계보다 피해자의 목소리 톤, 사용하는 단어에 집중함으로 피해자에게 ‘부정적이다’, ‘화를 낸다’ 등 대화의 본질을 흐리는 비난을 한다.

[출처] https://news.hi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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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6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우주에서 하찮은 존재”…너그러운 사회 만든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우주에서 하찮은 존재”…너그러운 사회 만든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우주에서 하찮은 존재”…너그러운 사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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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주에 관한 강의를 듣다가 이렇게나 거대한 우주에서 이렇게나 작은 지구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우리가 모여있다는 것은 기적(매우 작은 확률이라는 의미에서)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의실을 한 번 둘러보고 또 옆에 앉아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시공간에 비해 우리가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사실이 우울하기보다 그래서 더 인생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 너도 나도 다 결국에는 우주먼지에 불과한데 인간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고 못났으면 또 얼마나 못났겠냐고 결국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데 서로 비교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 늙고 병들어 죽게 될 텐데 마지막에 차가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기억되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 존재의 하찮음을 떠올리면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서 되려 어깨가 가벼워지고 자신과 타인을 향해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거대한 자아보다 “작은 자아(small self)”을 갖는 것이 때로는 더 정신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웅장한 자연경관을 보여주거나 우주의 시작부터 인류의 출현과 현재까지를 달력으로 만들어서 우주가 1월에 태어났다면 인류는 12월 31일 마지막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비교적 작게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나라는 존재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현상을 보인다.

매튜 혼시 퀸즐랜드대 연구팀에 의하면 이렇게 존재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는 과정을 거치면 불안이 줄어들고 특히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의향과 타인의 잘못 또한 용서할 의향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전에 한 다큐에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형수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보이지만 사형 집행일이 되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주거나 마지막은 가급적 편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음’이라는 생명체라면 다 무섭게 느껴지는 절대적인 마지막, 끝, 소멸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 앞에서 초라한 우리들의 모습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보다 더 크거나 작다고 재기보다 때로는 우리 모두 하찮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것이 보다 너그러운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다.

Hornsey, M. J., Tyson, C., Ferris, L. J., Crimston, C. R., Faulkner, C. & Barlow, F. K. (2025). The cosmic calendar: Being reminded of the vastness of time can improve well-being.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1-12. https://doi.org/ 10.1080/17439760.2025.248103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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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6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인간관계를 망치는 ‘정치적 파벌주의’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인간관계를 망치는 ‘정치적 파벌주의’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인간관계를 망치는 ‘정치적 파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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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미 민주·공화 부통령 후보. 연합뉴스 제공

악수하는 미 민주·공화 부통령 후보. 연합뉴스 제공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실제 정치 제도나 이득을 떠나 마치 ‘당파싸움’처럼 정치적 소속이 일종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고 해서 정치적 파벌주의(Political Sectarianism)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의 파벌주의는 거의 종교적 맹신의 양상을 보인다.

엘리 핀켈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자 등에 의하면 정치적 파벌주의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① 타자화(othering):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는 것
② 거부/기피(aversion): 상대를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불신하는 경향
③ 도덕화(moralization): 상대를 사회적으로 자신과 멀리 존재하고 이념적으로 과격하며 과도하게 정치세력화되어 있고 혐오스러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의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로 1970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자신과 같은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온도를 살펴보면 최근에는 같은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공화당-공화당, 민주당-민주당)에 대해 느끼는 온기보다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공화당-민주당, 민주당-공화당)에 대해 느끼는 차가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편에 대한 긍정적 인식보다 상대편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더 커졌고 이것이 사람들의 투표 같은 정치적 행동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서로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또는 괴물 같은 존재로 인식하면서 실제 차이보다 상상한 차이가 훨씬 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조사에서 공화당 사람들에게 민주당 사람들 중 몇 %가 성소수자일 것 같은지 물었을 때 약 32%일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실제로는 6% 정도라는 결과가 있었다.

반대로 민주당 사람들에게 공화당 사람들 중 몇 %가 연 소득 3억 이상일지 물었을 때 평균적으로 약 38%가 부자일 것 같다는 응답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핸드폰만 열면 타인과 연결되는 시대에 점점 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다.

핀켈 등은 여기에 대해 ‘공정성’이나 팩트 체크보다 입맛에 맞는 미디어만 소비하는 현상과 여기에 편승해서 자극적이고 편향된 내용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자극적인 내용들이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하는 소셜 미디어, 파벌주의를 적극 이용하는 정치인과 외부세력(예, 러시아의 선거개입), 여느 때보다 사회적 지위와 자산의 양극화가 심한 사회경제적 토양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 결과 지금의 정치인들은 정책을 선전하기보다 상대편이 반칙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바보 되는 것이라는 식의 혐오와 파벌주의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일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을 때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팬데믹을 잘 헤쳐 나갈 자원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지만(예를 들어 빠른 백신 개발) 질병이 ‘정치화’되는 바람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 백신 접종 등의 행동이 파벌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100만명 사망이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를 경험하고 말았다.

파벌주의가 심화될수록 정치와 크게 상관 없었던 상식적인 행동들마저 파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 사회를 지키기 위한 상식도 얼마든지 해당될 수 있다.

상대편이 싫어질수록 상대편과는 대화를 시도할 가치조차 없다고 단정지을수록 테러와도 같은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동으로 얼마든지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행해진 걸 보면 아주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한창 팬데믹으로 인해서 거리두기 등의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을 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정책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상한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후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가 크게 증가하고 워킹맘들의 경우 직장생활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짧은 생각과 달리 집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학교’에 가는 것이 안전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했고 생계활동에 보다 많은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했다. 삶은 복잡하고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나면 인간의 악함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여서 이해는 되더라도 싸우기로 마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 ‘같은 인간’이라고 보는 자세는 지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실수를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Finkel, E. J., Bail, C. A., Cikara, M., Ditto, P. H., Iyengar, S., Klar, S., … & Druckman, J. N. (2020). Political sectarianism in America. Science, 370(6516), 533-53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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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월 2025

[알아봅시다] [ETC.] “윈도우 배경 속 푸른언덕은 어디로”…네티즌들 탄식한 현재 모습

[알아봅시다] [ETC.] “윈도우 배경 속 푸른언덕은 어디로”…네티즌들 탄식한 현재 모습

“윈도우 배경 속 푸른언덕은 어디로”…네티즌들 탄식한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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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XP 배경화면으로 사용된 사진 ‘블리스’와 실제 촬영지의 현재 모습. /인스타그램

윈도우XP의 대표적인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푸른 언덕’의 실제 촬영지의 현재 모습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6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윈도우XP 배경화면으로 사용된 사진 ‘블리스’가 촬영된 실제 장소의 변화한 모습이 네티즌들을 실망하게 했다”고 전했다.

흰 구름이 떠있는 파란 하늘 아래 푸르른 언덕이 펼쳐진 장면이 담긴 이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사진’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이 사진은 사진작가 찰스 오리어가 1998년 미국 나파밸리를 지나다 촬영한 것이다. 매체는 “당시 그는 깨끗한 포도밭을 보고 차를 멈춰 세워 이 사진을 찍었다. 포도밭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던 건, 이전 해 해충 피해로 들판을 벌채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윈도우 XP 운영체제의 기본 배경화면으로 채택했다.

최근 한 네티즌이 세월에 따른 실제 촬영지의 변화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해 크게 화제가 됐는데, 이를 본 네티즌들이 “사진과 너무 달라졌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매체는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사진이 촬영된 지 27년이 지난 현재 이 전설적인 장소가 ‘파괴’되었다고 주장한다”며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사람의 컴퓨터 배경이 되었던 푸른 구릉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포도원으로 대체됐다”고 전했다.

이 게시물을 접한 네티즌들은 “블리스 사진을 몇 분 동안 쳐다보면서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슬프다” “우울하다” “10년 후면 주차장이 되지 않을까” “생생하고 다채로웠던 세상이 칙칙한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등 아쉬움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이외에도 “그곳에 갔었는데 오늘도 정말 아름다웠다” “여전히 아름다운 포도원” “모두가 마치 저곳이 회색 벽돌 아파트가 된 것처럼 반응한다” “그냥 계절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다” 등 의견도 나왔다.

김가연 기자

[출처] “윈도우 배경 속 푸른언덕은 어디로”…네티즌들 탄식한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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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5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외롭다고 느낄수록 수명 짧아진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외롭다고 느낄수록 수명 짧아진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외롭다고 느낄수록 수명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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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마음과 몸이 하나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면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기존 건강상태, 교육수준, 소득, 성별, 나이, 우울증 여부 등과 상관 없이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빨리 노화하고 각종 심혈관 질환, 고혈압, 면역 반응 이상, 기억력 및 인지능력 감퇴에도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응급하지 않은 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사망 확률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렇게 외로움이 직접적으로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 현장에서도 또 공공 보건 차원에서도 외로움의 악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설신 유 콜롬비아대 어빙 메디컬 센터 소속 연구자 등의 연구에 의하면 외로움의 악영향은 ‘누적’ 되는 듯 보인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약 9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외로움을 측정하고 이후 2019년도에 외로움과 사망률간의 상관관계가 있었는지 살펴본 결과 우선 십여 년 전에 단 한 번도 외롭다고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한 번 외로웠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더 중, 장년, 노년층에 이르렀을 때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 번 외로웠다고 응답한 사람보다 두 번 외로움을 보고했던 사람들이 더, 두 번 외로웠던 사람들보다 세 번, 그러니까 더 긴 시간에 걸쳐 외로웠던 사람들이 더 사망률이 높은 편이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외로움은 ‘주관적’ 지표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기에 친구가 별로 없고 사회적 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로운 것도 아니고 항상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는 소위 ‘인싸’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마다 인간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고 어떤 이유로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친구들과 자주 보지 않아도 이따금씩 연락하고 또 마음이 잘 통한다고 여겨지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원하는 인간관계량이 많고 원하는 친밀도 또한 매우 높은 사람의 경우 사람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사회적 허기인 외로움이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인간은 어차피 타인과 100% 마음을 통할 수 없다거나 노화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가 된다는 존재론적인 이유로 고질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경우 그냥 그게 사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한 시점에서 이따금씩 존재하는 좋은 인연들이 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고 고마운 기적이었음을 깨달으면 어느 정도 편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외로움은 마음이 결정하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이 연구에서도 객관적 사회적 고립 지수(objective social isolation index), 예를 들어 같은 가구 내 구성원 수, 거주지 인근의 친한 친구 수, 거주지 인근의 친척 수, 종교적 또는 기타 자선 단체 자원봉사 빈도,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 빈도 등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은 여전히 미래 사망률을 예측했다.

외로움은 결국 마음에 달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사회적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극심한 경쟁으로 인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 것 조차 힘겨운 사회와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등급을 나누고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며 차별해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소속 욕구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사회와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외로움에 보다 취약한 사회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의 개개인의 행복 지수가 최하위에 속하는 것 또한 혹시 외로움에 취약한 사회인 게 한 몫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런 주제에 또 함께 살기를 추구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남들 위에 올라가서 차별을 ‘하는’ 쪽에 붙는 게 목표이고 속은 곪았어도 겉만 멀쩡히 꾸며서 ‘과시’하는 것이 사회 규범인 것 또한 상당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솔루션이 가능할까. 이제부터라도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Yu, X., Cho, T. C., Westrick, A. C., Chen, C., Langa, K. M., & Kobayashi, L. C. (2023). Association of cumulative loneliness with all-cause mortality among middle-aged and older adults in the United States, 1996 to 2019.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0(51), e230681912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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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싫은 것’ 아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싫은 것’ 아는 것도 중요하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싫은 것’ 아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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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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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다양한 특성을 분명하고 일관적이게 정의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상태를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개념 명확성(self-concept clarity)이 높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자기 개념 명확도가 낮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정의하지 못하고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긍정적인 자기지각인 자존감이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쁜 결과물들과 관련을 보이는데 어쩌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자존감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반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외부의 영향에 의해 자존감이 흔들리는 정도가 비교적 덜 했다는 연구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 역시 어렸을 때 자연스러운 실제 나의 모습을 잘 파악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외부에서 좋다고 하는 모습들을 최대한 따라하고 거기에서 오는 보상이나 긍정적인 반응들을 기반으로 자존감을 높이 쌓았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내향적인 편이지만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열심히 외향적인 척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면 거기에 기대어 기뻐하고, 반응이 좋지 않다면 위기감을 느끼는 위태로운 시간을 상당히 오래 보낸 것 같다.

이렇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으면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고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광고에 더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명품 소비나 유행이 쉽게 번져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것이 ‘자기 통제’에도 부적 영향을 준다고 한다. 통린 장 북경대 심리학자 연구팀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미래의 자신’을 현재 자신의 연장선으로 보기보다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 마치 타인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높았다.

이런 특성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부 설명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장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나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것과 관련이 있고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못하면 끈기있게 노력하는 행동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손대기만 하며 오랜 시간 갈아타기만 하는 경우 어쩌면 자기통제력 자체가 낮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걸쳐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이런 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못지 않게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므로 기분 나쁜 경험이나 실패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경험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Jiang, T., Wang, T., Poon, K. T., Gaer, W., & Wang, X. (2023). Low self-concept clarity inhibits self-control: The mediating effect of global self-continuity.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9(11), 1587-160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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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때론 ‘불확실성이’ 삶에 도움이 된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때론 ‘불확실성이’ 삶에 도움이 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때론 ‘불확실성이’ 삶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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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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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간단한 것도 점점 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라고 하면 무조건 나쁜 것 같지만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는 환경인 경우 그만한 자극과 보상 또한 없는 환경이어서 금방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배움의 과정 또한 항상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틀을 깨는 불편한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항상 좋아서 매일매일 24시간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쉽게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경험이라고 이름 붙이고 단정짓는 삶의 많은 경험들이 실제로도 그렇게 간단하게 완전히 좋거나 나쁜 경험인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어딘가 또는 전혀 다른 무엇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일례로 ‘사랑’은 좋기만 한 경험인가. 사랑을 몰랐더라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복잡한 감정과 외로움에 대한 노래들만 수천 곡은 되는 것 같다. 결혼도 아이를 갖는 것도 ‘좋은’ 일인가. 사람마다 삶의 시기마다 다른 답이 나오겠지만 삶의 경험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라면 그 때 그 때 다르다거나 복잡하다는 답을 내놓을 것 같다.

제시카 알퀴스트 텍사스공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불확실성’ 또한 그렇다. 많은 이들이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어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을 곧 나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확실성은 주의를 집중시킨다. 사람들의 시선을 기록하는 아이트래킹(eye tracking) 실험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같은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불쾌하거나 확실하게 아무렇지 않은 자극보다 불확실하게 불쾌한(예를 들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엇) 자극에 가장 많이 시선을 쏟는 경향을 보인다.

공포 영화를 예로 들어보면 무서운 자극이 항상 정해진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 무서운 것을 떠나 일단 ‘재미가 없다’고 느낄 것 같다. 연구들에 의하면 기분이 좋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갑자기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보다 불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예를 들어 한번에 짠 나타나기보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프트 카드)이 더 주의를 집중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앞으로 하게 될 경험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을 때에는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정체가 드러날 때 긴장감이 해소되는 클라이막스를 경험하게 되지만 처음부터 결말을 전부 알고 있다면 긴장감이나 기대감이 전혀 생기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두근거리는 긴장감이나 과연 무엇일까 기대하고 설레어하는 것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및 실망 모두 아직 알 수 없다고 하는 ‘불확실성’의 산물인 셈이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그로 인한 고통 또한 없겠지만 두근거림 설레임, 그만큼 조고된 기쁨과 실망 모두 없을지도 모르겠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겪는 감정의 풍부함과 깊이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물론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앞에 두고도 불확실성을 느끼지 못하면 생존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 내 미래가 위태위태한데 나만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거나 일의 진행 방향에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그것도 하나도 모르고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행동이나 다양한 선택지를 따져보는 행동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불편하지만 불확실성은 꼭 느껴야 하는 불편함 중 하나다.

물론 불확실성이 불편한 정도에도 개인차가 있어서 불확실성을 무조건 안 좋게만 바라보는 사람들에 비해 불확실성에도 좋은 면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더 적응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불확실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확실하지만 가치가 낮은 보상을 선택하기보다 좀 더 불확실해도 가치가 높은 보상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불확실성을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들은 가짜 뉴스나 만병통치약 같은 허황된 무엇에 빠지는 일 또한 적은 편이었다.

불론 그렇다고 불확실성이 항상 좋으며 불확실성이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삶에서 늘 좋거나 나쁜 건 생각보다 별로 없고 불확실성 또한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중용’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Alquist, J.L., & Baumeister, R.F. (2024). Learning to love uncertainty.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33(6), 355-360. http://doi.org/10.1177/0963721424127953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584/0000032395?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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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등산 vs 케이블카…정상 풍경 감흥 다를까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등산 vs 케이블카…정상 풍경 감흥 다를까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등산 vs 케이블카…정상 풍경 감흥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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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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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귀찮기만 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결과물에 애착이 가는 그런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과제 때문에 억지로 만들었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왠지 버리기 아깝고 소중해 보이는 미술 작품 같은 것들이 한 예다.

흔히 IKEA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같은 가구도 이미 조립 된 채로 온 것보다 내가 직접 노력을 들여 조립한 가구가 더 가치 있어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때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노력을 요하거나 노력 끝에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까운 돈과 시간, 노력을 낭비한 것 같아서 속상하기만 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귀찮은 마음이 너무 커서 결과물이 어땠든 귀찮고 성가셨던 기억이 더 크게 남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때 노력이 소모되었는지 여부가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해 프제미스와프 마르코프스키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어떤 과제를 하고 나서 정해진 액수 만큼의 보상을 돈으로 받거나 경제적으로 같은 가치를 갖는 머그컵으로 받을 수 있게 했다. 여기서 돈은 아무런 추가적 노력 없이 받을 수 있었지만 머그컵은 계단을 꽤 올라야지만 (추가적 노력 필요)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기에 더해 어떤 보상을 받을지 선택하는 ‘타이밍’을 달리 해서 한 조건의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며 돈과 머그컵 중 무엇을 원하는지 선택하게 했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계단을 걸은 후 (노력이 이미 발생) ‘과거’를 생각하며 돈과 머그컵 중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아직 계단을 오르지 않은 참가자들에게는 지금 그냥 돈을 받거나 아니면 계단을 오르고 나서 머그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이미 계단을 오른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이 머그컵을 받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참가자들은 이미 계단을 올랐으며 따라서 이 머그컵을 가지거나 또는 이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직 노력이 발생하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은 같은 보상이라면 가급적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돈을 더 많이 선택한 반면 이미 노력이 발생한 조건의 사람들은 이들보다 더 높은 빈도로 머그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물론 이들 중 절반은 돈을 선택했다. 하지만 전자에서는 약 70% 가 돈을 선택).

노력이 어떤 선택을 더 가치있게 느끼게 해 주는 효과는 “이미 그 노력이 발생하고 나서 노력한 과거를 돌아 볼 때”에 한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차가 있어서 대체로 노력을 통해 얻는 보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대체로 그렇지 않은 사람, 노력이 적당할 때에는 괜찮았지만 노력이 지나쳤을 때에는 보상을 덜 매력적으로 바라본 사람, 이와 반대로 노력이 지나쳤을 때 더 보상을 매력적으로 바라본 사람 등 다양한 행동 양상이 관찰되었다.

험난한 산을 힘들게 올라서 꼭대기에 섰을 때와 자동차나 케이블카 등을 타고 손쉽게 올랐을 때 보이는 풍경은 같지만 그 ‘의미’는 사람들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결과로만 보지 않고 그 ‘과정’에서도 의미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개인차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등산이 큰 의미가 있겠지만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등산이 그저 쓸모없는 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대체로 힘겹게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하루 소소하게 행복하고 평온하게 지내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또 나의 경우 기초 체력이나 에너지 수준이 상당히 낮은 사람이어서 가급적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나면 되려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다. 물론 소중한 이들과 만나는 시간 같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노력을 집중하는 편에 가까운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떤 편인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보면 즐거운 탐구 시간이 될 것 같다.

Marcowski, P., Białaszek, W., & Winkielman, P. (2025). Effort can have positive, negative, and non-monotonic impacts on outcome value in economic choic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https://doi.org/10.1037/xge000173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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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월 2025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직면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직면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직면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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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흔히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좋다고 할 때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어려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한 두 가지씩 지병을 갖게 되지만 나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고 나만은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문턱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삶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은 언제나 많지만 내 삶의 요소들은 통제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이고 대부분의 인생은 굴곡져있으나 내 인생만큼은 평탄할 것이라고 믿는 (또는 믿고 싶어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그렇다면 거꾸로 이제 곧 큰 병에 걸릴 것이고 엄청나게 실패할 것이며 내 삶의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며 인생이 계속해서 바닥을 칠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거냐는 반문을 듣기도 한다. (사실 필자의 경우는 한동안 이랬던 기간이 있어서 이것도 꽤 현실적인 예측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생이라는 큰 숲을 볼 때 삶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 못지 않게 그렇지 않은 시간들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수도 있음을 (물론 안 올 수도 있다)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선 저항한다고 해서 마음만 복잡해질 뿐 달라지는 것은 없고 대부분의 인간이 어느 정도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되려 고통 속에서도 담담하게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체적인 사건이나 결과’에 대해 갖는 낙관주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들이 있었다. 어떤 일이 가급적 잘 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무조건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력을 증가시키지 않았고 따라서 성공률을 더 높이지도 않았다.

다만 잘 안 되었을 때 좌절감은 더 큰 편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좌절을 겪었을 때 신과 세상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특정 사건의 발생 여부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실력과 노력이 둘 다 충분했어도 타이밍의 문제 같이 ‘운’에 의해 넘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보다는 우리가 좀 더 관여할 수 있는 삶의 ‘과정’과 자신의 ‘태도’, 일을 해석하는 나의 시각 등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어제의 내가 그럭저럭 잘 지내왔듯, 내일과 미래의 나도 여전히 넘어지고 다칠지언정 살아낼 거라고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것이고 그 경험들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삶은 결국 ‘시간’이기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의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반짝이게 할 수 있다면 일의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보통 실패의 무게보다 걱정의 무게가 좀 더 크기 때문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가장 어두운 순간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고통을 직면해야 하는 중요성을 말해준다. 삶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는 삶의 기쁨이 곧 가장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는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수록 그만큼 삶에서 기쁨을 주는 소중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잃는 순간에는 누구보다도 큰 아픔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기쁨과 고통은 보통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많은 공을 들여 간절하게 바래온 일일수록 실패가 쓰라린 법이고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그 사람과의 헤어짐이 아픈 법이다. 소망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좌절의 쓰라림과 이별의 아픔을 안다. 만약 단 한 번도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무것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겪은 아픔들은 그만큼 내 삶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으며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쁨과 고통이 사실 하나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나면 삶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납득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결국 누구나 다 늙고 병들고 죽고 만다는 명제, 삶의 유한함과 고통에 대해 직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래야 힘들어 하는 타인에게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이 겪는 아픔이 가장 아픈 법이다.

타인의 아픔은 짐작만 할 뿐 직접 겪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쉽게 서로의 아픔을 경쟁하려고 들고 내가 진짜 힘들었고 너의 인생은 편하기만 했다고 그래서 억울하다고 싸우려 든다. 이렇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모두의 괴로움이 좀 더 늘어나게 된다.

피해의식에 관한 연구들에 의하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괴로움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타인들이 미워지고 괜히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각종 ‘이기심’이 튀어나오게 된다. 나는 힘들게 살았으니까 지금부터는 좀 이기적으로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와 달리 ‘이제부터 함께 해결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어떤 것이 좀 더 해결 가능한지, 어떤 것이 사회적 단위의 노력을 요하는지, 서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등의 좀 더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들을 직면해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다양한 종교와 철학자들에 의해 전해져 왔다. 인간이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에 대한 심리학의 연구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던져주는 좋은 것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픔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힘든 때에 마음이 지하로 추락하는 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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