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초과근무', 반드시 좋은 성과 낳는 건 아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초과근무', 반드시 좋은 성과 낳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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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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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지만 야근이 잦은 회사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일의 성과보다도 엉덩이가 무겁게 회사에 ‘오래’ 붙어있는 것이 충성심(?)과 성실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특이한 현상들을 많이 관찰 할 수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낮에는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낮 시간에 일을 열심히 하든 안하든 그것과 상관 없이 어차피 야근을 할 것이므로 다들 한 두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 종일 들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그제서야 시작하는 식이었다.

오랜 시간 일하는 관행이 곧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통념들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초과 근무까지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기계와 달리 오늘 준비한 에너지가 다 소모되면 작동을 멈추거나 오작동을 남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잠을 쫓아내며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고 나서 다음날 멀쩡한 정신으로 지난 밤 내가 일한 내용을 보았을 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 때문에 건강도 잃고 생산성도 잃은 슬픈 경험들이었다.

다들 경험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리케 텐 브룸멜후이스 사이몬 프레이저대의 연구팀은 좀 더 체계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영업직, 컨설팅,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 5일 간 하루 동안 일한 시간과 이들이 하루 동안 보인 성과(동료 직원의 평가)를 측정했다. 또한 스마트 워치를 통해 참가자들의 수면 패턴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평소보다 초과근무를 했을 경우 당일에는 동료들로부터 좋은 성과를 냈다는 평을 받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전날 과로한 사람들은 잠을 푹 자지 못하거나 수면시간이 부족한 편이었고 그만큼 다음 날 업무 성과가 저조한 편이었다.

결국 과로를 하는 경우 미래의 생산성을 땡겨서 쓰는 것일 뿐 당장은 성과가 좋더라도 그것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며 종국에는 몸도 상하고 업무 성과도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 한 주 동안 생산적으로 해낼 수 있는 업무량에는 한도가 있고 휴식을 취해야만 다시 비슷한 생산성을 보일 수 있다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리할 경우 당장은 높은 생산성을 보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미래의 마이너스 생산성이라는 빚을 쌓는 것임을 기억해보자.

어쩌면 평소에는 일을 하지 않다가 마감이 되어서야 잔뜩 벼락치기를 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로 매우 비효율적인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정신 상태인 내가 두세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밤 늦게까지 잠을 쫓아가며 해야 하기 때문에 두세 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실수를 하고 또 그 다음 날에도 성과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Ten Brummelhuis, L.L., Calderwood, C., Rosen, C.C., & Gabriel, A.S. (2024). Peaking today, taking it easy tomorrow: Daily performance dynamics of working long hour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0:1–18. https://doi.org/10.1002/job.284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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