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4월 2017

권력 잡아도, 다수가 되어도… 포퓰리스트는 늘 ‘희생자’인 척한다

권력 잡아도, 다수가 되어도… 포퓰리스트는 늘 ‘희생자’인 척한다

입력 : 2017.04.29 03:00

독일 출신 美 정치학자 뮐러, ‘포퓰리즘’ 특징·아이러니 분석
“우리만이 ‘국민’을 대표” 주장… 인기 연연해도 국민 참여엔 난색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얀 베르너 뮐러 지음|노시내 옮김
마티 | 160쪽|1만4000원

투표가 열흘 앞이다. 표를 구하려는 후보들의 이전투구는, ‘표’퓰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는 뜻이다. 81만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후보 공약이나, 5·5·2로 학제 개편해서 망국적 사교육을 잡겠다는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서로에 의해 ‘표퓰리즘’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자. ‘표퓰리즘’이라는 파생어까지 만들어낸 ‘포퓰리즘’은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고 포퓰리즘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런 점에서 정치학자 뮐러(47)의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는 유익하다. 눈앞의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어디까지가 민주주의고 어디부터가 포퓰리즘인지를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 이론과 사상사를 가르치는 이 독일 출신 정치학자는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포퓰리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친절하게 제안한다.

우선 포퓰리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부터. 무엇보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편의적 사용이다. 오로지 자기들만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이런 사례.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페라지 전 대표는 “브렉시트는 진정한 국민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이라면, 유럽 연합 탈퇴에 반대한 영국 국민 48%는 ‘진정한 국민’에 미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둘째, 포퓰리즘은 협소한 ‘대중영합주의’를 넘어선다. 안타깝지만, 현대의 대의정치에 영구히 따라붙는 그림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루저’들의 어눌한 정치적 표현이라 폄하한다면, 거만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아니라는 게 뮐러의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실패가 자연스럽게 거론된다. 포퓰리즘의 득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약속했던 것들이 실현되지 않았거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증(反證)일 테니까.

유럽 포퓰리즘 정당의 주요 기조 정리 그래픽

유럽 포퓰리즘 정당들의 리스트를 보자. 스페인 포데모스, 이탈리아 오성운동, 그리스 시리자, 영국의 독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네덜란드의 자유당, 독일의 대안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내세우고 있는 기조(基調)에는 공통점이 있다. 예외 없이 주장하는 첫째 강령은 ‘기득권 반대’. 그다음으로 각자의 처지에 따라 ‘유로존 반대’ ‘이민자 반대’ ‘세계화 반대’ ‘반이슬람’ 등을 내세운다. 다원화가 핵심 중 하나였던 현대 민주주의의 실패와 반다원주의를 내세우는 포퓰리즘의 득세가 제로섬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제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보자.

포퓰리즘 정당의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유럽 포퓰리즘 정당의 만장일치 강령이 ‘기득권 반대’였음을 상기하자. 하지만 집권당이 된다는 것은 기득권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저항한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뮐러는 포퓰리스트들을 얕보지 말라고 충고한다. 포퓰리스트가 엘리트에 저항한다고 해서, 집권 후에 자가당착에 빠지라는 법은 없다는 것. 오히려 권력을 잡은 포퓰리스트는 집권 기간 실패가 우려되는 경우, 책임을 전가한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기존 엘리트와 기득권층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라며 말이다. 포퓰리스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승리를 거두고 나서도 늘 희생자처럼 행동한다는 것. 이제 다수가 됐으면서도,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늘 학대받는 소수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뮐러는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뮐러의 사례다. 소위 ’21세기식 사회주의’가 잘 풀리지 않으면 이제는 소수에 불과한 옛 지배 세력을 비난하고, 그마저도 약효가 다하면 미국의 훼방 탓으로 돌리는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 여전히 ‘용감한 약자(Underdog)’ 흉내를 내고 있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릴 만큼 정치·경제·문화 권력을 모두 장악했으면서도, 예전에 자신이 열악한 동네 카심파사 출신으로서 터키 공화국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한 거리의 투사였다는 철 지난 가요를 계속 불러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일종의 종말론적 대립 상태를 꾸며내 국민을 계속 분열하고 동요시킨다는 게 이 정치학자의 주장이다.

뮐러는 말한다. “포퓰리스트에게 적으로 삼을 대상은 동나는 법이 없다.”

다시, 투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구태여 우리 후보들의 실명으로 ‘포퓰리즘’ 사례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 주장하는 후보, 자신은 기득권이 아닌 척하는 후보, 쇼맨십을 전략화하고 극대화하는 후보, 입만 열면 ‘국민’을 부르짖는 후보,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지만 그들의 참여는 원하지 않는 후보….

뮐러가 묻는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당신이 판단해 볼 차례다.

☞포퓰 리즘

‘엘리트’에 맞서 ‘대중’을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철학.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다. ‘인민’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반기득권’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모두에게 ‘포퓰리스트’라는 딱지가 붙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9/2017042900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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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7년 4월 29일 by comphy in category "사회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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