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약자 혐오가 횡행하는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나쁜 기분을 견디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평소 웬만해서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지인이 있었다.
물론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오랫동안 접하는 것은 충분히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쉬어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불편함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역사적 만행에 대해 지금도 그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도리어 왜 자신에게 그런 짐을 지우느냐며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기도 하는 것처럼(힘들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더 경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때로는 부정적인 경험들 특히 사회 정의와 관련된 일일수록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널리 이롭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해롭지 않은 길을 갈 것인지가 정해지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편한 마음을 참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여전히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다 지난 일이니 그만하라”거나 “나는 온전히 내 힘으로 자수성가했고 그러므로 타인이나 사회에는 단 한 푼도 나눠줄 수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버게트 쿱만 홀름 산타클라라대 연구자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부정적 정서(슬픔 불행 외로움 두려움 긴장되는 느낌 졸림 축 처지는 기분) 등의 소위 불편한 감정들을 피하려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종차별’ 특히 사회 구조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정서들에 비해 유독 부정적 정서를 피하고 싶은 정도를 측정하고 이것이 인종차별 사례들에 대해 실제로 얼마나 인종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지와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부정적 정서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세대를 걸쳐 전해지는 가난이나 미디어에서 유색인종이 묘사되는 방식 등에서 인종차별을 ‘덜’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피하도록 지시하거나 최대한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했을 때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 인종차별적 상황을 더 인종차별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자들은 부정적 감정을 피하고 싶을수록 타인의 고통을 쉽게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인의 고통 특히 사회적 불의를 직면하면 화, 분노, 슬픔, 무력감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에 노출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또한 부정적인 감정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를 피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약자혐오가 심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보고 죄책감이나 기타 불편한 감정을 크게 느낀 사람들일수록 이후 노숙자들에 대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저런 처지가 된 것’이라는 식의 내적, 부정적 귀인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약자들을 악마화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약자를 비난하는 것만큼 ‘값싼’ 문제(적어도 당장 찝찝한 기분을 해결하는 방법)가 없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어떤 종류의 불의든지 ‘과거보다는 지금이 낫다’거나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정당화하고 직면하기를 피하는 사람들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설 확률이 낮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불편한 감정들이 괴로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그 불편함의 근원이 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지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장기적으로도 안녕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이다.
특히 언젠가 사회 곳곳에 퍼진 약자 혐오가 자신을 향한 혐오로 돌아올 때 내가 묵인한 문제들이 나에게 쏟아질 차례가 될 때 우리는 과연 편안할 수 있을까.
Murray, K., & Koopmann-Holm, B. (2024). Facing discomfort: Avoided negative affect shapes the acknowledgment of systemic racism. Emotion, 24(6), 1522-153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