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9월 2024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적갈등 겪으면 남을 이해하게 된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적갈등 겪으면 남을 이해하게 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적갈등 겪으면 남을 이해하게 된다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문학작품을 읽으면 다양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한 등장인물의 복잡한 내적 갈등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고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하고 또 한 사람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충돌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타인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흔히 인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꿈을 함께 꾸는 모순된 존재라고 이야기하지만 멀리 갈 것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은 목표와 가치관들이 서로 충돌하며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간다.

시험 공부를 해야 하지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변화와 재미를 따라가고 싶기도 하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되고 과감하게 도전할 줄 알아야 하지만 실패는 너무 두렵다.

이렇게 늘 정답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사는 게 쉽지 않은가 보다. 최대한 이런 내적 갈등 없이 평탄한 삶을 살고 싶은데 또 그러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에도 어떤 즐거움(?)이 있는 것 같고 어쩌면 그것이 삶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이라면 이러한 내적 갈등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서로 충돌되는 목표를 떠올리게 하거나(공부 vs.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무언가 달리 했다면 어떤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 지 따져보게 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견의 극단적인 버전에 노출되도록 하는 등 (예를 들어 낙태를 반대하는 편이지만 모든 종류의 낙태를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같은 질문 던지기) 상반되는 생각들로 내적 갈등을 겪게 하면 자기와 다른 타인, 외집단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과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방식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내적 갈등을 거치면서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반되는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해 떠올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사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고민과 선택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뿐 나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는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까이서 보면 서로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더 많은 것도 같다. 나의 내면과 삶이 복잡한 것 만큼 타인의 내면과 삶 또한 복잡하며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서로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Sassenberg, K., & Winter, K. (2024). Intraindividual conflicts reduce the polarization of attitude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33(3), 190-19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7 9월 2024

[자유게시판] 치매 장모님 유품 정리하다 ‘기억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다

[자유게시판] 치매 장모님 유품 정리하다 ‘기억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다

치매 장모님 유품 정리하다 ‘기억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다

[아무튼, 주말]
[손관승의 영감의 길]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01.png
여행자의 뻥 뚫린 마음을 표현한 브루노 카탈라노의 조각 ‘여행자’. /위키피디아

길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챙겨 갈까? 모자, 운동화, 옷, 책을 비좁은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필요성의 이유만이 아니라 몸에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 사람마다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전쟁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가 고향을 떠날 때도 증명서, 면도기, 라이터, 상비약과 더불어 가족사진, 집 열쇠 같은 것들이 가방에 들어 있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자 동반자다. 세계적인 조각가 브루노 카탈라노의 ‘여행자’ 시리즈처럼 가슴이 뻥 뚫린 채 가방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일 작가 스벤 슈틸리히의 책 ‘존재의 박물관’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야 했을 때의 증언이 담겨 있다. 여직원들은 화분, 사진, 고객의 명함과 함께 대부분 책상 밑에 몇 켤레씩 두고 있던 구두를 챙겨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장은 일터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중년들이 은퇴를 앞두고 정든 사무실을 비워야 할 때 그들의 심정은 상실감, 딱 그거다. 장소와 공간은 여전히 존재해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된다는 무력감 말이다. 내가 앉던 정든 의자와 책상에 내일이면 다른 누군가가 앉는다는 상상이 유쾌할 리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더 크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달 장모님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장가를 가겠다고 처가를 찾아가야 했던 젊은 시절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봉천동 산동네 월세를 살고 있었던 반면, 처가는 압구정동의 아파트였다. 여러 가지로 선뜻 발걸음과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받아주셨다. 세월이 한참 지나 중년의 나이에 내가 직장 문을 나온 뒤 여러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내가 장모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던 모양이다. 그때 딸에게 해준 장모님의 말씀, “네 남편 눈빛을 봐라. 부드러운 것 같지만 단단하다. 절대로 가족을 굶게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지. 힘들 때 믿고 격려해 주면 평소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인간의 신비함이다. 믿어주는 만큼 사람은 노력하는 법이다. 부모 자식, 직장의 상하 관계도 비슷하다.

민족과 종교에 따라 장례 문화가 다르기는 해도 애도 의식은 고인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였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 장례식장에서 내 가슴 리본에 새겨진 서(壻)라는 한자는 사위를 뜻함을 처음 알았다. 원래는 둘째 사위였지만, 나이가 비슷한 손위 동서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유일한 사위 노릇을 해야 했다. 예정되었던 해외 출장을 부득이하게 취소했어도 징검다리 연휴라 빈소가 너무 텅 비어 있으면 떠나시는 장모님께 면목이 없을 것 같아 내심 걱정도 없지는 않았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그리 흉하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발인 때 맨 앞에서 영정과 위패를 들고 나가며 가난한 청년에게 주었던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기를 빌었다.

02.png
 
사라져가는 기억을 찾으려는 흔적이 남아 있는 장모님의 수첩 두 권. /손관승 제공

유품 정리를 하던 아내는 장모님의 서랍을 열다가 그만 눈물이 터졌다. 서랍 속에 놓여있던 진녹색 가계부와 검은색 탁상 수첩 때문이었다. 제사상에 올릴 품목과 가격, 음식 요리법, 명절 때 자식들이 건넨 용돈 봉투 등을 정갈한 글씨로 적어두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여백에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 연습하듯 장모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어느 날에는 두 글자로 끝나고, 어느 날은 성만 적혀 있거나 이름의 받침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불행하게도 찾아온 혈관성 치매의 결과였다. 가족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고대인들이 동물 뼈나 청동으로 만든 뾰족한 필기구 스틸루스(Stilus)로 ‘나, 여기 세상에 왔었다’며 그림을 남겼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옳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장모님은 생전에 입던 옷과 이불, 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예쁜 그릇과 유리잔 같은 것을 따로 분류해 두었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주변을 정리한다는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는 운동을 이미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본인의 이름까지 상실하는 비극 앞에서도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주인을 떠나면 빛을 잃는다. 기부,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으로 분류하다가 나는 작은 포도주잔 두 개를 챙겼다. 크리스털 잔을 살짝 튕겨 보았더니 ‘쨍’ 하고 명징한 소리가 장모님 목소리처럼 울린다.

무더운 여름이 지겹다고 투덜거렸는데, 어느새 9월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짧다.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지만 다음이 항상 오리란 법도 없다.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작별 의식은 고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중요한 질문을 되새기게 만든다.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03.png
 
장모님의 유품 중 포도주잔 두 개를 챙겼다. /손관승 제공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9/07/WGN73ITIENESZGY5F7Z4YEVA64/

Loading

6 9월 2024

[사회과학] [형사고소 변호사 / 고소대리] 고소장 제출 전에 고민해야 할 것들

[사회과학] [형사고소 변호사 / 고소대리] 고소장 제출 전에 고민해야 할 것들

[형사고소 변호사 / 고소대리] 고소장 제출 전에 고민해야 할 것들

 

01 snow-2952307_1920.jpg

 
 

​

고소·고발 사건이 많다는 말은 항상 있어 왔지만, 체감하는 고소사건은 더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구치소에 방이 모자라 실형을 잘 선고하지 않는다는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까지 들립니다. 법률상담 오시는 의뢰인들도 형사고소에 적극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

사실 법적 분쟁의 상당수는 돈거래와 관련되어 있고, 돈거래라는게 대개 친인척이나 친구 등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생깁니다. 결국 ‘친한(친했던) 사람’을 경찰서에 끌고 가는 셈이 되는데, 두 가지 심정이 교차합니다. ‘내가 돈 때문에 친구를 쇠고랑 채워야 하나’는 망설임, 그리고 반대로 ‘모르는 사람도 아닌 친구간에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냐’는 분노입니다.

​

심정적인 부분이야 본인이 스스로 정리하고 결단내릴 부분이지만, 사실 전략적인 면에서도 형사고소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출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액션(!)이므로, 고소장 제출 전에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

1. 친고죄 혹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지 확인한다.

​

매우 중요한 사항인데, 생각 외로 일반인들(비법률가)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인은 언제든지 고소를 취하함으로써 사건을 마음대로 종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던데,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 범죄’에 한하여만 맞는 말입니다.

​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폭행, 명예훼손 등의 범죄, 그리고  최근 개정 전 상당수 성범죄가 친고죄/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였)고, 뉴스에서도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 사건이 종결되었다”라는 보도가 자주 나와 아마도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

우선 친고죄는 범죄의 피해자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뭐가 다른지 어렵지요? 

법률상 개념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고소인 입장에서 중요한 효과는 공통적입니다. 바로 ‘낙장불입’​이 적용되느냐 여부이지요.

​

우리 법이 정하는 범죄들 대부분은 ‘낙장불입’이 적용됩니다. 일단 고소장을 내면, 아무리 고소를 취하하고 “합의했으니 벌하지 말고 집에 보내주세요”해도  검사가 유죄라고 판단하면 기소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

다만 ‘예외적으로’ 일부 범죄는 친고죄/반의사불벌죄로 정하여 피해자(고소권자)가 고소를 취하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하면 형사절차를 그대로 종결시키는 것입니다(수사단계라면 기소하지 않고, 재판단계라면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고 공소를 기각합니다). 

​

정리하자면 전체 범죄 중 극히 일부인 몇몇 친고죄/반의사불벌죄를 제외하고는, 고소장은 한 번 제출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

2. ‘낙장불입’이 왜 중요한가?

​

고소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고소장 제출 후 고소인의 협상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사기죄는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닙니다. 친구가 1억을 안 갚아서 고소했다고 칩시다. 친구한테 “돈 갚으면 고소 취하해줄게” 하면 뭐라고 할까요?

​

양심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갚을테니 부탁해” 하겠지만, 전과 좀 있고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내가 1억 다 갚으면 집행유예를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럴 돈도 없고 기껏 2,3천 갚아봤자 어차피 실형에 2개월 줄어드는 정도야. 니가 감히 나를 고소해? 나는 감방가면 그만이야. 너한테는 1원도 못 갚아.”

​

이는 일단 고소장이 접수된 이상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더라도 기소되어 재판받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단지 양형 참작 사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기꾼에게 돈이 많으면 되도록 갚아서 실형을 피하려는 노력을 할 겁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누구에게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다 못갚으면 실형인데 뭐하러 갚냐’며 배째라고 나오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반응이 예상된다면 형사고소 시점을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

요컨대 고소장을 제출하면 형사사건이 본격화 되어 자신의 협상력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를 파악한 후 고소 시점을 결정해야 합니다. 

​

​친고죄/반의사불벌죄인 경우에는 위와 달리 고소 후에도 협상력을 상당수준 유지할 수 있습니다.

​

​

3. 형사고소 이외의 방법을 미리 알아보고 순서를 정한다.

​

형사고소 외의 방법을 무조건 선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안에 따라 그 순서는 달라지는 것이지요, 다만 형사고소의 파급효과가 워낙 크므로 다른 방법이 있다면 고소장 제출 전에 모두 파악하여 순서를 결정한 후 행동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변호사 명의의 내용증명을 보내어 압박한다거나, 회사 내의 사건이라면 우선 내부 감사팀에 알려 공론화시킨다거나, 가족간의 일이라면 영향력 있는 중재자를 포섭한다거나, 상대방의 가족/지인과 연락하는 방법 등이지요.

​

사람이라는 게 비슷한 듯 하지만 또 다 제각각입니다. 딱 봐도 ‘꾼’이다 싶고 재산도 다 빼돌려 놓아 별 기대 없이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곧바로 돈을 갚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점잖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 보이는데 고소하라고 배째라는 사람도 있지요. 해 보기 전에는 모를 일입니다.

​

특히 민사소송과 관련하여 고민하게 됩니다. 형사 고소의 최종 목적이 돈을 받는 일인 경우에 더 그렇습니다. 형사고소부터 덜컥 하면 무조건 민사 소송에 도움이 될까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기존에 쓴 글에 자세히 적었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바랍니다.

 

4. 형사고소가 상대방에게 어떤 타격을 입힐지 ‘구체적으로’ 예상해 본다.

​

단순히 ‘고소하면 벌 받는다’의 단선적 사고가 아니라, 고소를 한 후 단계별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구체적으로 예상해야 합니다. 고소할 범죄명, 처벌수위, 수사기간, 상대방의 직업이나 상황에 따른 변수 등을 고려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내가 가진 ‘형사 고소’카드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소해 처벌받아봤자 벌금형 얼마 정도는 별로 겁도 안 먹는 상대방이라면 단순히 ‘고소하겠다’는 엄포만으로는 부족하겠지요. 또 상황에 따라서는 형사처벌 자체보다 고소에 따른 다른 파급효과를 겁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5.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증거를 수집한다.

​

기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중요 증거를 고소장 단계에서부터 최대한 수집해 제출해야 합니다. 고소장 자체는 민원센터에서 주는 종이에 슥슥 적어 내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지만, 수사관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 역시 딱 그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지요.

​

​사실 이혼소송이랑 비슷합니다. 열받아서 이혼소장부터 날리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주도면밀한 사람은 귀책사유 입증이나 양육권, 재산분할에 대비해 장기간 조용히 준비한 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나면 비로소 소장을 제출하지요. 이빨을 드러내기기에 앞서 (상대방이 나를 아직 마음 약한 착한 사람으로 얕보고 있을 때) 증거를 수집해야 합니다.

​

증거 수집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차용금사기의 경우 빌려갈 때 말한 명목과 실제 사용처가 다르다는 사실, 또 자신의 재력에 대해 거짓말을 했느냐 여부 등이 기소 여부에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따라서 “저번에 7월 곗돈 타면 준다고 했잖아?”, “그때 빌려서 병원비 쓴다더니 제수씨한테 물어보니 실손보험 다 탔다던데 어찌된거야?”라고 물어보고 (뭐라고 하든) 답을 들어 문자나 카톡을 저장해놓는 간단한 작업도 훌륭한 증거가 됩니다.  

​이상적으로는 이 준비단계에서 변호사의 조언을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제까지 진행된 상황을 변호사가 살펴본 후 이런 것은 기소하는 데 필요한 좋은 증거다, 저것은 상대방에 유리한 내용이다. 이런 것을 추궁해 대답을 녹취해라. 이런 의문점이 있으니 해소되어야 검사를 설득할 수 있다, 이런 서류를 떼 봐라 등의 구체적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

6. 고소대리 : 고소장 제출 전 단계가 승패를 가른다.

​

사실 ‘고소대리’라는 말이 아직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푸념?)했지만, 변호사들끼리 만나면 서로 자기가 더 고생했다고 징징대는 사건 중에 상당수가 고소대리입니다. 

재판 사건에 비해 비정형적인 일이 많아 손은 많이 가는데, 정작 의뢰인들은 ‘수사는 검사가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수임료에도 인색하고 공을 잘 안 알아주거든요. 그리고 기소 여부 예측은 재판 결과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싱겁게 불기소가 되어 의뢰인 앞에서 면을 못 세우는 경우도 많습니다(또 푸념입니다).

​

일단 고소장이 제출되고 나면 상대방도 정신 바짝 차리고 변호인을 선임해 방어하므로 일이 까다로워집니다. 고소장 작성 단계에서 충실한 준비가 필요하며, 고소장을 언제 어떻게 낼 지에 대한 고민 자체도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

 

 [출처] https://blog.naver.com/mujinlaw/221291330146

 

Loading

5 9월 2024

[사회과학][형사 전문 변호사] 형사사건의 수사 및 재판 절차 – 고소장 제출부터 재판까지

[사회과학][형사 전문 변호사] 형사사건의 수사 및 재판 절차 – 고소장 제출부터 재판까지

 

01 대법원_로비1-004.png

​

​안녕하세요. 김기용 형사전문변호사입니다.

​

1. 고소단계 및 경찰 수사 단계

​

가. 고소인이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하는 경우

​

고소인이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하면 일반적으로 담당수사관은 고소인을 불러 조사를 하고, 그 후에 피고소인을 소환하여 조사합니다. 필요한 경우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대질 조사하고, 계좌내역, 통화내역, 관련 서류를 조사합니다. 담당수사관이 조사를 완료하였다고 판단하는 경우 관할 검찰청에 송치합니다. 담당수사관은 송치의견서에 피고소인을 기소해야하는지, 불기소처분을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의견을 기재합니다. 보통 이러한 수사과정은 약 2~3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

​

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담당경찰관이 송치 전에 검사에게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휘를 받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으므로 수사가 미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나. 고소인이 고소장을 검찰청에 제출하는 경우

​

고소인이 고소장을 검찰청에 제출하면, 담당 검사가 고소장을 검토한 후 관할 경찰서에 사건을 내려 보냅니다. 경찰서의 담당수사관은 고소인 조사, 피고소인 조사, 대질 조사 등의 수사과정을 거쳐서 담당 검사에게 일단 기록을 보내 수사지휘를 받습니다. 담당 검사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사가 모두 이루어졌다고 판단하면 송치하도록 지휘하고, 만약 보충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보강 수사를 지휘합니다. 담당수사관은 검사의 지휘에 따라 송치하거나 보강 수사를 실시한 후 다시 검사의 지휘를 받습니다. 이 경우에도 경찰의 담당수사관이 검사에게 송치하는 데는 약 2~3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담당경찰관이 송치 전에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휘를 받기 때문에 송치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송치 전에 검사가 충분한 수사를 지휘할 가능성이 많아 수사가 철저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

​02 20160329-276.jpg

​

2. 검찰 수사 단계

​

가. 검찰 수사 진행

​

담당 검사는 송치된 기록을 보고 바로 기소, 불기소의 처분을 하기도 하고, 만약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직접 수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담당 검사는 필요한 경우 고소인, 피고소인을 다시 불러 조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만약 피고소인을 구공판(정식재판, 일반적으로 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소인에게 징역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구형하는 경우) 해야 하는 경우라면 검사가 적어도 피고소인을 다시 불러 직접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나. 검사의 처분

​

담당 검사는 수사가 모두 완료되었다고 판단하면 피고소인에 대하여 불기소처분(혐의 없음, 죄가 안됨, 공소권 없음, 각하, 기소유예 등)을 하거나 기소(구속구공판, 불구속구공판, 약식명령)을 하게 됩니다. 검사가 사건을 송치 받고 위와 같은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데는 약 1~3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다만, 매우 간단한 사안의 경우에는 송치받은 당일 처분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건이 매우 복잡하거나 보강 조사가 많이 필요한 경우에는 3개월을 초과하기도 합니다.

​

만약 고소인이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불복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하면 되고, 항고 사건조차 기각되는 경우에는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

03 20160329-316.jpg

​

3. 법원의 재판단계

​

가. 약식명령

​

검사가 피고소인을 벌금형으로 처벌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검사는 벌금액수를 지정하여 법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합니다. 법원은 약식명령을 받게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사의 벌금액수 대로 약식명령을 발령합니다. 법원은 약식명령이 청구되면 보통 1개월 이내에 약식명령을 발령합니다. 다만 판사가 기록을 검토하였는데 범죄의 형의가 없다고 판단하거나 반대로 벌금이 아닌 징역형으로 처벌한다고 판단한다면 직권으로 정식재판회부 결정을 하게 됩니다. 정식재판회부가 되면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정식 재판 절차가 진행됩니다.

​

만약 피고소인이 법원으로부터 약식명령을 받았는데,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벌금액수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약식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청구를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정식재판절차로 법정에서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피고소인은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형으로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

검사가 약식명령을 청구한 경우에도 다시 ‘정식재판청구‘를 할 수 있지만 실제 이러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자신이 한 번 약식명령을 청구한 것을 뒤집고 정식재판청구를 하기는 여러모로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

안타깝게도 고소인이 피고소인에 대한 검사의 약식명령청구가 지나치게 형이 낮다고 생각하여 불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고소인은 담당 검사나 약식명령 담당 판사에게 탄원서 등을 제출할 수는 있으나 쉽지는 않습니다.

​

나. 정식재판

​

검사가 피고소인을 구속 구공판, 불구속 구공판하게 되면, 일반적인 재판절차가 진행됩니다(정식재판회부되거나 정식재판청구 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재판절차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식재판은 검사의 모두진술,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 증인신문, 기타 증거조사, 피고인 신문 등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

법원은 증거조사 절차를 모두 마쳤다고 판단하는 경우 변론을 종결(결심)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검사가 구형을 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이 최후진술을 합니다. 법원은 보통 결심 후 2주 정도 후에 판결을 선고합니다.

​

피고인이나 검사는 1심의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항소하게 됩니다. 항소심 절차도 1심 절차와 비슷하지만 1심에서 어느 정도 증거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고인이나 검사는 2심 판결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으면 상고를 하면 됩니다. 다만 상고심의 경우에는 법리적인 문제만을 다툴 수 있고, 양형에 대해서는 다툴 수 없습니다. 즉 대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형량이 높은지 낮은지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습니다.

​

04 김기용_변호사_소개.png

​

 

Loading

1 9월 2024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일을 미루는 사람일까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일을 미루는 사람일까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일을 미루는 사람일까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많은 사람들은 미루기 천재다. 금방 할 수 있을 거라는 둥 다양한 이유를 붙여가며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데드라인 직전에 고통을 맛보며 심지어 우는 일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미루기에 대한 원고를 미루면서 작성했음을 밝힌다. 뻔히 더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 우리는 왜 자꾸 미루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일을 미루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일이 지루하거나,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나,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 미루기가 나타난다. 주로 하기 싫은 일을 미룬다는 것이다. 캘거리대의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에 의하면 그 외에 미루기와 관련이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① 부정적 정서 신경증: 미루기는 기본적으로 ‘지금’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현재 직면해야 할 괴로움을 내일로 토스하는 행위다. 미루기를 뜻하는 영단어 procrastination에서 ‘pro’는 라틴어로 ‘앞으로’라는 의미이고 ‘crastinus’는 ‘내일’을 뜻한다고 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라는 뜻이다.

이렇게 미루기는 눈 앞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미 잔뜩 괴로운 상태인 경우 부정적 정서가 넘칠 때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더 일을 많이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은 미루기가 기본적으로 기분을 낫게 만들기 위한 또는 적어도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서 조절’ 전략이라고 본다. ‘도피’ 같은 부적응적인 스트레스 대처법들이 그러하듯 미루기 또한 내 마음이 나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다보니 생긴 부작용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도록 하자). 이는 한편 평소 삶이 행복하고 마음이 괴롭지 않아야 미루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관련해서 성격 특징 중 신경증(Neuroticism)은 부정적 정서성, 정서적 불안정성이라고도 불리는 특성으로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늘 걱정이 많고 불안하며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성격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할수록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은 편이고 따라서 미루기를 많이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문제는 부정적 정서를 피하기 위해서 일을 미루는데 미루는 행위 자체가 미래의 더 큰 부정적 정서의 원천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기분이 언짢고 스트레스가 많음 -> 미룬다 ->더 기분이 언짢아지고 더 스트레스 받음 -> 또 다시 미룬 결과 일이 망함으로써 더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발생하곤 한다.

② 미루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부정적 정서를 피하기 위해서 미루기를 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미루고 나면 일단 마음이 엄청 편해질 것이라거나 엄청 즐거워질 것이라며 미루기가 가져올 ‘긍정적 정서’의 크기를 과대평가할수록 더 자주 미루는 모습이 나타난다.

미루고 나면 이후 괴로움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보다 미뤄도 생각보다 별로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미루기를 줄여줬다는 발견이 있다[2]. 미루는 행위 자체를 삶의 낙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③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 자기 의식, 평가에 대한 두려움: 기본적으로 일을 잘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이 심하고 다른 사람이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하든 부담감이 큰 편이다.

이로 인해 일을 하기 ‘전’부터 일을 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결과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는 다 받으면서) 일을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든가 조금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크면 일을 더 일찌감치 착착 해낼 것 같지만 의외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해서 손도 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④ 자신에 대한 의심: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제 능력 수준은 비슷해도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며 포기가 빠른 경향을 보인다.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지만 반대로 노력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며 노력을 ‘덜’ 들이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준비해도 모자랄 일을 (어차피 안 될 거) 하는 시늉만 하자며 대충대충 벼락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⑤ 자기 핸디캐핑(Self-handicapping): 하루 이틀 벼락치기하고도 이 정도 성적을 받은 건 꽤 잘 한 거라고 생각하기 위해 계속 공부를 안 하다가 마지막에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을 상상해 보자. 미리미리 열심히 해놓고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직면하면 ‘내가’,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존감에 직격탄을 맞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앞길에 장애물을 가져다 놓고서는 내가 못 한 게 아니라 장애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자존감을 수호하는 행위다.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하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자신의 앞길을 망쳐가며 자존감을 수호하는 것인지 인간은 참으로 슬픈 동물이다.

벼락치기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사람들과 약속을 만들고 술을 진탕 마시는 등 ‘약속 때문에, 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흔한 예다.

⑥ 우울, 낮은 에너지 수준, 학습된 무기력, 비관주의: 무엇을 하든 즐거움을 찾기 어렵고 기력도 없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경우다. 동기 부여가 어렵고 버틸 에너지도 부족해서 일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시작해도 ‘완성’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울증을 측정하는 문항 중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미룬다’는 문항이 있을 정도이다. 위에서 살펴본 부정적 정서와도 큰 관련을 보인다.

⑦ 원만하지 않은 반항적인 성격: 이 경우는 조금 다른데 반항적이고 속박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외부에서 정한 스케줄과 데드라인에 불쾌함을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정해진 스케줄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거꾸로 일을 ‘최대한 늦게’ 하라고 압박을 주면 청개구리처럼 일찍 해낸다는 발견이 있었다.

⑧ 충동성이 높고 지루함을 잘 참지 못하는 경우: 이 경우 미래나 장기적인 결과 책임 같은 걸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 사는 경향을 보인다. 주의 집중도 잘 못해서 하던 일을 까먹고 다른 일을 하다가 정작 급한 일을 못 마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자극(스마트폰과 같은)이 많은 환경은 피하는 것이 좋다.

⑨ 자극 추구성: 자극 추구성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조금 다른 이유로 미루는 행동을 보인다. 이들은 일을 마지막 한 두 시간 남겨놓고 후달리면서 하는 스릴을 즐기는 또는 중독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긴장해서 빠짝하면 평소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릴은 짧지만 후회는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서 한 연구에 의하면 상습적으로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들은 벼락치기에서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지만 학기말 건강 상태나 성적, 삶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자들에 의하면 “미루기의 이득은 짧고 비용은 오래간다”고 한다.

⑩ 체계성: 일을 계획하고 목표를 수립하며 목표 달성까지의 상황이 순조로운지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도 의도치 않게 미루는 현상이 발생한다. 어떤 일을 언제 해야 적절한지에 대한 청사진을 짜지 못하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한 달 걸릴 일을 일주일이면 할 수 있겠지~ 하다가 나중에 울고 만다. 미루려고 미룬 게 아니고 일 하는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해서 미루게 되는 경우다.

⑪ 낮은 성취욕(achievement motivation): 별로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일의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다. 일을 너무 잘 하고 싶어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금도 잘 할 마음이 없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원인들 중 몇 가지나 해당되는 것 같은가. 원인을 알면 해결책이 보이는 법이다. 미루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 행복도를 높이고 부정적 정서, 스트레스, 불안, 우울을 줄일 것, 잘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 놓을 것,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청하고 알게 될 때까지 연습 또 연습하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자신감 높이기, 충동성이 높다면 유혹이 많은 환경은 피하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원전 300년 전에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행태의 사악함을 강조하는 글들이 쓰여졌다고 한다. 애초에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써 에너지 보존을 위해서라도 때때로 일을 미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찬 일이라서 모든 일을 제 때 처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또 일을 미루는 나를 보았을 때 자꾸 미룬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 이유를 찾아 내가 나의 힘듦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자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좋을 것 같다.

[1] Steel, P. (2007). The nature of procrastination: A meta-analytic and theoretical review of quintessential self-regulatory failure. Psychological Bulletin, 133, 65–94.
[2]Sirois, F., & Pychyl, T. (2013).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Consequences for future self.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7, 115-127.
[3]Saddler, C. D., & Sacks, L. A. (1993). Multidimensional perfectionism and academic procrastination: Relationships with depression in university students. Psychological Reports, 73(3, Pt 1), 863–871.
[4]Tice, D. M., & Baumeister, R. F. (2018). Longitudinal study of procrastination, performance, stress, and health: The costs and benefits of dawdling. In Self-Regulation and Self-Control (pp. 299-309). Routledge.

Loading

24 8월 2024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상처받는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상처받는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상처받는다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어떤 사람이 갈등을 잘 풀어갈까

어떤 관계에서든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적어도 한 번 이상 부딪힐 일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 못지않게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비슷한 갈등을 마주하게 되어도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잘 얘기해서 풀어나가면 된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갈등은 결코 존재해선 안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상대의 가벼운 실수에도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그랬다거나 ‘원래 저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파괴적인 해석을 내려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파국을 맞이하곤 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선 연구들에 의하면 기본적인 성격 특성(높은 신경증)과 애착 유형(불안정 애착), 사람은 (따라서 관계 또한) 잘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관계에 대한 성장적 관점과 운명론적 관점),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향한 비판적 완벽주의, 또 여러 상황적 요소(많은 스트레스와 걱정거리로 인해 정신적 소모가 심한 상태, 소외감) 등이 한몫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글에서 함께 살펴본 것들이기도 하다.

인격과 사회심리학 공보(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지나치게 강한 ‘소속 욕구’ 또한 너그럽지 않은 모습과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 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쉽게 상처받고 상처가 오래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소속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나는 쉽게 상처받는다”, “사람들이 나를 빼고 뭔가를 하는 것이 싫다” 이는 소속 욕구(need to belong)를 묻는 문항들이다.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위의 문항들에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모리시오 카발로 등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지난 3개월 사이에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에 의해 상처받거나 화가 났던 일에 대해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 뒤 상대에게 얼마나 보복하고 싶은지, 상대가 얼마나 망했으면 좋겠는지,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인지 아니면 피해 다닐 것인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소속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에게 화가 많이 났고 사건의 심각성을 크게 지각하며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속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미래에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내가’ 채워지는 것이 목적일 때 나타나는 보상 심리

언뜻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 상대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더 잘 포용하고 관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목표가 간절할수록 많은 애를 쓰기 때문에 목표 달성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되는 점은 간절할수록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의 ‘실망’이 크며 때로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게 다 xx 때문’이라고 외부에 책임을 돌리는 현상도 나타난다는 것이다(Mauss et al., 2011).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적당히 애를 쓰는 것은 좋지만 강박적으로 애를 쓰는 경우 자연스러운 갈등과 내리막에도 필요 이상의 충격을 받으며 자신 외에 비난할 무언가를 찾으러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의) 소속 욕구를 채우고 싶다거나 (내가) 외로운 게 싫다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이유가 관계의 핵심 동기가 되면 관계에 과한 노력을 쏟고서도 정작 상대는 요청한 적 없는 ‘필요 없는 오지랖’이나 ‘부담스러운 친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Feeney & Collins, 2001).

이 과정에서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가 하나도 알아주지 않는다던가 되려 나를 피한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 많이 받고자 할수록 보상 심리도, 서운함도 커지는 법이다.

관계를 위한 노력과 자신의 희생에 주로 억울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애초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사랑을 주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서운함이 컸던 관계를 돌아보면 그 중의 상당수가 상대에게 주기보다 내가 받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던 관계들이다.

내 안의 결핍은 내가 알아서 채워야 한다. 누가 시켜서 또는 외로워지기 싫다는 수동적 이유가 아니라 내가 주길 원해서 내가 주고 싶은 만큼 맘껏 주고 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할 것을 기억해 보자.

Amitay, O. A., Mongrain, M., & Fazaa, N. (2008). Love and control: Self-criticism in parents and daughters and perceptions of relationship partner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4, 75-85.
Feeney, B. C., & Collins, N. L. (2001). Predictors of caregiving in adult intimate relationships: An attachment theoretical perspectiv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0, 972-994.
Jensen-Campbell, L. A., Knack, J. M., & Rex-Lear, M. (2009). Personality and social interactions. In P.J. Corr & G. Matthews (Eds.), The Cambridge handbook of personality psychology (pp. 506–523).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Knee, C. R. (1998). Implicit theories of relationships: Assessment and prediction of romantic relationship initiation, coping, and longev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 360-370.
Mauss, I. B., Tamir, M., Anderson, C. L., & Savino, N. S. (2011). Can seeking happiness make people unhappy? Paradoxical effects of valuing happiness. Emotion, 11, 807-815.
Shaver, P. R., Mikulincer, M., Sahdra, B. K., & Gross, J. T. (2016). Attachment security as a foundation for kindness towards self and others. In K. W. Brown & M. R. Leary (Eds.), The Oxford handbook of hypo-egoic phenomena (p. p223-242).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7 8월 2024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나의 일부’가 된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나의 일부’가 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나의 일부’가 된다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외로움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꽤 다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많고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관계의 ‘양’은 외로움과 큰 상관이 없다.

이보다는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해서 한 두 명일지라도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또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배고픔’이라고 보는 시선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가 존재론적인 수준에서 갈구하는 관계란 서로 깊이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애밀리 오거 캐나다 맥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이해하는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충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정의할 때 사용하는 요소 ‘나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연인 제인과 마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에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제인의 목표들과 깊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높은 이해, 낮은 따뜻함),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의 목표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낮은 이해, 높은 따뜻함). 그런 뒤 제인에게 마이크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 결과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는 않아도 제인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이 반대로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만 제인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보다 마이크와의 관계가 제인에게 매우 소중하고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친밀한 관계라면 따뜻함과 이해가 모두 있어야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연인 및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인 또는 친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이해하고 있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해당 관계가 자신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잘 말해주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친구나 연인이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관계를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생각해보면 영혼의 동반자 같은 친구나 연인의 특징이란 성격이나 자라온 배경이 같다는 것보다도 다른 점이 많지만 대화가 잘 되고 웃음코드가 비슷하다는 사소한 요소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화가 잘 되고 코드가 비슷하다는 것이 상호 이해의 전제 조건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곳은 다르더라도 바라보는 곳이 같고 생각이나 감정은 달라도 대화가 잘 돼서 얼마든지 다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이 사람도 재미있어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이해자인 것은 아닐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떤 관계든지 항상 감정적으로 뜨겁고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상대방을 향해 한 쪽 귀를 열고 있는 한 얼마든지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관계는 오랜 친구로 수렴한다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누군가가 나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타인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Auger, E., Thai, S., Birnie-Porter, C., & Lydon, J. E. (in press). On creating deeper relationship bonds: Felt understanding enhances relationship identific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Advance online publication. https://doi.org/10.1177/0146167224123341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

12 8월 2024

[알아봅시다] 인터넷 커뮤니티 ‘짤방’, 전력 낭비 주범 될까

[알아봅시다] 인터넷 커뮤니티 ‘짤방’, 전력 낭비 주범 될까

인터넷 커뮤니티 ‘짤방’, 전력 낭비 주범 될까

입력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콘텐츠 생성 활동을 표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콘텐츠 생성 활동을 표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기기에서 한 번 쓰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 ‘정크(쓰레기)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많은 전력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개인이 생성하는 사소한 게시글들이 방대한 저장공간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크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낭비되는 전력이 당장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장기적인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쓸모없는 데이터는 곧바로 삭제하는 습관을 가질 것을 권고했다.

12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에너지회사 내셔널그리드는 2030년까지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데이터 저장소가 영국 전체 전력소비량의 6%를 차지할 것이란 분석을 최근 내놨다.

기후 위기 전문가들은 앞으로 디지털 데이터 저장소가 기후 위기를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을 것이라 전망했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정크 데이터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온 이안 호지킨슨 영국 러프버러대 교수는 “디지털 데이터는 굉장히 복합한 방식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호지킨슨 교수에 따르면 기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의 68%는 다시는 사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데이터 또한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성된 이후 다시는 쓰이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개인 사용자들이 만드는 이미지, 인스타그램 게시물 등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온라인 상에 보관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사소한 데이터라도 생성과 보관 과정에서 일정한 탄소가 배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업무용 이메일을 1개 발송하는 데는 4g의 탄소가 배출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거나 재밌는 이미지를 저장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전기로 충전하는 행위 등이 모두 탄소 배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생성하는 디지털 데이터 양이 쌓이면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소모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호지킨슨 교수는 “하나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 기후에 급격한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이러한 디지털 데이터 생성과 보관 양상은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데이터가 더 많이 저장될수록 저장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한번 소비된 후에 아무도 열람하지 않는 휘발성 데이터를 관리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Loading

4 8월 2024

[생물 및 의학(건강)] 잠 부족하면 학습능력·기억력 떨어지는 원인 찾았다

[생물 및 의학(건강)] 잠 부족하면 학습능력·기억력 떨어지는 원인 찾았다

잠 부족하면 학습능력·기억력 떨어지는 원인 찾았다

입력
영국 에든버러대,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 공동연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뇌 신경세포(뉴런)가 만나는 곳의 시냅스 종류가 줄어드는 현상을 규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영국 에든버러대,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 공동연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뇌 신경세포(뉴런)가 만나는 곳의 시냅스 종류가 줄어드는 현상을 규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수면 부족은 뇌에 영향을 미쳐 학습력과 기억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뇌 기능 저하 원인이 수면 부족시 뇌 세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의 다양성을 줄이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에든버러대,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 공동연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뇌 신경세포(뉴런)가 만나는 곳의 시냅스 종류가 줄어드는 현상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2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었다.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전기 신호를 다른 뉴런으로 전달해 신경계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수면 시 뇌의 시냅스 움직임이 감소함으로써 에너지를 보존하고 다음 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 준비하며 이는 기억력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세스 그랜트 에든버러대 교수는 “시냅스가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하는 화학물질, 신경전달물질 종류가 다양하며 뉴런 주변 단백질의 구조와 구성도 다채롭다”며 “연구팀은 뇌의 이같은 다양성을 스냅샷으로 찍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통해 연구팀은 정상적으로 잠을 잔 쥐와 하루 중 6시간만 잠을 잔 쥐의 뇌를 촬영했다.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두 집단의 시냅스 연결 총 개수는 비슷했다. 하지만 수면이 부족한 집단에서 시냅스 연결의 종류가 줄어들어 다양성이 떨어졌다. 특히 시냅스 연결 종류는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뇌의 두 영역인 피질과 해마에서 크게 감소했다.

연구팀은 “수면 부족이 어떻게 이같은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수면 부족이 뉴런의 단백질 합성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을 보인 이전 연구 결과를 참고할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이 뇌의 기억 관련 영역에서 시냅스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doi: 10.1126/science.z7g5myx

Loading

4 8월 2024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필요한 관심사 ‘가지치기’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필요한 관심사 ‘가지치기’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불필요한 관심사 ‘가지치기’

입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지, 반대로 어떤 것들에 대해 관심을 줄이고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지를 잘 따져봐야 해.” 몇 해 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평소에 불평불만인 것들,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하는 대화의 주제들, 어떤 유명인이 무슨 일을 했다더라 또 요즘 무엇이 유행이더라 하는 정보들, 카더라 식의 별다른 근거 없는 주장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고 쉽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중 우리가 쓴 시간과 에너지에 정말 걸맞는 진짜 중요한 것들이 몇 개나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의 대다수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 없는 부질없는 일들인 것처럼 안타깝지만 우리가 평소 개인적으로 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관심을 쏟는 많은 것들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자극 또는 소재, 정보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것, 마음을 사로잡는 정도와 그것들의 진위나 중요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감정은 곧 정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예를들어 평소 전문가들의 조언은 귀찮아 하면서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뭘 먹고 건강해졌다더라는 류의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져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구해 먹는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화재가 나타날 확률보다 타지역에 사는 친구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화재 보험 가입률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똑같은 주장을 해도 정치 성향이 같은 사람이 한 주장이라면 맞장구를 치지만 다른 사람이 한 주장이라면 반대부터 하고 본다. 무엇이 유행이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대세에 탑승한다.

단순히 심심하거나 귀찮아서, 있을리 만무한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허황된 마음 때문에, 관계에서의 친밀감, 우리 편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유행을 좇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잘못되었거나 중요하지 않은 정보나 가치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삶의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안타깝게도 가짜뉴스나 타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비방 등 감정을 자극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포장해서 판매하는 자극판매상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소모하는 시간들도 점점 늘어만 간다.

현실이 이런 탓에 가짜뉴스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정보들은 일단 걸러서 듣고 신뢰할만한 출처를 통해 진위를 확인할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이렇게 새로 접하는 정보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나 문제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빠르게 쏟아진다는 것이다.

일일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정보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쏟아지는 이야기들이 “과연 정말 중요한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정보나 주장이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크게 상관 없는 것인지 (유명인의 사생활, 조직 내에서의 가십거리, 타인에 대한 험담 등), 정말 중요하고 사실이어서 관심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 (잘못된 건강 정보, 일확천금에 관한 정보들), 역시 중요해서 따라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대세에 편승하는 것일 뿐인지 (자기계발 트렌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정작 진짜로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밤에 잠이라도 편하게 자도록 관심사에 있어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정보나 관심사 뿐 아니라 목표나 인간관계 등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솎아 내고 나면 언제나 쭉정이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실제 중요한 것은 다르다. “이게 정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