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조금 못 자더라도 살 수 있다”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조금 못 자더라도 살 수 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조금 못 자더라도 살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불면증을 겪는 사람 중 다수가 많이 보고하는 문제 중 하나가 ‘잠에 대한 불안’이다. 조금 피곤하고 졸린 기분도 들어서 오늘은 잘 잘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도 곧 막상 누우니까 졸음이 달아나는 것 같고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시계 소리는 점점 커지는 것만 같고 어쩌면 오늘도 다 잔 것이 아닐까, 이대로 내일도 피로에 쩔어서 해야 할 일도 쉬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날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불안감에 젖는다.
그러다 시계를 확인해 보면 벌써 새벽 한 시, 조금 후면 두 시, 세 시… 시간에 쫓기는 불안에 시달리다 네 시가 되어 겨우 잠을 자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시간에 쫓기면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인다.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몸에 힘이 빠져야 겨우 잘 수 있을까 말까한 상황에서 잠을 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이 올라오면 편히 잠들기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비슷하게 낮에 힘든 일이 많았던 경우, 자면서도 일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 또 그냥 기본적으로 완벽주의 정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밤에도 쓸데없이 각성수준이 높아져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편이라는 연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 자체에 불안감이 있는 경우는 조금 달라서 낮에 아무 일 없었어도 ‘잠을 최소한 몇 시간은 자야 한다’는 잠에 대한 강박이 심한 탓에 침대에 눕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갈수록 불안이 쌓여 간다.
나 역시 한동안 잠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최소한 몇 시간은 자야 한다거나 푹 자고 일어나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해야만 멀쩡하게 기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잠을 잘 자는 것은 실제로도 중요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못 잔다고 해서 며칠을 내리 한 숨도 자지 못하는 게 아닌 이상 또 다음날 중요한 일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조금 피곤하게 보낸다는게 그렇게 두려움에 떨 일인지 생각해 보면 또 별 일 아닌거 같기도 한 것이다.
많은 만성질환자 및 우울증, 불안증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적응적인 사고방식 중 하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안 좋은 일(더 아프고 우울하고 끔찍하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라고 하는 “재앙화” 사고이다.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 크게 나쁘지 않을 수 있는 일의 결과를 크게 과장해서 두려워하다보니 실제로 작은 일에도 육체적,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 두려움이 쌓이는 악순환이다. 우리 몸은 마음이 아픈 만큼 실제로 갖은 신체화 증상을 겪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줄이는 것이 좋다.
따라서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이 어떤 일의 결과를 실제보다 부풀려서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잠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아니면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는’ 괜찮을 것이지만 나의 마음이 자꾸 내 안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불안을 자극하는 오경보를 울려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창 불면증이 심할 때 인지행동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의외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조언이 “조금 못 자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너무 단순화해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잠을 잘 자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것이 정상이며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뭔가 큰 일이 날 것처럼 생각하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아예 하루를 꼬박 새고 언젠가 졸음이 올 때 푹 자는 것이 더 생체리듬을 돌리는 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하루의 상쾌함을 결정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으며 ‘잠’이 물론 중요하지만 단 하나의 절대반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면 업무상 낮과 밤이 항상 바뀌는 사람들도 있고 여행이 잦아서 시차적응을 자주 겪어야 하는 사람들도 다 살아가는데 (물론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날은 낮에 쪽잠이라도 조금 자면 되는 것이지 불면증으로 (아직까지는) 삶이 크게 위협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잠에 대한 미련과 강박을 내려놓으니 실제로 더 잘 자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평소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편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도록 하자. 수면 클리닉이나 수면인지행동 치료를 하는 센터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584/0000029795?cds=news_media_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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