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키고 싶은 자아상 무너질까 두렵다면?
[사회과학]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키고 싶은 자아상 무너질까 두렵다면?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키고 싶은 자아상 무너질까 두렵다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은 여러가지로 신기한 동물이다. 특히 ‘자아’,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덕분에 미래에 대한 계획(예를 들어 ‘나는 XX한 사람이 되고 싶어’)이나 자기 성찰(예를 들어 ‘나의 이런 행동은 좋지 않은 거 같아’) 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멋진 기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만큼 큰 부작용 또한 떠안게 되었다.
자아 덕분에 나를 주인공으로 한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된 반면 내가 초라해지거나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 되는 것에 대한 걱정과 공포 또한 갖게 되었다. 아무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내가 바라보는 나, 사실은 내 머리 속의 내 이미지 또는 환영에 가까운 무엇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실재하는 위험에 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게 되었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은 ‘인기있는 나’의 이미지가 위협받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럴 때 자신은 인기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확인을 받으려 하거나(“나 사실 인기 많다고 말해줘!”) 그런 위협을 준 사람을 부정하는 식(“나를 인기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네가 이상한 것이다”)의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비슷하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정체성의 핵심인 사람은 누군가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항상 뭐든지 잘 하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은 완벽주의에 시달린다.
최근 마이클 하젤훈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연구자 등에 의하면 ‘남성적’인 것이 자기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미국)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작은 일에도 타인을 잘 용서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들에 의하면 타인을 용서하는 행위는 따뜻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적’인 행동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남성들의 경우 (여성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용서에 인색할 수 있다.
실제로 평소에 운동 경기에 있어 절대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절대 보이면 안된다던가, 남성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남성들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에 대해 용서할 의향이 낮았고 공격성이나 복수심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예를 들어 최근 ‘진짜 남자’처럼 느꼈던 상황에 대해 떠올려보는 등 자신의 남성성을 재확인해서 남성성에 대한 위협을 비교적 덜 느낀 남성들은 이러한 모습을 비교적 ‘덜’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스스로 또는 사회에서 정의하는 남성성의 내용에 따라 또 그 정체성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스스로 자신의 남성성이 잘 충족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타인을 잘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잘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용서 하지 않는 방법 말고 다른 적응적인 방법으로 남성성을 충족시킬 수도 있겠다(예를 들어 운동을 한다거나 지식을 쌓는다거나 등). 한국 사회에서 정의하는 남성성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지도 생각해 본다.
한국 남성들이 추구하는 남성성은 자신과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는 모습과 닿아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언제서부턴가 정의를 추구하는 것, 약자의 편에 서는 것,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 등의 가치들이 더이상 ‘쿨’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함께 해결해가는 방식보다는 내가 괴로우니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주가 된 거 같기도 하다. 기성 세대가 올바른 남성성에 대한 표본을 보이는 데 실패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정체성에 위협을 자주 받거나 자신이 지키고 싶은 자아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과연 그것이 지속 가능하고 나와 주변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이미지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 나와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 인간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 또는 ‘군자’가 되는 것처럼 조금 더 모두에게 이로운 자아상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Haselhuhn, M.P. & Ormiston, M.E. (2024). Fragility and forgiveness: Masculinity concerns affect men’s willingness to forgiv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14, 104626. https://doi.org/10.1016/j.jesp.2024.10462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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