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1월 2020

[朝鮮칼럼 The Column] 기축옥사 이후 못난 역사 반복할 것인가

[朝鮮칼럼 The Column] 기축옥사 이후 못난 역사 반복할 것인가

기축옥사는 반대파 대학살 西人 장기 독재 시발점
특정 세력 폭주에 戰亂 무방비 임진왜란·병자호란 비극 자초
적폐 청산 후유증 심각 미래 대비 않으면 위기 올 것

1589년 조선에 ‘기축옥사’라는 사건이 있었다. 명분은 ‘정여립 모반 사건’ 가담자 처벌이었지만 사실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부족한 선조가 입지를 강화하고자 동인을 토벌한 대참극이었다. 3년간 사형이나 유배를 당한 동인 선비가 1000여 명에 달했고 조정에는 일할 관리가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4대 사화 다 합쳐도 희생자가 5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축옥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인 세력을 절멸시킨 서인들은 1623년에는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광해군과 북인마저 제거하면서 바야흐로 서인 세상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왕비는 서인 출신으로 간택하고, 조정은 서인들로 채우면서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집권했다.

서인들만의 세상이 되면서 정치 환경이 확 바뀌었다. 정책이나 논리 경쟁은 사라지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생결단 정치가 전개되었다. 효종 때 서인들이 반대한 ‘북벌론’을 주장한 남인의 거두 윤휴를 성리학의 이단으로 몰다가 반역죄를 씌워 처형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학문도 성리학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리학 이념만이 최고 가치가 되면서 기업을 천시하고,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하는가?’ 하는 예송 논쟁이나 벌이고 있었으니 나라가 잘될 수 없다. 결국 변방 약소국으로, 오로지 중국 속국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중국이 붕괴하면서 같이 망했다.

2019년 10월 3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일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 및 정권퇴진 촉구 집회. /조선일보 DB
 
2019년 10월 3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일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 및 정권퇴진 촉구 집회. /조선일보 DB

지금 431년 전 기축옥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2017년 적폐 청산 이후 우리 사회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역사의 교훈을 찾기 위해서이다. 진보 진영이 적폐 청산 명분으로 대통령, 대법원장, 국정원장, 장관, 군 장성 등 보수 진영을 초토화하고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등 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것은 과거 서인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정치 환경이 편 가르기와 사생결단식으로 가는 것도 유사하다. 전직 대통령들을 차례로 수감하는 모습은 참 모질다.

가장 우려되는 공통점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행태다. 공수처법에 대해 소신을 밝힌 여당 국회의원은 미운털이 박혀 배척당했고, ‘지역 사랑 상품권이 큰 효과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밝힌 국책 연구원은 대선 주자에게 호되게 야단맞았다. 탈원전은 거의 성리학 수준이다. 감사를 했다고, 수사를 한다고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을 향해 총공세를 가하는 여권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사회는 다양해야 건강하게 발전하는데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적폐니, 토착 왜구니, 친재벌이니’ 하며 적대시하는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조국수호', '사법적폐, 청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강호 기자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조국수호’, ‘사법적폐, 청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권의 뜻과 달리 국가 재정을 아끼려던 경제부총리는 시달리다 못해 사의 표명까지 했고, 역시 국가 부채를 걱정한 한은 총재는 여당 의원에게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산자부는 원전 정책이 무너져도, 주 52시간제나 경제 3법 등으로 기업인들 속이 타들어 가도 묵묵부답이다. 복지부는 소통 없이 공공 의대를 강행하다가 의료계와 갈등을 빚고, 환경부는 아직도 4대강 흠집 내기에 열심이다. 정부 안의 전문 관료들 의견은 실종되고 진영 논리만 가득하다.

그나마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법무부와 검찰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너무나 치졸해서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검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어쩌다가 ‘개’에 비유당하고, 이상한 정치인 1명 때문에 망가질 만큼 우스운 곳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축옥사를 수사한 사람은 우리에게 문인으로 잘 알려진 송강 정철이다. 선조는 정철을 특검으로 임명하면서 “백관 중의 독수리, 대궐의 맹호”라고 극찬했지만 기축옥사가 끝나가던 1591년 말 “악독한 정철이 내 선한 선비들을 다 죽였다”고 분노하며 유배시켰다. 정철은 이후 술독에 빠져 살다가 2년 후 57세에 강화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적폐 청산 총대를 멨던 검찰은 앞으로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까?

기축옥사 3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을 맞았다. 선조는 도망가고, 백성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맞으며 조선은 쑥대밭이 되었다. 서인들이 미래 대비는 안 하고, 자기들끼리 안방 정치만 한 대가다. 지금 우리도 적폐 청산 3년이 지나면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여권이 지금처럼 미래 대비를 소홀히 하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꿈꾸다가는 기축옥사 이후의 못난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출처]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0/11/16/E6HJWTTDRVDEBFMXOELLLVJ7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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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1월 2020

[중앙일보 창간기획] 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중앙일보 창간기획] 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창간기획] ① 편가르기는 죄인가 

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좋은 질문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뉴턴의 질문(『프린키피아』)은 중력의 원리를 밝혀냈고, 루소의 문제 제기(『인간 불평등 기원론』)는 복지국가 이론의 단초가 됐다. 종교의 경전 또한 성찰과 물음으로 진리의 삶을 이끈다. 반대로 나쁜 질문은 개인과 국가, 인류를 위기에 빠트린다. “독일 민족은 선택받은 아리아인이 아니냐”던 히틀러의 우문은 유대인 학살과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좋은 질문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경제·외교안보·미래, 함께 고민을

좋은 질문은 축적된 지식과 깊은 통찰에서 나온다.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는 달과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봤지만, 꽤 오랜 후에야 “지구 스스로 돌고 있는 것 아닐까”란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을 위해선 세밀한 관찰로 문제를 발견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가설을 세워야 한다. 좋은 질문은 사안의 핵심을 파고드는 통찰이며,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창의적 직관이다. 그렇기에 슬라보이 지제크는 “자판기처럼 해결책을 내놓는 전문가는 많지만, 본질을 탐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지식인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지식인들의 비판적 질문을 경시한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관용이 부족한 발문으로 다양성을 가로막는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장하성)에서 시작된 소득주도 성장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 ‘소득 격차’라는 질문에서 나왔다. 이는 “불평등의 본질은 자산”이라는 진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이론과 배치되며, 소득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2017~2019년(통계청 가계수지 4분기) 하위 20%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50만원에서 132만원으로 줄어든 반면, 상위 20%는 845만원에서 946만원으로 늘었다.
 
“괴물 검찰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던 조국(『진보집권플랜』)의 질문도 틀렸다.  바른 질문이라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 물어야 했다.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대통령의 말대로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하도록”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한없이 나긋하다. ‘청와대 정부’라는 새로운 ‘괴물’까지 나오고 있다. 평생 검사 얼굴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반인을 위해서라면 조두순 같은 흉악범을 막는 ‘범죄와의 전쟁’이나 각종 민생사범을 줄이는 것부터 고민하지 않았을까.
 
정의·평화를 외치는 대통령 또한 청년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했다면 ‘공정’만 공허하게 37번이나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 정의가 집권세력이 아닌 국민의 것이었다면, 범죄 피의자에게 ‘마음의 빚’을 표현할 일도 없다. 국민의 안위가 우선이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명존중 의지에 경의’(8일 친서) 같은 표현으로 북한 바라기만 했을까.
 
라파엘로가 묘사한 아테네학당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발을 디딘 채 눈은 미래를 향하며 묻는다. 더 이상 과거로 침잠하는 구시대의 질문을 반복해선 안 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새롭고 본질을 향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더 나은 성취를 이루고, 노력에 따른 보상이 공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야 한다. 3년 전 ‘이게 나라냐’던 국민의 좌절감이 ‘나라가 네 것이냐’는 분노로 돌아온 이유를 집권세력은 자문해 보라. 누구를 위한 정의와 평등이며, 어떻게 공정할 것인지 평범한 시민들이 묻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일보 창간기획] 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82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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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1월 2020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말로만 진보, 행동은 물질적 욕망 좇고 계층세습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말로만 진보, 행동은 물질적 욕망 좇고 계층세습

[중앙일보] 입력 2020.11.06 00:33   수정 2020.11.10 18:34

강남좌파 & 브라만좌파

‘살롱좌파’의 대명사인 사르트르(가운데)와 그의 연인인 보부아르가 좌파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대화하는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살롱좌파’의 대명사인 사르트르(가운데)와 그의 연인인 보부아르가 좌파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대화하는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인물·개념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에서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 철학의 기틀을 다졌다. 『구토』, 『존재와 무』 등의 역작을 통해 프랑스의 대표 지성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지나치게 미화하면서 강제수용소 같은 인권유린을 묵인해 자유주의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모든 국민이 강남 살 이유 없다”
계급 장벽 논란 부른 장하성·조국
‘내로남불’도 모자라 불평등 공고화
386 권력의 중심엔 학연 네트워크

  

토마 피케티

토마 피케티

 삼원사회
토마 피케티(사진)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의 구체제를 지배계급인 사제와 귀족, 피지배계급인 평민으로 이뤄진 ‘삼원사회’로 명명했다. 현대사회도 사제에 해당하는 학력 엘리트(브라만좌파)와 귀족에 해당하는 자산 엘리트(상인우파)가 기득권을 나눠 갖고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킨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다.

강남좌파

강남좌파

강남좌파
미국에선 리무진좌파, 영국에선 샴페인사회주의자, 프랑스에선 캐비어좌파 등으로 불린다. 원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 진보를 칭하는 말이었는데, 최근에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브라만좌파’로 확대됐다. 교수 등 고학력 지식인이 많고 노동 등 민생 이슈보다 이념적 이슈를 강조한다.

“미국의 꼭두각시인 이승만의 남한이 38선을 따라 정해진 국경 3곳에서 북한을 선제공격했다.” 1950년 6월 26일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인 ‘뤼마니테(L’Humanité)’의 공식 발표입니다. 사회주의가 패션처럼 유행했던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선 대한민국의 북침설을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파리국립정치학교 교수인 장 프랑수아 시리넬리 등이 쓴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6·25 발발 직후 전쟁의 원인이 남한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일성의 남침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들이 나왔을 때는 “북한이 미국의 유인 전략에 빠져 전쟁을 시작했다”는 궤변을 늘어놨죠.
 
실존주의 철학의 대부인 사르트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지성입니다. 그의 학문적 성과 못지않게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등 사생활로도 큰 유명세를 떨쳤고요. 특히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물질적 향유로 점철된 그의 삶은 늘 논란의 중심이었습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머릿속과 말에서만 급진적이었고 삶에서는 부르주아적 모순 투성이었다”며 “어지러운 사생활과 배치되는 선동적인 진보 레토릭으로 지식인 사회를 평정했다”고 설명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선 사르트르처럼 고급 살롱의 문화를 즐기며 진보를 자칭하는 소위 ‘살롱좌파’가 많았습니다.
 
사르트르의 모순된 삶에 환멸을 느낀 지식인 중 일부는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유년시절부터 친구였던 레이몽 아롱입니다. 아롱은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 좋은 좌파는 정직할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하죠. 그는 ‘살롱좌파’의 위선을 꼬집으며 “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르트르는 국민영웅 샤를 드골을 ‘프랑스의 히틀러’라고 비난하고, 『수용소 군도』에서 소련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시대착오적 인물”이라며 폄훼했습니다. 윤평중 교수는 “사르트르가 강제수용소 같은 인권탄압을 잘 알면서도 소련을 옹호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환멸을 느낀 ‘절친’ 메를로 퐁티와 알베르 카뮈 등도 그의 곁을 떠났죠.
  
프랑스엔 살롱좌파, 한국엔 강남좌파
 
반세기가 훌쩍 지난 한국에는 ‘살롱좌파’ 대신 ‘강남좌파’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강남좌파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정의대로 “정치적·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소득수준과 라이프스타일은 강남주민 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실제로 현 정권에는 말로만 진보를 외치고 행동으로는 물질적 욕망을 실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의 입’이던 김의겸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인 2018년 7월 흑석동 재개발 지역의 건물을 25억7000만원에 매입 후 2019년 12월 34억5000만원에 매각했습니다.
 
노영민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서울 반포의 아파트는 놔두고 자신의 지역구인 청주의 집만 팔겠다고 했다가 ‘똘똘한 한 채’ 비판에 휘말렸습니다. 논란 끝에 반포 아파트까지 매각했지만, 8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죠. 강남 다주택 논란을 빚은 김조원 민정수석은 끝내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아파트를 팔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면서 뒤에선 그 이익을 가장 먼저 챙기는 정권 실세들의 모습에 많은 국민이 실망했습니다. 특히 ‘386’ 정치인들의 다수는 말로는 평등, 반미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누구보다 자본주의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죠.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권세력조차 정책과 반대로 행동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더해 강남좌파는 말과 행동의 괴리에 빠진 살롱좌파에만 머물지 않고 불평등 구조를 공고화하는 브라만좌파가 되려하고 있습니다.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학력 엘리트인 브라만좌파가 자산 엘리트인 상인우파와 결탁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양극화 구조를 공고히 한다”고 말합니다. “부를 재분배하고 서민층을 대변하는 원래의 좌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학력과 주거지로 구분되는 계급 차별의 울타리를 높이면서 세습을 통해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를 차버리고 있는 것이죠. 결국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모두 기득권이라는 게 피케티의 주장입니다.
 
『꿈을 쌓아두는 사람들(Dream Hoarders)』의 저자인 리처드 리브스의 문제의식도 비슷합니다. “고학력 부모들이 최고의 학교에 자녀를 보내 사회·경제적 부를 대물림하며 구조적 장벽을 쌓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대학입시는 인턴 기회가 많은 응시자에게 유리하도록 설정돼 있고, 명문대 입시를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특권의 산꼭대기가 존재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특히 “포틀랜드·뉴욕·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 모여 살면서 다른 계층이 학군 좋은 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죠.
  
조국·장하성은 브라만좌파

장하성(左), 조국(右)

장하성(左), 조국(右)

한국에선 강남좌파의 원조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장하성 주중대사가 대표적인 브라만좌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각각 미국의 버클리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공부했고, 유명대학(서울·고려대) 교수 출신이라는 뛰어난 스펙도 갖췄죠. 문재인 정부의 실세로 부와 명예는 물론 권력까지 거머쥐었습니다.
 
두 사람은 ‘내로남불’에만 그치지 않고, 계층의 장벽까지 쌓는 모습을 보입니다. 장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인 2018년 9월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 저도 강남에 살기에 드리는 말씀”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3년간 그의 잠실 아파트는 10억 원이 넘게 올랐고, 여론은 ‘왜 당신만 강남에 살아야 하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죠.
 
조 전 장관은 트위터에서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용이 되지 않고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입시 편법 논란 이후 본인의 아들·딸만 용으로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죠. 고교생이 SCI급 의학논문의 저자가 되는 것은 부모가 학력 엘리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학력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진보 인사들의 이중성은 조 전 장관만의 일이 아닙니다. 유시민과 전·현직 교육감인 곽노현·조희연·김승환 등은 외국어고·자사고 폐지를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자녀는 외고를 보냈습니다. 평등 교육을 강조해온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세 딸은 강남의 학교를 나왔고요. 반미·반일을 외쳤던 이인영·윤미향 등 여권 인사들은 학비가 비싼 스위스·미국 등지에 자녀를 유학 보냈죠.
 
현 집권세력이 정치, 검찰, 언론, 재벌 등 각 분야의 개혁에 소리 높이면서도 학벌 타파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그들의 가장 큰 권력이 학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학연으로 맺어진 80년대 민주화운동과 90년대 시민운동의 주도자들은 대부분 누구누구의 친구이거나 선후배로 강력한 결속력을 보입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는 학연·지연·혈연의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원리를 터득해 시민사회와 국가를 점유하고 위계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했다”고 비판합니다(『불평등의 세대』). 교내외 학생회·서클 등을 조직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거대한 기득권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죠.
 
그 결과 네트워크 안에 있는 ‘내 편’이면 무조건 감싸지만(박원순·윤미향·조국 등), 그 밖에 있으면 과감하게 버립니다. 부동산 차명 의혹을 받은 양정숙 의원과 재산신고를 누락한 김홍업 의원을 빠르게 ‘손절’한 게 대표적이죠.
 
이런 상황에서 정말 “분노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현재의 집권세력은 가짜 진보”라는 김경률 회계사의 말처럼 이들이 스스로를 계속 진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지 ‘진짜 진보’에게 묻습니다. 원로 지식인 홍세화 선생의 말대로 “(가짜 진보에게) 진보라는 개념을 뺏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913424#none

 

[옮긴이 P.S.] 공정을 강조한  머시기가 운동권 자녀는 대입과 의대에 특혜를 주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1년내내 수업도 안듣고 

시험도 무시하는  운동권학생이 멀쩡이 졸업하는 교육을 받은 관례의 이대올로기의 결과다.

김연아처럼 올림픽에 금메달 따는 것도 아닌데 운동한다고 자신은 훈장받고 특혜를 누린다는 건데 운동권 입장에서의 공정이다. 

운동해서 금메달리스트도 아닌데 공정하게 자기는 우월하다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생각!

더 나쁜것은 운동의 목적은 자신의 그런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멀쩡히 바른 생활하는 학우들을 방해하고, 해코지 하고, 비방 조롱하고 자신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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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 2020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베네수엘라 망가뜨린 반지성주의, 한국에도 만연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베네수엘라 망가뜨린 반지성주의, 한국에도 만연

[중앙일보] 입력 2020.09.11 00:31   수정 2020.09.11 00:42

지식인의 죽음

키워드
차베스

차베스

1월 23일 지구
카라카스 서쪽의 빈민지구. 교통이 차단된 인구밀집지역으로 치안이 불안정하다. 1992년 우고 차베스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킨 장소다. 2013년 사망한 차베스의 유해도 이 지구의 정중앙에 있는 구 군사박물관에 안치됐다.

 

원유 매장 1위지만 국민 94% 빈곤
“반대 세력을 기득권 몰고 악마화”
반지성주의 목표는 시민의 우민화
비판적 지식인·전문가 의견 들어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21세기형 사회주의
인민의 정치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차베스주의의 다른 이름. 핵심산업의 국유화, 노조의 경영참여, 복지재정 확대 등을 추구했다. 수출의 90%가 석유인 베네수엘라만의 독특한 경제구조로 유가가 폭락하자 경제위기를 맞이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

리처드 호프스태터

반지성주의
이성과 합리가 무시되고 지성과 지식인이 배척되는 현상.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친 미국 사회를 해부하며 포퓰리즘과 결합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지 분석했다. 

지난해 3월 베네수엘라 대규모 정전 사태 당시 카라카스 시민들이 과이레강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받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식수와 에너지 등 기본 자원이 매우 부족하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3월 베네수엘라 대규모 정전 사태 당시 카라카스 시민들이 과이레강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받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식수와 에너지 등 기본 자원이 매우 부족하다. [AFP=연합뉴스]

2017년 7월 30일. 카라카스(베네수엘라 수도) 서쪽 ‘1월 23일 지구(Barrio 23 de Enero)’에서 붉은 화염이 타올랐습니다. 이곳은 우고 차베스가 1992년 2월 쿠데타를 일으킨 장소였고, 2002년 축출 위기에 처한 그를 시민들이 육탄으로 막아낸 곳이었죠. 차베스의 상징 같은 지역에서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것입니다.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도화선이긴 했지만 근본 원인은 망가진 경제 탓입니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의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는 지금 국민의 94%가 빈곤상태입니다(2019년 3월 UN). 물가는 매년 하늘 높이 치솟고(중앙은행, 2019년 물가상승률 9585%), GDP는 6년 새 3분의 1로 쪼그라졌습니다.
 
그 결과 집권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2015년 총선에서 167석 중 55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마두로는 의회를 해산하고 친정부 인사들을 모아 제헌의회를 구성했고요. 그러자 나라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열렸는데, 가장 격렬했던 곳이 ‘1월 23일 지구’였습니다.

2019년 베네수엘라는

2019년 베네수엘라는

알레한드로 벨라스코 뉴욕대 교수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차베스주의의 내적 모순이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위기·분쟁에 빠진 차베스주의』). 좌파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권위주의적 탄압으로 인해 지지기반이던 하층민조차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죠. 벨라스코는 “차베스주의는 역사의 쓰레기장으로 버려져야 할 대상인가”하고 반문합니다.
 
무상 교육·복지, 토지공개념, 반시장 등 포퓰리즘을 내건 차베스의 ‘21세기형 남미 사회주의’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2000~2010년 144볼리바르에서 1223볼리바르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지나친 공공부문 확대 같은 현금 살포 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고요. 한때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도 차베스주의를 이상으로 꼽았지만 지금은 언급조차 하지 않죠.
 
안재욱 경희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석유 등 핵심 산업의 국유화, 가격·외환 통제, 무분별한 통화 팽창 등 잘못된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쳤다”고 지적합니다. “1950년 1인당 GDP가 세계 4위(7424달러)였던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이전까지도 가장 부유한 나라 20위 안에 들던, 가난하려도 가난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위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미의 유명 사회학자 에드가르도 랜더는 비판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차베스주의가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 “지나치게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달리 의회는 약했고, 합리적 논쟁을 벌이는 공공영역이 축소됐다”는 것이죠.
 
좌파 정권과 대중 사이에는 차베스에게 쓴소리하는 지식인을 배척하고, 전문성을 가진 엘리트 집단을 무시하는 풍토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포퓰리즘이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해도,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비판적 지성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차베스는 ‘민중의 자본 통제’를 선언하며 기업의 전문 인력을 제거하고 노동자위원회를 만들어 경영에 참여시켰습니다. 또 대기업을 국유화해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들을 요직에 앉혀 부실경영을 야기했죠.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상의료 정책을 실시했지만, 정작 병원과 약국에선 간단한 약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포퓰리즘 막지 못한 지성의 부재

카라카스 빈민가 건물외벽에 그려져 있는 차베스(왼쪽)와 그의 후계자인 마드로. [AP=연합뉴스]

카라카스 빈민가 건물외벽에 그려져 있는 차베스(왼쪽)와 그의 후계자인 마드로. [AP=연합뉴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과 지식인에겐 재갈을 물렸습니다.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호 매체를 앞세워 국민을 선동하고 비판 언론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탄압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나랏돈을 여론의 환심을 사는 데 쓰고, 국민들도 세금을 내기보다 정부 지원금을 환영”(안재욱 교수)하면서 ‘차베스 왕국’은 굳건해졌습니다.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는 지식인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를 ‘반지성주의’로 설명합니다. 그는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예로 들며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반지성주의’가 한 사회를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분석했죠(『미국의 반지성주의』).
 
미국 사회를 ‘반공’의 광기로 몰아갔던 조셉 매카시처럼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국민의 눈을 멀게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관리하는 권한에서 전문성과 지성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죠. 호프스태터는 특히 “반대 세력을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악마화하는 경향이 ‘반지성주의’에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반지성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시민들의 우민화입니다. 이때 동원되는 것은 확증편향과 가짜뉴스, 음모론, 진영논리 같은 것들이죠. 권력자의 말이면 무조건 믿게 만들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실보다 거짓을 진짜로 여기는 세뇌된 대중”이 돼 버립니다(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
 
오늘날 한국 사회도 ‘반지성주의’로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민주적’이어야 할 문재인 정권이 ‘반지성주의’에 앞장서고 있죠. 안재욱 교수는 “과다한 복지 지출과 가격 규제, 기업 감시처럼 베네수엘라의 뒤를 좇는 정책들이 많다”며 “오랫동안 시장과 기업, 정부의 역할을 연구해온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정권의 전문가 무시 행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처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왔을 때 대한의사협회가 6차례나 중국인 입국 금지를 제안했지만 거부했습니다. 7월 외식·숙박 쿠폰을 뿌리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할 때도 방역을 완화해선 안 된다는 의료계의 경고를 듣지 않았죠. 원전 폐기 정책을 추진할 때 역시 과학자들의 의견은 묵살됐습니다. 온갖 음모론이 난무했고 시민단체 등 비전문가들의 입김이 매우 컸습니다.
  
‘반지성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
 
비전문가의 득세는 의료·과학계뿐 아니라 전 영역에서 광범위합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대 후보 학생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추천한다고 밝혔습니다. 비판 여론에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 여당 의원들은 KBS 이사진과 경찰 자치위원에 시민단체, 지역사회 인사를 포함하는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전문가 대신 정권 코드에 맞추는 비전문가를 앉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모습이 차베스와 똑 닮았죠.
 
비판 언론을 ‘기레기’로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여권은 조국·윤미향 사건이나 추미애 아들 이슈처럼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가짜뉴스로 몰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립니다. 이들에게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팩트가 아니라, 자신의 바람대로 꿰맞추는 창조의 산물입니다. “부동산값이 오르지 않았다”거나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고요.
 
반대 목소리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진영논리에 의해 무력화되죠. 최근 의료계 파업 때 의사들을 기득권으로 몬 것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방역은 팽개치고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는 ‘의사 바이러스’”(김경협 의원), “국민의 생명과 환자를 볼모로 삼은 집단 이기주의”(허윤정 대변인)같이 의사들을 적폐로 몰고 여론의 반감을 조장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 ‘분할 통치(divide & rule)’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과 달리 문 대통령 스스로 ‘문파’의 SNS 공격도 ‘양념’이라며 반지성주의를 묵인하는 형국이죠. 김충남 전 교수는 “적과 동지로 나눠 반대편을 악으로 낙인찍고 자신을 정의로 미화한다는 점에서 현 정권과 차베스는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특히 “견제와 균형, 건전한 비판이 무너진 후에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반지성주의에 늪에 빠져 있습니다.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도,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리버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69654#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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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0월 2020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그렉시트 조장한 포퓰리즘, 상대편 억압하는 대중독재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그렉시트 조장한 포퓰리즘, 상대편 억압하는 대중독재

[중앙일보] 입력 2020.10.09 00:33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인물·개념
알렉시스 치프라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알렉시스 치프라스(1974~)
2015~2019년 그리스 총리를 맡았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로 ‘그렉시트’를 주장하며 집권했다. 자극적 언사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렸다. 하지만 총리가 된 후엔 ‘그렉시트’를 강하게 피력하지 않았고, 채권국들과의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잃었다.

 

그리스·미국 등 민주주의 위기
포퓰리즘 성행, 자유주의 퇴보
비판에 재갈, 한국도 예외 아냐
“대통령에 쥐·닭 비유, 지금은?”

  

야스차 뭉크

야스차 뭉크

 야스차 뭉크(1982~)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민주주의 위기 연구로 학계에서 주목받는 신진 정치학자다. 하버드대에서 수학했으며 『정의는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지도교수였다. 프리랜서 기자로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썼고 뉴아메리카재단의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알렉시스 드 토크빌

다수의 폭정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사진)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말한 개념.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논리인 다수결이 소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일 때 폭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결사·표현의 자유 보장, 적극적 시민참여와 지방자치 등을 제시했다. 

2015년 6월 그리스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시위 도중 치프라스 지지자들이 유럽연합 깃발을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2015년 6월 그리스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시위 도중 치프라스 지지자들이 유럽연합 깃발을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로존을 파괴시킬지도 모르는 급진적인 ‘해리 포터’.”
 
2015년 1월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그리스 최연소(40세) 총리로 취임한 시리자(SYRIZA·급진좌파연합)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비꼰 말입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그는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2009년 시리자의 당수가 됐고, 시리자는 2012년 원내 2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심각한 경제난과 긴축 정책으로 절망에 빠진 그리스인들이 치프라스의 포퓰리즘에 매료됐다”고 말합니다(『위험한 민주주의』).
 
치프라스는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유로존에 있어 봐야 착취만 당한다는 논리였죠. 그러면서 “채권자는 약탈자”라며 공공연하게 독일·프랑스 등 채권국을 비판했습니다. ‘그리스의 주권’ ‘민중의 의지’ 같은 말로 국민을 자극하면서,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했죠.
 
취임 직후 치프라스는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과 재협상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디폴트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구제안을 제시했지만, 치프라스는 더 큰 혜택을 원했습니다. 채권국들이 난색을 표하자 그리스는 정말 국가부도와 함께 유로존을 떠날 위기에 놓였고요.
 
이때 치프라스가 내놓은 카드는 국민투표였습니다. 구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었죠. 그러면서 “(구제안은) 그리스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국민을 선동했습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로 회부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분노에 찬 국민들은 61%의 압도적 반대로 구제안을 부결시켰습니다. 투표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치프라스는 아테네의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48시간 안에 새로운 협상안을 타결시키겠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연설했죠. 하지만 국민투표를 뒷배 삼아 EU 집행부를 압박하려던 치프라스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의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며 무관용 원칙론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치프라스는 급하게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메르켈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며칠 후 협상 테이블에는 원안보다 훨씬 가혹한 구제안이 올라왔고, 치프라스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뭉크 교수는 “국민투표로 구제안을 거부한 지 일주일 만에 그리스는 더욱 불리한 협상안에 사인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투표로 구제 금융안 부결

‘메르켈에 대한 치프라스의 올인’ 그리스 일간지 ‘Kathimerini’의 만평(2015년 1월 15일).

‘메르켈에 대한 치프라스의 올인’ 그리스 일간지 ‘Kathimerini’의 만평(2015년 1월 15일).

그 결과 그리스는 채권국이 원하는 대로 연금·세제 등 개혁 법안을 제정하고 국유 자산 일부를 해외로 넘겼습니다. 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재정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죠. 그리스인들도 한동안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OXI(예)’, ‘NAI(아니오)’로 갈려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습니다.
 
뭉크는 치프라스처럼 의회와 전문가를 무시하고 국민과 직거래하는 포퓰리즘을 현대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합니다. 위기의 본질에는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놓여있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성숙한 시민이 협치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면서 다수의 폭정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게 뭉크의 진단입니다.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은 원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한 말입니다. “‘민주’를 다수에 의한 통치로만 인식하고 소수를 억압하는 행태”를 뜻하죠. 인민(people)의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핵심 의사결정 도구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소수 의견은 묵살될 가능성이 생기죠.
 
프랑스혁명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출현한 것처럼 급진적 평등과 다수결 만능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침탈하고 소수를 억압하기 쉽습니다. 이를 교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수의 뜻(민주주의)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자유주의)가 꼭 필요한 것이죠. 만일 자유주의가 없다면 그것은 인민의 독재를 추구하는 전체주의와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주 개천절 시위에서 정부는 다수의 안전을 내세워 집회·표현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광화문에 300여대의 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서울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했죠. 정작 시위대는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퍼레이드를 벌여 전염 우려가 낮았던 반면, 서울랜드 등 놀이동산에는 별다른 조치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려 감염 위험이 컸습니다.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한 사건이나 7월 부동산 입법 강행도 ‘다수의 폭정’이 나타난 대표적 사례죠.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에 대해서도 여당은 “절대 과반 다수 의석을 저희에게 줬기 때문”(정청래 의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승자독식’이란 조항은 없는데 말이죠.
 
심지어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대표는 “총선 결과는 윤석열씨에게 빨리 거취를 정하라는 국민의 목소리였다”고 했습니다. 여당이 다수표를 얻었으니 정권에 껄끄러운 검찰총장은 물러나라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도 다수결의 원칙도 아닌 그저 “삼권분립을 무너뜨려 나라를 맘대로 주무르겠다는 욕망”(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입니다.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트라고 여겨왔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분리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조국흑서’ 저자들처럼 여권에 등 돌리는 지식인이 많아지는 것은 집권세력의 반자유주의적 행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민중의 뜻이라며 반대파를 적으로 몰고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은 전체주의와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도 민주주의 위기 징후
 
실제로 뭉크는 민주주의를 택한 문명사회가 언제든 히틀러와 같은 폭정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려되는 것은 그가 말한 위기의 징후가 우리 사회에 똑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①위기의 원흉을 해외로 돌리고(토착왜구) ②국민의 뜻을 위해 싸운다며(촛불정신) 방해되는 것은 없애려 하고(적폐청산) ③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민중의 통치를 부르짖습니다(검찰의 민주적 통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도 뭉크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전통의 민주주의도 선출된 독재자의 등장으로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치프라스와 같은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로 오르반 빅토르(헝가리 총리)와 라파엘 코레아(전 에콰도르 대통령)를 예로 듭니다.
 
빅토르는 취임 후 서서히 검찰과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에 측근을 기용해 “심판을 매수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습니다. 코레아는 자신을 독재자로 칭한 신문 ‘엘 우니베르소’에 소송을 걸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렸죠. 레비츠키와 대니얼은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의 바른 짝인 자유주의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최고 권력자가 행사하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수의 횡포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큰 해악”이며 “종교적 믿음이 강한 곳일수록 관용의 폭이 좁다”고 설명했죠.
 
결국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는 본질적인 방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고발한 것은 자유주의의 토양을 더욱 척박하게 만듭니다.
 
“대통령을 쥐·닭에 비유했지만, 그런 걸 금지하면 건강한 비판이나 풍자가 불가능하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었다”는 금태섭 전 의원의 말처럼 과거의 민주당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집권세력이 자유주의 정신을 되새겨보길 기원합니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90097#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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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월 2020

누가 알았을까 귀족이 될 줄…권력 잡고 특권층 된 정의의 사도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누가 알았을까 귀족이 될 줄…권력 잡고 특권층 된 정의의 사도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학교로 돌아가 철저히 혁명을 일으키자!” 베이징 중·소학교 혁명 사생(師生) 조반(造反)위원회 선포 1967년 2월“/ 공공부문>” data-autoattach=”success” data-cke-saved-src=”./files/attach/images/20877/901/072/25ca5354ebb240d3ddae3439887589bb.jpg”></div><figcaption class=<“학교로 돌아가 철저히 혁명을 일으키자!” 베이징 중·소학교 혁명 사생(師生) 조반(造反)위원회 선포 1967년 2월“/ 공공부문>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26>

돼지 나폴레옹이 인간 필킹턴씨와 마주 앉아 카드놀이를 하는데, 창밖에서 그 모습을 엿보는 동물들은 돼지와 인간을 분간조차 할 수 없다. 조지 오웰(1903-1950)의 “동물농장”의 마지막 장면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스탈린의 테러정치로 변질되는 과정을 고발한 이 작품은 문학사에 길이 빛날 알레고리다. 요사이 오웰의 풍자가 더욱 빛을 발한다.

“혁명세력”의 반칙과 특권이 날마다 폭로되고, 표리부동한 권력집단에 분노하는 대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혁파, 착취의 종식, 부패의 척결, 적폐의 청산···. 혁명의 구호를 외치며 등장한 “정의의 사도들”이 권력을 잡고 나선 스스로 특권층이 돼버린다. “돼지”가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나? “인간”이 “돼지”의 마스크를 벗어던졌나?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한 만화. 2018년 2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등은 중국의 인터넷에서 금칙어가 됐다.
https://www.zerohedge.com/news/2018-03-02/great-firewall-china-government-bans-orwells-animal-farm-letter-n>” data-autoattach=”success” data-cke-saved-src=”./files/attach/images/20877/901/072/88a0bae004a7a63d43463cf0d17295ff.jpg”></div><figcaption class=<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한 만화. 2018년 2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등은 중국의 인터넷에서 금칙어가 됐다. https://www.zerohedge.com/news/2018-03-02/great-firewall-china-government-bans-orwells-animal-farm-letter-n>

특권과 특혜 누리는 혁명 유공자 자녀

권력의 세습과 특혜의 독점에서 중국공산당을 능가할 조직은 드물다. 2012년 시진핑 집권 당시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3명이 혁명원로의 아들 또는 사위였다. 중국인들은 흔히 이들을 전통시대 황실귀족에 빗대서 태자당(太子黨)이라 부른다. 태자당엔 늘 홍이대(紅二代), 홍후(紅後), 홍귀(紅貴) 등의 꼬리표가 붙는다.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는 “붉은 귀족”이란 의미다.

<“중국공산당 8대 가족, 거부를 해외에 숨겨 두다!” 뉴욕에서 출간되는 반중공(反中共)언론 “명경월간”  제75기 (2016년 4월)의 표지>” data-autoattach=”success” data-cke-saved-src=”./files/attach/images/20877/901/072/680e036685b3fae31e78f11222786345.jpg”></div><figcaption class=<“중국공산당 8대 가족, 거부를 해외에 숨겨 두다!” 뉴욕에서 출간되는 반중공(反中共)언론 “명경월간” 제75기 (2016년 4월)의 표지>

태자당을 장쩌민계의 상하이방(上海幫)과 후진타오계의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단파)에 맞서는 제3의 당파라고 오인하기 쉽지만, 태자당은 독립적 당파라기 보단 혁명투사의 자손들에 부여된 세습적인 엘리트의 지위를 의미한다. 당파와 상관없이 장쩌민, 리펑, 후진타오의 직계 자녀들이 모두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오늘날도 태자당은 중공정부 조직의 주요보직이나 국영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해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태자당 293명의 경력을 추적한 마카오대학의 토니 장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중공정부의 권력승계는 “집체적 엘리트 재생산”이라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의 파워-엘리트 집단은 대를 이은 권력의 승계에 집요한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 왔다.

건국 초부터 일찍이 중국공산당은 혁명의 유공자들을 정관계의 요직에 앉히는 논공행상의 권력 배분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혁명 유공자의 자녀들은 교육, 취업, 승진 등 모든 방면에서 남다른 특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문혁이 막 시작되던 1966년 여름, 중국 중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출신성분에 따라 신분서열이 나뉘어져 있을 정도였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 반동이면 아이는 먹통”

1966년 8월 이후 홍위병 운동은 “보수파”와 “급진파”로 양분됐다. 이후 두 집단은 각각 보황파(保皇派)와 조반파(造反派)라 불렸다. 사전적으로 “보황”은 “황제를 보위한다”는 뜻이다. 문혁의 맥락에서 황제란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을 지칭한다. 조반파 역시 마오의 뜻에 따라 “반란을 일으키는” 마오주의자 집단이었다. 두 집단 모두 마오쩌둥의 호위세력을 자처했으나 출신성분과 정치노선에서 양자는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문혁 초기 고위간부의 자제들은 각 학교에 배치된 공작조의 지시를 따라 선제적으로 계급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혁명간부, 혁명열사, 혁명군인, 공인 및 농민 집안 출신임을 내세워 이들은 스스로를 홍오류(紅五類, 다섯 붉은 무리)라 불렀다. 홍오류는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파괴분자 및 우파분자 등 흑오류(黑五類)를 계급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홍오류는 “봉건사회”의 착취계급 및 부르주아 잔류세력의 완벽한 제거를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흑오류를 “개새끼들”(狗崽子)이라 불렀다. 흑오류의 입장에선 터무니없는 신분적 멸시와 계급차별이 아닐 수 없었다.

1966년 8월 12일 베이징 공업대학 문혁소조의 조장 탄리푸(譚力夫, 1942- )가 써 붙인 대자보엔 이런 대련(對聯, 대구)이 적혀 있었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이고(老子英雄兒好漢)!

부모가 반동이면 아이는 먹통이다(老子反動兒混蛋)!

최고 검찰원 부검찰장의 아들이었던 탄리푸는 전형적인 “붉은 귀족”이었다. 8월 20일 학생 변론회에서 그가 행한 연설이 매스컴을 타면서 그의 “혈통론”은 전국적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 소위 “혈통론”을 선전하는 포스터. 홍군이 인민을 해방하는 장면을 통해 혁명분자의 혈통이 신성함을 드러내려는 의도인 듯. 1966년 추정. 출처미상>” data-autoattach=”success” data-cke-saved-src=”./files/attach/images/20877/901/072/17c5442418147b3e06228ba263be670d.jpg”></div><figcaption class=<“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 소위 “혈통론”을 선전하는 포스터. 홍군이 인민을 해방하는 장면을 통해 혁명분자의 혈통이 신성함을 드러내려는 의도인 듯. 1966년 추정. 출처미상>

“반동 부모를 배반하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중공중앙의 당권파를 축출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혈통론을 부르짖는 홍오류는 대부분 고위관료, 혁명간부 등 중앙권력층의 자녀들이었다. 마오의 입장에서 혈통론이란 당권파에 복무하는 신분유지의 궤변일 뿐이었다.

마오의 계급론에 따르면, 출신성분 뿐만 아니라 정치사상과 혁명 활동이 중시된다. 출신성분이 좋아도 사상과 활동이 불량하면 정치천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돌려 보면, 사상과 활동이 출중하면 성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966년 8월 초 중앙문혁소조의 장칭과 천보다(陳伯達, 1904-1989)는 탄리푸의 혈통론을 비판하면서 다음의 새로운 대구를 제시한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부모를] 계승하고(老子英雄兒接班)!

부모가 반동이면 아이는 [부모를] 배반해야(老子反动兒背叛)!

이후 혁명가곡이 되어 널리 불린 이 대구는 흑오류를 일깨우는 신분해방의 나팔소리였다. 비록 부모가 반동이라도 그러한 부모를 “배반”만 할 수 있다면, 흑오류도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해 8월부터 조반파는 급속하게 동지들을 규합했다. 급기야 1966년 9월 6일 “수도 대전원교(大專院校, 고등교육기관의 통칭) 홍위병 조반 사령부”가 성립됐다. 물론 조반파의 구성원 모두가 흑오류는 아니었다. 대개의 경우 중간 계급 출신이 지도부를 구성했고, 더러 홍오류도 조반파로 넘어왔다. 요는 문혁에 참여하려는 흑오류는 모두가 조반파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출신성분이 나쁠수록 과격한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결국 ‘신분차별’이 조반파의 폭력화를 설명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10월 9일 총리 저우언라이는 탄리푸의 혈통론을 전형적인 “형좌실우(形左實右, 겉만 좌파, 실은 우파)”라 비판했다. 10월 16일 천보다는 “혈통론”이 반동적이라 비판했다. 10월 24일 급기야 마오쩌둥이 입을 열었다. “학생들 일부는 출신 성분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설마 우리 모두 다 출신이 좋겠어?” 이 모든 발언은 이미 혁명의 주체로 급성장한 조반파의 활약에 대한 마오쩌둥 계열의 사후 승인이었다.

<“무산계급 혁명 조반파는 연합하여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밀고 가자!"/ chineseposters.net>” data-autoattach=”success” data-cke-saved-src=”./files/attach/images/20877/901/072/7f30140e238048a0b1d0991205a4a358.jpg”></div><figcaption class=<“무산계급 혁명 조반파는 연합하여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밀고 가자!”/ chineseposters.net>

그해 12월 혈통론을 외쳤던 탄리푸는 투옥되고 비투당했다. 보황파는 1966년 말에서 1967년 초 세를 잃고 와해된다. 중앙문혁의 지지를 받은 조반파가 홍위병의 주류가 되지만, 그들 역시 결국 마오쩌둥에 버림받고 말았다. 곧 이어 문혁의 바람이 교정을 넘어 노동자, 농민에까지 퍼져나갔다. 앞으로 보겠지만, 보황파와 조반파의 갈등은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무장투쟁으로 비화됐다.

2020년 7월 말 베이징대학의 비판적 지식인 정예푸(鄭也夫, 1950- ) 교수는 “누구를 위해 강산을 지키나?”란 문제의 칼럼에서 오늘날 중국정부는 집권세력과 특권세력의 보위에 천문학적 국부를 사용하는데, 그 자식들은 미주와 유럽에 살며 사치와 향락에 탐닉한다는 통렬한 특권층 비판을 쏟아냈다. “혈통이냐, 능력이냐?” 대대로 특권을 물려주는 “태자당”의 공화국에선 언제나 “그것이 문제로다.” <계속>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출처]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0/10/10/JO42C55H7JF6LDLUIIUFCE6Z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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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9월 2020

[양성희의 시시각각] 알고리즘이 만드는 세상

[양성희의 시시각각] 알고리즘이 만드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2020.09.30 00:27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됐다.”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댓글이다. ‘자동 재생’ 기능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추천 영상을 보다 보면 10분 같은 1시간이 후딱 지난다. 입맛에 맞는 영상을 맞춤하게 골라주니 유용하지만, 한편으론 찜찜하다. 유튜브의 최고 상품 담당자(CPO) 닐 모한은 지난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튜브 시청시간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며, 알고리즘 도입으로 총 비디오 시청시간이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도 “매출의 75%가 추천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다”고 밝혔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추천 알고리즘에 포박당했다는 얘기다. 기술과 데이터를 독점한 거대 기업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은 ‘영업기밀’이라 정체를 알 길이 없다.

 

편향, 불공정 논란 커가는 알고리즘
중립성은 허구, 사람이 만드는 것
투명성 요구 사회적 감시 견제 필요

트위터는 최근 자동 이미지 크롭(잘라내기) 알고리즘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흑인과 백인 얼굴을 같이 올린 게시물의 이미지 미리보기에서 백인 얼굴을 우선해 보여주는 게 문제였다. 2015년 구글의 사진 앱도 흑인 남성 두 명을 고릴라로 인식해 논란이 됐다.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가 백인보다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오류가 많다는 것도 알려진 얘기다. 알고리즘의 기반인 데이터 수집에서의 편향성 때문이다. 알고리즘 개발자(주로 남성, 백인)들의 편향성도 작용한다. 인공지능(AI) 스피커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보조적인 ‘여비서’ 이미지로 성차별을 강화한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분열과 극단화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책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에 따르면 “추천 동영상은 본인이 직접 검색한 첫 동영상보다 늘 과격하다.” 조깅을 검색하면 울트라 마라톤이 추천되고 채식주의로 시작하면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자)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정치 이슈라면 더 심각하다. 미국에서 트럼프를 검색하면 순식간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동영상으로 넘어간다. 반대로 힐러리 클린턴 동영상으로 시작하면 미 정부가 9·11의 배후라는 식의 좌파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유튜브에 가짜뉴스와 극단주의가 출몰하는 이유다. 배경에는 이용자를 더 오래 화면 앞에 잡아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 동기가 있다. “학습하는 기계가 하는 일은 오직 유튜브 이용자들의 사용시간을 극대화하는 것뿐”(『노모포비아』), 과격하고 극단적인 내용일수록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기에 자동으로 그런 동영상을 추천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권력의 포털 통제 의혹과 함께 알고리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의 여당 의원이 다음의 뉴스 편집을 문제 삼으며 책임자를 호출하는 장면이 대중에게 공개됐다. 모바일 네이버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검색하면 일반 정치인과 다른 화면이 나와 의혹이 제기됐다. 네이버는 “알고리즘의 기술적 오류”, 다음은 “뉴스 편집은 알고리즘이 해 사람이 관여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또 있다. 최근 택시업계는 카카오가 AI 알고리즘을 통해 가맹 택시에만 배차 몰아주기를 한다며 공정위에 진정했다. 이베이코리아는 2018년 네이버가 쇼핑·부동산 서비스에서 네이버페이에 등록된 사업자를 우선 노출한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물론 카카오와 네이버는 "알고리즘이 하는 일,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알고리즘의 위력은 작동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불투명성, 즉 ‘블랙박스화(blackboxing)’에서 나온다. 알고리즘이 특정 목적을 위해 악용되더라도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근원적 위험성이 있다.” 선문대 황근 교수의 말이다. 화제의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 따르면, ‘둥근 지구’란 음모라는 유튜브의 ‘지구 평면설’ 영상은 알고리즘에 따라 수억 번이나 추천됐다. 역시 (추천) 알고리즘은 음모론을 좋아한다. 알고리즘의 편향성 검증과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양성희 논설위원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84232?cloc=joongang-home-opinioncolumn#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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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9월 2020

유엔 연설서 “너희 나라는 망한다”…독설 퍼부은 그들의 최후

유엔 연설서 “너희 나라는 망한다”…독설 퍼부은 그들의 최후

[중앙일보] 입력 2020.09.26 14:50   수정 2020.09.26 19:37

국제연합(유엔·UN)이 9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았다. 1945년 51개국으로 출발했던 유엔은 현재 193개의 회원국과 바티칸·팔레스타인의 2개 옵서버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이자 다자외교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75년 전인 45년 9월24일 유엔 창설
대한민국 건국, 6·25 유엔군 참전
다자외교 장으로 3차대전 막아
올해 화상연설, 트럼프만 직접 나서
60년 자유 거론에 소련서기장 발끈
카스트로, 4시간29분 반미·반전 열변
아라파트, 올리브와 총 중 택일 요구
차베스, “유황냄새” 부시 악마로 표현
전통의상 가다피, 미 비난 탈레반 옹호
유엔총회서 기염 토했지만 내치 무너져
다양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 보여줘
라말라·툰베리 유엔본부 연설 감동적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당시 44세의 케네디를 애송이로 여겼던 흐루쇼프는 그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일으켜 미국에 도전했다. [중앙포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당시 44세의 케네디를 애송이로 여겼던 흐루쇼프는 그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일으켜 미국에 도전했다. [중앙포토]

유엔이 지난 9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았다.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3일 제75차 유엔총회의 부속행사로 열린 유엔 보건안보우호국 그룹 고위급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캡처]

유엔이 지난 9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았다.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3일 제75차 유엔총회의 부속행사로 열린 유엔 보건안보우호국 그룹 고위급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캡처]

 

유엔 창설 75주년, 첫 화상 총회 연설

유엔은 유엔총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사무국,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 국제 법원 등으로 이뤄졌다. 이 중에서 유엔총회는 모든 회원국이 참가해 의안을 심의하고 토론을 진행한다. 유엔총회는 매년 9~12월에 열린다. 올해는 9월 15일에 개막했으며 22일부터 회원국 정상과 수석대표가 참가하는 일반토의가 진행 중이다. 유엔총회 연설로 불리는 행사다. 올해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선 코로나 19 때문에 정상 연설이 모두 사전 녹화돼 유엔본부의 총회장에서 화면으로 제공됐다. 올해는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어 각국 정상들이 부담 없이 연설에 나설 수 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녹화 연설은 한국시각 15일 녹화돼 23일 오전 1시 26분에 시작해 42분까지 총회장에서 상영됐다. 
재미난 것은 유엔총회에서 이뤄진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의 연설에선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국제관계학·국제정치학에서 국제사회를 동일한 규범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무정부 상태’로 전제하고 개별 국가는 국익을 위해 투쟁한다고 보는데 유엔총회 연설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두로 탁자를 치우고, 특정 국가나 지도자를 “악마”라고 증오하며, “너희는 망할 것”이라고 저주하기도 했다.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는 유엔에서 열린 기막힌 총회 연설을 반추해본다.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이날 흐루쇼프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의 자유와 인권 문제르 거론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 탁자를 쳤다. [중앙포토]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이날 흐루쇼프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의 자유와 인권 문제르 거론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 탁자를 쳤다. [중앙포토]

 

소련 흐루쇼프, 구두 벗어 탁자 치며 호통

유엔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총회 연설을 한 인물을 꼽으라면 1960년 연단에 올랐던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일 것이다. 그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다 구두를 벗어 탁자를 치는 해프닝을 벌였다. 예의나 품위,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그의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전 세계에 흐루쇼프 개인을 넘어 소련이라는 나라, 그리고 공산체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앞서 필리핀의 대표가 연설하면서 소련과 당시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공산 국가들의 자유 억압과 인권 침해를 비난한 것이 원인이었다. 흐루쇼프는 “총 한 방 안 쏘고 미국을 점령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미국과 자유 세계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저주는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흐루쇼프는 그 기세등등했던 유엔총회 연설을 한 지 4년 뒤인 1964년 10월 소련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의 궁정 반란으로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연금 생활자로 여생을 보냈다. 흐루쇼프를 몰아낸 핵심은 그가 키우다시피 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다. 브레즈네프는 1982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맡았으며 그의 시대에 소련의 체제 모순은 더욱 곪아 극에 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만난 니키타 흐류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오른쪽)이 무장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만난 니키타 흐류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오른쪽)이 무장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4년 뒤 흐루쇼프 몰락, 30년 뒤 소련 붕괴

미국에 맞서며 냉전의 한 축을 형성했던 소련도 흐루쇼프의 유엔총회 연설 30년 뒤인 1991년 12월 해체돼 사라졌다. 그야말로 총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카드로 만든 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소련을 무너뜨린 건 총이나 탱크, 핵무기나 미사일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공산체제의 자체 모순으로 경제가 지지부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의 하나였다. 특히 만성적인 물자 부족으로 가게마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요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고 국가가 가격과 공급을 직접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체제 모순의 현장이었다.  
자유를 억압당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체제에서는 누구도 문제를 지적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안할 수 없었다. 결국 19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소련은 쿠데타가 발생했다 진압되는 등 혼란을 겪다가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흐루쇼프의 유엔총회 탁자 연설은 자신이, 국가가, 체제가 안으로 곪아 터지는 것을 모른 채 무너지는 절벽 위에서 큰소리를 치는 행동의 상징이 됐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아평의회 의장이 1960년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아평의회 의장이 1960년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쿠바 카스트로, 4시간 29분 연설로 최장

같은 1960년 유엔총회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평의회 의장은 무려 4시간 29분간 연설하며 최장 연설의 기록을 세웠다. 카스트로는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은퇴할 때까지 권좌를 지키면서 자국 내에서 수시로 이처럼 장시간 연설을 했다.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몇 시간씩 열변을 토하기 일쑤였다.  
쿠바혁명을 일으켜 1959년 정권을 잡은 카스트로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혁명과 자신을 선전하고 미국과 서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맹비난했다.  
카스트로는 196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장시간에 걸쳐 설명했으며 특히 전쟁과 군비경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전쟁이 미개발 국가와 그 나라의 자원을 독점화한다고 주장하면서 군비경쟁을 비난했다. 군비경쟁은 독점 자본가들에게 큰 이익이 되며, 그들은 전쟁으로 발생한 시체들을 먹어치우는 까마귀와 같다고 비유했다.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정책도 맹비난했다. 또 자신이 유엔에 오려다 미국의 방해로 항공기가 압류되면서 아바나로 돌아갔으며 흐루쇼프가 제공한 다른 비행기로 간신히 도착했다고 말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중앙포토]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중앙포토]

참석 과정에서 소련 지원받고 친소로

카스트로가 이러한 유엔총회 연설을 한 지 불과 넉 달 뒤인 1961년 1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임기 종료 직전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카스트로가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외국 자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생긴 갈등이 큰 원인이었다.  아이젠하워의 후임으로 1961년 1월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뒤인 4월 쿠바 피그스만 침공을 지시했다. 쿠바 망명자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실행한 피그스만 침공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카스트로는 급속히 소련과 가까워졌으며 쿠바는 본격적으로 친소국가가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1962년 10월 흐루쇼프가 쿠바에 단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수송선을 보내는 것이 미국의 U-2 정찰기에 포착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인류가 가장 핵전쟁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평가받는 사태다. 이 사태는 케네디가 소련과 접경한 터키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뒤로 물리는 조건으로 흐루쇼프가 핵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향하던 선박을 회항시키면서 끝났다.  
그 뒤 쿠바는 미국의 제재 아래 소련의 지원으로 경제를 유지했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결국 쿠바는 2015년 7월 20일 미국에 상주하던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면서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였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은 이듬해 11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중앙포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중앙포토]

테러단체 지정 PLO 아라파트도 연설 

1974년 유엔총회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비회원국 수뇌로는 처음 연설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랍권의 요청과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여론에 힘입었다. PLO는 1964년 팔레스타인 독립국 설립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민간항공기 납치를 비롯한 숱한 테러 행위로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지원단체로 지목됐다. 1972년 뮌헨 여름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해 전원 살해한 검은 9월단도 PLO의 분파 조직이다. PLO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과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 해결을 추구하면서 1991년 해제됐다.  

1969~200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았던 야세르 아라파트.[중앙포토]

1969~200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았던 야세르 아라파트.[중앙포토]

아라파트는 1969년 PLO의 3대 의장을 맡아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년간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PLO를 사유화하고, 지원금 모금과 집행을 불투명하게 처리했으며, 자신과 부인이 사치 생활을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라파트는 총회 연설에서 “나는 평화의 올리브 가지와 자유 전사의 총을 모두 손에 들고 있다”며 “내가 올리브 가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연설했다. 평화와 전쟁 중 택일을 요구하는 압박일 수도 있고, 간청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 연설이 이뤄진 1974년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로부터 자결권을 인정받고 유엔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팔레스타인은 자치정부를 구성했지만, 현재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하마스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티로 양분됐다.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군이 철군했지만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다. 여러 곳에 크고 작은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됐으며, 이스라엘은 이를 국제적으로 자국 영토화로 인정받으려고 시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 아직도 요원하다. 중동평화는 팔레스타인 외에 시리아나 예멘 등 다른 아랍국가와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단체 등의 변수로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최근 아랍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중동의 외교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잊혀간다는 평가도 있다.  

2006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며 미국의 비파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저서를 들어보이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막대한 석유 수익금을 바탕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시험했다. [중앙포토]

2006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며 미국의 비파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저서를 들어보이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막대한 석유 수익금을 바탕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시험했다. [중앙포토]

베네수엘라 차베스, 부시를 악마로 표현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앞서 연설했던 연단에 서서 “유황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기독교나 유럽 문명권에서는 악마에게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난다고 여긴다. 부시 미 대통령을 ‘악마’로 표현한 셈이다. 차베스는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연대를 확인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추구하다 2013년 암으로 숨졌다.  
베네수엘라는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2012년 차베스 집권 말기부터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 중인 현재까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가 석유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적인 저유가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지도자들의 만성적인 부패, 경쟁력 저하, 국가 지원 의존증의 심화 등으로 원인으로 지목된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살인적인 인플레 등으로 경제가 국가부도 수준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다 보니 사회도 불안해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하다. 이런 와중에 마두로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자유 언론을 억압하고 장기 집권에 나서고 있다. 경제와 사회, 정치 불안이 심화하면서 수백만의 국민이 이웃 나라로 이주했다.  

2009년 2월 에피오피아에 열린 제12차 아프리카 단결기구 총회에 참석한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모습. 베두인족 전통의상 차람이다. 이 회의애서 가다피는 잌기 1년의 아프리카 단결기구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그해 6~7월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총회를 열었다. 사진=미국 해군

2009년 2월 에피오피아에 열린 제12차 아프리카 단결기구 총회에 참석한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모습. 베두인족 전통의상 차람이다. 이 회의애서 가다피는 잌기 1년의 아프리카 단결기구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그해 6~7월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총회를 열었다. 사진=미국 해군

 

카다피, 베두인족 의상 입고 반미 연설

무아마르 카다피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2009년 9월, 유엔 사무국은 연단을 대대적으로 청소해야 했다. 카다피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의 치렁치렁한 갈색 전통 의상에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나타났다. 1999년 대령 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을 대령으로 부르며 군복을 즐겨 입었지만 1990년 이후에는 주로 베두인 전통의상을 입고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이날 카다피는 1시간 36분에 걸쳐 여러 문제를 산만하게 거론하며 연설을 이어갔다. 그가 지루한 연설을 계속하는 동안 앞에 앉아있던 각국 참석자들은 썰물 빠지듯 나가 버렸다.  
카다피는 유엔헌장 사본을 하나 들고나와 찢으면서 “나는 이 문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유엔총회 연설을 하면서 유엔의 설립 목적과 권위를 대놓고 부인하며 모욕을 가한 셈이다. 이날 늦게 유엔총회 연설을 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나는 유엔헌장을 재확인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지, 찢으려고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연설에서 미국이 수많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이라크에서 벌어진 대량살상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이슬람 군주국 수립은 지지했다.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한 것이다.  
카다피는 이 연설을 한 지 2년 뒤인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중봉기로 정권을 잃고 자신은 숨어있던 도랑에서 반대파에 발각돼 잡혀가다가 한 청년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살해됐다. 시신은 푸줏간 냉장창고에 보관됐다. 당시 시작된 리비아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2014년 선거 과정의 분란으로 나라가 동서로 쪼개졌으며, 3~4개의 정부가 대립하고 있다. 인구 630만의 리비아에선 현재 200개가 넘는 군벌과 정파가 난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총회 연설이 지난 22일 제75차 유엔총회장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는 유엔 사상 처음으로 정상과 대표 연설이 화상으로 진행된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총회 연설이 지난 22일 제75차 유엔총회장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는 유엔 사상 처음으로 정상과 대표 연설이 화상으로 진행된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 다양성·무정 부성 반영  

흐루쇼프·카스트로·아라파트·차베스·카다피의 독특한 연설은 유엔총회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타인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없다는 점에서 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국제사회에선 이런 나라도 있고, 저런 지도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정부 상태인 국제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스펙트럼이 넓은 유엔총회 연설은 유엔이 실질적으로 큰 힘을 가진 기관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느슨하게 연결된 국제기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 정상들의 유엔총회 연설을 정치 연설, ‘독백 같은 웅변’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연설문을 보여주는 프롬프터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연설로 대신하면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연설문을 보여주는 프롬프터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연설로 대신하면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중앙포토]

 

김정은 위원장 유엔총회 연설 왜 못하나

이런 상황에서 각국 지도자의 유엔총회 연설은 국제사회를 이끌고 바꾸는 의제 설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부 정치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의 유엔총회 연설은 별다른 관심도 없이 지나간다. 연설문 작성자나 이를 읽으며 연설을 한 당사자에겐 힘들고 긴장되며, 때로는 자랑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내용을 멋진 문장에 담은 유엔총회 연설문은 실제로는 상징적일 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사전 녹화해 뉴욕 유엔본부의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총회장에서 튼 것도 11월 3일의 선거를 염두에 둔 ‘내부 정치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유엔의 존엄성과 가치,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다자외교의 중요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엔이 이처럼 열린 기관이고 총회 연설의 성격이 이렇기 때문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얼마든지 유엔총회에 나와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연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고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유엔본부에서 환경운동가 그레다 툰베리(왼쪽에서 둘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을 쏘아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유엔본부에서 환경운동가 그레다 툰베리(왼쪽에서 둘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을 쏘아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교육 말라라, 기후변화 턴베리 초점

국제 지도자로 인정받는 길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게 아니라 책임 있고 합리적인 다자외교의 장에서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및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수프자이. [사진제공=문학동네]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및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수프자이. [사진제공=문학동네]

이런 상황에서 국가지도자가 아닌 자신의 과제를 실천하는 몇몇 개인이 유엔본부에서 한 연설 들은 유엔총회 연설보다 더욱 주목받는다. 여성교육 운동가로 15세 때인 201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말라라 유수프 자니 가 2013년 7월 유엔본부에서 교육 접근성을 역설했던 연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세계 정상들을 비판한 크레타 턴베리의 연설도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9년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분노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2019년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분노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결국 유엔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고루한 답습이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혁신적인 사고, 아집 대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력, 그리고 선악을 구분하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합리성일 것이다. 혁신·소통·합리는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고 평화와 자유·인권을 추구하는 유엔의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81752?cloc=joongang-home-toptype1basic#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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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9월 2020

[윤석만의 인간의 삶을 묻다] 15세기 유럽 전체보다 GDP 많던 중국이 신대륙 발견했다면

15세기 유럽 전체보다 GDP 많던 중국이 신대륙 발견했다면

[중앙일보] 입력 2020.08.16 00:04

정화의 대원정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대항해시대-바람에 실은 바람'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중국 명나라 시대의 대항해가인 정화(1371~1433년)가 이끈 보선 함대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대항해시대-바람에 실은 바람’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중국 명나라 시대의 대항해가인 정화(1371~1433년)가 이끈 보선 함대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등장인물
정화

정화

정화
(1371~1433). 본명은 마화(馬和)이나 영락제로부터 정씨를 하사받고 개명했다. 남서부 윈난성 출신 색목인으로 왕실에 끌려와 환관이 됐다. ‘마’씨는 무하마드의 음차다. 지략이 뛰어나 태감의 자리에 올랐고 7차례 대원정을 이끌었다.

 

15세기 정화의 인도·아프리카 원정
함선 62척에 선원만 2만7800명
당시 중국 GDP, 유럽 30국의 1.4배
자율·다양성 토대 과학혁명 역전

  

영락제

영락제

 영락제
(1360~1424).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세계 최대의 궁전인 자금성을 지었다. 환관, 이민족 등 신분에 관계없이 요직에 중용해 정통 관료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대원정 같은 대담한 정책을 폈다.

조지프 니덤

조지프 니덤

조지프 니덤
(1900~1995).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니덤이 제자들과 함께 쓴 7권 25책의 역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15세기 이전까지 중국이 세계적 과학기술강국이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 서구우월주의를 깨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앵거스 매디슨

앵거스 매디슨

앵거스 매디슨
(1926~2010). 2000년간 세계 경제사를 연구한 영국의 경제사학자. OECD 초대 경제개발부국장을 지낸 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 교수로 일했다. 『매디슨 프로젝트』는 기원후 전 세계 국가의 경제 흥망사를 다룬 방대한 연구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콜럼버스가 아니라 정화(鄭和)였더라면. 지금처럼 영어가 세계의 공용어이거나 할리우드가 세계 대중문화의 표본이 아닐 수 있죠. 정화의 대원정 후에도 명(明)이 해양 정책을 지속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1405년 정화는 영락제의 지시로 첫 항해에 나섰습니다. 1430년까지 7차례 원정을 떠나 인도의 캘리컷,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아프리카 동안까지 다녀왔죠. 국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화가 귀국할 때는 아프리카 왕들로부터 사자·표범·기린 같은 조공을 받기도 했고요.

1415년 정화가 아주란왕국(소말리아)에서 받은 기린을 묘사한 청나라의 그림. [사진 위키피디아]

1415년 정화가 아주란왕국(소말리아)에서 받은 기린을 묘사한 청나라의 그림. [사진 위키피디아]

『명사(明史)』에 따르면 정화의 함선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44장(丈·132m), 폭 18장(54m)에 이르렀습니다. 총 62척의 배에 2만7800명의 선원을 데리고 원정을 떠났습니다. 조금 과장이 있었다 해도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길이 18m, 승무원 40여명)보다 훨씬 컸던 것은 분명합니다.
 
만일 정화가 아프리카 서안을 돌아 포르투갈의 함선과 마주쳤다면, 혹시나 콜럼버스가 출항했던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명이 대항해시대의 주인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 명의 국력은 세계 최강이었고, 근세 이전까지 중국은 한 번도 초강대국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앵거스 매디슨의 『매디슨 프로젝트』에 따르면 서기 1000년 중국의 인구(5900만 명)는 유럽 30개국을 합친 것(2556만 명)보다 많았습니다. 매디슨은 특히 1990년 물가를 기준으로 이 시대의 GDP 규모를 달러로 환산했는데(기어리-카미스 달러) 중국(274억 달러)이 유럽 30개국(109억 달러)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1500년에도 여전히 중국(618억 달러)이 유럽 30개국(441억 달러)을 압도했죠.
 
그러나 16세기 이후 두 문명은 역전됩니다. 1700년 유럽 30개국의 GDP(809억 달러)가 200년간 84% 늘어난 반면, 중국(828억 달러)의 성장률은 34%에 그쳤습니다. 1900년엔 유럽 30개국의 GDP(6739억 달러)가 중국(2181억 달러)의 3배나 됐고요. 50년 후엔 1조3962억 달러와 2449억 달러로 격차가 더욱 커졌습니다.
 
이처럼 16세기 이전까지 초일류 강대국이던 중국은 근세에 이르러 왜 병든 용이 됐을까요.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니덤 퍼즐’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조지프 니덤은 중국의 저발전 원인을 ‘과학혁명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이 중국과 유럽의 운명을 갈랐다”고 말합니다.
 
니덤은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 등 4대 발명품을 만들어낸 중국의 과학기술이 15세기까진 유럽을 앞섰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서구의 비약적인 과학혁명을 중국이 따라가지 못했죠. 핵심 원인은 개방정책을 포기하고 쇄국정책으로 돌아선 데 있습니다. 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락제가 죽으면서 해외 원정사업도 덩달아 폐기됐죠.
  
개방정책 폐기로 과학 발전 더뎌
 
당시 명은 인력·자원이 풍부해 교역의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특히 북방 오랑캐의 침입에 더 많은 군사·외교 자원을 할애하면서 해양정책이 뒷전으로 밀렸죠. 15세기 난징에서 북쪽의 베이징으로 천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니덤은 “중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했고,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와 유교 전통으로 자율과 개방성이 부족했다”고 진단합니다.

1000년간 유럽·중국의 경제규모 변화

1000년간 유럽·중국의 경제규모 변화

반면 유럽은 봉건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에서 꽃핀 학문과 예술이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신항로 개척으로 다양한 문물을 교류하며 새로운 기술과 물자를 받아들였죠. 구질서의 해체와 시장의 확대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였고요. 이런 토양 아래 갈릴레이에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과학은 이를 현실에 적용한 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며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무기를 발달시켰습니다. 기술과 군사력은 서구의 나라들이 훗날 제국주의로 치닫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죠. 그 때문에 영국의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는 “과학혁명은 종교의 출현 이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근대과학의 탄생』)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중국과 유럽의 사례를 볼 때 과학혁명은 자율과 개방성, 다문화 같은 근대적 요소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과학혁명을 위해선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과학과 인간의 가치』)의 말처럼 사상·비판의 자유, 이를 받아들이는 성찰적 지혜가 있어야 과학의 꽃을 피울 수 있죠.
 
같은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이 프랑스·독일을 치고 나간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500년 네 나라의 1인당 GDP는 비슷했지만, 1600년 네덜란드(1381달러)는 프랑스(841달러)·독일(791달러)을 멀찌감치 따돌렸습니다. 1700년엔 2130달러로 프랑스·독일(910달러)의 2배를 넘어섰고요.
 
16·17세기 네덜란드의 급부상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해상 교역에 신경 썼기 때문입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경작이 어려웠던 네덜란드는 1579년 스페인에 독립선언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인재를 받아들입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온 개신교도 중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고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과학·예술·학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18·19세기 바통을 이어받은 나라가 영국입니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부터 일찌감치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온 영국은 산업혁명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기술 혁신을 위해선 창의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사회 전반에 다양성과 개방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요람인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과학자까지 이념의 덫 씌워 적폐몰이
 
이처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과학적 사고가 널리 퍼져 있어야 문명이 진보합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모두 관용과 개방, 다양성의 정신을 존중하며 과학기술을 꽃피우고 선진국이 됐습니다. 눈부신 과학의 성과는 민주적 토양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요. 얼마 전 신성철 KAIST 총장이 정부의 무리한 고발로 20개월간 검찰 수사를 받다 무혐의 처분 됐습니다. 그는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문입니다. 처음부터 과학계는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적폐로 내몬다”며 반발했습니다. 당시 네이처도 “한국 과학자들이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했고요.
 
2018년 4월 임기 2년을 남기고 사퇴한 임기철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은 “과기부 차관으로부터 ‘촛불 정권이 들어섰으니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기를 못 채우고 그만둔 기관장만 12명입니다. 단지 지난 정권의 인사란 이유로 적폐 딱지를 붙여 내쫓는 것은 과거 유럽의 종교박해와 무엇이 다른가요.
 
과학자를 홀대하고, 원전과 같은 과학 정책조차 비과학적 결정을 내리는 풍토에선 기술 발전도, 경제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필요합니다. 오직 이성과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다양한 생각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개방적 풍토에서만 창의성과 혁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얼마나 민주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까요.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4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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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9월 2020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14 00:37

정화의 대원정 

등장인물
정화

정화

정화
(1371~1433). 본명은 마화(馬和)이나 영락제로부터 정씨를 하사받고 개명했다. 남서부 윈난성 출신 색목인으로 왕실에 끌려와 환관이 됐다. ‘마’씨는 무하마드의 음차다. 지략이 뛰어나 태감의 자리에 올랐고 7차례 대원정을 이끌었다.

 

15세기 정화의 인도·아프리카 원정
함선 62척에 선원만 2만7800명
당시 중국 GDP, 유럽 30국의 1.4배
자율·다양성 토대 과학혁명 역전

  

영락제

영락제

 영락제
(1360~1424).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세계 최대의 궁전인 자금성을 지었다. 환관, 이민족 등 신분에 관계없이 요직에 중용해 정통 관료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대원정 같은 대담한 정책을 폈다.

조지프 니덤

조지프 니덤

조지프 니덤
(1900~1995).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니덤이 제자들과 함께 쓴 7권 25책의 역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15세기 이전까지 중국이 세계적 과학기술강국이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 서구우월주의를 깨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앵거스 매디슨

앵거스 매디슨

앵거스 매디슨
(1926~2010). 2000년간 세계 경제사를 연구한 영국의 경제사학자. OECD 초대 경제개발부국장을 지낸 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 교수로 일했다. 『매디슨 프로젝트』는 기원후 전 세계 국가의 경제 흥망사를 다룬 방대한 연구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콜럼버스가 아니라 정화(鄭和)였더라면. 지금처럼 영어가 세계의 공용어이거나 할리우드가 세계 대중문화의 표본이 아닐 수 있죠. 정화의 대원정 후에도 명(明)이 해양 정책을 지속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1405년 정화는 영락제의 지시로 첫 항해에 나섰습니다. 1430년까지 7차례 원정을 떠나 인도의 캘리컷,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아프리카 동안까지 다녀왔죠. 국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화가 귀국할 때는 아프리카 왕들로부터 사자·표범·기린 같은 조공을 받기도 했고요.

1415년 정화가 아주란왕국(소말리아)에서 받은 기린을 묘사한 청나라의 그림. [사진 위키피디아]

1415년 정화가 아주란왕국(소말리아)에서 받은 기린을 묘사한 청나라의 그림. [사진 위키피디아]

『명사(明史)』에 따르면 정화의 함선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44장(丈·132m), 폭 18장(54m)에 이르렀습니다. 총 62척의 배에 2만7800명의 선원을 데리고 원정을 떠났습니다. 조금 과장이 있었다 해도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길이 18m, 승무원 40여명)보다 훨씬 컸던 것은 분명합니다.
 
만일 정화가 아프리카 서안을 돌아 포르투갈의 함선과 마주쳤다면, 혹시나 콜럼버스가 출항했던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명이 대항해시대의 주인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 명의 국력은 세계 최강이었고, 근세 이전까지 중국은 한 번도 초강대국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앵거스 매디슨의 『매디슨 프로젝트』에 따르면 서기 1000년 중국의 인구(5900만 명)는 유럽 30개국을 합친 것(2556만 명)보다 많았습니다. 매디슨은 특히 1990년 물가를 기준으로 이 시대의 GDP 규모를 달러로 환산했는데(기어리-카미스 달러) 중국(274억 달러)이 유럽 30개국(109억 달러)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1500년에도 여전히 중국(618억 달러)이 유럽 30개국(441억 달러)을 압도했죠.
 
그러나 16세기 이후 두 문명은 역전됩니다. 1700년 유럽 30개국의 GDP(809억 달러)가 200년간 84% 늘어난 반면, 중국(828억 달러)의 성장률은 34%에 그쳤습니다. 1900년엔 유럽 30개국의 GDP(6739억 달러)가 중국(2181억 달러)의 3배나 됐고요. 50년 후엔 1조3962억 달러와 2449억 달러로 격차가 더욱 커졌습니다.
 
이처럼 16세기 이전까지 초일류 강대국이던 중국은 근세에 이르러 왜 병든 용이 됐을까요.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니덤 퍼즐’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조지프 니덤은 중국의 저발전 원인을 ‘과학혁명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이 중국과 유럽의 운명을 갈랐다”고 말합니다.
 
니덤은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 등 4대 발명품을 만들어낸 중국의 과학기술이 15세기까진 유럽을 앞섰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서구의 비약적인 과학혁명을 중국이 따라가지 못했죠. 핵심 원인은 개방정책을 포기하고 쇄국정책으로 돌아선 데 있습니다. 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락제가 죽으면서 해외 원정사업도 덩달아 폐기됐죠.
  
개방정책 폐기로 과학 발전 더뎌
 
당시 명은 인력·자원이 풍부해 교역의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특히 북방 오랑캐의 침입에 더 많은 군사·외교 자원을 할애하면서 해양정책이 뒷전으로 밀렸죠. 15세기 난징에서 북쪽의 베이징으로 천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니덤은 “중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했고,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와 유교 전통으로 자율과 개방성이 부족했다”고 진단합니다.

1000년간 유럽·중국의 경제규모 변화

1000년간 유럽·중국의 경제규모 변화

반면 유럽은 봉건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에서 꽃핀 학문과 예술이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신항로 개척으로 다양한 문물을 교류하며 새로운 기술과 물자를 받아들였죠. 구질서의 해체와 시장의 확대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였고요. 이런 토양 아래 갈릴레이에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과학은 이를 현실에 적용한 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며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무기를 발달시켰습니다. 기술과 군사력은 서구의 나라들이 훗날 제국주의로 치닫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죠. 그 때문에 영국의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는 “과학혁명은 종교의 출현 이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근대과학의 탄생』)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중국과 유럽의 사례를 볼 때 과학혁명은 자율과 개방성, 다문화 같은 근대적 요소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과학혁명을 위해선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과학과 인간의 가치』)의 말처럼 사상·비판의 자유, 이를 받아들이는 성찰적 지혜가 있어야 과학의 꽃을 피울 수 있죠.
 
같은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이 프랑스·독일을 치고 나간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500년 네 나라의 1인당 GDP는 비슷했지만, 1600년 네덜란드(1381달러)는 프랑스(841달러)·독일(791달러)을 멀찌감치 따돌렸습니다. 1700년엔 2130달러로 프랑스·독일(910달러)의 2배를 넘어섰고요.
 
16·17세기 네덜란드의 급부상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해상 교역에 신경 썼기 때문입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경작이 어려웠던 네덜란드는 1579년 스페인에 독립선언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인재를 받아들입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온 개신교도 중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고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과학·예술·학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18·19세기 바통을 이어받은 나라가 영국입니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부터 일찌감치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온 영국은 산업혁명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기술 혁신을 위해선 창의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사회 전반에 다양성과 개방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요람인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과학자까지 이념의 덫 씌워 적폐몰이
 
이처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과학적 사고가 널리 퍼져 있어야 문명이 진보합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모두 관용과 개방, 다양성의 정신을 존중하며 과학기술을 꽃피우고 선진국이 됐습니다. 눈부신 과학의 성과는 민주적 토양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요. 얼마 전 신성철 KAIST 총장이 정부의 무리한 고발로 20개월간 검찰 수사를 받다 무혐의 처분 됐습니다. 그는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문입니다. 처음부터 과학계는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적폐로 내몬다”며 반발했습니다. 당시 네이처도 “한국 과학자들이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했고요.
 
2018년 4월 임기 2년을 남기고 사퇴한 임기철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은 “과기부 차관으로부터 ‘촛불 정권이 들어섰으니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기를 못 채우고 그만둔 기관장만 12명입니다. 단지 지난 정권의 인사란 이유로 적폐 딱지를 붙여 내쫓는 것은 과거 유럽의 종교박해와 무엇이 다른가요.
 
과학자를 홀대하고, 원전과 같은 과학 정책조차 비과학적 결정을 내리는 풍토에선 기술 발전도, 경제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필요합니다. 오직 이성과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다양한 생각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개방적 풍토에서만 창의성과 혁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얼마나 민주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까요.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48579#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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