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강남의 왕복 8차선 도로에서 테슬라 ‘모델S’를 몰던 김형준(가명)씨는 갑자기 계기판이 꺼지면서 차가 멈춰버리는 일을 겪었다. 그야말로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뻗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김씨는 차에서 내려 수신호로 뒤차를 보내면서 몇 차례 차의 시스템을 리셋했고, 겨우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는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렸는지 처음엔 비상등마저 켜지지 않더라”며 “그나마 차들이 서행하는 시내 도로라서 수습했지, 고속도로였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테슬라 모델3를 운전하는 조경완씨도 지난달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나가는 도중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모든 시스템이 꺼지면서 차가 멈췄다. 조씨는 “마치 컴퓨터에 에러가 나서 갑자기 ‘다운’되는 것처럼 자동차가 완전히 가동을 멈추더라”며 “시스템을 리셋하니 다시 움직이긴 했는데, 그 뒤론 언제 자동차가 또 꺼질지 불안해 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미국의 스타 기업가 일론 머스크<사진>가 창업한 전기차 메이커다. 테슬라 자동차들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첨단 IT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운전뿐 아니라 자동차의 각종 기능을 작동하는 것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해 테슬라 운전자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IT 기기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열광한다. 테슬라 판매량은 작년 국내에선 1만대 수준으로 아직 미미하지만, 전기차만 놓고 보면 테슬라 판매 비율이 80%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테슬라가 국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꿔버릴 기대주로 각광받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테슬라가 적극 홍보하는 ‘첨단’이란 이미지 뒤에 자동차가 갖춰야 할 기본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 9일 서울 한남동에서 테슬라 ‘모델X’ 차량에 불이 붙어 차주(車主)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 차는 지하 주차장에서 벽면을 들이받은 뒤 불이 붙으면서 배터리가 방전됐다. 전원이 꺼져도 차량 내부에선 일반 자동차처럼 손잡이로 열 수 있지만, 외부에선 전력 공급이 끊기면 문을 못 여는 구조다. 사고가 나면서 차주가 기절했고, 이 때문에 소방관들은 밖에서 뒷좌석 문을 열지 못해 후방 트렁크 문을 따고 차 안으로 진입하느라 25분이 걸렸다.
방전되면 밖에선 차문 열 수 없어
화재 사고가 난 모델X는 가격이 1억5000만원가량 하는 테슬라 최고급 기종이다. 문제의 뒷좌석 문은 마치 날개처럼 위아래로 열리는 ‘윙도어’인데, 문에 손잡이가 없고 손잡이 부분을 대고 누르면 열리는 방식이었다. 모델X 차를 운전하는 김경식씨는 “다른 차와 다르게 테슬라의 문은 IT로 제어하기 때문에 아주 부드럽게 열린다”며 “테슬라 차주들이 이런 테슬라 특유의 ‘감성’에 열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슬라 차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것은 기존 차량과 달리 뒷좌석 문에 기계식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를 이용해 전자식으로 문을 열기 때문에 기계식 케이블을 사용한 문과 달리 덜컹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열린다. 문제는 이번 사고처럼 차에 불이 붙어 전기가 끊기면 밖에선 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전기차는 모두 전력이 끊겨도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기계식 장치를 설치해뒀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무리 전기차라도 자동차 문을 완전히 전자식으로 하지 않는 건 비상 상황에서 문을 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감성, 기술도 좋지만 자동차는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설계하는 게 기본인데 테슬라가 문을 그렇게 만든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시판 중인 테슬라의 세 차종 모두 전력이 끊기면 밖에서 뒷좌석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에서 여는 비상 탈출 장치마저 복잡하다. 모델X와 모델S는 전력이 끊길 경우 뒷좌석 바닥이나 문 하단에 설치된 덮개를 제거하고 잠금장치를 당겨야 열린다. 탈출 장치 자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을 뿐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곧바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양산형인 모델3는 전력이 끊길 경우 안에서도 뒷좌석 문을 열 수 없다. 불이 나면 뒷좌석에 탄 사람들은 앞좌석으로 넘어가 탈출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의 차량 안전 기준엔 사고 시 밖에서도 차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테슬라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5만대 이상 팔린 차만 국내 규정 적용을 받는데, 테슬라 국내 판매는 아직 1만대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미국엔 사고 시 차 문을 밖에서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걸로 알고 있고 테슬라도 그런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면 우리 정부에서도 리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테슬라에 관련 자료를 요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빗속을 달리던 중 범퍼가 분리된 테슬라 차량. /미국 트위터 캡처
핸들 빠지고 바퀴 빠지고 지붕도 날아가
잘 달리던 테슬라 차량이 마치 컴퓨터가 다운되듯 모든 장치가 꺼지고 차가 멈춰버리는 사고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특정 모델만이 아니라 테슬라에서 만든 모든 기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자가 만난 테슬라 차주 13명 중 4명이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연기관으로 가는 자동차도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일이 생기지만, 테슬라처럼 자주, 그리고 전 기종에서 나타나진 않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 전체를 제어하는 구조”라며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듯 테슬라도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나면 차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행 중 차가 멈추는 건 테슬라 차량에서 나오는 결함 중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한다. 지난 1월 대구에선 모델S 차량의 바퀴가 빠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CCTV를 보면 해당 차량은 주차장에서 후진하면서 나오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차량이 별다른 장애물에 걸린 것도 아닌데, 후진 중 차량과 바퀴를 연결해주는 부품이 갑자기 깨지면서 바퀴가 빠져버렸다. 지난 7월에도 모델3 차량의 한쪽 바퀴를 고정해주는 볼트가 풀려 있는 채로 출고된 걸 차주가 뒤늦게 발견해 테슬라 측에 항의하고 수리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월에는 중국과 미국에서 테슬라가 새로 출시한 모델Y 차량이 도로 주행 중 유리로 된 지붕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황당한 사고도 있었다. 별다른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지붕이 뜯겨 나가는 모습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영국에선 핸들이 빠지는 일이 있었고, 빗속을 달리던 차의 뒤 범퍼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도 보고됐다.
기존 자동차 회사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사고가 계속되다 보니 리콜도 잦은 편이다. 지난 10월 중국에서 조립한 차량의 서스펜션(충격흡수 장치) 결함으로 5만대를 리콜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엔 지붕 및 조립 결함으로 미국에서 1만3000대를 리콜 조치했다. 또한 테슬라는 오는 24일부터 18일간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품질 문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묵묵부답
가장 큰 문제는 테슬라가 자사 차량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멈췄던 김씨는 서비스 센터에 차를 맡겼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김씨는 “다른 완성차 브랜드였다면 원인 조사는 물론, 다른 차로 바꿔주는 등 조치하는 게 상식적 대응인데 테슬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전부”라며 “테슬라 차주들 사이에선 서비스 센터의 ‘배 째라’식 대응에 대한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조씨 역시 테슬라 서비스 센터에 차량이 갑자기 멈춘 원인에 대해 문의했지만 아무 답변도 듣지 못했다.
테슬라 서비스 센터는 서울에 2곳, 전국을 합쳐도 5곳에 불과한 데 비해 테슬라 차량 불량으로 인한 수리 요청은 폭주해 서비스 센터에 맡기면 최소 한 달이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작년 11월 테슬라 모델3가 국내 출시될 땐 차를 산 사람들에게 향후 차량 문제로 인한 소송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 논란이 됐다. 본지 역시 테슬라 차량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테슬라코리아 측에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2018년 2월 미국 보수 주의연맹 총회의 연사로 나선 마리옹 마레 샬 르펜. 이날 총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차용해 ‘프랑스 퍼스트’를 외쳤다. 특히 자국의 무슬림을 비판하며 반이민자 정서를 자극했다. [AP=연합뉴스]
인물·개념
장 마리 르펜
장 마리 르펜
(1928~). 극우정당인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의 창립자. 이민자에 적대적이며 홀로코스트 부정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5차례 대선에 출마한 그는 2002년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결선 투표에서 자크 시라크에 패배했다.
프랑스 양극화로 극우 정서 확산
한국도 중산층 옅어지며 편가르기
대중의 분노 자극해 소수자 공격
자유·법치·다양성 등 가치 무너져
je suis charlie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 2015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추모 구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사무실에 난입,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죽였다. 지난 10월 학교 수업에 이 신문의 만평을 사용한 교사 사뮈엘 파티는 무슬림 학생에 의해 참수됐다.
그래픽=최종윤
프랑스 무슬림
식민지였던 알제리·모로코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해왔으나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이후 무슬림이 급증했다.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률 치솟으며 반감이 커졌다. 현재 8.7%인 무슬림 인구는 30년 후 20%로 전망된다(퓨리서치센터).
“2022년 30대의 마레샬이 도전장을 내밀고 마크롱을 격파할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덫』으로 유명한 독일 지식인 한스 페터 마르틴은 최신작 『게임오버』에서 마리옹 마레샬 르펜(30)이 “(다음 대선에서) 잔 다르크가 돼 전장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전진(En Marche)’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죠. ‘전진’은 마크롱이 만든 정당 ‘전진하는 공화국(La République En Marche)’의 준말입니다.
도대체 마레샬이 누구기에 잔 다르크라고 불릴까요. 그의 할아버지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의 창립자 장 마리 르펜입니다. 이모는 국민연합의 당수인 마린 르펜이고요. 2017년 대선에서 마린(21.3%)은 마크롱(24%)을 2.7% 차이로 추격하며 극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미셸 우엘벡은 일찌감치 국민연합의 2022년 대선 승리를 예측했죠.
가문의 후광으로 22세에 국회의원이 된 마레샬은 뛰어난 언변과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젊고 치명적인 매력”(마르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2017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 직행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모 마린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성 ‘르펜’을 공식 사용하지 않고 ‘마린보다 더 보수적이고 전투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보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정치경제연구소(ISSEP)를 설립해 지식인의 망토까지 걸쳤고요.
2018년 2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보수주의연맹 총회의 연사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차용한 ‘France First’를 선언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 후견인으로 영입하는 등 극우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죠. 당시 마레샬은 “프랑스는 지금 가톨릭의 큰딸에서 이슬람의 어린 조카로 바뀌고 있다”며 대놓고 반무슬림을 표방했습니다.
톨레랑스(tolérance·관용)의 나라가 어쩌다 르펜 가문과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을 유력 정치인으로 키웠을까요. 이민자가 급증한 프랑스에선 최악의 실업률로 경제난이 가속됐고, 르펜 같은 극우 정치인들이 무슬림에게 그 원인을 돌렸습니다.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반이민자 정서는 더욱 커졌죠.
불평등이 부른 민주주의 위기
개츠비 함수
이런 갈등의 핵심 원인은 불평등입니다. 마르틴은 “구조화된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프랑스는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0%가량을 소유하고 있고 최상위 1%가 25%를 갖고 있습니다. 소득의 경우 최상위 1%의 점유율이 1980년 7%에서 2019년 10%로 높아졌고요. 토마 피케티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치에서도 좌우 극단의 논리가 독버섯처럼 커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자본과 이데올로기』).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대한 개츠비 함수’로 이를 설명합니다. 현재의 소득 불평등을 X축으로, 경제적 지위가 세습되는 정도인 소득 탄력성을 Y축으로 놓고 주요 국가들을 따져봤습니다. 두 값이 모두 큰 나라는 프랑스와 미국·영국·이탈리아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었죠.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2000년대 이후 극우 정치인이 판치며 민주주의를 위기로 빠트리고 있습니다.
미 존스 홉킨스대 교수인 야스차 뭉크는 “프랑스와 비슷한 일들이 미국과 오스트리아·그리스에서도 일어난다”며 “수십년간 좌우 포퓰리즘 정당의 득표율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합니다(『위험한 민주주의』). “세계화 이후의 성장은 개발도상국에만 집중됐고, 선진국에선 성장의 과실이 소수 엘리트에만 돌아갔기 때문”이죠.
마르틴도 “모두가 가난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소수만 계속 부유해지는 건 견디기 어렵다”며 “성장이 정체된 대부분의 선진국이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커질수록 관대함이 줄고 비윤리적이 된다”고 말하죠. 양극화의 심화로 중산층이 옅어지며 민주적 가치들까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을 좌우 극단의 정치인들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는 GDP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애덤 셰보르스키의 이론과도 맥락이 비슷합니다. 그는 1950~1990년 세계 여러 나라를 조사해 1985년 기준 1인당 GDP가 6000달러(534만원, 1985년 12월 환율 890원 기준) 이상이어야 “민주 정권이 붕괴(500분의 1)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500달러 미만인 나라는 평균 8년 후 무너졌고요.
물질적 기초가 탄탄해져야 ‘먹고사니즘’을 넘어 자유와 인권·법치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1인당 GDP가 높아도 양극단의 값이 크고 평균만 높으면 민주주의엔 빨간불이 들어오죠.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합리적 사고와 숙의가 가능한 중산층이 두텁지 않으면 부자와 빈자로 분열된 극단의 정치가 고개를 든다”고 말합니다.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로 귀결될 수 있던 것도 운동의 주체가 중산층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도세력은 학생이었을지 몰라도 넥타이 부대 같은 중산층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란 이야기죠. 반대로 기층민이 중심이 되면 “볼셰비키 같은 사회주의 혁명이나 베네수엘라처럼 사회주의 외양을 한 좌파 포퓰리즘이 될”(박희제 교수) 가능성이 큽니다.
87년 민주화는 중산층의 업적
결국 한국의 민주화는 586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중산층의 업적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집권세력은 민주화를 자신만의 전유물처럼 내세우며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릅니다. 특히 심해지는 불평등을 악용해 부자와 빈자를 나눠 갈등을 조장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 싸우게 만들고 있죠.
소수인 부자들만 콕 집어 세금을 대폭 늘리는 ‘부자 증세’가 대표적입니다. 내년부터 최고 45%의 소득세를 적용하고, 종합부동산세(최고세율)을 3.2%에서 6%로 올릴 예정입니다. 급격한 핀셋 증세가 불합리하다는 비판에는 대상이 1만 1000명(전체 소득자의 0.05%)에 불과해 별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항변합니다.
전체 근로자 10명 중 4명(38.9%)이 실질 세금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증세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정부들이 손쉬운 ‘부자 증세’를 택하지 않은 것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국민개세주의(헌법 38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함이었죠. 특정계층에 집중된 조세는 근로의욕을 꺾고 포퓰리즘을 부릅니다. 지금도 이미 소득 상위 10%가 전체 세금의 78.3%를 부담하는 상황입니다.
패를 갈라 다수의 적대감을 자극해 소수를 적으로 모는 행태는 다른 정책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여권은 윤미향 의원을 비판한 이용수 할머니까지 ‘토착왜구’로 몰고, ‘조국 사태’로 부모 찬스가 논란되자 문제를 제도 탓으로 돌리며 자사고 일괄 폐지를 밀어붙였습니다. 전국 2000여개 고교 중 자사고는 28곳뿐이어서 다수의 논리로 결정하면 자사고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빈부격차가 커지고 좌우 극단으로 쏠린 사회에선 합리적인 중간계층이 설 자리가 부족합니다. 포퓰리스트는 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부자를 공격하고, 다시 다수의 횡포를 통해 의견이 다른 집단과 소수자를 압박합니다. 그러면서 법치와 자유·다양성 같은 민주주의 원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하죠. 베네수엘라와 그리스가 그렇게 쇠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치적 중산층입니다. 편 가르기가 고착된 사회에서 이성과 합리로 사고할 수 있는 공중이 있어야 하죠. 자유로운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더 나은 성취를 이루고, 노력에 따른 보상의 과정이 공정한지 따져야 합니다. 국가는 소외된 자에게 직접 빵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야 하고요. 그렇게 중산층이 두터워져야만 민주주의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방의 개수에 따른 여러 가지 다중방 공진기에서 전자기파 신호가 각방에 어떻게 분포될지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전자기장이 강하면 붉은색, 약하면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IBS 제공
국내 연구팀이 암흑물질로 추정되는 액시온의 검출 시간을 종전보다 4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암흑물질 후보인 ‘액시온’의 고주파수 신호를 효율적으로 검출하는 다중방 공진기를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액시온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이론적으로 고안한 물질이다. 과학자들이 1983년 액시온이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이후 줄곧 암흑물질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관측되지 않은 물질이다.
액시온은 자기장을 만나면 주파수가 높은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액시온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공진기 안에서 액시온과 같은 주파수의 신호를 만들어 파동이 증폭되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전자기파의 주파수를 결정하는 액시온의 질량을 이론적으로 알 수 없어 모든 주파수의 신호를 만들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공진기로 주파수가 높은 신호를 만들려면 공진기 부피가 작아야 한다. 부피가 작으면 액시온이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확률도 감소하기 때문에 신호를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연구팀은 원통형 공진기를 피자처럼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 주파수가 높은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고 부피는 줄이지 않는 ‘다중방 공진기’를 떠올렸다. 각 방은 부피가 줄어 높은 주파수의 신호를 만들 수 있으면서 전체의 부피는 줄어들지 않는 원리다. 연구팀은 공진기 가운데 작은 공간을 만들고 안테나를 설치해 여러 방에서 나온 액시온의 신호를 한 번에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제작공정에서 아주 미세한 오차라도 발생하면 공진기 안의 전자기파가 가장 넓은 방으로 쏠려 실제 검출되는 신호가 줄어들 수 있다. 연구팀은 2년 동안 방대한 시뮬레이션과 시제품 테스트를 거쳐 공진기의 디자인을 최적화하고 오차를 줄였다
연구팀이 방이 2개인 이중방 공진기를 만들어 액시온 검출 실험을 진행한 결과 기존 공진기 보다 4~5배 높은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탐색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3개월 정도 걸리던 탐색 시간이 4분의 1인 3주로 줄었다.
윤성우 IBS 연구위원은 “공진기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만으로 실험 효율을 크게 높였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기존 실험이 어떤 성과를 내는 데 4년이 걸린다면 이제 1년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지컬리뷰레터스’ 온라인판 11월 25일자에 실렸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화성행 우주선 ‘스타십’이 시험 비행 과정에서 폭발했다.
/스페이스X
스페이스X는 9일(현지 시각) 미 텍사스주 남부 보카치카의 카메론 카운티 발사대에서 무인(無人) 우주선 스타십 시제품 ‘SN8’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렸지만, 착륙하는 과정에서 속력을 낮추기 위해 구동되는 연료 탱크가 압력이 낮아지는 바람에 빠른 속력으로 땅에 닿으면서 폭발했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
스타십은 이날 비행에서 지구 성층권인 12.5㎞ 상공까지 솟구쳐 올랐다. 총 비행 시간은 6분 42초였다. 스페이스X 웹사이트에선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번 시험 비행 영상은 조회수가 350만회를 넘었다.
/트위터
머스크는 시험이 끝난 뒤 트위터에 “성공적인 비행이었다. 접지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얻었다”면서 “화성아, 우리가 간다!”고 적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도 트위터에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시험 비행에 감명받을 것”이라고 적었다.
/스페이스X
스타십은 인류의 화성 이주를 목표로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거대 우주선이다. 이번 시험에 동원된 시제품은 길이 50m, 직경 9m로 제작됐다. 스페이스X는 홈페이지에 스타십을 “승객과 화물을 지구 궤도나 행성 간 목적지 사이로 운반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스타십을 이용해 오는 2050년까지 인류의 화성 이주를 완수하겠다는 구상이다.
머스크는 지난 1일 앞으로 6년 이내에 인류를 화성에 데려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거 어워드에서 “2026년까지 인간을 화성에 착륙시킬 것이라고 강하게 자신한다(highly confident)”고 밝혔다. 그는 “운이 좋으면 4년 만에 가능할 것이다. 2년 안에 무인탐사선을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계층 상승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도 미국 못지않게 불평등이 뚜렷한 능력주의 사회처럼 보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8일 조선일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웨비나에서 ‘정의와 공정’을 주제로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대담했다. 최근 국내 출간된 샌델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성공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부순다. 그는 “능력주의는 패자에겐 ‘전부 내 탓’이라는 좌절감을, 승자에겐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는 오만을 안겨준다”면서 “승자와 패자의 간극을 극복하려면 능력주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샌델은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인 ‘수능’을 한국어로 정확히 발음했다. “대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성공한다고 믿지만, 미국에선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성적 간에 높은 상관관계가 드러났다. 한국의 부유층도 자녀의 수능 성적을 위해 교육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자라는 내내 성공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리며 결국 ‘상처받은 승자’가 된다.”
“코로나가 일깨운 저소득 육체 노동자의 가치… 엘리트, 더 겸손해져야”
“한국인은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좋은 사회란 무엇인지 함께 얘기하고 싶어한다.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1만4000여 명 앞에서 강연한 적 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열정과 갈망을 느꼈다. “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는 2010년 국내 출간 후 밀리언셀러가 된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 비결에 대해 “더 큰 질문, 더 큰 담론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성향 때문에 내 책에 뜨겁게 반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하버드대생들 사이에서 점차 짙어지는 능력주의 정서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말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의 성공은 엘리트의 오만에 노동자층이 분노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세계화의 이익을 독점해온 엘리트층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했다.
샌델과 대담한 서울대 이재민 교수가 “능력주의의 결과로 엘리트들은 성공에 있어서 운의 역할을 잊고 겸손함이나 인간애를 잃는다”고 하자 샌델 교수는 “겸손하지 못한 엘리트의 태도가 대중의 분노를 샀고, 포퓰리즘의 반란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내가 노력했기에 성공했다’는 승자의 믿음과 뒤처진 패자의 자기 비난은 우리 사회의 분열을 일으켰다”고 했다. /미래엔
-그렇다면 엘리트층의 오만한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잊고 있던 노동의 존엄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임금 수준이 높든 낮든, 대학 학위가 있든 없든 노동자층의 일을 존중하고 사회적 명예를 인정해줘야 한다. 또한 성공한 자들에겐 ‘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운의 역할을 인정하면 겸손해질 수 있고, 불운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연대 의식을 배울 것이다. 지금 목도하는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의 결속과 유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 속에서 능력주의는 강화될까, 아니면 ‘함께’라는 연대 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우리는 배달원이나 물류 창고 직원, 트럭 운전사에게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안전하게 집에서 근무하겠지만,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보상과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지금 온라인으로 대담하는 것처럼 디지털 경제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하버드대에서도 이번 학기는 ‘정의’ 강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대면 활동을 대체할 순 없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 예측하기도 하지만,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기보단 보완할 것이라 본다. 인간에게는 생계뿐 아니라 일터에서의 사회적 관계, 공공선에 이바지한다는 인정이 중요하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
-능력주의에 대한 분노가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정치 양극화를 발견할 수 있다. 논리적 사고에 기반을 둔 토론을 하지 않고 남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자기 목소리만 높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이들은 선거 부정의 증거가 없는데도 믿질 않는다. 대학 학위가 없는 이들이나 노동자층은 엘리트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믿고 더는 미디어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당신은 지난 40년간 세계화가 능력주의를 강화해왔다고 비판했다. 세계화와 평등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
“세계화와 평등이 반드시 대립하진 않는다. 어떤 정책, 어떤 세계화인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세계화를 이끈 이들은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공중 보건 제도를 개선하거나, 교육·직업 훈련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 혜택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나눌 수만 있었다면 세계화와 평등은 양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 대학 입시를 추첨제로 바꿔 제비뽑기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도발적 제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대학 입시에서도 운이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보통 하버드대에 4만명이 지원해 2000명 정도가 합격한다. 입학 사정관들은 지원자 중 대부분이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말한다. 그러니 최소한의 능력을 갖춘 학생들끼리 제비뽑기를 해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승자가 좀 더 겸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내 도발적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나?”
최초의 원자로 CP-1(오른쪽)을 가동하던 순간. 긴급 상황 시 카드뮴 용액을 뿌리기 위해 용감한 물리학자 셋이 원자로 위에서 대기했다. 아르곤 국립 연구소 제공
1942년 12월 2일 미국 시카고대 미식축구장 지하에 긴장한 표정의 물리학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날은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시카고 파일 1호(CP-1)’의 시험 가동이 예정돼 있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위험천만한 실험이다.
CP-1은 ‘핵분열’을 조절하는 원자로다. 핵분열은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가 더 작은 원자핵으로 분열되는 현상이다. 1939년 독일의 유대계 물리학제 리제 마이트너가 발견했다. 핵분열 과정에서 큰 에너지와 중성자 2~3개가 함께 방출돼 주변의 방사성 원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도미노처럼 차례로 원자핵이 분열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핵분열을 통제하는 게 관건이었다. 방사성 원소가 너무 적으면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반대로 너무 많이 모이면 핵분열이 폭주하면서 도시를 통째로 날릴 만큼 큰 폭발이 일어난다. 이를 막기 위해 핵분열 반응을 조절하는 ‘원자로’를 만들었다.
핵폭발 장면. 미국에너지부 제공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적국인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원자로를 건설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연구팀이 이 일을 맡았다. 그는 방사성 원소인 우라늄 약 5t과 산화우라늄 50t을 중성자의 속도를 낮춰 연쇄 반응을 높이는 흑연 벽돌 400t으로 덮어 CP-1을 만들었다. 중성자를 흡수하는 금속 카드뮴으로 핵분열을 조절했다.
이날 오후 3시 25분 CP-1은 성공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첫 원자로는 28분 동안 겨우 0.5W(와트)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3년 뒤 CP-1에서 시작된 연구의 결과물인 원자폭탄은 일본에 떨어져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 페르미가 설계한 원자로는 이후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원자로의 토대가 됐다. 무시무시한 무기와 함께 원자력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함께 열린 것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3일 확대된 눈의 모습을 표지로 실었다. 가운데 검은 동공을 중심으로 파란색의 ‘망막세포’들을 볼 수 있다. 망막세포는 눈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신경세포로 정보를 누에서 두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5시 방향을 기준으로 어두웠던 망막세포들이 반시계 방향으로 파랗게 밝아지고 있다. 왼쪽 상단에서는 ‘돌아갈 시간(Turning Back Time)’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문구 아래에는 ‘재조정된 망막 세포는 노화와 관련된 시력 상실을 되돌릴 수 있다’는 문구도 붙어있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대 의대 노화연구생물학센터 교수 연구팀은 노화된 망막세포를 조작해 실험쥐 시력을 회복시켰다는 연구를 이번 주 네이처에 발표했다.
노화된 망막세포는 ‘야마나카 인자’를 사용해 젊게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2010년대 중반 이미 밝혀졌다. 야마나카 인자는 이미 분화를 마친 체세포의 시간을 되돌리는 유전자 조절 단백질이다. OCT4와 SOX2, KLF4란 세가지 단백질이 있다. 문제는 이 단백질들이 너무 오래 사용되면 종양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종양 발생을 막으면서도 야마나카 인자를 이용해 망막세포를 젊게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세 단백질을 아데노관련바이러스(AAV)를 매개체로 해 시신경이 손상된 실험쥐의 망막 신경세포에 전달했다. 단백질 유전자의 활성을 켜고 끌 수 있는 일종의 스위치도 만들었다. 연구팀이 만든 약물을 쥐에게 주입해야만 단백질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연구팀은 실험쥐의 망막세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노화와 관련된 시력 상실 겪은 생쥐와 녹내장 질환의 특징인 눈 내부 압력이 증가한 생쥐의 시력을 되돌아왔다. 망막세포의 수와 신경 성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망막 세포의 수가 2배 늘었고 신경 성장도 5배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미국 생명과학회사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에 이전했다. 현재 연구에서 생쥐는 1년동안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싱클레어 교수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기 위해 전임상 안전성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며 “신체 기능을 개선하고 생체 내 재생을 촉진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술유출의 유형은 다양하다. 퇴직자가 기술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 해킹으로 기술을 빼가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거래 관계에서 제안서나 PT 자료, 공모, 입찰 등을 빙자한 기술유출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벤처 기업이 대기업 투자를 받기 위해 아이디어 PT와 시연을 했는데, 해당 대기업이 투자는 거절하고 몇 달 후 똑같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인터넷에 버젓이 출시한 적도 있다. 또 서비스 납품을 위해서 기술 시연을 하고 기술 자료를 주었는데, 납품은 거절되고 몇 달 후 계열회사가 버젓이 그 용역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기술유출의 경우, 피해 기업이 기술 유출 경로를 밝힐 수 없거나 가해 기업이 다른 루트를 통해서 해당 기술정보를 얻었다고 반박하게 되면, 실제 기술유출을 당한 기업의 구제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된다. 또 이러한 형태의 기술유출은 계약 체결이 되기 전에 발생하였기에 계약상 책임을 묻는 것도 쉽지 않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 기업이 이러한 형태의 기술유출에 좌절한 경우도 종종 언론을 통해 나오곤 한다.
최근 기술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똑똑한 조문이 도입됐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이 신설되었는바,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업제안, 입찰, 공모 등 거래 교섭 또는 거래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갖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하여 자신 또는 제3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 다만,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가 제공받을 당시 이미 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거나 그 아이디어가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새로 신설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은 아래 요건에 해당하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첫째, 사업제안, 입찰, 공모 등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가 공개되거나 제공되야 한다. 예를 들어 제안서, PT 자료, 공모작품 등을 통해서 기술적 또는 영업상 아이디어가 타인에게 공개되거나 제공되야 한다.
둘째, 이를 취득한 자가 그 제공목적에 위반하여 자신 또는 제3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하여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해 사용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제공목적’인데, 제공한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한 경우 또는 제공목적을 벗어나게 사용한 경우라면 이 조항으로 구제가 가능하다.
입찰이나 투자제안 목적으로 제공했는데, 실제 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스스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셋째,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가 제공받을 당시 이미 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거나 그 아이디어가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경우가 아니라야 한다. 이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 즉 가해자가 입증해야 할 사항이다. PT 자료에서 언급된 내용이 이미 기존 문헌에 언급되어 있거나 주지관용기술이라는 점을 입증하면, 그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법적으로 보호가치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 도입으로 만연해 있는 기술유출에 대한 방어 방법이 추가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이 차목은 제안서나 PT, 입찰서류 등에 특히 최적화되어 있기에 이러한 형태의 기술유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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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석사를 했고, 조지워싱턴대 국제거래법연수를 마쳤습니다. 사법연수원 제36기를 수료하고, 국회사무처 사무관(법제직)과 남엔드남 국제특허법률사무소(특허출원, 특허소송, 민사소송 변호사), 국제특허법률사무소(특허출원, 특허소송, 민사소송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위원회 위원을 거쳤습니다. 현재는 방위산업기술보호위원회 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개인정보보호 최고전문가과정 강의, 지식재산위원회 해외진출 중소기업 IP전략지원 특별전문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민원처리심사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 조정 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과학소설(science fiction; SF)은 일반 독자들에겐 좀 낯선 문학 장르다. 그래서 그것에 주목하는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의 중요성은 그러나 보기보다는 훨씬 크다. 과학소설의 중요성은 물론 그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늘 문학 작품들을 찾는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문학은 사람에게 중요한 지식 형태다. 그러나 과학소설은 그런 기본적 중요성을 훌쩍 넘어서는 독자적 중요성을 지녔다. 그런 독자적 중요성은 과학소설의 주제가 과학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발전된 지식을 축적했다. 그러나 발전된 지식의 축적이 사람에게 즐거움만을 준 것은 아니다. 지식이 쌓이면서, 사람은 다른 생물들이 품지 않는 걱정들과 두려움들을 지니게 되었다. 미국 철학자 데네트(Daniel Dennett)는 이 점을 잘 말했다.
“우리 사람들은, [짐승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자신들의 죽음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온전하지 못한 축복을 찾아냈다. 지난 만 년 동안 우리의 에너지 지출의 엄청난 부분은 우리만이 지닌 이 불안한 새 광경에 의해 촉발된 걱정들을 무마하는 데 바쳐졌다.” [<자유는 진화한다 (Freedom Evolves)>]
자연히, 사람들은 지식을 두려워한다. 특히 과학적 지식을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주는 자신에 관한 지식을 두려워하고 그런 지식이 가리키는 새로운 지평들을 외면하려 애쓴다.
“우리의 발견들의 산통(産痛)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은 – 신비를 메커니즘들과 바꾸는 것은 –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전망을 빈약하게 만들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이 걱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정말로 너무 많이 알 위험에 처했다면, 지식의 첨단에 있는 이들이 불편함의 징후들을 보이지 않을까? 더 많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런 추구에 참여하여 새로운 발견들을 열심히 소화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라; 그들은 분명히 낙관, 도덕적 확신, 삶에의 참여, 사회에 대한 약속에서 부족하지 않다. 실은, 만일 당신이 오늘날의 지식인들 가운데 불안, 절망, 그리고 도덕적 무질서를 찾고자 한다면, 현대 과학이 신화들의 긴 계보에서 그저 또 하나이고, 그것의 기구들과 값비싼 장치들은 그저 또 하나의 종교의 의식들과 치레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를 즐기는, 요즈음 유행을 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종족을 보라. 똑똑한 사람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에 관해 지닌 지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생각이 아직 지닌 힘에 대한 증언이다.” [<자유는 진화한다 (Freedom Evolves)>]
과학적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고 앞날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과학적 지식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보다 잘 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근년에 문학은 과학적 지식에 비우호적 태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정당화하는 미학을 만들어냈다. 그런 상황은 당연히 사회에 해롭다. 본질적으로 문학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주지만, 반과학적 문학은 그런 혜택을 크게 줄인다. 과학을 주제로 다루는 터라, 과학소설은 과학에 우호적인 문학이다. 자연히, 낙관적인 문학이다. 그런 낙관적 태도는 사회에 혜택을 줄 뿐 아니라 반과학적 문학의 나쁜 영향과 효과를 씻어낸다. 과학소설은 일상적 차원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모든 부면들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의 황금기는 열두 살이라는, 즉 우리가 과학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매혹당하는 나이라는 자명한 얘기가 있었다. 그 자명한 얘기는 이제는 맞지 않으니, 과학소설은 우리 문화에 하도 배어 들어서, 그것의 심상들의 기본적 목록 – 로켓 우주선들과 로봇들, 외계인들과 공룡들 – 은 모든 취학전 어린이들의 환상 속의 삶에서 표준 품목들이다. 우리 시대의 열두 살 난 아이들로 말하면, 그들에겐 과학소설적인 것들은 무엇도 낯설지 않다.” [토머스 디쉬(Thomas M. Disch), <우리 몸을 이룬 꿈들 (The Dreams Our Stuff is Made of)>]
2. 널리 알려진 과학소설 작품들
과학소설 작품들을 원작으로 삼은 ‘SF 영화’들이 많이 우리 사회에 소개된 덕분에, 이제 과학소설이란 말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그래도 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보고서, 우리 독자들은 대부분 과학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과학소설을 여러 권 읽었을 터이다. 과학소설을 쓰는 데 무슨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과학소설은 과학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주류 문학 작가들에 의해서도 쓰여진다. 실제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소설 작품들은 그런 ‘외부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소설로 여겨지지 않는다.
과학소설로 인식되지 않는 과학소설 작품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950)의 <1984년(Nineteen Eighty-four)> (1949)이다. 이 작품은 국가 권력이 시민들의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까지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궁극적 모습을 그렸다. 인류 사회의 앞날에 대해 아주 비관적인 견해를 드러낸 이 작품에 나온 세계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온 20세기의 세계와는 크게 다르지만, 그 작품이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와 전망에 대해 미친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깊었다. 특히 ‘대형(Big Brother, 독재자)’, ‘신언어(Newspeak, 정치가의 모호한 표현, 세뇌에 사용)’, ‘이중사고(Doublethink, 모순되는 두가지 생각을 동시에 가지는 것)’와 같은 음산한 개념들은 정보의 처리와 유통을 장악한 전체주의적 권력이 시민들의 자유를 위협하는 과정을 사람들이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전언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와 같은 기억하기 좋은 구절들로 독자들의 마음에 선연하게 남는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아서 왕 궁정의 콘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1889)도 일반적으로 과학소설로 인식되지 않는 과학소설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세기의 미국인이 고대 영국으로 가서 겪는 일들을 그린 시간 여행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시간 여행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이상향으로 여겨져 온 아서 왕의 본거지 캐멀러트(Camelot)의 일상적 모습을 통해 고대 사회의 실상을 드러내고 아울러 주인공이 지닌 현대 지식이 원시적 사회를 바꾸는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무지와 미신에 지배되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고대 사회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전설 속의 과거가 이상향이었다는 ‘신화’를 깨뜨린 이 작품은 뛰어난 우상파괴자 마크 트웨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과학소설은 ‘science fiction’을 번역한 말이며, 영어로는 ‘sf’ 또는 ‘sci-fi’로 줄여서 부른다. ‘science fiction’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였으니, 그리 오래 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과학소설로 불리는 문학 장르의 범위, 특질과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훨씬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환상적 문학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 포(Edgar Alan Poe; 1809 – 1849)의 노력은 대표적이다. 과학소설은 정의하기가 무척 힘들다.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정의했지만, 간단하고 또렷하면서도 변별성을 지닌 정의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과학소설로 인식되는 작품들이 워낙 다양해서, 그것들을 한데 묶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까다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환상소설(fantasy fiction)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두 장르들이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이다.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주 가깝고, 과학소설 작가들은 흔히 환상소설을 쓴다. 그래서 분명히 환상소설로 분류되어야 할 작품들이 흔히 과학소설로 분류되었고, 그런 관행은 과학소설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지금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영국 작가이자 비평가인 올디스(Brian W. Aldiss; 1925 – )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아래와 같은 정의를 내놓았다.
“많은 정의들이 어렵사리 만들어졌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실패했다, 내용만 고려하고 형식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의 정의는 재미의 측면을 짙게 지닌 장르엔 좀 뽐내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앞으로 논의하면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소설은 우리의 발전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지식의 상태(과학)에서 성립될 수 있고 특징적으로 고딕 또는 포스트-고딕 틀로 빚어진, 사람과 우주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의 정의에 대한 탐구’다.”
깔끔한 정의가 이처럼 어려우므로, 미국 작가이자 비평가인 나이트(Damon Knight; 1922 – 2002)의 “과학소설은 우리가 그것을 말할 때 가리키는 것이다 (Science fiction is what we point to when we say it)”나 미국 작가 스핀러드(Norman Spinrad; 1940 – )의 “과학소설은 과학소설로 출판된 모든 것들이다 (Science fiction is anything published as science fiction)”처럼 순서가 뒤바뀐 정의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실제로 그것에 따라서 과학소설에 속하는 작품들이 판별된다.
아무튼 진정한 과학소설이 되려면, 작품이 “과학적 전망의 의식(a consciousness of scientific outlook)”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오스트레일리아 평론가 니콜스(Peter Nicholls; 1939 – )의 주장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소설은 과학과 기술이 사람의 삶과 문명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들을 과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소설이다”라는 진술에는 별다른 이의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4. 과학소설의 역사
과학소설을 그렇게 정의했을 때, 그것의 기원은 과학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지 못했거나 과학의 영향이 지금처럼 두드러지지 않았던 시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헬레니즘이 융성했던 시대의 작품들에서 원시적 과학소설(proto science fiction)의 선구자들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고대 바빌론 문명이 낳은 <길가메쉬>나 유태인의 경전인 <구약 성경>을 원시적 과학소설로 보는 이들도 있다.
모든 예술 장르들이 그러하듯, 과학소설도 여러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진화해왔다. 과학소설의 진화에 기여한 요소들 가운데 두드러진 것들은 환상적 여행(fantastic voyage) 이야기, 이상향(Utopia) 또는 반이상향(Dystophia) 이야기, 철학적 이야기 (philosophical tale) 그리고 기술적 및 사회적 예측(technological and sociological anticipation)이다.
그런 진화의 과정을 거쳐, ‘제1차 과학혁명’이 진행되었던 17세기까지는, 과학소설이 어떻게 정의되더라도, 과학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다.
모어(Thomas More; 1478 – 1535)의 <이상향(Utopia)>(1551)과 프랑스의 군인이자 작가였던 시라노 드 베르제락(Savinien Cyrano de Bergerac; 1619 – 1655)의 <시라노 베르제락 씨가 쓴 달 세계의 나라들과 제국들의 우스운 이야기(Histoire comique, par Monsieur de Cyrano Bergerac, contenant les etats et empires de la lune)>(1657) 및 <시라노 베르제락 씨가 쓴 해 세계 나라들과 제국들의 우스운 이야기의 한 부분(Fragment Histoire comique par Monsieur de Cyrano Bergerac, contenant les etats et empires du soleil)> (1662)은 대표적 작품들이다.
19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모든 분야들에서 현대적 이론들이 차츰 자리잡고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의 영향이 부쩍 커지자, 좀 더 ‘과학적’인 과학소설 작품들이 나왔다.
20세기가 되자, 과학소설은 새로운 과학 이론들에 맞춰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전반까지의 시기는 유능하고 영향력이 컸던 미국 잡지 편집자 캠벨(John W. Campbell Jr; 1910-1972)의 지도 아래 여러 뛰어난 과학소설 작가들이 활약해서 ‘과학소설의 황금 시대(The Golden Age of Science Fiction)’라 불린다.
이들 작가들 가운데 하인라인(Robert Heinlein; 1907 – 1988), 애시모프(Isaac Asimov; 1920 – 1992) 그리고 밴 보트(A. E. van Vogt; 1912 – 2000)는 특히 업적이 두드러지고 다른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커서 ‘3대 작가(The Big Three)’라고 불렸다. …. (다른 사람들은 밴 보트 대신에 아서 클라크 (Arthur Clarke) 를 넣기도 한다)
이전에 ‘싸구려 잡지(pulp)’라고 불린, 주로 환상적 이야기들을 실은 잡지들은 여러 분야들의 작품들을 가리지 않고 실었었다. 그 뒤로 과학소설 전문 잡지들이 여럿 나와서, 과학소설의 터전을 넓혔다.
1960년대에 과학소설은 독자층을 크게 넓혔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지닌 중요성이 늘어나면서, 특히 핵전쟁의 위협이 커지면서, 과학소설이 지닌 뜻은 점점 뚜렷해졌고 위상도 높아졌다. 특히 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Stranger in a Strange Land)>(1961)는 새로운 질서를 꿈꾸던 ‘꽃 아이들(Flower Children)’ 세대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덕분에 과학소설 작가들은 ‘싸구려 잡지’들에 생계를 의존했던 삶에서 벗어나 단행본 시장으로 진출했고, 그런 변화에 따르는 평가와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 뒤로 과학과 기술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현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과학과 기술의 영향을 다루는 과학소설은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련성(relevancy)’을 지닌 소설로 점점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중엽엔 ‘새로운 물결(New Wave)’이 일어나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서 활기를 잃어가던 과학소설에 생기를 넣어주었다. 새로운 물결의 발생지는 유럽이니, 그것은 고다르(Jean-Luc Godard; 1930 – )와 트뤼포(Francois Truffault: 1932 – 1984)를 비롯한 프랑스 영화 감독들의 실험적 영화들을 가리킨 ‘nouvelle vague’에서 나왔고, 영국 작가들인 올디스(Brian Aldiss; 1925 – ), 발라드(J. G. Ballard; 1930 – ) 그리고 무어콕(Michael Moorcock; 1939 – )이 주도했다.
새로운 물결은 심리학과 같은 ‘무른 과학(soft science)에 큰 관심을 보였고 주류소설에서 이야기 전략(narrative strategy)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빌려와서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류소설에 작지 않은 긍정적 영향들을 미쳤다.
새로운 물결은 이내 과학소설계 전체로 퍼졌고 미국에서 특히 풍요로운 성과를 얻었으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들레이니(Samuel R. Delany; 1942- ), 즐레이즈니(Roger Zelazny; 1937 – 1995), 엘리슨(Harlan Ellison; 1934 – ) 그리고 디쉬(Thomas M. Disch; 1940 – )와 같은 작가들은 새로운 물결에 속한다. 덕분에 주류소설과 과학소설 사이의 높은 담장은 상당히 허물어졌다.
1980년대엔 컴퓨터 기술과 정보 산업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사이버펑크(cyberpunk)’가 나타났다. 사이버펑크는 컴퓨터의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을 중심적 주제로 삼은 과학소설로, 미국 작가들인 깁슨(William Gibson; 1948 – )과 스털링(Bruce Sterling; 1954 – )에 의해 주도되었다.
깁슨의 <신경조작자(Neuromancer> (1984)는 사이버펑크의 대표적 성과이자 그것의 진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사이버펑크는 과학소설에 활기를 주었을 뿐 아니라 정보 기술의 발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20세기 초엽까지는 과학소설은 유럽에서,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엔 과학소설의 무게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왔고, 그 뒤로 줄곧 미국이 상업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압도적 중요성을 차지했다. 반면에, 동양의 실적이나 공헌은 거의 없었다.
“과학소설은 성공적으로 해외에 이식된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미국 산업들 가운데 하나다. 일본은 디트로이트를 파멸시켰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과학소설은 ‘미국산’이라는 표지를 아직도 달고 있으며 과학소설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는 여전히 미국의 미래다. 위장된 캔서스인 것은 오즈만이 아니다; 은하 제국 전체가 그저 확대된 ‘미국의 꿈’(또는 악몽)이다. 영국 과학소설 작가들은 그들의 이야기들을 미국 속어들로 장식했다, 그들의 록 스타들이 미국 말투를 흉내냈던 것처럼. 트뤼포와 베송 같은 프랑스 영화 감독들이 과학소설 영화들을 만들 때, 그들은 그것들을 미국 도시들에 설정한다.” [토머스 디쉬(Thomas M. Disch), 우리 몸을 이룬 꿈들 (The Dreams Our Stuff is Made of)]
둘러다보면, 과학소설은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온 예술 분야에서 근년에 가장 큰 활력을 보인 장르들 가운데 하나였음이 드러난다. 새로운 과학 지식들과 기술적 성취들을 소재로 삼고 아직은 과학이 넘보지 못하는 분야들까지 지적으로 탐험하면서, 문학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른 작품들을 낳고 있다. 자연히, 시장도 부쩍 커졌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문학의 다른 장르들에 비겨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5. 과학소설의 영역
그러면 과학소설은 소설에서 어떤 영역을 차지하는가? 소설의 다른 하위 장르들과 어떻게 변별되는가? 특히 환상소설(fantasy fiction)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크게 보면, 소설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실재를 충실히 반영하는 모사소설(mimetic fiction) 또는 현실소설(realistic fiction)이니, 이른바 주류소설(mainstream fiction)을 이룬다. 다른 하나는 당장엔 비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상소설이다. 이 환상소설과 거의 동연(同延)을 이루는 것이 모색소설(speculative fiction)이란 개념이다. 아직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현재의 과학적 정설로는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탐구하는 소설이란 뜻이다.
당장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므로, 환상소설은 우리가 아는 실재에 새로운 무엇을 보탠다. 바로 그 점에서 모사소설과 환상소설이 달라진다. 그렇게 보태지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환상소설은 다시 과학소설과 ‘협의의 환상소설’로 나뉜다.
과학소설은 비현실적이지만 자연적이다. 협의의 환상소설은 비현실적이면서 초자연적이다. 즉 과학소설 속의 이야기는 일어날 수 있지만, 환상소설 속의 이야기는 일어날 수 없다. 미국 작가 드 포드(Miriam Allen deFord; 1888 – 1975)의 멋진 표현을 따르면, “과학소설은 있을 법 하지 않은 가능한 것들을 다루고, 환상소설은 그럴 듯한 불가능한 것들을 다룬다. (Science fiction deals with improbable possibilities, fantasy with plausible impossibilities.)”
실제로는 과학소설과 환상소설 사이의 경계는 그렇게 또렷하지 않다. 특히 대체 역사 (alternative history), 시간여행(time travel), 그리고 반중력(antigravity)이나 초광속(faster than light)을 품은 소설은 깔끔한 분류를 어렵게 만드니, 그런 작품들은 관행적으로 과학소설로 분류되지만, 그런 작품들의 바탕이 되는 상황은 나올 수 없다.
요즈음엔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하나의 장르로 보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1992년에 과학소설계의 가장 중요한 단체인 ‘미국 과학소설 작가 협회 (Science Fiction Writers of America)’가 ‘미국 과학소설 및 환상소설 작가 협회(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of America)’로 이름을 바꾼 일은 상징적이었다.
6. 과학소설의 성격과 기능
과학소설은 본질적으로 현대 문명의 발전에 대해 문학이 보인 반응이다. 문학이 그것을 낳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므로,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에 미친 혁명적 영향은 당연히 현대 문학에 뚜렷이 반영되었다. 이 얘기는 물론 예술의 다른 분야들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문학은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의 결정적 동인으로 등장한 상황에 대해서 다른 예술 분야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사실은 가장 짧은 과학소설로 흔히 꼽히는 미국 작가 프레드릭 브라운(Fredric Brown; 1906-1972)의 단편에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 원자전쟁 뒤, 지구는 죽었다; 아무 것도 자라지 않고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마지막 사람이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그때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현대 물리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원자탄을 낳았다. 1945년의 히로시마 이후 핵전쟁은 인류의 생존을 가장 크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위협한 요소였고, 핵전쟁의 가능성은 20세기 후반 내내 사람들의 마음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단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단편은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일이라고 일컬어진 핵전쟁의 위협을 차가운 눈길로 응시하면서 효율적으로 다루었다.
문학이 그렇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한 까닭들 가운데 하나는 문학이 사회 현실에 다른 예술 분야들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그리고 정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보다 전언을 담는데 훨씬 뛰어나고, 자연히, 사회 현실을 또렷이 반영할 수 있다. 문학이 과학소설이라는 형태로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응한 것처럼 다른 예술 장르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문학이 욕망, 본능, 조건반사와 같은 이름들로 불리는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지식(implicit knowledge)’을 그리는 데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드러나지 않은 지식들은 사람의 의식과 행동에 지향성을 주는 가치 체계를 이루고 다듬는 데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므로, 과학과 기술의 작용을 거의 받지 않았다. 자연히, 그것은 과학으로 대표되는 ‘드러난 지식(explicit knowledge)’과 조화되기 어렵고 둘 사이엔 큰 틈이 존재한다. 과학의 빠른 발전은 둘 사이의 조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둘 사이의 틈을 점점 크게 만든다. 문학은, 특히 과학소설은, 그런 부조화와 틈을 줄이는 데서 작지 않은 몫을 할 수 있다.
그런 두 가지 사실들에서 과학소설의 현대 문명에 대한 높은 ‘관련성’이 나온다. 과학이 자명하거나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온 이론들과 믿음들을 밀어내는 현대 문명에선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 소설들이 수행해온, 사람의 정체를 찾는 일이 아주 빠르게 과학소설에 넘겨지고 있다. 과학소설을 “우리의 발전된 그러나 혼란스러운 지식 수준(과학)에 비추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의 정의와 우주에서의 그의 위치를 찾는 일”이라 정의한 올디스는 이런 사정에 주목한 것이다.
외부에서 살필 때는 과학소설의 ‘관련성’에서 실용적 측면이 부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먹루언(Marshall McLuhan)은 “과학소설 쓰기는 오늘날 새로운 기술들의 잠재적 능력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제시한다”고 했고, 토플러(Alvin Toffler)는 “대체 세계들이나 대체 전망들처럼 통상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가능성들을 다룸으로써, 과학소설은 변화에 대해 가능한 반응들의 수효를 늘린다”고 했다.
과학소설의 이런 기능에는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개념적 돌파는 패러다임(과학철학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변화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실제로 거의 모든 과학소설 작품들은, 크든 작든, 개념적 돌파를 포함한다. 개념적 돌파는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며, 적잖은 작가들이 독자들 마음에서 그것이 일어나도록 작품을 구성한다. 개념적 돌파는 물론 과학소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히 과학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질들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미래의 예언’이 과학소설의 본질적 기능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소설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추세들이 그냥 이어질 경우 이러이러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추세들을 바람직한 경우엔 강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엔 바꾸어서, 미래의 모습을 보다 낫게 만들어야 한다’는 전언을 품는다.
7. 과학소설의 주요 주제들
과학소설이 빠르게 진화해온 문학 장르이므로, 과학소설의 주제들은 많다. 그리고 새로운 주제들이 더해진다. 아울러 그런 주제들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인류의 윤리적 경험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어진다. 이 점과 관련하여, 과학소설은 “제설통합주의가 서양에서 취한 내적(문화내적) 형태 [the internal (intracultural) form taken by syncretism in the West]”라는 미국 작가 블리쉬(James Blish; 1921 – 1975)의 견해는 음미할 만하다.
아래에 든 것들은 과학소설이 다루어온 주제들 가운데서 비교적 두드러진 것들이라 할 수 있다.
1) 우주 가극(space opera)
과학소설의 주제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우주 가극일 터이다. ‘행성간 또는 성간 여행, 우주를 무대로 한 지구인들과 외계인들 사이의 싸움 따위를 주제로 삼은, 흔히 틀에 박힌 과학소설’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우주 가극은 원래 ‘틀에 박힌 가족 상황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다룬 연속 방송극’을 뜻하는 ‘비누 가극(soap opera)’에서 나왔다. ‘비누 가극’에서 서부극을 가리키는 ‘말 가극(horse opera)’이 나왔고, 다시 거기서 ‘우주 가극(space opera)’이 나왔다.
실제로 많은 우주 가극 작품들이 서부극을 확대시킨 것이다. 곧 서부는 행성간 공간이나 성간 공간으로, 나아가서 은하계(galaxy)로 확대되고, 카우보이들은 우주선 승무원들이나 우주군으로, 권총은 광선총으로, 말은 우주선으로, 악역을 맡은 북미 원주민들은 외계인들로 바뀌었을 따름, 내용이나 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주 가극이란 말엔, ‘말 가극’의 경우처럼, 폄하의 뜻이 담겼다. 그러나 우주 가극 작품들엔 문학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들도 많으므로, 우주 가극이란 말을 되도록 중립적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우주 여행(space travel)
이 우주에 존재하는 무엇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현재 물리학의 정설이다. 광활한 우주를 무대로 삼는 과학소설에선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약이다. 먼 곳으로 여행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통신하는 일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초광속(faster-than-light)’ 여행이나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들이 과학소설 작가들에 의해 고안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우주 여행에서 지름길 노릇을 하는 ‘초월공간(hyperspace)’의 이용이다. ‘공간 굴곡(space warp)’도 초월공간과 비슷한 개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런 초광속 여행이 물리학의 정설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광속 여행은 우주선이 공간적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우주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과학의 정설을 따르는 작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우주 여행은 ‘세대 우주선(generation starship)’을 이용하게 되리라고 상정한다. 이것은 여러 세기에 걸친 우주 여행에 맞게 설계된 거대한 우주선인데, 여러 세대들이 그 안에서 살다가 죽고 후손들이 목적지에 닿을 것이므로, ‘여행하는 방주/ 우주 방주 (travelling ark/space ark)’라고도 불린다.
3) 외계 식민(colonization of other worlds)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위성들에 인류 사회를 건설한다는 생각은 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외계 식민은 처음부터 과학소설의 인기 높은 주제였고, 그런 일에 따르는 개척자 정신은 특히 큰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천문학이 발전하자, 외계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환경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외계 식민을 위해선 ‘적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 적응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사람이 자신의 몸을 외계 환경에 맞게 바꾸는 길이다. 유전 공학이나 ‘인체의 조절화(cyborgization)’를 통한 적응은 이미 이론적 바탕이 잘 마련된 상태다. 이런 적응에 대해선 아래 ‘인공 인간’ 항목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외계의 환경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바꾸는 길이다. 이른바 ‘지구화(terraforming)’다. ‘지구화’라는 말은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이 <시티 우주선(Seetee Ship)> (1951)에서 처음 썼다. 그러나 그런 사업은 이미 1930년에 영국 작가 스테이플던(Olaf Stapledon; 1886 – 1950)이 <마지막 그리고 처음 인간(Last and First Man)>에서 제시했다. 거기서 제시된 사업은 바닷물의 전기 분해를 통해 산소를 만들어서 금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방안은 당시로선 상당히 앞선 생각이었지만, 현재의 과학 지식과 기술 수준에서 살피면, 원시적이고 현실성이 아주 작다. 요즈음엔 지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박테리아와 식물을 먼저 자라나게 해서 사람이 숨쉴 수 있는 대기를 마련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여겨진다.
외계 식민은 물론 태양계 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과학소설은 사람이 다른 별들로 진출하고 궁극적으로 여러 은하들을 아우르는 ‘은하 제국(galactic empire)’을 세우는 모습을 그린다. 과학소설은 멋진 주제들을 많이 가졌지만, 은하 제국처럼 멋진 주제는 없다.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광막한 은하들을 사람의 영역으로 삼는다는 생각엔 누군들 가슴이 부풀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은하 제국이 실제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별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정보 전달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이 늦으면, 사회는 응집력을 잃는다. 태양계에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터우리가 4.3 광년 떨어졌고, 바너즈 스타가 6.0 광년 밖에 있고, 10광년 안에 있는 별들이 모두 일곱 개뿐임을 생각하면, 우주 제국이 나오기 어렵다는 사정이 뚜렷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꿈을 품고 산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늘 은하 제국의 멋진 모습들을 그릴 것이고 독자들은 부푸는 가슴으로 그것들을 읽을 것이다. 빛의 속도와 같은 차가운 사실에 밀려나기엔, 은하 제국은 너무 멋진 개념인 것이다.
4) 시간 여행(time travel)
시간 여행은 과거나 미래를 찾아가는 일을 뜻한다. 시간 여행은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정교한 장치를 이용하는 일을 가리키며, 그런 장치 없이 과거나 미래로 우연히 가는 일은 ‘시간 이탈 (timeslip)’이라고 부른다. 시간 여행은 물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에게 여러 가지 문학적 가능성들을 제공하므로, 인기가 높은 개념이다. 게다가 시간 여행이 품은 역설들 덕분에 – 대표적 예는 ‘과거를 찾아간 시간여행자(time traveller)가 자신의 직계 선조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가?’이다 – 문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지적으로도 흥미가 큰 주제다. 보다 흥미로운 주제는 시간 여행자가 자신이 지닌 현대 문명의 지식을 이용하여 과거 사회를 개량하거나 역사적 비극을 막는 일이다.
5) 외계인
외계인(aliens; extraterrestrials)은 지구 밖에서 유래한 생명체들을, 일반적으로 높은 지능을 갖춘 생명체들을, 뜻한다. 달은 지구의 한 부분이지만, 여기서는 지구는 달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구의 생명체들과 다르게 구성되고, 자연히, 생각과 행동이 사람과 다른 생명체라는 개념은 진화론이 받아들여진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외계인이 등장한 과학소설은 19세기 후반에야 나왔다.
외계인의 존재는 언뜻 보기보다 중요한 주제다. 이론적으로는, 생물이 살 만한 행성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 행성들의 상당수에서 생명체가 나타났을 터이고, 그런 생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간 공간을 여행할 만한 문명을 이루었을 것이다. 적어도 전파를 외계로 보낼 만한 문명을, 즉 지금 인류가 이른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명의 단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 있는가?” 페르미(Enrico Fermi)가 반 세기 전에 던진 이 물음은 아직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 물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것은 실은 지구의 생명체들과 인류 문명에 대한 통찰을 얻는 데도 긴요하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아주 다양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와 진화했으며, 자연히, 본질적으로 같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세균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핵산들을 이용하여 유전 정보들을 전달하고 단백질들을 이용하여 세포의 화학 반응들을 통제한다.
오래 전에 살았다가 사라진 생명체들도 그러했다. 따라서 지구의 생명체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기 어렵다. 외계생물학(xenobiology)은 아직 상상 과학의 영역에 머물고 있지만, 만일 우리가 외계의 생명체를 단 하나라도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통찰은 양자적 도약을 이룰 것이다.
과학소설 작품들 속에 나오는 외계인들은 대개 지구의 생명체들 마찬가지로 탄소에 바탕을 두고(carbon-based) 원형질로 이루어진 생명체들도 그려진다. 탄소는 우주에 많이 그리고 널리 분포하고 복잡한 분자들을 이룰 수 있다. 탄소와 성질이 비슷한 실리콘에 바탕을 둔(silicon-based) 생명체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분자를 이루는 능력에서 탄소보다 훨씬 뒤지므로, 실리콘에 바탕을 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작다. 그렇게 이질적인 생명체의 모습을 그리는 일이 워낙 어려워서, 그것을 시도한 작품들은 수도 적고 문학적 성과도 그리 크지 않았다.
실리콘에 바탕을 둔 생명체보다 훨씬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럴 듯하게 그려진 외계인은 자기 복제를 하는 ‘비유기적 생명체(inorganic lifeform)’와 순전히 에너지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에너지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특히 흥미로운 개념으로, 만일 그런 존재가 실제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면, 사람들 눈엔 그것이 신으로 보이리라는 주장이 나왔고, 그런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류가 받들어 온 신들이 실은 그런 에너지로 이루어진 외계인들이라는 가설도 나왔다. 어쨌든, 보편적 다윈주의(Universal Darwinism)가 널리 받아들여진 지금,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이 자연 선택을 통해서 진화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외계인들과 지구 생명체들 사이엔 비슷한 점들이 많으리라는 생각도 상당한 근거를 지녔다.
6) 인공 인간
과학소설은 여러 가지 인공 인간들을 다룬다. 대표적인 것들은 인조 인간(android), 복제 인간(human clone), 재생 인간(doppelganger 또는 zombie), 개조 인간(engineered human), 조절 인간 (cyborg) 그리고 기계 인간(robot)이다. 물론 이들은 서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을 주제로 삼은 과학소설들은 다른 하위 장르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낸 존재들이고 신 대신 과학자들이 창조자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한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은 첫 인조인간(android)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메어리 쉘리(Mary Shelley)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1818)에서 잘 드러난다. 한 과학자가 시체들의 조각들로 합성해서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을 다룬 이 작품은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로 신이 창조한 생물들도 진화한다는 주장을 편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의 영향을 받았고, 신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온 지식을 찾는다는 파우스트적 주제를 구체화했다. 인조 인간은 화학공학적으로 만들어진다. 겉 모습은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았고, 사람과 같게 또는 아주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설정된다.
생물 복제(cloning)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어떤 개체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그대로’라는 말은 원래의 개체와 복사된 개체들의 유전자들이 똑같다는 것을 뜻한다. 주목할 것은 생물 복제는 근본적으로 진화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모든 고등 생물들은 유성 생식을 통해 유전자들을 새롭게 결합하면서 진화해 왔다. 똑같은 유전자들을 가진 개체들을 여럿 만들어내는 것은 진화의 물길을 멈추는 일이며, 자연히, 퇴행적이다.
그 점은 재생 인간(doppelganger 또는 zombie)의 경우에 훨씬 심해진다.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은 낡은 개체들이 죽어서 비워놓은 생물적 공간에 새로운 개체들이 들어선다는 삶의 근본적 질서를 거스른다. 그래서 재생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과학소설 작품들은 드물고, 재생 인간들은 거의 언제나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노예들로 나온다. doppelganger는 원래 ‘한 사람의 영적 반려’를 뜻하는 독일어인데, 과학소설에선 ‘죽은 뒤에 화학공학적 과정을 거쳐 다시 목숨을 지니게 된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doppelganger는 흔히 그들을 되살려낸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만, 거의 모든 면들에서 독립된 존재다. 반면에, zombie는 의지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한다. zombie는 원래 서 아프리카에서 ‘구렁이의 신’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그것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들이 정착한 서인도제도에서 ‘죽었다가 되살아났지만 의지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며 기계적 동작들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개조 인간(engineered human) 은 환경적응화(pantropy) 과정을 거쳐서 나온 사람을 가리킨다. 환경적응화는 외계의 아주 이질적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만드는 생물공학적 과정이다.
조절 인간(cyborg) 은 ‘cybernetic organism’의 약어로,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이종 교배로 나온 개체를 가리킨다. 조절 인간이란 개념은 로빅(David Rorvik)이 <사람이 기계가 되면(As Man Becomes Machine)>(1971)에서 사람과 기계의 ‘결합(melding)’으로 “참여적 진화의 새로운 시대(new era of participant evolution)”가 열리리라고 주장하면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개념을 먼저 그리고 꾸준히 탐구한 것은 과학소설 작가들이었다. 덕분에 조절 인간은 비교적 잘 탐구되고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주제가 되었다.
기계 인간인 로봇(robot)은 미래의 인류 사회를 그린 작품들에서 흔히 나오지만,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애시모프가 그린 로봇들이다. 과학소설 작가들은 처음엔 로봇들이 사람들을 압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드러냈고, 로봇 (Robot) 들이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말살하는 상황들을 그렸다. 애시모프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로봇들을 그렸다. 아울러 그는 인류를 로봇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 했고, 마침내 <나, 로봇(I, Robot)> 연작에서 ‘로봇공학의 3원칙 (Three Laws of Robotics)’이라고 불리는 원칙을 다듬어 냈다.
제1법칙: 로봇은 사람을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2법칙: 로봇은 사람이 내린 명령들을 따라야 한다, 그것들이 제1법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
제3법칙: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 보호가 제1법칙이나 제2법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
위의 세 법칙들을 생각해낸 뒤, 애시모프는 ‘사람’이란 말을 정의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세운 법칙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개별적 사람들에 우선하는 인류하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0법칙: 로봇은 인류를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류가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애시모프가 이런 법칙들을 내놓자, 로봇 소설을 쓴 작가들은 거의 모두 그것들을 문학적 관행(convention)으로 받아들였다.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의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매서추세츠 공대(MIT)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그 법칙들을 실제로 컴퓨터에 집어 넣으려고 애썼다.
7) 변종 인간(mutant)
변종 인간은 돌연변이에 의해 정상적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될 만큼 새로운 특질들을 지니게 된 사람을 말한다. 다른 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변종은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으나, 과학소설에선 흔히 방사선과 같은 요인들로 생식 세포의 유전자들이 손상을 입어 나오는 것으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그런 변종 인간들은 괴물로 그려지지만, 영신감응(telepathy) 능력을 지닌 사람들처럼 때로는 인류의 진화에서 한결 발전된 단계로 그려지기도 한다. 변종 인간들이 많이 나오는 세상으로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핵전쟁과 같은 재앙을 만난 세상이므로, 변종 인간 소설은 흔히 ‘재앙후 세계(post-catastrophic world)’를 무대로 삼는다.
8)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 ESP) 또는 염력(psi powers)
초감각적 지각은 정상적 종류와 수준을 넘는 정신 능력을 뜻하며, 영신감응(telepathy), 정신 통제(mind control), 예시, 투시, 염력(telekinesis, 손을 대지 않고 정신력으로 물체의 위치를 옮기는 등의 초능력), 물체 이동(teleportation), 염화(pyrolysis, 열분해), 즉시 통신(instantaneous communication) 따위를 포함한다. 정상적 지각에선 지각의 대상으로부터 온 물리적 자극이 감각 기관을 흥분시키고 그 흥분이 중추신경계에 전해져서 감각을 일으킨다. 초감각적 지각에선 물리적 자극이 전달될 수 없는 조건에서 대상에 대한 정보가 얻어지며 그것과 관련된 감각 기관의 존재도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 자연히, 초감각적 지각을 다룬 과학소설 작품들에서도 그런 감각 기관의 성격과 기능을 밝힌 경우는 보기 힘들다. 초감각적 지각이 가리키는 현상들은 염력이라는 말로도 표현되며, 두 개념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고 쓰여진다. ‘psionics’란 말도 한때 쓰여졌다.
9) 실재의 인식(awareness of reality)
사람이 인식하는 세상의 정체를 살피는 것은 과학소설의 중요하고 풍요로운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과연 누가 인조 인간이고 누가 진정한 사람이냐?’, 또는 ‘나는 과연 사람이냐, 아니면 자신을 사람이라고 여기는 인조 인간이냐?’와 같은 물음들은 과학소설이 즐겨 다루는 주제이며, 근년에 많은 영화들이 다루어서 과학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들도 익숙해졌다. 실재의 인식을 다룬 고전적 예는 <장자>의 ‘나비 꿈’이다.
“얼마 전에 나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어 나비처럼 기뻐했다. 스스로 즐거워 마음에 들어 주(周)인 줄 알지 못했다. 문득 꿈이 깨니, 놀랍게도 주(周)였다. 나는 알지 못한다, 주(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주(周)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실재의 인식을 깊이 탐구한 작가는 딕(Philip K. Dick)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현실로 여긴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달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썼다. 실재의 인식이라는 주제에서 또 하나의 가닥은 인류가 실은 엄청난 능력을 지닌 다른 존재의 통제를 받는다는 가정이다. “우리는 소유물이다 (We are property)”라는 미국 문필가 포트(Charles Fort; 1874-1932)의 구호는 이런 편집병적 견해를 깔끔하게 표현했다.
10) 미래 역사(future histories)
과학소설 작품들은 거의 모두 미래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 속에 나온 미래의 모습들은 대부분 단편적이다. 때로 미래는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모습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그 작품들은 미래 역사라 불린다. 애시모프의 <기단 (Foundation)> 연작과 하인라인의 <미래 역사(Future History)> 연작은 미래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그려낸 웅장한 작품들이다.
11) 대체 역사(alternate history)
대체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결말이 현재의 역사와 다르게 났다는 가정을 하고, 그 뒤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결말’이라는 부분이다. 사소한 사건의 결말이 다르게 났더라도, 대체 역사는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 역사와 구별하기 힘들 만큼 비슷할 것이고, 문학적으로 쓸모가 거의 없다. 자연히, 대체 역사가 실재 역사로부터 갈라지는 분기점(branching point)은 역사적으로 무척 중요한 사건이어야 한다. 그런 분기점으로 자주 쓰이는 것은 2차 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이겼다는 가정과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이겼다는 가정이다.
12) 평행 세계들(parallel worlds)
평행 세계들은 실재하는 세상과 다른 시공연속체(space-time continuum) 속에서 존재하는 세상들을 가리킨다. ‘다른 차원들(other dimensions)’이라 불리기도 한다. 근년에는 그런 평행 세계들이 이 세상과 아주 비슷한 세상부터 전혀 다른 세상까지 무수히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되면서, ‘다수 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우주는 그런 다수 우주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다수 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을 내놓자, 이 개념은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13) 재앙후 세계(post-catastrophe world / post-holocaust world)
인류 문명이 자연적 또는 인공적 재앙을 만나는 일은 문학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다. 고대엔 홍수, 질병, 화재, 흉작, 지진, 전쟁과 같은 재앙들이 주로 다루어졌고, 현대엔 소행성이나 혜성과의 충돌, 외계인의 침공,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 바이러스의 창궐, 인구 폭발, 환경의 오염과 파괴, 핵전쟁, 우주 방사능(cosmic radiation)과 같은 재앙들이 더해졌다. 그런 주제를 다룬 ‘재앙 소설(disaster stories)’은 거의 정의에 의해 과학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특히 흥미롭고 풍요로운 것은 재앙 자체보다는 재앙이 일어난 뒤의 세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재앙후 세계’ 소설이다. 재앙으로 파괴된 인류 문명의 폐허에서 새로운 문명이 자라나는 모습을 그리는 일은 작가들에게 상상력을 한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덕분에 재앙후 세계 소설은 과학소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분야고 뛰어난 작품들도 많다.
14) 이상향(utopia)과 반이상향(dystopia)
이상향을 꿈꾸는 일은 인류 사회가 처음 나타났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재하는 사회들은 모두 결점들이 많으므로, 그것을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늘 나오게 마련이다. 이상향을 명시적으로 그린 첫 문학 작품은 영국의 기독교 승려이자 작가인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이상향(Utopia)>이다. 플라톤의 <공화국>의 짙은 영향 아래 쓰여진 이 작품은 아메리카 대륙의 한 섬에 자리잡은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진 공산주의 사회를 그렸다. 그 뒤로 이상향을 그린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이상향 소설은 영국 정치사상가 해링튼(James Harrington; 1611–1677)의 <오세아나 연방(Commonwealth of Oceana)> (1658)일 것이다. 그가 그린 이상향은 17세기 영국 사회의 조건들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 작품은 그런 역사적 맥락을 뛰어넘어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문법, 양원제, 주요 정부 직책들의 임기제, 비밀 투표, 대통령의 간접 선거 따위 영국의 정치 체계에 없었으나 미국의 정치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항들은 <오세아나 연방>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상향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차츰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마뉴엘(Frank Manuel)은 <이상향들과 이상향적 생각 (Utopias and Utopian Thought)> (1966)에서, 문명과 사회가 진보하자, 작가들은 ‘더 좋은 곳(eutopia)’을 논의하는 대신에 ‘더 나은 시대 (euchronia)’를 논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자, 이상향은 실재하는 사회와 비교하는 데 쓰이는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미래에 실제로 나올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반이상향 (dystopia)’이란 말은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이 처음 썼다. 산업혁명의 어두운 측면이 부각되면서, 문명이 꾸준히 진보한다는 믿음이 흔들리자, 19세기 말엽엔 지적 논의들과 예술 작품들에서 반이상향적 이미지들이 부쩍 늘어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핵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은 사회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다. 자연히, 20세기엔 이상향을 그리는 작품들은 거의 사라지고 반이상향에 대해 경고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15) 발견과 발명
새로운 과학 원칙의 발견과 새로운 도구들의 발명은 소설의 다른 장르들보다 과학소설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이 그런 발견과 발명을 과학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질이자 기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발견과 발명은 과학소설의 중심적 주제도 아니고 중요한 특질이나 기능도 아니다. 실제로 발견과 발명에 초점을 맞춘 ‘발명 이야기(invention story)’들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과학소설 작품들이 미래에 관한 것이고,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데서 발견과 발명은 필수적 요소이므로, 과학소설이 그 동안 내놓은 발견과 발명의 목록은 무척 길다.
발명 이야기는 19세기에 많이 쓰여졌다. 베른(Jules Verne)의 작품들은 대부분 발명 이야기로 분류될 수 있고, 그가 생각해낸 발명들은 많고 현실성이 있어서, 그가 발명 이야기를 발명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20세기 초엽엔 웰스(H. G. Wells)가 많은 것들을 발명했다. 그것들 가운데엔 ‘시간 기계(time machine)’처럼 환상적인 것들도 있었지만, 전차(tank)나 원자탄처럼 현실적인 것들도 있었다.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 – 1930)은 단편 <야간 우편으로 (With the Night Mail)> (1905)에서 항공우편제도를 제시했다. 그 뒤로 우주선, 텔레비전, 원격조작장치(waldo),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재조합(gene splicing)과 같은 개념들이 잇따라 발명되었고, 그런 개념적 발명들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로 작용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우주 승강기(space elevator)’나 인공 광합성과 같은 기술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멋진 발명들보다는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제안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보다 우리에게 교훈적인 것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실패한 방식이다. 과학소설에서 나온 발명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은 역시 우주선이다. 우주선은 과학소설에서 처음 그 개념이 제시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소설을 읽고서 우주 탐험에 열광적인 시민들이 존재한 덕분에 엄청난 자원이 드는 개발 사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달에 첫 우주선이 닿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은 모두 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세부 사항 하나를 놓쳤다. 바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16) 종교
과학소설의 이름과 정의를 생각하면, 종교는 과학소설에 가장 이질적인 주제로 여겨질 터이다. 그러나 과학소설의 역사에서 종교는 줄곧 중요한 주제였다. 19세기에 과학의 발전으로, 특히 지질학, 생물학 그리고 천문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기독교 교리와 상충하는 사실들이 잇따라 발견되자,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전통적 교리들과 그것들에 점점 적대적으로 되어가는 과학 이론들을 조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적 과제가 되었다. 외계인들의 종교도 과학소설이 성공적으로 다루어 온 주제다. 종교를 주제로 삼는 일에서 과학소설의 특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아마도 종교적 경험을 반대쪽에서, 즉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일 터이다.
8. 과학소설 속의 과학
그 말이 뜻하는 것처럼, 과학소설은 과학을 다루는 소설 장르다. 여기서 과학은 현재 과학계가 정설이라고 여기는 과학 이론들의 집합을 뜻한다. 실제로는, 위에서 살핀 바처럼, 사정이 복잡하다. 과학소설 작품들 속엔 과학만이 아니라 ‘의사 과학(pseudo-science)’과 ‘상상 과학(imaginary science)’이 많이 들어있다. 심리학 (Psychology)이나 사회학과 같은 ‘무른 과학들(soft sciences)’의 분야들에선 특히 그렇다.
의사 과학은, 비록 과학적 또는 유사 과학적(quasi-scientific) 용어들을 쓰지만, 정통적 과학자들에 의해 틀렸거나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은 믿음들의 체계다. 이론의 여지가 없이 의사 과학에 속하는 것들은 점성술, 수에 의한 예언(numerology),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믿음(ufology), 초감각적 지각(ESP), 속이 빈 지구(hollow Earth), 잃어버린 대륙,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1829)의 학설에 바탕을 둔 진화 (이 가정은 기계 인간이나 외계인에 적용될 때는 의사 과학에서 상상 과학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성경과 신화들 속에 나오는 재앙들은 모두 우주적 교란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 따위다. 틀렸음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직 논란을 빚는 것들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이론을 들 수 있다. 이런 의사 과학들은 바뀌지 않는 핵심적 아이디어를 핵심으로 삼아 새로운 모습을 하고서 거듭 나타난다. 새로운 버전들은 원래의 버전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치장을 했으므로, 논파하기가 힘들고, 과학에 무지한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상상 과학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꾸며낸 과학 이론들로, 현재로선 불가능한 것들이다. 의사 과학과 상상 과학 사이의 차이는, 의사 과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지만, 상상 과학을 고안해 낸 과학소설 작가는 그것이 적어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점을 안다는 사실이다. 상상 과학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정보 전달을 통한 물체의 재생, 생명 활동의 정지(suspended animation) 그리고 외계 생물학(xenobiology)은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정설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고안된 것들이다. 초광속 여행과 통신, 반중력, 보이지 않는 기술(invisibility), 시간 여행, 대체 세계 따위는 널리 알려진 예들이다. 애시모프가 고안한 ‘positronics’나 ‘psychohistory’도 이 부류에 속한다.
9. 과학소설에 관한 정보
과학소설에 관한 책들은 많다. 미국에선 과학소설에 관한 연구가 “산업을 이루었다”는 얘기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자연히, 좋은 입문서들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가볍게 읽을 만한 입문서로는 런드월(Sam J. Lundwall; 1941 – )의 <과학소설의 모든 것(Science Fiction: What It’s All About)> (1971, Ace Book)을 추천할 만하다. 런드월은 스웨덴의 대중 음악가이자 과학소설 평론가로, 이 책은 원래 1969년에 스웨덴어로 출간되었다. 읽기 쉽게 쓰여졌고 흥미로운 사항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미국 작가 건(James E. Gunn; 1923 – )의 <대체 세계들: 삽화가 들어있는 과학소설의 역사 (Alternate Worlds: The Illustrated History of Science Fiction)> (1975)도 균형이 잡히고 설명이 또렷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보다 학구적인 접근을 바라는 독자들에겐 영국의 작가들인 브라이언 올디스(Brian W. Aldiss)와 데이비드 윈그로브(David Wingrove; 1954 – )의 <1조 년 동안의 잔치 (Trillion Year Spree)>(1986)를 추천할 만하다. 저자의 통찰력과 주장들이 뚜렷이 드러나고 과학소설에 대한 열정이 배어 있어,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은 올디스가 1973년에 펴낸 <10억 년 동안의 잔치 (Billion Year Spree)>를 확대한 것인데, 적잖은 이들이 오히려 이 책을 더 높이 평가한다.
과학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은 ‘클래리언 과학소설 작가 창작교실 (Clarion Science Fiction Writers’ Workshop)’의 작품집들에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이 창작교실은 원래 1968년에 미국 펜실배니어의 클래리언 주립대학(Clarion State College)에서 시작했는데, 과학소설 분야에서 가장 오래 되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명성이 높은 과학소설 작가들의 지도 아래 집중적 창작과 토론을 통해서 과학소설 창작 능력을 함양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온 학생들의 작품들과 선생들의 해설들을 모아서 작품집들을 냈다. 첫 회의 주관자였던 미국 작가 로빈 스코트 윌슨 (Robin Scott Wilson; 1928 – )이 편집한 <클래리언(Clarion)> (1971) 이후 여러 권이 나왔다.
과학소설에 관한 기본 자료들을 얻는 데는 캐나다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클루트(John Clute)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니콜스(Peter Nicholls)의 <과학소설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1979, 1993, St. Martin’s Press)이 가장 권위가 크고 이용하기 편리하다. (과학소설에 관해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들은 이 백과사전의 ‘Critical and Historical Works About SF’ 항목에서 필요한 책들과 잡지들의 목록을 얻을 수 있다.) 과학소설에 관한 최신 정보들을 얻는 데는 미국의 과학소설 전문 잡지(semiprozine)인 ‘로커스(Locus)’가 좋다. 1968년에 창간된 뒤 명성을 얻어, 이제는 과학소설 분야의 대표적 전문지가 되었다.
‘휴고상’은 본래 이름이 ‘과학소설 성취상(The Science Fiction Achievement Award)’인데, 1926년에 과학소설 전문 잡지 ‘놀라운 이야기들(Amazing Stories)’를 창간해서 과학소설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미국 출판인 건즈백(Hugo Gernsback)을 기려서 ‘휴고상’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였다. 과학소설의 아마추어 또는 팬들이 주는 상으로 1953년부터 시상했다. 소설이 주요 분야이지만, 편집, 미술, 삽화, 영화 및 텔레비전 그리고 팬 작품과 같은 분야들에도 시상하며, 갖가지 특별상들도 한시적으로 설정된다.
‘성운상’은 1966년부터 ‘미국 과학소설 및 환상소설 작가협회 (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of America)’가 수여해온 상이다. ‘휴고상’과는 달리, 직업 작가들의 견해가 반영된 상이다. 장편 소설(novel; 40,000자 이상), 짧은 장편 소설(novella; 17,500자 – 40,000자), 중편 (novelette; 7,500 자 – 17,500 자) 및 단편(short story; 7,500자 미만)의 분야들에 대해서 시상한다.
11.일반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들
과학소설은 주류 소설보다 역사가 훨씬 짧고 작품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 작품들의 역사적 중요성과 문학적 성취도에 대한 합의도 주류소설의 경우보다 훨씬 뚜렷하다. 아래에 소개된 작품들은 일반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전’들인 바, 필자의 취향을 주로 반영했으므로, 아주 주관적인 목록이다.
화성에 이주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화성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화성 식민지 건설도 전망할 수 있는 터라, 시의를 얻었다 할 수 있다. <붉은 화성(Red Mars)>, <풀빛 화성(Green Mars)>, <파란 화성 (Blue Mars)>으로 이루어졌다.
12. 한국의 과학소설
우리 사회에서 과학소설 분야는 황무지에 가깝다. 우리 작가들이 쓴 과학소설 작품들은, 문학적 성취도를 떠나, 아주 드물다. 독자들도 아주 적다. 과학소설의 본 고장인 서양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학소설이 번창한 이웃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우리 과학소설의 부진은 아프도록 뚜렷해진다. 우리 과학소설이 그렇게 부진한 까닭들은 물론 여럿일 터이다. 가장 근본적 요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풍토가 전반적으로 척박하다는 사실이다.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과학과 문학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는 사정이다. 과학을 경시하거나 과학과 문학 사이의 담이 높은 사회에선 과학소설이 자라나기 어렵다.
또 하나 우리 과학소설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근대 이후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우리가 눈길을 과거로 돌려 과거의 파악과 해석에 대부분의 지적 자원을 투자했고 미래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정이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회에선 과학소설은 성장에 필요한 자양을 제대로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에 관해서 우리에게 적절한 교훈을 주는 것은 프랑스의 경험이다.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과학소설의 출현과 초기 성장 과정에서 큰 공헌을 한 나라다. 그러나 20세기엔, 특히 20세기 후반엔, 프랑스의 과학소설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프랑스 평론가들인 루이(Robert Louit)와 샹봉(Jacques Chambon)의 진단은 음미할 만하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두 가지 요인들이 프랑스의 과학소설의 미래에 크게 작용하게 되었다. 하나는 학교들과 대학들과 모든 사고하는 집단들에서 문학 (les litteraires)과 과학(les scientifiques)이 점점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사정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과학과 우리의 삶에 대한 과학의 잠재적 영향 들에 대한 관심을 덜 갖도록 만들었고, 10대들의 ‘먹이’로 뚜렷이 인식된 과학소설장르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몰아냈다. 말하자면, 프랑스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나아가서 미래 전반에 대해서, 꿈꾸기를 멈추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사항들에 대해 남아 있는 관심들은 다른 원천으로부터, 즉 미국으로부터, 채워졌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 대중들은 한꺼번에 재즈, 미국 영화들, 전율소설(thriller)들 그리고 미국의 ‘과학소설의 황금기( Golden Age ofscience fiction)’를 발견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여류 작가들의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주류소설에선 여류 작가들의 활동이 무척 활발했지만, 과학소설을 쓴 여류 작가는 찾기 힘들다. 과학소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통념과는 달리, 과학소설은 사회의 구조와 주류 사조를 비판하는 데 아주 적합하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류 작가들이 과학소설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깝다. 외국 과학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된 것도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와 프랑스의 경험이 갈린다. 자연히, 우리 사회에서 과학소설에 대한 지식은 비참하도록 적었고 편견은 답답할 만큼 굳었다. 이런 사정은 우리 문학을 빈곤하게 만들었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지적 풍토를 척박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과학소설 영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학소설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고 편견도 줄어든다. 좋은 과학소설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복거일 소설가
직업 상 픽션을 쓰는 사람이나 취미로 쓰는 사람이나 가장 힘든 것은 재미있는 소재거리를 찾는 일 아닐까요?
SF작가인 시어도어 ・스터전(『인간이상』등)은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지인이자 역시 SF작가인 로버트 A 하인라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자 하인라인은 자신이 평소에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등을 길게 적어서 보냈고 스터전은 그 답장을 읽자 26가지 소설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친구가 없다! 하는 당신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것이 오늘 소개할 10가지 아이디어입니다. 소위 ‘정통파’ SF소설을 위한 아이디어인데요 SF뿐만 아니라 모든 픽션작품의 힌트가 될 것이라 봅니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소재를 찾아보시죠. 자세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답이 안 나오는 엄청난 수수께끼 이야기
예를 들어 ‘왜 지구밖 지적생명체와의 접촉이 아직 없었나?’ , ‘우주의 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왜 인력의 강도는 이 정도 수준인가?’ 등과 같이 의문의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답하기 힘들수록 당신이 쓴 얘기가 그 다음주에 바로 반박당할 일은 없습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해서 당신 나름대로 조금 색다른 답이 생각났다면 거기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듯이 얘기에 살을 붙힙니다. 어려운 점은 장대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묘사하면서도 조금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이야기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의 진리를 밝혀내더니 그동안 껄끄러웠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식의 패턴은 때려칩시다.
스케일이 크면서 꿈이 있는 주제로 쓰여진 감동적인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2.획기적인 새로운 발명이 비극을 낳는 이야기
완전히 새로운 과학적 대발명을 상상하기란 간단하죠. 예를 들어 수명을 연장하는 약품이 개발되었다거나 확실한 수면학습이 실현되었거나 하면 거기에서 어떤 소동이 빚어질지를 다양하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이런 획기적인 과학기술 때문에 당신의 인생이 꼬여만 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픽션의 캐릭터에 대입해서 써보도록 합시다.
새로운 발명으로 인생이 뒤틀린 것도 상식적인 전개를 통하지 않고 어떠한 개인적이면서 조금 괴상한 이유를 제시하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멋진 발명에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 보다 어떠한 고생이나 혼란이 있음을 제공한다면 독자는 흥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3.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이야기
언젠가 당신이 나이들었을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없이 외톨이가 된다거나 순조롭게 쌓은 경력이 수포로 돌아가서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하는 불안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예를 들어 그런 개인적인 불안을 극단적으로 크게 우주규모………..는 아니어도 세계규모의 얘기로 전개하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불안을 발판으로 세계전체적으로 뭔가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도 잇겠죠 (개인적으로 가장 SF에 접근한 시도라면 텔레파시능력이 약해지는 고뇌를 묘사한 로버트 실버버그의 『뇌사』같은 얘기가 있겠네요 )
불안을 계기로 발생하는 것이 반드시 슬픈 얘기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실제로 그 불안과 관계가 없어도 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을 캐다보면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무언가가 떠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4.과학이 아니라 사회학, 철학, 신학을 주제로 한 이야기
아서 ・C・클라크의 작품같이 사이언스 픽션이란 우리가 가진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면서 우주적으로 장대한 세계를 그릴 수 있는 문학이죠.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우리를 창조했는가,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지구의 지적생명체는 왜 한 종류밖에 없는가, 무의 공간은 존재하는가, 또 공간이란 사물로 파악할 수 있는가, 착한 사람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요즘의 철학자는 과거에 물리학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근원적인 의문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신이 적는 이야기물도 표면적인 과학에서 벗어나서 진리를 향해서 커지는 의문을 주제로 한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결과 현실적인 과학에 집착하기 보다 더욱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이언스 픽션이 탄생할 수도 있겠죠.
5.사연이 있는 주인공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하는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무언가 엄청나게 무서운 일을 저지르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성실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동료의 얼굴을 찌르는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기만해도 쇼크를 받겠죠. 그러나 어쨌든 그런 한기가 느껴지는 상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럼 그런 상상중에서 한 장면을 골라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런 끔찍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주인공에게 동정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가요(그 행위 자체가 최종적인 스토리에 나오지 않아도 캐릭터를 만드는 계기는 됩니다)
주인공에게는 어떠한 사이언스 픽션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 행위에 도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의를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반드시 논리정연한 설득력있는 이유를 설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 자신의 감정을 흔드는 포인트가 보인다면 그것을 강하게 추구해도 됩니다.
당신이 어떤 때에 자기자신을 두렵다고 생각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6.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을 하는 이야기
꿈에서 묘사한 모든 것이 이루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한 게 인생이죠. 당신이 엄청난 부자에다 유명인이고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다면 별개지만 말입니다.
변변치 않은 일을 그만두고 유유자적하고 있는데 갑자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어달라고 부탁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고 지하철에서 같이 타게된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나 멋진 남성)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일도 없습니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말이죠.
그래서 당신의 개인적인 꿈, 픽션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 모두 이뤄지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또한 그 얘기가 괴상한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어떻게 될지도말이죠.
7.유명한 SF작가에게 도전하는 듯한 이야기
뭐 진지하게 싸움을 걸란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유명한 SF작가 작품에 당신이 만드는 스토리로 대항해 보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버너 진지는 『레인보우 엔드』로 사이버스페이스의 왜곡된 형태를 묘사했는데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하고 생각하는 부분을 스토리로 써보는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많은 작가가 서로 도전하고 한가지 정통적인 스토리에 요소에 각 작가가 자신의 묘사방식을 선보이면서 발전해온 장르입니다. 그밖에 작가의 모든 것을 부정하진 않더라도 거기에서 멋진 스토리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8.험난한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
이 세계에는 분명한 사실이건만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나 석유시대가 종말에 가까워졌고 남극의 얼음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빨리 녹고 있다는 것 등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누구나 대략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너무나 먼 미래의 일같이 생각되어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죠. 하지만 픽션이라면 사람들에게 이러한 현실에 직면토록 하는데 딱 맞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이라면 설정이나 스케일을 조금 변화시켜 이러한 귀가 아픈 얘기를 설교 느낌을 주지 않고 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래의 물 부족에 의한 전쟁에 휘말린 사람을 묘사하고 독자에게 자기자신과 오버랩해서 물 문제를 생각하게 해보는 것도 좋겠죠.
9.새로운 발명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이야기
이것은 2번인 ‘획기적인 새로운 발명이 비극을 낳는 이야기’ 와 비슷한 아이디어지만 딱히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진다기 보다는 더 큰 규모의 얘기입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엄청난 결과를 낳는『워 게임』적인 전개는 사이언스 픽션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죠.
반드시 비극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뇌에 어떤 디바이스를 이식하여 누구나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행을 떠날 사람들이 늘어날까요? 무역이 더 활발해질까요? 싸움이 줄어들까요? (아니면 상대가 외국어로 험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더 싸움이 늘어날까요?)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누가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할 수 없는 듯한 놀라운 전개를 꾸미는 겁니다. 새로운 기적의 테크놀로지가 돌고 돌아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다양한 가능성을 찬찬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가장 있을 법한 아이디어를 베이스로 스토리를 쓰는 겁니다.
10.예전에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진짜였다……..식의 이야기
누구라도 예전에 믿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알게 된 것이 한두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산타클로스는 정말로 있다 ‘ 라던가 ‘물리학을 공부했더니 우주의 모든 걸 파악했다’라던가 말이죠.
어떠한 계기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알아버린 일을 주제로 골라봅시다. 과학적인 것이나 종교적인 것, 자신이 절대로 믿었던 철학적인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믿었던 것’이 진실이 된 세계나 동일한 것을 굳게 게속 믿는 캐릭터를 상상해 보는 겁니다. 아직 믿고 있을 무렵의 기분을 떠올리고 지금은 그 장소를 지나친 자신과의 거리도 느끼면서 스토리를 써보세요.
예전의 자신의 사고방식을 떠올리는 것은 캐릭터물의 사고방식에 리얼리티를 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스토리의 무대가 되는 세계전체를 상상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럼 이상의 아이디어에 대한 해외독자의 의견을 들어보시죠
Trike:아이디어 4랑 9는 ‘좋은 SF작가는 자동차에 대해서 쓰고 훌륭한 SF작가는 교통정체에 대해서 쓴다’ 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기술에서 생겨나는 문화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기술 그 자체와 같은 수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재미있을 거라고 본다.